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196화 (196/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96화>

    ***

    지난 며칠간 참 바빴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말이지.

    병무도감의 일.

    금석리의 농작물을 수확하는 일.

    병무도감과 관계된 호조의 횡간(예산서)을 검토하는 일.

    김전이 대사성 시절 발의한 대동법을 적용할 고을을 등급별로 가리는 일.

    밑에 부하직원들의 보고서를 검토하고 결재하는 일.

    등등.

    임금의 정무가 만기라면 내 일거리는 만기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천기는 되는 것 같애.

    도사 전우치의 분신술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그래도 나름 뿌듯했다.

    바쁘게 산다는 건,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건 그런 것 아니겠나?

    물론 가장 뿌듯했던 건, 농작물을 수확한 일이다.

    비록 내가 직접 기른 건 아니고 소작농들과 노비들이 기른 거긴 하지만··· 나도 틈틈이 일손을 돕기도 했고, 수확 때는 매번 나가서 일손을 거들었다.

    이게 왜 뿌듯하냐고?

    다른 일들은 아직 결과물이란 게 안 나왔다.

    모병?

    그거 아마 시행되려면 못 해도 몇 년은 걸릴 걸?

    지금 당장 정병들을 모두 제대(?) 시키면 나라는 누가 지켜?

    최소한 모병을 하고, 모병 된 인원들의 적절한 훈련이 이뤄졌을 때나 가능한 일이니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횡간 검토?

    이건 솔직히 내가 생전에 논문 같은 건, 한 번도 안 읽어봤는데 말이지?

    읽었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여러모로 머리 아팠다.

    이런 일들과 다르게 농작물을 수확하는 일은 결과물이란 게 눈 앞에 딱 보였다.

    지금도 내 앞에 벼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잖나.

    “아주 많군.”

    나는 솔직한 감상을 토해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존나 많다.

    이게 왜 여기 쌓여 있는 걸 묻는 사람은 농알못이다.

    벼만 수확했다고 밥상에 밥이 올라오는 게 아니다. 탈곡도 남았고 도정도 남았다.

    도정 과정은 내가 하도 바쁜지라 패스 할 테지만, 탈곡 과정은 차마 패스 할 수가 없어서 나왔다.

    “사람도 많은데요?”

    아주 많다는 내 솔직한 감상에 개똥이가 끼어들었다.

    “그래, 사람도 많구나.”

    탈곡은 마을 공동체 작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한, 두 사람이 뚝딱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뜻이다.

    당연히 사람도 엄청 많이 몰려왔다.

    “근데 덕산이는 왜 안 와?”

    사람들이 다 자리를 잡았다. 이제 탈곡만 하면 되는데, 탈곡하는데 쓰일 도구를 가지러 간 덕산이와 금석리 장정들이 감감무소식이다.

    “저기 오는군요.”

    경덕이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과연 덕산이가 다른 장정들과 함께 낑낑거리며 뭔가를 들고 오고 있었다.

    곧이어 덕산이와 장정들은 가져온 농기구들을 바닥에 어지럽게 쏟아부었다.

    난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농기구들을 바라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게 다 뭐냐?”

    라고 물었다.

    “대감마님이 가져오라신 벼훑이(탈곡도구)들인뎁쇼?”

    잠시 얼이 나가 있던 나는 교과서에서나 봤을 법한 도리깨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걸로 탈곡을 한다고?”

    “웬 걸요.”

    “그래, 아니지? 이것만으로 탈곡하려면 사람이 천명은 더 있어야 될 건데··· 내가 널 너무 무시했나 보다. 미안하다, 덕······.”

    “으차! 이것도 있습지요.”

    “···이건 뭐냐?”

    “개상인뎁쇼.”

    개상이란 말에 나는 한참이 지나 말문을 열었다.

    “이게 우리집 행랑에 있던 거라고?”

    “예.”

    “그럼 매해 탈곡할 때 마다 이걸 썼고?”

    “그러믄입죠. 이걸로 탈곡 안 하면 뭘로 하겠습니까요? 대감마님도, 참.”

    덕산이의 너스레에 주변인들이 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아마, 내가 농담을 하고 있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근데··· 근데 말이지?

    나 진짜 농담 아니다.

    덕산이가 개상이라 말한 저거.

    저거 아무리 봐도 통나무다. 보통 통나무와 다른 게 있다면, 넓쩍한 통나무에 다리를 끼워서 세워둔··· 어, 그래.

    벤치와 흡사한 모양새다.

    “야, 그럼 저건 뭔데?”

    내가 가르킨 것은 돌이었다. 아무리 봐도 돌이었다.

    덕산이가 개상이라 말한 건, 벼타작하다가 힘들 때 앉으라는 벤치로라도 쓸 수가 있다면, 저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돌이었다.

    아무리 봐도.

    “돌인뎁쇼?”

    “그걸 누가 모르냐? 어디다 쓰는 돌인데?”

    “타, 타작할 때 씁지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야, 홀테나 그네(탈곡도구)는 어딨어?”

    “호, 홀테라굽쇼? 모, 모르겠습니다요.”

    덕산이만 모르는 건가 싶어서, 주위에 모인 수십명의 사람들을 쳐다보자, 다들 얼굴에 의문문이 떠있다.

    “저 바위랑 통나무로 어떻게 타작을 하는데?”

    라는 궁금증은 말보다 행동인 개똥이가 해소해줬다.

    당장 볏단 몇 개를 집어든 개똥이는 통나무에 있는 힘껏 볏단을 내리쳤다.

    그러자 볏단의 낟알들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주위 어른들이 그런 개똥의 모습이 귀여운지 “잘 하십니다, 의 도령님.” 추켜세우자 개똥이는 의기양양해서는 볏단을 몇 개 더 집어 또 내려쳤다.

    그러고는 어깨가 승천할 기세로 나한테 다가왔다.

    “대감은 만날 저더러 공부하라시면서 이것도 모르세요?”

    보통 같았으면 스승의 그림자를 밞다 못 해 약을 올린다며 머리를 한 대 콕 쥐어박았겠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이건 문화충격이었다.

    원시적이어도 엄청 원시적이다.

    내가 이현호로 살던 시절, 시골에 농촌봉사도 종종 다녔었는데 그때는 콤바인으로 수확하고, 탈곡기 돌려서 탈곡을 했었다.

    물론 16세기에 콤바인이 웬 말이고, 탈곡기가 웬 말이겠나.

    그건 기대도 안 한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홀테랑 그네로 탈곡을 할 줄 알았다.

    강원도로 농촌봉사를 갔을 때.

    어르신들은 탈곡기 돌려서 타작을 하셨었다. 그런데 한 어르신이 ‘요즘 어린 학생들은 이런 거 잘 모르지?’ 하면서 어디선가 홀테와 그네를 가져오셨다.

    그러면서 본인이 어렸던 시절만 해도 이런 탈곡기 말고 이 홀테와 그네로 손수 탈곡을 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떨어진 낟알 벗겨 먹는 게 별미중의 별미라고 회상(?)에 잠기셨었는데······.

    근데, 홀테랑 그네가 없다고?

    “대감. 어찌 그러십니까? 홀테랑 그네는 또 무어구요?”

    석평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묻는다.

    그 눈빛을 보면 확실히 이 시대에는 홀테랑 그네가 없는 것 같다.

    저 통나무랑 바위만으로 타작을 한단 소리다.

    “···여러분.”

    “···?”

    “내가 너무 무심했습니다. 너무 무심해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원시적으로 타작을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짝짝.

    저걸로 통나무에 볏단을 내리치는 방식으로 타작하면 어깨가 남아나질 않을 거다.

    존경의 박수를 보내자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왜 저러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하기로 한 타작은 내일합시다, 내일.”

    ***

    “스승님. 여긴 왜 오셨사옵니까? 그 그림은 또 뭐구요?”

    “너희는 진짜··· 어우!”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쥐어 박고 싶었다. 하지만 명색이 스승된 자로 제자의 머리를 쥐어 박을 순 없지.

    “사람들이 저렇게 뼈빠지게 고생하면서 타작하는 걸 알면서도 어? 나한테 말을 안 해?”

    “···아니. 그, 저기··· 스승님. 타작은 원래 저리 하는데 말씀을 드리고 말고 할 게 당연히 없지 않겠습니까?”

    억울하다는 뉘앙스의 석평이.

    “타작하는 방법을 스승님께서 모르실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여전한 싸가지를 보여주는 경덕이.

    하긴.

    따지고 보면 그럴만도 해.

    21세기에서 차는 녹차나 커피 같은 차(茶)가 아니라 자동차를 의미할 확률이 더 크고, 21세기 한국에서는 중등 교육까지가 의무지만 뜬금없이 25세기에서 온 사람이 ‘아니, 왜 중등교육까지 밖에 안 해? 당연히 고등교육까지 의무 아님?’ 이라고 말하면,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어처구니가 없을 만도 하지.

    석평이나 경덕이 입장에선 개상에 볏단을 내려찍으면서 타작을 한다는 건, 사람이 숨을 쉬어야 산다는 거랑 같은 맥락의 당연함이었을 테니까.

    “이 자식들아,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면 안 돼. 너희가 말이야, 어? 그 머리 조금만 썼어도 농사꾼들이 고생 덜 하는 거라고.”

    “어, 억울합니다······.”

    사실 이런 건 조정에서 나랏일 한다는 사람들한테 따져야 하는 게 맞지만,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잖나.

    아무튼.

    여긴 대장간이다. 석평이가 말한 그림은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의 그네고.

    “어서오십······.”

    “이거 만들 수 있소?”

    나는 다짜고짜 내가 그려온 그네의 도면을 대장장이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이게 뭡니까요?”

    “용도는 알 필요 없소. 만들 수 있겠소, 없겠소?”

    “다, 당연히 가능 합지요.”

    그네는 사실 만들기 어려운 편은 아니다.

    홀테와 그네를 나한테 소개시켜준 강원도 그 어르신도 홀테와 그네를 가리키며 ‘이건 내가 소싯적에 만들었던 것’이라고 소개를 하셨었거든.

    아닌 게 아니라 겁나 간단하다.

    다리 4개를 박아 八으로 세운 틀에, 머리빗 같이 촘촘히 박힌 쇠이빨들을 틀에 고정시키면 끝이거든.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재료만 있으면 뚝딱 만들 수 있고, 심지어 개똥이도 재료와 도면만 있으면 뚝딱 만들 수 있을 만큼 만들기가 까다롭지는 않은 도구다.

    그런데도 대장간에 온 건, 쇠가 없어서다.

    “몇 개나 만들면 되겠습니까요?”

    도면을 한참 동안 훑어보던 대장장이가 물었다.

    몇 개나 만들어야 할까?

    이 그네는 1인1그네다. 2인1조가 될 필요가 없이 그네 하나에 사람 한 명이 붙으면 된단 소리지.

    그럼 적어도······.

    “150개 정도?”

    “그, 그렇게나 많이 말입니까요?”

    “만들어 주기나 하시오.”

    “예, 선비님.”

    “어허! 선비라니! 이분이 뉘신줄 알고!”

    발끈하는 경덕이 머리를 콕 쥐어박았다.

    “너는 씹선비 기질이 없어질라치면 나타나더라? 거, 언제까지 만들어 줄 수 있소?”

    “만들기 어렵진 않으니 사나흘만 주시면 될 듯 합니다.”

    “좋소, 좋아.”

    “다 만들면 어디로 보내면 되겠습니까요?”

    “찾으러 오겠소. 다 만들어지면 기별은 진성대군 궁가(宮家)로 보내시오.”

    진성대군 궁가라는 말에 흡, 헛바람을 들이킨 대장장이가 넙죽 조아렸다.

    “귀, 귀하신 분께서 이 누추한 곳에 걸음하신 줄은 몰랐습니다요. 쇤네가 혹 언행에 공손하지 못 한 것이 있었다면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대장장이의 반응은 만인의 반응이다.

    내가 일개 선비인 줄 알았던 사람들도 진성대군인 걸 알면 저런 반응을 보인다.

    이제는 너무 당연한 반응이랄까?

    에전에는 저런 반응 보이면 나도 무안해서 손사래를 쳤는데 하도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별 감흥도 없다.

    “셈은 기별을 보내면 치르겠소.”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

    기별이 왔다.

    사나흘 정도 걸릴 거라는 말과 다르게 딱 이틀이 지나 물건을 찾으러 오란 기별이 왔다.

    아마, 내 신분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혹 나한테 미움살까, 그래서 불이익을 얻을까 밤낮 없이 그네를 만들었을 대장장이를 생각하면 딱하지만 나는 한국인의 소울이 남아 있는 조선인이다.

    일처리가 빨라져서 나쁠 건 없다.

    물건 찾으러 가는 일은 덕산이 보내도 된다.

    사실 다른집 궁가나 반가에서는 뭐 살 일이 있으면 노복을 보내니까.

    근데 나는 내 눈으로 직접 그네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노복들을 죄 이끌고, 심지어 금석리 마을 주민들까지 죄 이끌고 대장간을 찾았다.

    그네는 부피가 제법 커서 우리집 행랑식구들만으로는 150개에 달하는 그네를 가져올 수가 없거든.

    백여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 연상 될 만큼, 보무도 당당하게 대장간을 찾자 주변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대장간에 도착하자, 대장간 한귀퉁이에는 그네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셈은 치렀다.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수고했소.”

    대장장이에게는 한마디 해주고, 행랑식구들과 금석리 주민들을 진두지휘하며 그네를 운반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흉측한(?) 도구를 들고 성저십리(도성외곽)를 횡행하자,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지, 포청에서 포졸들이 달려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말그대로 해프닝이었고, 우린 무사히 금석리에 도착했다.

    “한데 이것들은 어찌 쓰는 물건입니까요?”

    막상 내 말에 따라 그네를 운반하긴 했어도 용도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금석리에 도차하자마자 한 주민인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다른 이들도 대동소이한 반응들이었다.

    궁금해하는 주민들을 일별한 나는, 직접 볏단을 쥐고 그네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네의 쇠이빨에 볏단을 잘 끼운 뒤 가볍게 당겼다.

    그러자.

    우수수수-!

    낟알들이 잘 털린 옥수수 강냉이처럼 우수수 쏟아졌다.

    끔뻑끔뻑.

    “···”

    앞전에는 내가 문화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면, 이번에는 금석리 주민들과 행랑식구들이 문화충격에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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