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87화>
***
“어찌 할까?”
무라모리(材盛)는 어딘가 초조해보였다.
늘 당차고 기백 넘치던 모습이 아니라 불안에 떨고 있는 도주에 가신들은 하나같이 침음했다.
오우치 씨(大內殿氏)가 조선에 접촉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덜컥 겁부터 나서 조선행을 택한 무라모리였다.
기별도 없이 조선행을 택했기 때문에 어떤 힐책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처사였지만, 발등에 불 떨어진 무라모리 입장에서 그런 건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오우치 놈들이 어떤 종자들인가.
인정하긴 싫어도 쇼니 씨(少弐氏)마저 패퇴시키고 상락한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이 조선과 교역을 하게 된다면 본토에 미치는 여파를 떠나 앞으로 쓰시마는 밥줄이 끊길지도 몰랐다.
그래서 기별도 없이 조선을 찾긴 했는데······.
갑작스러운 조선행이었으니 대책 마련이란 걸 해뒀을 리가 없었다.
“어찌 하면 좋겠냐니까?”
“저기, 주군.”
가신단의 일원인 고노에 오키히데(近衛興秀)의 말에 무라모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오키히데. 그래, 어찌 하면 좋겠나?”
“소신이 듣기로 오우치 씨는 백제국의 후손을 자처했다고 알고 있사옵니다.”
무라모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미 100년도 더 된 일이다.
오우치 놈들이 조선과 접촉한 건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100년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접촉 명분은 본인들이 조선의 전신인 백제국의 후손이라는 데에 있었다.
그 세계(世系)를 알지 못 하겠으니 조선국에서 판별해달라는 게 접촉의 명분이었고, 그 이후 오우치 놈들은 백제국의 후손이란 점을 이용해 이문을 남겼었다.
역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주군께서 입국을 하셨사오니 조선국 조정에서 어찌 분란이 없겠사옵니까? 비록 주군께오서 숙배를 명분으로 삼으셨습니다만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사옵니까?”
무라모리의 얼굴이 떫은 감이라도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
“내가 실수라도 했다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다만 조선국왕이 상경을 윤허한다 한들 정말 숙배만 하고 내려오실 참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물론이다.
숙배는 핑계다. 결국은 오우치 씨와 조선의 접촉을 막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문제는 말했다시피 명분이 없었다.
숙배가 상경의 명분은 될 수 있어도 오우치 씨와의 교역을 막는 명분이 되진 못 하니까.
“당연한 말을 새삼스레 하는구나.”
“그래서 말이온데······.”
“말해보아라.”
“오우치 씨는 백제국의 후손을 자처하였사옵니다. 주군께오서도 조선에 세계를 밝혀달라 함이 어떠시온지요?”
세계를 밝혀달라.
단순한 표현일지 몰라도 함축된 의미는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내 조상이 조선인이란 걸 증명해달란 소리니까.
반발은 무라모리보다도 가신단들에서 튀어나왔다.
“그 무슨 망언이시오. 주군의 세계를 밝혀달라니··· 스케모토(쇼니 가문의 당주)님께서 가만 계시겠소이까?”
“지금은 난세요. 자식이 아비의 등에 칼을 꽃고, 아비가 자식의 배에 칼을 꽃는 일이 비일비재하거늘 대대로 쇼니 가문을 섬겨왔다 하여 일평생 섬겨야겠소이까? 더군다나 쇼니 가문을 섬겼다가 어떤 꼴이 났소?”
쇼니 씨와 오우치 씨의 격전에서 쓰시마는 쇼니 씨를 지원했었다.
의리와 인정상 쇼니 씨를 지원한 셈이었는데 결과는 쇼니 씨의 대패.
여기서 입은 쓰시마의 피해도 절대 작진 않았었다.
오키히데가 그점을 지적하자, 그의 말을 망언이라 치부한 무네모리(宗盛)는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주군. 조선에 세계를 밝혀달라 청하시옵소서.”
“세계를 밝혀달라··· 흐음.”
“주군의 선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타 씨(秦氏)에서 갈라진 것이 아니옵니까? 늙은 노인들이 말하길 하타 씨는 신라에서 도래했다고 하니 세계를 밝혀달란 말이 어찌 허무맹랑하기만 하겠사옵니까? 크게 고민하실 일도 아니옵니다.”
“하지만 세계를 밝혀달라는 말이 어찌 크게 고민할 일이 아니란 말이냐?”
“신라는 천년도 더 된 나라이옵니다. 오우치 종자들이 어찌 백제국의 후손임을 자처했겠나이까?”
“뭐, 그렇긴 한데··· 이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오우치 종자들이야 조선 본토와 떨어져있으니 백제국의 후손을 자처한다 한들 상관 없을지 몰라도, 우리 쓰시마는 부산과 엎드리면 코닿을 거리가 아니냐? 선뜻 세계를 밝혀달라 했다가 기해년(기해년에 있었던 대마도 정벌)처럼 조선이 거병이라도 한다면······.”
“주군. 조선이 어찌 쓰시마 같은 박토를 탐내겠사옵니까?”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굳이 군사를 일으켜 점거한다 한들 쓰시마 같은 박토는 탐낼 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
오히려 조선처럼 흉년이 들면 제때 구휼미를 베푸는 나라라면 더더욱 손해다.
쓰시마는 매해 흉년이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말은 조선이 굳이 쓰시마를 점거한다면, 매해 구휼미를 베풀어야 한다는 소리다.
“하면 세계를 밝혀달라 청한 뒤에는 어찌 하라는 것이냐?”
“신이 조선의 과거를 잘 알지는 못 합니다만, 듣건대 백제국을 잡아 먹은 것이 신라라 하옵고 신라 이후에 고려가 나왔사옵니다. 고려 이후에는 다시 조선이 나왔으니 조선의 정통을 본다면 어찌 신라와 연관이 없다 하겠습니까? 조선인들도 백제의 후손보다는 신라의 후손을 우대할 것이옵니다.”
“으음.”
무라모리는 고심했다. 고심하고 또 고심을 했다.
그리고 나온 결론.
“오키히데 네 충심을 모르진 않는다만 세계를 밝혀달라는 것을 명분으로 삼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면 어찌 하시겠사옵니까?”
“음. 지금 갑자기 우리가 고개를 조아리고 나타났으니 필시 조선 조정에서는 의아해 할 것이다. 분명 내막을 캐내기 위해 분투 할 것이니, 우리가 오우치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조선 조정에 알려지면 이로울 게 전혀 없다. 차라리 예전대로 함이 어떤가?”
곳곳에서 차라리 그게 낫겠다는 말이 쏟아져나왔다.
무라모리 본인이 생각해도 그랬다.
차라리 예전처럼 무례하게 굴고, 그러면서 조선 조정을 슬쩍 염탐해본다.
오우치 일은 그 이후 논해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
오늘은 대마도주가 입조(入朝)하는 날이었다.
형님께선 딱 열흘 전에 상경을 윤허해달라는 도주의 간청에 그러라고 사람을 보내셨다.
예법에 충실한 나라라서, 도주가 친히 숙배를 하러 오는 것이니 선위사(宣慰使)를 동래까지 보내 마중을 나가네 마네로 논란이 아주 잠깐 일었지만 결국 헤프닝에 그쳤다.
그저 사역원(번역과 통역을 맡은 관청)에서 왜어 통사(通事)를 선별해 길안내 삼아 동래까지 보내는 것으로 귀결 지어졌고, 도주는 그 왜어 통사와 함께 상경을 했다.
그리고 오늘은, 뭐 도주가 오다가 산적들하고 조우해서 횡액을 맞았다거나, 산에서 호환을 당하지만 않았다면 딱 오늘이 도주의 도착 예정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양 전체가 떠들썩했다.
왜구 두령의 상판을 본답시고 충청도나 강원도에서 상경한 사람도 여럿있었고, 왜구 두령이 도성에 드는 즉시 가족의 복수를 하겠다면서 벽서를 붙인 사람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나는 할 일이 있거든.
병무도감의 도제조로서가 아니라 대지주로서.
나는 너른 벌판을 바라봤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벌판은 단순한 벌판이 아니다.
봄, 여름 내 잘 익어서 고개 숙인 벼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금석리의 논들이다.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몇 년 전.
금석리 사는 민휘의 족친 민택의 땅을 적몰한 형님이 내게 그 땅을 도로 하사하신 적이 있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바로 그 땅들이었다.
내가 왜 열일 제쳐두고, 새삼스럽게 고작 이 논들을 보러 나왔냐고?
아재 개그 식으로, 이제 곧 하늘이 마비되는 가을이 온다.
벌써 10월 초순이니까.
이제 머잖아 수확철이란 소리다.
수확철이라고, 새삼스레 논 구경 나올 필요는 없지만 다른 논들은 몰라도 금석리 논들은 좀 다르다.
알다시피 나는 2년 전에 이 논들의 소작농들에게 모내기 법으로 농사를 지어달라 부탁했었다.
직파와 모내기로 지은 벼농사가 얼마나 차이가 나나 싶어서.
그리고 작년에는 대실패를 했었다.
우리집 행랑식구들과 금석리 소작농들이 힘을 한데 모아서 수로를 파고 대천(청계천) 물을 끌어다 쓰긴 했는데, 아무래도 모내기에 익숙하지 못 한 소작농들이 제때 둑을 안 트고, 또 어쩔 땐 둑을 너무 닫고 있어서 벼가 썩어버린 것이다.
형님께 하사받은 민택의 금석리 전답이 모두 120결이다.
여기서 모내기 법으로 농사 짓게한 논들은 그 절반에 해당하는 60결 정도.
작년에는 이 60결의 논 농사가 모두 망해버렸었다.
한데 이번에는 절치부심(?)한 소작농들 덕분인지 올 봄부터 희소식들이 많았었다.
“벼들이 아주 잘 익었군요.”
그리고 그 희소식들을 토양 삼아 잘 자란 덕인지, 벼들이 잘 익다 못 해 넘실거리고 있었다.
흐뭇하다.
“이만한 규모에서 직파로 농사 지을 적에 예년 소출이 1000석이 살짝 넘거나 못 넘는데, 이번에는 못 해도 1300석은 넘을 듯 합니다요.”
아, 이분은 모두 알고 있는 창산군(의팔석)이다.
공신으로 책봉 된 뒤로는, 평생 써도 모자를 만큼의 재물이 주어졌는데 일평생 하던 일이 농사일이라, 갑자기 농사를 관두니 할 게 없다면서 이 금석리 논들을 관리하고 계셨다.
“내년까지 해보고 형님께도 알려 드려야겠군요.”
내가 금석리 논을 손해 볼 각오하고, 굳이 모내기 법으로 농사 지으라 한 까닭은 소출의 증대를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전국구로 퍼뜨리는 건 어려워도, 물가에 가까이 있는 논들에는 보급할 만한 농법이니까.
아, 물론 모내기 법이 새삼 새로운 농법인 건 아니다.
새로운 농법이라면 국법으로 금해지고 있을 리도 없을 테니까.
다만 이 모내기 법이 국법으로 금지된 것도 따지고 보면 현대건 과거건 공직 사회가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도 머리가 데코가 아닌 이상 모내기 법이 직파보다 효율적인 건 알고 있는데도 보수주의적 관점 때문에 국법으로 금해지고 있는 거다.
1년차에서는 실패했고 2년차인 올해에는 성공했고, 이제 3년차인 내년만 성공하면 된다.
당장 금석리 논만 해도 예년에 비하면 30%의 소출이 증대했다.
이걸 전국에 퍼져있는 전체 논밭들에 단 20%만 적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생산량이 얼마나 크게 늘겠나?
‘이 와중에도 나라 생각하고 있는 나란 놈은 어쩔 수 없는 고관대작인가······.’
자뻑에 심취해있던 그때였다.
저 멀리 일단의 행렬이 보였다.
말로만 듣던 대마도주의 행렬같다.
늦기 전에 환복하고 입궐해야겠다.
이미 대마도에서 실컷 본 도주 상판을 편전에서 보건 말건, 나랑은 하등 상관 없는 일이지만 앞에서 순진한 양 굴던 도주가 신공의 일로 뒤에서 호박씨 까고 있던 걸 알게 됐으니, 호박씨 못 까게 잘 감시해야지 않겠나?
***
무라모리는 긴장한 표정이 완연한 채, 편전에 들었다.
말로만 들었던 편전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지만, 그 새로운 감회를 곱씹을 만큼 심적으로 여유롭진 않았다.
심장은 쿵쾅쿵쾅, 마구잡이로 날뛰었고 편전에 들어서 조선왕에게 숙배한 뒤에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렇지도 않아.’
어떻게 보면 사지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셈이지만,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신(臣) 대마주 태수 종익성, 전하께 문안 인사 올리옵나이다.”
“내 태수가 조선말을 할 줄 안다는 건 들었다만 왜인이 본시 우리말을 하게 되면 어색하기 마련인데 도주는 어색함이 전혀 없다.”
“조선인이 조선말을 하는 것이 어찌 어색하겠사옵니까?”
“그대가 조선인이란 말이렷다?”
“외방에 있다가 속한지 오래 되었고 관작까지 함께 받았사오며, 여태 마음으로라도 우러러 사모한 바가 있었으니 어찌 아니겠사옵니까?”
“태수도 알겠지만 우리나라는 본시 예를 좆는 바가 있어, 저 여염집의 미천한 자들도 저희들끼리 의리로서 예를 다한다. 이처럼 예를 숭상하는 바가 공사천을 가리지 않거늘, 신하된 자가 임금을 배알하며 보이는 예가 어찌 이와 같으랴?”
“아!”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무라모리는 허둥거리며 오체투지했다.
“신이 궁중의 법도에 어둡고, 또한 전하께오서도 알고 계시다시피 도서에 틀어박혀 있던 세월이 수십년이라 예를 차리는 일에는 어둡사옵니다. 신을 용서하소서.”
라고 말한 무라모리는 인상을 구겼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평상시처럼 해야겠다고 가신들 앞에서 떵떵거렸거늘··· 추태도 이런 추태가 없었다.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뭔가에 압도 당한 기분이었다.
“태수가 올리는 서계는 공순하지 못 한 바가 있어 내 경차관(지방에 임시로 보내던 벼슬아치)을 대마도에 파견할 때마다 그 일을 힐책한 일이 많았는데 직접 보니 알 만 하다.”
꿀꺽.
“그대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지?”
“하교하시옵소서, 전하.”
“소를 탄 사람은 나는 새를 잡을 수 없으니, 바로 귀방(조선)과 본도(대마도)를 두고 하는 소리라. 우리가 한 번 배를 타고 나가면 조선의 수군들은 감히 쫓아 올 수 없음이니 평화란 것이 과연 어디에 있던가··· 라는 말을 대마도 왜인들이 자주한다고 들었다.”
“그, 금시초문이옵니다.”
“너희의 공순하지 못 함과 방자함을 천하에 떠들고 다니면서도 도주되는 자가 듣지 못 했다?”
“신이 돌아가는대로 조치를 취하겠사옵니다.”
“너희는 말로는 굴종한다고 하지만, 위와 같은 말로 늘 우리를 기만하였다. 평소 무례했던 것 역시 위의 말로서 알 수가 있는 것인데 우리가 너희들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저런 말이 나온 것 아니냐?”
“···”
“태수는 고개를 들어라. 지금 내 하는 말이 서운한가?”
“어찌 서운하겠사옵니까. 모두 성상의 하교이시니 하나같이 윤당하옵고 또 지당하신 말씀들이옵니다.”
“그래, 이번에 숙배코자 상경을 윤허해달라 서계를 올렸는데 혹 토산물을 바치러 온 것인가?”
무라모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주먹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토산물을 바치러 왔냐.
저건 분명한 비아냥이었다.
무라모리는 조선에 토산물을 자주 바쳤다.
당연히 무슨 대단한 충심이라던가, 충의를 보이기 위해서는 아니고··· 토산물을 갖다 바치면 최소 세곱절에 달하는 물품을 하사해주기 때문에 일부러 보내는 거였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올해만 9차례 토산물을 바쳤다.
당연히 조선측에서는 자제하라는 말을 해왔다.
무라모리로서는 자제를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남는 장사인데 어찌 자제를 한단 말인가?
그러니 토산물을 바치러 왔냐, 저 말은 분명한 비아냥이다.
분노에 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지만 그는 애써 분을 삭였다.
"아니옵니다."
“그럼 정말로 문안을 여쭈러 온 것이냐?”
“신이 서계에서 밝혔듯 한 번도 전하께 절을 올린 일이 없는 듯 하여 이처럼 윤허를 받고 상경을 한 것이옵니다. 그 외 무슨 사심이 있겠나이까?”
“그래?”
“예, 전하.”
“인사는 잘 받았으니 이만 내려가면 되겠는데, 상경하자마자 내려보내는 것은 접대의 예가 아니니 동평관(객사)에 2~3일 머문 연후에 내려가면 좋겠도다. 그럼.”
조선왕은 미련없이 어좌에서 일어났다.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무라모리는 얼이 나간 채, 빈 어좌만 바라보았다.
그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