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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81화 (181/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81화>

    ***

    “맛있냐?”

    내가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예전에 취미 삼아 집안에 게이트볼장을 설치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형님과 해 본 격구가 무척 재밌었는데, 위험하기도 했던지라 어떻게 보면 격구와 비슷한(?) 게이트볼을 떠올린 것이다.

    아, 골프장을 안 만든 건 굳이 말 안 해도 될 거라 믿는다.

    조선에서 산 갈아엎고, 동물들 다 쫓아내고, 골프장 만드려고 하면 자연의 조화를 해치니 어쩌니 하면서 갈굼 당할 게 뻔하다.

    골프는 애당초 관심도 없고.

    아무튼.

    오래 전에 집 뒤편 장독대가 있는 짜투리 공간을 활용해 게이트볼장을 설치했었다.

    지금은 간만에 여흥을 즐기고 있는 셈인데 혼자 즐기고 있는 건 아니다.

    개똥이랑 덕산이도 함께였다.

    스틱을 휘두른 나는 데굴데굴- 공이 개똥이 발치에 떨어지자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저 녀석 지금 꽈배기 도넛을 4개째 먹고 있거든.

    아, 꽈배기 도넛은 내가 오키나와에 다녀와서 가장 먼저 만든 음식이다.

    물론 한 번에 뚝딱 만들어내지는 못 했다.

    버린 밀가루만 해도 5kg가 넘어 갈 거고, 버린 설탕만 해도 족히 한 봉투는 될 거다.

    내가 왜 오키나와에 갔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리고 꽈배기 도넛에 필수품인 설탕을 바리바리 싸올 수 있었다.

    근데 꽈배기 도넛을 못 먹는다고? 말이 안 되지.

    실패를 거듭하다 뒤늦게 꽈배기도 결국은 빵의 일종임을 떠올렸다.

    효모가 필요하단 소리였다.

    그런데 여기서 인위적인 효모를 어떻게 구하겠나?

    당장 떠오른 게 막걸리 효모였고, 반죽에 설탕과 막걸리 효모를 소량 첨가해 구들장 밑에 잘 보관시켰다.

    그리고 튀기자 딱 내가 원하는 꽈배기가 탄생했다.

    21세기의 그것과 비교하면 거친데다가 부드러운 맛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뭐, 어때?

    “네! 맛있어요.”

    어쨌든 개똥이는 내 덕에 계탔다. 21세기의 음식을 16세기에 접하고 있는 최초의 조선인(?)일 테니까.

    근데······.

    “또 먹게?”

    녀석이 또 꽈배기 하나를 집어든다.

    벌써 네 개 짼데······.

    “먹으면 안 돼요?”

    “야, 그거 네 개면 인마. 어?”

    “넹?”

    말을 하려다 말았다.

    저거 4개면 거짓말 200% 보태서 말 4필 값이다.

    꽈배기 도넛 위에 뿌리는 설탕이 좀 비싸야지.

    근데 먹는 걸로 뭐라 할 수도 없고······.

    “아니, 많이 먹으라고.”

    “넹.”

    “아, 너 그거 공부 잘 하라고 주는 선물 같은 거니까,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

    “···”

    대답대신 냠냠쩝쩝 꽈배기 먹는 소리만 내뱉는다.

    제 불리한 대답은 안 하겠단 거지.

    여기서 내가 발끈해가지고 뭐라고 하면 횡설수설을 늘어놓을 게 뻔하다.

    개똥이 원데이, 투데이 만나는 것도 아니라서 내가 잘 알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스틱을 다시 쥐었다.

    아니, 쥐으려고 할 때였다.

    “대감마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요.”

    질동 할아버지였다.

    “손님이요? 누굽니까?”

    “대사성 어르신이라고 합니다요.”

    대사성?

    그 인간··· 아. 아니, 그분이 왜?

    “왜 왔대요?”

    “그건 쇤네도 잘······.”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찔리는 게 없었다면 망설이지도 않았겠지만 알다시피 찔리는 게 한 두 가지여야지.

    가장 최근에는 형님께 개똥 같은 말을 아뢨었고······.

    ‘근데 뭐 별 일이야 있으려고.’

    똥개도 제 집에선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들여보내세요.”

    “예.”

    잠시 후.

    대사성 영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 도령(개똥이)도 계셨습니까?”

    개똥이는 이미 조정에서 유명인사다.

    형님께서 팔석 씨와 개똥이네 같은 공신들에게 예를 안 갖추면 역적의 률로 다스리겠다고 엄포한 적이 있는데다, 형님이 틈만나면 개똥이도 궐에 불러들여서, 이제는 문무백관 모두가 개똥이에게 잘 보이려 안간힘들이다.

    다만······.

    “···무섭게 생겼어.”

    개똥이만 그 사실을 모른다.

    녀석은 처음 보는 아저씨가 위협적으로 다가왔는지 꽈배기 든 채로 얼어 붙어버렸다.

    계속 여기 계시게 뒀다가는 개똥이가 오줌이라도 지려버릴 것 같아서 대사성 영감을 사랑방으로 안내했다.

    “생각보다 검소하십니다.”

    방으로 안내하자 대사성 영감은 방안 전경을 쓱- 훑다가 감상을 툭, 하고 내뱉었다.

    근데, 생각보다?

    기분 나쁜 걸.

    “제가 먹는 건 안 아까운데 다른 건 아까워서 잘 안 씁니다.”

    “대감마님, 다과상 들이겠습니다.”

    전금이 목소리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러거라, 짧게 말했다.

    원래 손님이 찾아오면 부엌 식구들은 자연스레 다과상을 들이곤 한다.

    손닙 접대 예절의 하나다.

    문제는.

    “저기, 전금아.”

    “예?”

    다과상을 놓고 방을 나가던 전금이가 날 돌아봤다.

    “이거는 왜 여기 있는 거니?”

    “꽈배기 말씀이십니까?”

    끄덕.

    “그야 손님이 찾아오셔서······.”

    말했다시피 이거 엄청 비싼 거다.

    음식은 나눠 먹는 맛도 있다지만 이 비싼 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사성 영감하고는 나눠 먹고 싶지 않은데··· 이미 내어온 걸 어떡하겠나.

    “···그래. 나가봐.”

    “예.”

    “이걸 꽈배기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처음 보는 음식에 대사성 영감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는 퉁명스럽게 예, 대답했다.

    “여기에 뿌려진 건, 곶감 가루이옵니까?”

    설탕이 귀한 시대다 보니 단 맛을 내려고 별에 별 짓(?)을 다 하곤 하는데 그중 하나가 곶감에 있는 흰가루, 즉 포도당을 감미료로 대체하는 것이다.

    설탕과 흡사하게 생겨 물어보신 걸 테지만 전혀 아니다.

    “사탕(설탕)인데요.”

    “사, 사탕이요?”

    “네.”

    “이 비싼 걸 어찌 여기에··· 허어.”

    “말씀 드렸다시피 먹는 곳에는 돈 안 아껴서요. 드세요. 맛있습니다.”

    내가 대군이란 신분만 아니었으면 한소리 했을 게 분명한 표정이다.

    “안 드세요?”

    “아, 예. 하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대사성 영감은 꽈배기에 올라간 설탕이 떨어질새라 손으로 받쳐가면서 조심히 꽈배기를 베어물었다.

    그리고.

    부릅!

    “맛있죠?”

    “···달군요.”

    차마 최상의 사치 음식에 맛있다고는 체면상 말할 수 없었는지 달다는 말로 대신하는 대사성 영감이시다.

    “근데 영감께서 기별도 없이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아. 드릴 말씀이 몇 가지 있어서 찾아 뵀사옵니다.”

    “어떤···?”

    “먼저, 엊그제 전하께서 저를 부르셨었습니다.”

    “그래요?”

    “예. 하온데 대뜸 대사헌으로서 수고를 해주어야겠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잘 됐군요.”

    “전하께서 말씀하시길 대사헌 자리에 저를 추천하신 게 대감이라 하시더군요.”

    아, 그거.

    내가 오키나와 가기 전에 형님께 말씀 아뢨었던 기억이 있다.

    돌아오고 나서도 김전 씨가 대사헌이 아니라 여전히 대사성이라서 약간 의아하긴 했지만.

    “예, 뭐. 그렇죠. 근데 새삼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뭐··· 후임으로 누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원칙주의자이신 영감께서 대사헌이 돼셔야 사헌부가 조금이라도······.”

    “이는 옳지 못 한 일입니다.”

    “예?”

    “무릇 대사헌의 자리라 함은 문무백관의 본이 되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보여지는 모습이 그럴진대 수령들이 군관들에게 차첩을 내어줄 때처럼 뒤에서 추천을 하신다면 어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설 수 있겠으며, 그리 대사헌의 자리에 오르면 백관의 기강을 어찌 바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이는 삼가야 할 일일뿐더러······.”

    나는 계속하시라고 입을 꾹 다물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다. 이미 잔소리 흘려 듣기는 만렙에 가깝다.

    개똥이 횡설수설을 원데이, 투데이 들었어야지.

    어떨 땐 횡설수설만 10분 넘게 들은 적도 있다. 이런 잔소리는 오히려 약과다.

    “···하는 것이라야 비로소 선비로 하여금 모범이 될 수 있는 일이니 대감께서도 자중하심이 좋겠습니다.”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옵고.”

    “말씀하십시오.”

    “대감께서 전하께 상주(上奏)하신 모병 말이옵니다. 지금 전하께서 또 상교를 내리셔서 조정대신들이 논의를 거듭하고 있사온데 그 구체적인 방안이란 것이 중구난방인지라 난처할 때가 있사옵니다. 대감의 견해는 어떠시옵니까?”

    “제 견해요? 어떤 견해를 말씀하시는지?”

    내가 알기로 딱 나흘 전에 내가 형님께 말씀드린 모병건이 채택된 걸로 안다.

    그리고 그 의견이 채택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대사성 영감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근데 여기서 견해라고 하면 뭘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는 게 사실이다.

    “어떤 이를 모병할지··· 또 군포는 어떻게 납부하게 할지··· 그 나이는 어찌 정해야할지··· 기존의 금군과 갑사와 변경의 정예군들은 어찌 해야할지··· 또, 관장이 차첩한 군관은 어떻게 할지 등등 말이옵니다.”

    “···”

    말문이 막혔다.

    사실 저기까진 내가 생각을 안 해 봤다.

    나는 내 주장이 채택 될 거라고는 생각 조차도 안 했었고,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구체적인 방안까지는 생각을 안 했다.

    근데 깜빡이도 없이 갑자기 치고 들어와서는 방안을 물으면··· 당연히 말문이 막히지.

    “에··· 구체적인 방안이요.”

    “예.”

    “그건 제가 조금 생각을 한 뒤에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생각해두신 게 없으십니까?”

    “설마요. 다 저기 문갑 안에 들어있습니다.”

    문갑을 흘긴 영감이 날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꽈배기를 한입 베어물었다.

    “하면 빈청에서 방안을 말씀해주실 수도 있으신지요?”

    “비, 빈청에서요?”

    “예. 빈청에서 논의가 되고있는지라, 기왕이면 대감께서 직접 빈청에 행차해주셔서 말씀해주신다면 모두들 이해가 빠를 것 같사옵니다.”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사성 영감이 돌아가시고 그 날.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

    다음 날.

    나는 빈청에 나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해달라는 대사성 영감의 말에 입궐했다.

    다만, 바로 빈청에 갈 수는 없고 온 김에 형님좀 뵈러 강녕전에 들렀다.

    그러다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어, 장금아.”

    바로 장금이었다.

    내가 종두를 개발할 때, 그래서 종두도감에 있을 때, 몸소 임상실험(?)에 참여하는 용기를 내준 데 모자라 여로모로 도움을 준 아이였다.

    “대감. 강녕하셨사옵니까?”

    “강녕했지. 한데 너가 왜 여기에?”

    “내가 불렀다.”

    “형님이요?”

    “듣지 못 한 모양이구나.”

    “예?”

    “장금이 내의녀로 발탁됐다.”

    “그랬어요? 축하한다, 장금아.”

    “감사하옵니다.”

    “그래, 중전의 증후가 어떠시더냐?”

    “어제는 심간(심장과 간장)의 맥이 부둔하셨는데 오늘은 다행히 완화되셨사옵니다. 안색도 밝아지셨고 기후(氣候)가 평안하시니, 엊그제 계셨던 혈허신통(혈분이 부족해 생긴 통증) 때문인 듯 하옵니다. 지금 막 양심탕(養心湯)을 지어 올렸으니 환후를 보다가 차도가 보인다면, 진맥치 않아도 될 듯 하옵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네 수고가 많았다.”

    “아니옵니다.”

    장금이 조심스레 물러가려 하자, 나는 장금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보자기에 싸온 꽈배기를 꺼내 두 개를 장금이 손에 쥐어주었다.

    “···?”

    장금이 말똥말똥한 눈을 치켜뜨며 의문문을 띄웠다.

    “형님, 이거 형님께 드리려고 가져온 건데 장금이 좀 줘도 되죠?”

    “되다마다.”

    “그거 꽈배긴데 비싼 거니까 너만 먹어. 다른 사람 나눠주지 말고.”

    “예? 하오나 전하께 공궤(웃사람께 드리는 음식)하는 귀한 것을······.”

    장금이 망설이자 형님이 말씀하신다.

    “괜찮다. 진성이 네게 나눠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나 또한 그와 같다. 네가 중궁의 맥을 짚으면서 수고한 바 있으니 마침 상을 내리려 함인데 이로 대신하면 되겠구나.”

    “하면 감사히 먹겠사옵니다.”

    장금이 손에 꽈배기를 들고 침소를 빠져나가자, 형님은 보자기를 가리켰다.

    “꽈배기라 하는 것이냐?”

    “네. 이번에 좀 만들어봤습니다.”

    “어디, 맛 좀 보자.”

    형님은 대사성 영감과 동일한 반응을 보이셨다.

    꽈배기 위에 뿌린 설탕을 곶감의 포도당으로 오해하신 건 물론······.

    부릅!

    “이, 이것은······.”

    내가 말했나?

    임금의 체통은 절대적이라고.

    비록 나랑 있을 땐 체통 같은 거 잘 안 지키시지만, 30년 가깝게 몸에 익힌 궁중 생활이라던가, 습관이 어디는 안 가신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체통을 지키시려고 노력하시는데, 특히 음식을 드실 때가 그랬다.

    맛이 있어도 짧게 ‘맛있구나.’ 감상을 내놓는 게, 그나마 체통을 어기면서 표현하는 최상의 맛표현이었다.

    그런데 눈까지 부릅뜨신데 모자라 입에 꽈배기를 우물거리면서 말을 잇지 못 하신다.

    “처, 천상의 음식이냐?”

    실소가 터져나왔다.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지 천상의 음식이라니.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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