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179화 (179/365)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79화>

***

1. 지금 수군들이 한 달에 한 번 체번하여 가난한 자들은 농사 지을 시간이 없으니 두 달에 한 번 체번하게 하여 부담을 줄이소서.

2. 수령이나 진무에게 베나 곡식을 뇌물로 주어 수군역을 기피하는 자들이 많으니 엄벌에 처하소서.

3. 수군역이 고역인 건 만호나 첨사 같은 지휘관들이 사역에 동원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니 사역에 동원한다면 엄벌에 처하도록 하고, 파직하여 다시는 서용치 마옵소서.

4. 모든 포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군에서 최고 고역은 자염군(소금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일부 지휘관들은 이 자염군들을 멋대로 부려 먹어 사리사욕을 채우고는 하니 각 포구에 자염군을 배정치 말고 이는 민역으로 대신 치루게 하소서.

5. 지금 수군이 평균적으로 1년에 여섯 차례 번을 서는데 이를 1번의 조목에서처럼 두 달에 한 번으로 줄인다 할지라도 부담이 가는 건 매한가지이니 보인을 더 주어서 폐단을 바로 잡게 하소서.

여긴 강녕전이다.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과 인사를 채 나누기도 전에 상선 대감이 찾아왔다.

미안하지만 입궐 할 수 있냐고 상선 대감을 보낸 것이다.

뭐 어떡해? 가야지.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시 입궐을 했는데······.

시무책.

보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히는 이게 시무책이란다.

“이거 누구 머리에서 나온 시무책입니까?”

“네가 보기에도 영 아닌 것이냐?”

“아니다마다요.”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절로 탁상행정(卓上行政)이란 글자가 떠오른다.

아, 물론 보기엔 그럴 듯 하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거든.

문제는 구구절절 맞는다고도 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시무책이란 건 급한 사안의 해결을 위해 군왕에게 건의한 글을 뜻한다.

그런데 시무책에 걸맞는, 그러니까 급한 사안의 해결을 위한 대책이라기에는 어폐가 있는 내용들이었다.

형님께서도 아니올씨다 싶었으니 내가 보기에도 영 아닌 것이냐고 물은 거겠고.

“어째서?”

형님께서 하문하시자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나는 여전히 역알못이지만 그럼에도 지낸 기간이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보니, 뭐가 부조리고 뭐가 폐단인지 정도는 파악 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1번 조목.

안 그래도 수군역은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실제로 내가 부산진의 진영들을 감찰 했을 때도 군사의 수가 장부와 들어맞지 않는 일이 많았었고.

한 달에 한 번 서는 순번조차 힘들어서 도망가거나 제대로 안 나오는 일이 많은데 두 달에 한 번?

군액은 더 감소할 거다.

부산진의 일에 대한 시무책이 될 수가 없다.

각지의 방비가 더 허술해질 테니까.

그리고 2,3번 조목.

이게 제일 탁상행정이야.

엄벌에 처하라?

그런 말을 누가 못 해? 개똥이도 하겠다.

다음 4번.

자염군을 폐지하고 민역으로 대체하라는 건, 수군의 어려움을 백성에게 떠넘기라는 소리에 가까웠다.

부산진의 진영들을 감찰하면서 더 자세히 알게 된 사실인데, 내 생각보다 수군의 재정은 과하다 싶을 만큼 부족한 편이었다.

둔전을 가꾸긴 하지만 그마저도 수효가 적거나 수확물이 많지 않아 군사들이 배 곪는 일이 많다.

이 부족한 예산을 가까스로 지탱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바로 수군이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소금이었다.

그런데 이걸 폐지하라고?

수군 없애자는 소리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5번 조목.

보인을 더 주어라··· 아, 보인은 굳이 비교하자면, 뭐랄까.

군역을 서게 될 때 해당 군사의 형편이 어려워지니 보인들이 십시일반해서 그 군사를 돕는 사람들을 말한다. 근데 이게 쉬웠으면 이미 진작 시행하고도 남았지.

안 그래?

그런고로.

탁상행정도 이런 탁상행정이 없다.

생각을 정리해 형님께 아뢰자, 형님도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나는 형님 대신 상선 대감에게 이 시무책이라 읽고 불쏘시개라 쓰는 글들을 누가 올렸는지 여쭸다.

“이조판서 이계동과 병조판서 한사문이 올렸사옵니다······.”

내가 많은 사람을 아는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다.

이계동은 장수로서 쓰임이 있다는 평판이 있는 분이었고, 병조판서 한사문은 약간 사람은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시지만 행정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판이 있는 분이셨다.

채윤문 같은 똥별들이 아니라 평판 괜찮은 분들이 올린 시무책이라는 점에서 1차 충격을 받는 나는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을 탓할 건 없다. 대책을 강구하라는 것이 고작 사흘도 지나지 아니 하였으니 두 사람이라고 해서 별 소용이 있었겠더냐?”

뭐, 그럼 이해가 가긴 하는데.

“해서 말인데 진성아.”

“네?”

“너에게 방책이 없겠느냐?”

“저한테요?”

“그래.”

긁적긁적.

아까, 이 시무책이라 읽고 불쏘시개라 쓰는 글들을 누가 썼냐고 한 말.

취소한다.

확실히 나도 방법을 떠올리려니까,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다.

한사문과 이계동도 그랬겠지.

“저는 잘······.”

“그래? 후. 나는 보다 효과적으로 이 폐단을 구제하고 싶다. 이 시무책이 틀린 건 아니지만 실제 적용한다면 폐단을 구제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더냐?”

“그렇겠죠······.”

“알았다. 내 괜히 이제 막 집에 돌아간 널 불렀구나.”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아닙니다, 라고 말하려던 순간.

뭔가 개똥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형님.”

“응?”

“근데 굳이 군역을 지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군역을 지게 할 필요가 있냐니?”

“어차피 군역 지워도 돈 있는 놈들은 알아서 면제 받잖습니까.”

“그렇지. 현황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그리고 군역이 몇 살부터 몇 살까지였죠? 열여섯부터······.”

“환갑. 환갑이다.”

40년?

와우.

“한데 그건 어찌 묻는 것이냐?”

음.

나는 이걸 말할까 말까 망설였다.

말했다시피 워낙 개똥 같은 생각 같아서······.

그러다 형님이 재촉하자 개똥 같은 생각을 털어놨다.

“군역을 폐지하는 건 어떻습니까?”

“구, 군역을 폐지해?”

“네.”

“하면 외침시 누가 나라를 지킨단 말이냐?”

“아, 오해하셨나봐요. 완전히 폐지하자는 말씀이 아니구요.”

“하면?”

“지금 16~60살까지는 솔직히 너무 과한 감이 없잖아 있거든요.”

“한데?”

“16~60살까지라고는 해도 그 기간 훈련 받는 사람들은 제가 알기로 얼마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죠?”

16~60살까지라고 해서 40년 넘게 군대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군적에만 올라가 있고 진법 훈련이나 무예 훈련에 동원되는 수준이고 당번 때, 입번해서 한 두달 반짝 복무하는 수준이니까.

그마저도 융통성 있는 수령은 나이 지긋한 노인들은 면제시켜준다.

반대로 악덕한 수령은 그걸 빌미로 돈을 뜯어내지만······.

뭐, 어쨌든.

“그렇다만.”

“44년 동안 군적에 등재시키는 것보다는 아예 이 군적을 싹 다 지워버리고 모병을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모병? 무슨 말이냐?”

“그러니까요······.”

내 생각은 그랬다.

뭐 개똥 같은 생각이기도 하고··· 일차원적인 생각이긴 하다만.

44년 동안 군적에 등재돼 있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사실 군적이라는 것 자체가 악덕 수령들에게는 악용되는 소지도 너무 많고 말이지.

그래서, 아예 국방의 의무 자체를 없애 버리는 거다.

이게 어떻게 보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도 있긴 한데··· 사실 내가 볼 때, 원래 역사에서 일본한테 털렸던 임진왜란은 징병제 때문인 것 같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징병제란 게 21세기의 그것처럼 체계적이지도 않다.

쌍팔년도식 제비뽑기에 가깝고, 훈련 상태는 고을마다 제각각이다.

극과 극의 예시를 들어보면 땅끝마을 해남의 군사들 상태는 그 등급이 F에도 못 미친다면, 반대로 변경과 맞닿아 있는 의주의 군사들은 S 등급을 초월한다고나 할까?

훈련도가 제각각이고 정예도도 제각각이니 임진왜란 때 털렸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모병제로 전환한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보다 정예로운 군사를 양성 할 수 있게 된다.

군적에 등재된 군사가 백만대군이면 뭐하나?

전시에 실제로 동원 할 수 있는 군사는 십만이 되면 다행인 수준일 텐데.

그리고 동원을 한다고 해도 문제다.

거기서 또 10분의 1은 오합지졸들일 거다.

결국 정예군은 군적에 등재된 장정들 중에 일부에 지나지 않는단 소리다.

‘2만이나 되려나?’

북방 변경 지역 군사들과 남방 변경 지역 군사들을 합치면 그쯤 되겠다.

근데 그 2만으로 국토를 수호할 수 있겠나?

절대 못 한다.

그러니까 임진왜란 때 속수무책으로 털렸던 거지.

다만 모병제로 전환하면 못 해도 3만의 정예군은 얻을 수가 있을 거다.

백만의 장부상 오합지졸들 보다는 3만의 정예군이 더 낫지 않나?

이게 더 효율적이고.

부족한 재정?

솔직히 난 재정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런 명언도 있잖아.

예산이 부족한 게 아니라 예산을 좀먹는 놈들이 많아서 부족해 보이는 거라는 띵언.

21세기도 그럴진대 조선은 더 심하다.

게다가 오히려 징병제VS모병제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징병제가 더 손해인 느낌이 강하다.

한창 경제 활동에 몰두해야 할 장정들이 군적에 등재되는 것 자체만 해도 생산력 감소로 이어지는데, 여기에 수령의 군적 악용까지 있는데다 뇌물 문제까지 만연하다.

그뿐이면 다행이게?

이렇게라도 해서 정예로우면 또 몰라.

말했다시피 100이면 90은 오합지졸이다.

돈은 돈대로 들어가는데 그 돈이 죄다 밑빠진 독에서 줄줄 새고 있는 셈이랄까?

그런데 이걸 모병제로 전환했다고 치자고.

16세~60세의 국방의 의무가 있는 양인들이 경제 활동에 더 집중 할 수가 있게 된다.

생산량이 소폭이나마 증가 할 테고, 부가적으로 유민들의 이탈도 막을 수가 있다.

또, 사람도 선별 할 수가 있다.

20세의 청년과 40세의 중년인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신체 조건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오히려 20세의 청년이 40세 중년인 보다 약골인 경우도 있고.

근데 모병제라면 강인한 체력을 가진 사람들을 우선해서 선별 할 수가 있게 된다.

물론, 모병제니 만큼 돈은 줘야겠지.

입혀주고 재워주기도 해야겠고.

이것 때문에 예산이 부족 할 수는 있긴 하겠지만, 이것도 사고를 살짝 전환해서 모병제긴 하되 18세~24세의 장정들에겐 국방세를 납부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수령들이 군역 면제해준답시고 돈 떼먹고, 기간 줄여준답시고 돈 떼먹고, 이래서 떼먹고, 저래서 떼먹을 바에는 아예 국가에서 국방세로 면제를 시켜줘버리는 거지.

그 돈으로 모병한 군사들 월급 주면 되고.

내 생각이 이래서 고대로 형님께 설명을 드렸다.

드렸는데······.

“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구나.”

나는 상선 대감께 지필묵을 요구했다.

형님이 알아 듣기 쉽게 설명을 해드리려면 종이와 붓이 필요했다.

***

“모병제라······.”

융은 어지럽게 흐트러진 종이들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모병이란 단어는 사실 융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이 모병이란 말은 전란이 있을 때 비로소 쓰임이 있는 말이었다.

도처에 모병관이 파견돼야 할 테니까.

“상선의 생각은 어떠한가?”

“신이 어찌 내관된 몸으로 종사를 논할 수 있겠사옵니까.”

“괜찮으니 사견을 말해보아라.”

“민생의 고충을 더는 동시에 군사의 정예로움을 키울 수 있으니 나쁜 계책은 아니라 사료되옵니다.”

“상선의 생각도 그런가?”

“예.”

융의 생각도 같았다.

모병과 징병.

두 단어를 놓고 봤을 때 조선은 징병제의 나라였다.

하지만 그 폐해는 형용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일단 군적에 등재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내빼려는 자들이 넘쳐났다.

향교에에 적을 두면 면제가 되니, 이 때문에 뇌물을 줘서라도 향교에 들어가려는 자들이 줄을 섰고 수령에게 돈을 바치거나 유민을 자처하는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군역 자체를 법전에서 지워버리고, 모병을 하게 된다면 이런 폐단들이 생길 일도 사라진다.

‘백만대군의 오합지졸보단 오만의 정예군이 더 낫다는 말도 일리가 있고······.’

진성은 모병제를 설명하면서 그리 말했다.

군적에 장부상 등재된 백만대군 보단 오만의 모병 된 정예군이 더 낫다고.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사실 군적에 등재됐다고 해서, 그래서 수령들이 진법 훈련이나 각종 훈련을 실행하려고 해도 민생 때문에 미루는 일이 많았다.

농번기 때는 농사일 때문에 미뤄야 했다.

농번기 때 훈련에 동원하면 악덕 수령 소리를 듣게 되니까.

결국 농한기 때 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데다 훈련에 참가하는 날 동안의 양식은 군적에 등재된 장정이 댄다.

민생의 고충인 셈이다.

하지만 모병군은 다를 거다.

아예 거기서 입히고 먹이고 훈련을 시킬 테니 북방군의 정예로움과 비교했을 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터였다.

상명하복도 엄격히 지켜질 테고, 군율 역시 엄히 지켜질 터였다.

생각할수록 괜찮은 제도 같았다.

“상선.”

“예, 전하.”

“진성의 계책을 빈청에서 논하도록 해봐야겠다.”

“빈청에 전하오리까?”

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빈청 뿐만이 아니라 하관들에게도 이 계책을 알려 시행의 온당함과 부당함을 논하도록 하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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