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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71화 (171/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71화>

    ***

    “그건 또 뭔 소립니까?”

    아직 배다. 부산포에 들어오긴 했는데 하선은 아직이었다.

    배에 선적한 짐들이 좀 많아야지.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짐들이 태반이라, 진두지휘한다고 아직까지 배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서장관 자격으로 오키나와에 함께 갔었던 이열후(李烈煦)가 헐레벌떡 뛰어오자 난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러자 이열후는 몇 차례 숨을 골랐다.

    “시비가, 시비가 붙었다고 하옵니다.”

    “그러니까, 알아듣게 설명을 좀 해보세요. 시비라니요? 누가 누구랑 시비가 붙어요?”

    “부사 나리와 첨사또 말이옵니다.”

    “스승님하고 첨사?”

    “예!”

    여기서 잠깐 TMI.

    모두 알다시피 우리 선단은 5척의 배로 구성이 됐다.

    안전을 제일로 치는 나 덕분에 배는 화포가 탑재돼 있었고 선원들도 전부 전투에 투입 시킬 수 있을 만한 역량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부산에 들어오는데도 수군선이 감지를 못 했다.

    아니, 아예 코빼기도 안 보였다.

    선생님은 배가 부산포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첨사를 보러 갔다.

    이게 무슨 큰 일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음.

    겁나 큰 일이다.

    우리가 왜구였다면 부산포가 쑥대밭이 되고도 남았을 테니까.

    대마도에서만 해도 싱글벙글이시던 선생님은 잔뜩 화가 나셨고, 따지러 간다는 걸 차마 말릴 수가 없어서 그러라고 보내드린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과 같이 간 이열후가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시비가 붙었단다.

    “첨사가 누구였죠?”

    “신공(申恭)이라는 자이옵니다.”

    긁적긁적.

    첨사면 종삼품 무관직이다. 고위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조선의 지휘관을 모두 다 내가 알고 있기란 힘들다.

    한마디로 듣보잡이란 소리다.

    “시비는 어찌 붙은 거랍니까?”

    “그게······.”

    이열후가 저간의 전말을 털어놓았다.

    선생님이 씩씩거리며 첨사를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말로 시작한 전말은,

    “공신 칭호를 받더니 눈에 뵈는 게 없소이까?”

    라는 첨사의 일갈로 끝이 났다.

    그러고는 서로 언쟁이 붙었단다.

    신공은 신공대로 까마득한 후배인 선생님이 대드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고,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꼰대짓은 혼자 다 해쳐먹는 신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자면 난 선생님 편을 들고 싶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공적인 일로 따지러 가신 거잖은가.

    “그래서 지금 첨사랑 선생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게, 장산봉에······.”

    “장산봉이 어딘데요.”

    “장산봉을 모르시옵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태생부터 서울 사람인데 부산 지리를 어떻게 알아?

    “그곳에 경승지가 하나 있사옵니다.”

    대사헌 생활 1년.

    척하면 탁이다.

    “술판?”

    “···”

    “앞장 서세요.”

    ***

    “어디 까마득한 후인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선인을 겁박한단 말인가! 그대가 아무리 공신이기로서니 이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가당하고 부당하고를 떠나 부산포 앞바다의 관리를 얼마나 개판으로 하면 전선 5척이 들어오는 것도 발견치 못 한단 말입니까!”

    “허! 개판? 지금 개판이라고 하였는가?”

    어처구니 없어 하는 신공에 장곤은 돗자리와 평상을 흘겼다.

    “개판에 술판까지 잘들 하십니다.”

    “이보게, 아우님. 어찌 이리 역성을 내시는가. 술판은, 내가 요새 울화가 생기는 일이 있어서 심란한 마음에 첨사또를 뫼신 걸세.”

    장곤의 시선이 곧 동래현령 이장길(李長吉)에게 향했다.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스승님께서 아첨이나 하라고 가르치셨었습니까?”

    “아첨이라니! 아우님! 말씀이 심하시네!”

    “현령, 자네 말이 딱이군. 자네 아우가 제 형 알기를 우습게 알고, 제 잘난 맛에 산다더니 딱 그 짝 아닌가?”

    “송구합니다, 첨사또.”

    장곤은 이를 바득 갈았다.

    이장길.

    민망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친형님이었다.

    함께 수학하던 시절엔 안 그랬는데 어째 나이가 먹어가면서 탐욕스러운 돼지가 되었다.

    “가지, 가지 하십니다들. 부산포와 그 일대에 맹호가 있다더니, 두 분 이셨군요?”

    “어허. 말씀을 삼가게, 아우님! 맹호라니··· 누가 들으면 나나 여기 있는 첨사또나 가렴주구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줄 알겠네. 요새 시국이 얼마나 살벌한지 알면서 그런 허무맹랑한 소릴······.”

    “아닙니까?”

    “참는 것도 한계가 있네! 어찌 아랫것들 다 보는 앞에서 이리 망신을 준단 말인가!”

    장길을 일별한 장곤은 신공을 바라보았다.

    “첨사께서는 변명이나 해보십시오. 5척입니다. 무장한 전선 5척이 부산포에 들었단 말입니다. 한데 어찌 닻을 내릴 동안 발견을 못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건 내 아까 설명을 하지 않았나! 요새 훈련이다 뭐다 군사들을 너무 굴린 것 같아 잠시 풀어줬었다고, 병서에도 군사를 너무 다그치는 것은 명장의 자세가 아니라 나와있거늘, 어찌 트집만 잡는단 말인가?”

    장곤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원점이다.

    “트집이 아니라······.”

    한숨을 내쉬며 반박을 하려던 그때였다.

    “왜? 아주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도 병법 패전계(敗戰計)에 줄행랑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니 보자마자 튀시지?”

    획!

    신공이 고개를 돌렸다.

    곧 그의 얼굴의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었다. 행색은 왜인에 가까웠다. 아니, 왜인이라기엔 어딘가 당풍(중국풍)이 있는 것도 같았다. 어쨌거나 겉으로만 보면 딱 왜인의 복색이었다.

    감히 부산포 첨사인 자신에게 왜인이 대들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에 가까웠다. 다른 왜인들은 모두들 그에게 고개를 조아린다.

    어떻게 보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바로 신공 자신이기도 했으니까.

    “어디 감히 왜적 놈이 웃전들 대화하시는데 끼어든단 말이냐! 오 군관! 오 군관 어딨는가!”

    멀리 사색에 질린 오 군관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연신 ‘왜인’의 눈치를 살폈다.

    “부, 불러 계시옵니까, 첨사또.”

    “내 잡인의 출입은 엄히 금하라 했을 텐데 어찌 왜적 따위가 버젓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인가?”

    “그, 그게······.”

    “왜적? 허, 나 모르나 보네.”

    “이놈이 그래도!”

    “이 옷 때문인가?”

    라고 말한 왜적은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왔다.

    “덕산··· 아, 덕산이 안 데려왔지.”

    “허. 아주 실성을 했구만. 오 군관 뭣하는가! 어서 포박하게! 내 진성으로 돌아가는 즉시 이놈을 문책할 것이네.”

    “진성? 진성이란 단어가 나와서 말인데, 하. 내 입으로 내 소개하려니까 좀 낯간지럽네.”

    “···?”

    “난 선왕의 적자이자 금상의 아우인 진성대군이다. 내가 왜적이면 아바마마도 왜적이고, 할바마마도 왜적이고, 또··· 그, 뭐야. 태조대왕도 왜적이냐? 왜, 모계는 여진족이라고 하지?”

    “지, 진성대군? 헙!”

    “이렇게 상황파악을 못 하고 대가리가 안 굴러가니까, 어? 부산포 앞바다에 누가 기어 쳐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있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신공이 털썩 무릎 꿇었다.

    “소, 송구하옵니다, 대감. 소인이 잠시 혈기에 취해 미처 대감을 알아뵙지 못 했사옵니다. 더욱이 옷차림 때문에 오해를······.”

    “됐고, 들어나 봅시다. 왜 부산포 앞바다까지 우리가 무혈입성 한 건데?”

    “무, 문정선도 아니 보셨습니까?”

    “문정선은 봤지. 근데 우리가 왜구였다고 생각해보자고, 문정선? 바로 침몰이지. 자, 말돌리기는 여기까지. 왜 부산포 앞바다까지 우리가 무혈입성 했던 겁니까, 첨사?”

    “···”

    신공은 눈알을 마구잡이로 굴렸다.

    어찌 말하랴.

    진성에 있는 장졸들을 사익에 동원했단 사실을.

    그러던 와중.

    대군이 귀를 후벼파며 말했다.

    “내가 저기 도성에 있을 때 들어보니까 말입니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대사헌으로 있을 때.”

    꿀꺽.

    “···에, 예. 대감.”

    “대사헌이란 자리, 알잖습니까? 이런저런, 뭐 밑도끝도 없는 소문들이 참 많이 들려. 누가 뭘 해쳐먹었네. 누가 가렴주구를 일삼고 있네. 또, 누가 압록강을 몰래 넘었네. 그리고.”

    “···”

    “누가 왜놈들과 내통해서 밀무역을 하고 있네.”

    뜨끔.

    신공의 어깨 위로 조막만한 손이 올라왔다. 대군의 손이었다.

    “그건 아니지요?”

    “아, 아니옵니다. 저, 절대 아니옵니다, 대감.”

    “그래?”

    “예! 결단코 아니옵니다!”

    “근데 왜 그런 소문이 돌았을까. 하긴, 뭐. 소문이란 게 또 먼 길 오다보면 부풀려지고 하니까.”

    “예예. 헤헤, 맞사옵니다.”

    “근데 질문에 대한 답이 없으시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수군 장졸들은 다 어디 갔길래 우리가 무혈입성 한 겁니까?”

    “···”

    “자꾸 묵비권 행사하면 한양에 장계 올려보내고 봉고(감찰의 별칭) 들어갑니다.”

    신공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다만.

    “호, 혹시 대감.”

    동래현령 이장길이었다.

    “이분은 누구?”

    “···소인의 형님 되시는 분이옵니다, 대감.”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근데 하시려던 말씀이?”

    “호, 혹시··· 그, 자수를 하면 죄가 참작이 되는가 하여······.”

    진성대군이 방긋 웃었다.

    “죄에 따라 다르죠. 보통은 참작 되지만.”

    ***

    “와우.”

    나는 휘황찬란한 보화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우라는 감탄사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만큼 앞에 있는 재물들에 눈이 부신다. 심 봉사도 눈을 뜨게 만들 재물들이다.

    “스승님,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유구국 가지 말고 왜놈들하고 내통이나 할 걸 그랬습니다. 이건 뭐······.”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장곤 선생님의 친형 되시는 이장길 씨가 죄를 털어놨다. 공교롭게도 동래현령으로 있었는데, 털어놓은 죄에 의하면 밀무역을 좀 하셨단다.

    밀무역에 앞장 선 사람은 부산진 첨사 신공.

    그 다음으로 해운포 만호 하현제(河炫啼), 동래현령 이장길, 다대포 만호 진세걸(陳世傑) 이 4명이 함께 짝짜꿍해서 크게도 해잡수셨다.

    첨사도 첨사지만, 해운포나 다대포의 만호들까지 밀무역에 가담하고 축재나 하고 앉았으니 우리 해역이 제대로 지켜지겠나?

    절대 안 되지.

    그나마 좌수사나 다른 진장들이 가담을 안 해서 망정이지, 경상좌수사나 진장들 전체가 해쳐먹었다면 방비는 고사하고, 왜구가 쳐들어와도 출동 한 번 못 해보고 부산 지역이 함락됐을 것이다.

    왜냐고?

    군선까지 동원을 했거든.

    조운선까진 그나마 이해 할 수 있는데, 자. 군선이다. 군선을 동원해 밀수를 했다. 만약에 군선들을 원정무역(?) 보낸 상황에서 왜구가 쳐들어왔다고 가정해보자고.

    해당 지역은 초전박살 난다.

    내이포 같은 경우처럼 왜인들에게 약간의 뇌물을 받는 수준이면 몰라도, 이건 범죄 스케일이 헐리웃틱(?)하다.

    ‘그나저나 도주 새끼 낯짝도 두껍네.’

    오늘 아침 까지만 해도 나랑 시시덕거리던 대마도주.

    그 새끼 신공의 주요 고객중 하나였단다. 얼마나 낯짝이 두껍나?

    아니다, 오히려 부산 방비가 허술한 걸 알면서도 왜구를 안 보낸 거니까 보살에 가까운 마음씨라고 해야 되려나?

    죄는 이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올 2월, 순시를 돌던 수군이 왜적과 조우해 9명이 전사했다는 장계와, 작년 12월 즈음 조운선으로 세곡을 운반하던 수군 14명이 수장당했다는 장계가 부산진 첨사로부터 올라온 적이 있었다.

    당시 조정에서도 꽤나 시끌벅쩍한 사건이었던지라 나도 기억한다.

    그리고 보통 저 정도의 사망자가 나오면 파직되기 마련이다.

    한데 유야무야 넘어가게 됐는데 2월에 있었던 사건 같은 경우는 실제로 우리 수군과 교전한 왜적 2명이 체포돼서 압송이 됐었기 때문이고, 12월 있었던 조운선 침몰 사건은 인재가 아니라 자연재해였기 때문에 묻혀졌다.

    왜구가 기승을 부리는 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조운선이 침몰하는 건 자연재해에 가까운 일인데 그걸로 무관을 일일이 갈아치운다면, 군의 사기가 떨어질 거라는 의견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근데, 이거 둘다 구라란다.

    2월에 있었던 교전은 야밤에 대마도로 밀수 보냈다가 침몰한 거고, 한양으로 압송한 왜적 2명은 실제 부산에 잡아둔 왜구 2명이긴 하지만 침몰 사건과는 연관이 없는 왜구란다.

    작년 12월의 조운선 침몰 사건 역시 일기도(이키섬)와 그 일대로 밀수를 보냈다가 그 이후로 소식이 끊긴 거란다.

    풍랑을 만나 침몰했거나, 왜구를 만나 모두들 죽었을 거다.

    자, 이런 스케일 큰 장난질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안 알려졌냐.

    신공과 그 똘마니들은 사람 다루는 법을 알았다.

    사람 다루는 게 별 건가? 돈이다.

    그들을 위해 일해줄 수군들에게 막대한 재물을 줬다. 보통 탐관오리 새끼들이 10할 전체를 본인이 해쳐먹거나, 좀 나은 탐관오리 같은 경우, 9할만 떼먹고 재주 부린 곰한테는 1할만 떼주는 데 반해, 이놈들은 밀수에 대한 이문을 6:4로 나눴다.

    본인들이 6할 먹고 나머지를 일에 가담한 수군 장병들에게 준 셈이었다.

    수군의 일이란 엄청 고되다. 다들 꺼려할 정도고, 돈벌이란 것도 안 된다. 그런데 4할이나 떼줬고, 군역을 치루는 동안 편의도 봐줬으니 이 일이 안 알려졌을만도 하지.

    저희들끼리 한통속이니 입 맞추기도 엄청 쉬웠을 테고.

    “자, 그래서 말인데요.”

    “에! 예, 대감.”

    이장길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봉고 들어가는 거 동의하시죠?”

    어, 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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