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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69화 (169/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69화>

    ***

    “뭐라, 두창?”

    “···그러하옵니다.”

    “허.”

    쇼신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드디어 미야코와 왜구라는 난관을 헤쳐 나갔다고 생각했다.

    아직 놈들을 완전히 무찌른 건 아니지만 어쨌건 조선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됐으니 절반은 이룬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비록, 우미의 말처럼 외세를 끌어들인다는 점은 쇼신 본인도 탐탁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최선의 방법을 찾지 못할 땐 차선의 방법이라도 찾아야 하고, 조선은 그 차선책이 되었다.

    그래서 그점에 대해 딱히 후회는 없다.

    하지만 큰 일을 해결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자마자 또 다른 난관이라니···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어디서 창궐했다고 하더이까?”

    “그게······.”

    이미 해탈의 경지에 이른 쇼신이었다. 그는 나긋한 어조로 우미를 타일렀다.

    “괜찮소. 어디오?”

    “도미구스쿠(豊見城) 일대라 하옵니다.”

    “도, 도미구스쿠?”

    쇼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코구바(国場) 강을 건너면 바로 도미구스쿠였다.

    왕성과는 엎드리면 코닿을 거리라 할 수 있었다.

    “피해 상황은 어찌 된다고 하오?”

    “아직 정확한 건 아니옵니다만, 열 다섯명이 앓아 누운 듯 하옵고, 그중 셋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하옵니다. 또 나머지 한 명은 손 쓸 수도 없을 지경이라고······.”

    “도미구스쿠 말고 다른 곳은?”

    “아직까진 도미구스쿠만 파악되옵니다.”

    “일단, 환자들 중에 사족은 몇 이나 된다고 하오?”

    “그게··· 가나구스쿠(金城) 가(家)의 공자가 앓아 누웠다 하옵니다.”

    “가나구스쿠의 공자라면··· 운나(恩納)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쇼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어린 것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마미키요 신께선 보살펴주지 않으신 건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사경을 헤매는 자들은 있어도, 아직까지 두창으로 인한 사망자는 없다는 점이었다.

    “병이 번져나가는 것은 막아야 하니 의원을 보내 도미구스쿠는 격리토록 하시오. 환자들 역시 모두 격리토록 하고, 또한 환자들이 머물렀던 집, 입었던 의복 모두 불태우라 하시오.”

    “조선국 사신들은 어찌 하올까요?”

    아, 그들을 잊고 있었다.

    “귀인들이시오. 귀인들이 혹여나 두창에 걸리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으니 속히 입궐케 하시구려.”

    “예.”

    그가 내릴 수 있는 지시는 제한적이었다.

    두창이 창궐하면 내리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의 지시들.

    또렷한 대책도 아닌, 그저 격리.

    하지만 이 이상 쇼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두창은 인간의 범위를 넘어선 질병이었다. 오죽하면 아마미키요의 진노를 산 사람들이 두창이란 몹쓸 병에 걸린다는 말까지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창궐 지역은 달라도, 작년에도 두창이 창궐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수백의 사람들이 앓아누웠고, 예순 두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는 또 얼마가 죽어나갈지··· 후.”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전하. 조선국 왕자께서 입궐하셨사옵니다.”

    그가 내린 명에 따라 입궐한 듯 했지만 지금은 왕자를 볼 기분이 아니다.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으니 잠시 서원(국왕 집무실 겸 응접실)에서 머물라 전하거라.”

    그 말에 밖에서는 잠시 실랑이가 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 전하. 조선국 왕자께서 두창을 예방하실 수 있다 하옵니다.”

    “푸훗.”

    쇼신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아마미키요 신이 낳은 반신이라도 된다더냐?”

    세간에는 두창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아마미키요와 인간 사이에 낳은 반신반인의 사람 밖에 없다는 구전이 떠돌았다.

    그만큼 두창이란 병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니 신께 의지하는 셈이었다.

    “지금 두창에 걸린 자들을 어찌 할 순 없겠지만 확실히 두창이 번지는 건 막을 수 있다 하옵니다.”

    회담 내내 오만했던 조선국 왕자가 떠오른다.

    사절로 오지 않았다면 딱히 마주하고 싶진 않은 인물이다.

    대국의 왕자임에도 경박하기 짝이 없고 예법에도 어둡다.

    또 불손한 건 예사고, 제 마음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허풍까지?

    쇼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하. 왕자께오서 기다리시옵니다.”

    역시, 별로 마주하고 싶진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물은 조선국의 왕자.

    만남을 거듭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후, 안으로 뫼셔라.”

    역시나 조선국 왕자는 천방지축이었다.

    안으로 뫼시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으로 들어오고는 고개만 까닥거렸다.

    “두창이 창궐한 게 사실이냐고 하시옵니다.”

    “사실이고, 두창 때문에 처리할 일들이 태산이니 나중에 뵈면 좋겠다고 전하라.”

    “보, 본인이 두창을 예방 할 수 있다고 하시옵니다.”

    또 허풍인가?

    그 허풍에 쇼신은 이성의 끈이 끊어짐을 느꼈다.

    한 달.

    장장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조선국 왕자를 봐왔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쇼신은 최대한 그 편의를 봐주었고, 인간 이역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겉으로는 온화한 척 대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왕자께선 무슨 신이라도 되신다더냐! 두창을 어찌 예방한단 말이냐!”

    “조, 조선에서도 예방을 했다고······.”

    쇼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조선 왕자를 따라온 김 통사란 인물을 흘겼다.

    “사실인가?”

    “그, 그게··· 김 통사 말론 사실이라 하옵니다··· 그래서 조선국 왕자 합하의 별명도 조선에선 신의라고······.”

    “신의?”

    “예. 하여 최소한, 종두라는 걸 접종 받은 도성 사람들은 두창에 대한 면역이 생겨 도성 내에서 만큼은 두창이 창궐하지 않는다고 하옵고······.”

    “하지만 어찌, 어찌 사람의 힘으로 두창을 예방한단 말인가? 그 원리가 무엇이라더냐?”

    “송구하오나, 그 원리는 국가 기밀이라 말씀 드릴 수 없다고 하시옵니다.”

    “허.”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위인이었다.

    쇼신이 어이 없어 하던 그 사이.

    조선국 왕자는 통사에게 뭐라 말했다.

    “뭐라 하시던가?”

    “그게······.”

    “괜찮다, 어서 말해보아라.”

    “보, 본인들을 창궐 지역으로 보내달라고 하옵니다.”

    “사신단을 말이냐?”

    “···예. 지금 류큐에 입국한 조선인들은 모두 종두를 접종 받아 두창에 대한 면역이 있기 때문에 창궐 지역에 들어가도 괜찮지만, 엄한 류큐인들을 보냈다간 두창이 옮아 올 수 있으니 본인들을 보내 두창을 해결케 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 하시옵니다.”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 쇼신은 조선 왕자를 응시했다.

    “왕자께서 말씀하신대로 지금 조선인들이 그 두창에 대한 면역이 있다 할지라도, 그곳은 사지가 분명할진대 자발해서 가려는 연유가 무엇인지 여쭙거라.”

    “사람이 사람 살리겠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고 하시옵니다.”

    통사의 말에 쇼신은 잠시 뜸을 들였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고민은 짧았다.

    “정말 자신이 있는 거냐 여쭈어봐라.”

    “있다고 하시옵니다.”

    쇼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조선 왕자가 말했다.

    “당장 가보겠다고 하옵니다.”

    조선 왕자는 곧 장내를 빠져나갔다. 그런 조선 왕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미가 아연실색해 하며 말했다.

    “전하. 지금이라도 말리셔야 하옵니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 되어 조선인 중 하나라도 두창을 앓게 된다면, 이는 조선 왕자 공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류큐의 책임이 되옵니다.”

    “아오.”

    “한데 어찌······.”

    “허풍을 떠는 것 같진 않았소.”

    ***

    나는 내 선견지명에 감사하고 있다.

    모두들 내가 오키나와에 오기 까지 얼마나 철저히 준비를 했는지는 모두 알 거다.

    알다시피 괜히 내이포까지 내려가는 수고를 덜면서까지 가쓰히로 씨를 영입(?)했다.

    기존에 있던 배로 오키나와까지 가다간 뒤집힐지도 모르고, 풍랑을 만나 난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말이다.

    그건 오키나와 행이 결정되고 사신단이 구성되던 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정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자 했다.

    총 다섯 척의 배에는 각각 구명보트(?)가 2척씩 실려 있었다.

    구명보트까지 실어 놓을 정도이니 식량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키나와 왕에게 줄 선물과, 도착해서 교역할 물건들의 선적을 좀 줄이더라도 최대한 많은 식량을 선적하게 했다.

    다음으로, 격군들은 엄격한 테스트를 통해 선별했고 왜구라도 만나면 큰 일 이니 전라도 수군들을 징병(?)해서 사신단 구성원으로도 삼았다.

    총 구성원 430명 중에서 장교와 군사들만 150명이니 말 다했지, 뭐.

    그마저도 불안해서 240명에 달하는 격군과 짐꾼들은 엄격한 테스트를 통해 선별한 사람들로 채웠는데, 모두 유사시에는 전투병으로 동원 할 수 있을 만한 자들이었다.

    총 구성원 430명 중 장정만 390명.

    그럼 나머지 40명?

    나와 장곤 선생님, 반석평, 김비을개, 가쓰히로, 서경덕 같은 수뇌부였다.

    그리고 그 수뇌부 중에는 말이다.

    의원이 다수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먼 길 가다 보니 불안 할 수 밖에 없었고, 혹시라도 풍토병이라던지 다른 질병이 돌면 속수무책이니 40명의 수뇌부 중에 의원만 30명에 육박했다.

    사신단 구성을 논의하던 당시에는 멀쩡한 서기관이라던지, 일반 문관 출신을 배제하고 의원들을 서른명이나 태운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대신들이 많았고, 형님마저 “서른명은 너무 많은 것 같구나” 했었는데 바득바득 우겨서 서른명을 태울 수 있게 됐다.

    근데 지금 봐라.

    선견지명 아니면 뭔데?

    객사로 돌아간 나는 내 선견지명으로 데려온 서른명의 의원들을 책임지고 있는 분을 불렀다.

    “김 과장님!”

    의원들을 총괄하고 있는 분은 다름 아니라, 종두도감에서 일하던 시절, 이미 수십차례 합을 맞춰 본 경험이 있는 김 과장님(김공저)이었다.

    덧붙이자면 지금은 부장님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예전에는 혜민서 주부로 계셔서 과장님이라고 불렀던 건데 두창 박멸에 대한 공을 인정받고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셔서 지금은 내의원첨정(內醫院僉正)으로까지 영전하셨거든.

    “재가가 났사옵니까?”

    “예. 어떻게 해야할진 아시죠?”

    “물론이옵니다.”

    이미 입궐하기 전에 채비를 마치라 했었기 때문에, 더 준비할 건 없었다. 김 과장님은 마지막으로 의원들을 더 닦달했다.

    모든 채비가 끝나자 나와 의원들은 곧장 두창이 창궐했다는 지역으로 달려갔다.

    도미구스쿠라는 지역이었는데, 이미 두창이 창궐했다는 소문이 퍼져서 그런진 몰라도 분위기가 을씨년스럽기 까지 했다.

    허공에는 시체 냄새 하난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는 까마귀가 배회하고 있었고, 몇몇 곳은 두창 환자가 기거하던 곳인지 연소돼 있었다.

    나는 여기서 의원들을 두 팀으로 나눴다.

    그리고 A팀은 김 과장님이, 나머지 B님은 내가 맡았다.

    “김 과장님은 격리됐다는 환자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나눈 A팀을 격리된 환자들에게 보냈다.

    나한텐 이미 두창을 앓고 있다는 환자들을 치료할 어떤 의학적 지식이나, 신기(?)가 없다.

    환자는 제대로 된 의사한테 맡겨야지.

    서른명의 의원중에서 A팀에 속한 의원 다섯명이 환자들이 격리됐다는 곳으로 향하자, 스물 다섯의 의원이 B팀에 남게 됐다.

    “자자, 주목.”

    이목이 집중됐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긴 이국입니다. 조선이 아니란 말이죠. 우리가 종두를 놓을 사람들도 조선인이 아닙니다. 그점 꼭 유념하셔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겠죠들?”

    “걱정마십시오, 대감.”

    나는 함께 현장에 나온 류큐의 재상 우미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 옆에 있는 김 통사를.

    “이제부터 두창을 예방할 테니 인근 사람들좀 불러달라 하십시오. 단, 무작위가 아니라 두창 환자와 접촉했단 이들 위주여야만 합니다.”

    “이왕 예방 할 수 있는 거면, 도미구스쿠 주민 모두에게 해달라 하시옵니다.”

    거, 참. 영감님 욕심도 많으시다.

    “박 주부님.”

    “예, 대감.”

    “우리가 가져온 종두면 모두 몇 명에게나 놓을 수 있습니까?”

    “300명이 한계입니다.”

    “김 통사. 들었죠? 300명분 밖에 없어서 모두를 예방 시킬 순 없으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예방을 시행해야 한다고 전하세요.”

    “아, 알겠사옵니다.”

    “그럼, 첫 번째로 아까 말한 것처럼 두창 환자와 접촉한 이웃, 그리고 그 가족들, 두 번째는 아이들, 세 번째는 노인들입니다. 이렇게 우선 순위를 정해서 모아달라 전하시구요.”

    “그리구요?”

    “언급한 우선 순위에는 살면서 두창에 한 번도 안 걸린 사람이라는 단서가 붙는다고도 전해주세요. 이미 두창에 걸린 사람은 종두를 맞으나, 안 맞으나 두창에는 안 걸리니까요.”

    “예.”

    “그리고 의원 여러분들은 침 놓을 때 필히 끓는 물에 소독하셔야 합니다. 손도 비누로 박박 씻구요.”

    “걱정마십시오.”

    “자, 그럼 시작합시다.”

    머잖아 우미와 류큐의 군사들이 흩어졌다.

    정해준 우선 순위에 맞게끔 사람들을 데리러 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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