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64화>
***
결전의 날이 드디어 밝았다.
젠장.
다크서클은 눈밑까지 짙게 내려왔다. 어제 밤잠을 설쳤거든.
난생처음 해외여행(?)을 간다는 설렘.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아야 한다는 두려움.
이 복합적인 감정을 들쑤시는 마구니들 때문에 도통 잠이 안 왔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고, 덕산이가 깨워준 덕에 가까스로 일어났다.
채비는 이미 다 마친 상태였다.
그 결과.
지금은 서대문에 있다.
“몸조심히 다녀오거라.”
형님은 서대문까지 전송을 나오셨다. 형님의 전송 덕에 꼭두새벽부터 서대문에 불려 나온 문무백관들의 얼굴에는 피곤이 한가득 묻어있었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들을 일별한 나는 형님께 손을 뻗었다.
악수였다.
내가 진성대군이 되고 나서 이게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한 뒤로는, 절대 하지 않았던 예법인데 왠지 하고 싶어져서 악수를 건넸다.
이런 인사를 몇 번 받아본 적이 있는 형님은 조금 엉성해 보이긴 해도 제법 그럴싸하게 내 악수를 받아주었다.
“걱정마십쇼. 잘 다녀올 테니까요.”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네가 그토록 원한 일이기도 한 데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방편이 이것이라니 네 말이 옳겠지.”
“옳을 겁니다.”
“그래. 네게 전권을 일임하니 그곳에 가서는 네가 바로 나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글피 전에도 주의를 주셨던 말씀이다.
그곳에 가서는 내가 전권대사(全權大使)이니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그리고 무겁게 뱉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시면서 말이다.
서운하지는 않았고, 그저 막중한 책임감만 새삼 느꼈다.
“예. 꼭 그러겠습니다.”
“그래. 더 하고 싶은 말은 많다만 내 이미 너에게 말한 것들이니 잔소리는 그만하마.”
“잔소리라뇨. 주의죠, 주의.”
말한 나는 씨익- 웃었다.
우리는 짧은 작별 인사와 함께 1년 뒤를 기약했다.
뭐, 사실 말이 1년이지 어쩌면 그 이상 소요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대문에서 문무백관의 전송을 받으며 출발한 우리는 보름째 되는 날 목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여긴 목포다.
장장 보름간의 긴 여정 끝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사실 21세기에서도 보름간의 여정은 길다고 할 수 있는데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여기선 특히 더 그랬다.
목포에 도착하자마자 퍼져버렸다.
오면서 산적이나 도적떼는 안 만났지만 호랑이도 만났다.
사실 거리가 한 100m 정도는 떨어져있어서 직접적인 위험이랄 건 없었지만, 난 호랑이를 처음 봤다.
전쟁하러 북상 할 때는 하도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 호랑이가 감히 접근 조차 안 했고, 내이포에 내려 갈 때는 거의 안정적인 루트, 그러니까 고을들을 지나쳐서 고을 관아의 객사에서 밤을 보냈기 때문에 호랑이를 만날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노상에서 밤이슬을 맞으면서 보고야 말았다.
말했다시피 100m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 일행들을 쓱- 훑어보고 간 수준이라서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절로 오금이 저렸다.
더 오금이 저렸던 건 수행원들의 태도였다.
몇몇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호랑이를 쳐다보고 만 수준이었고, 또 몇몇은 토테미즘에 근간한 건지 “산군님!” 하면서 호랑이에게 절을 올렸다.
뭐, 에피소드랄 건 이게 전부고, 호랑이를 마주한 것 빼고 우리 일행은 별 탈 없이 목포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부족함은 없으십니까? 헤헤.”
아, 이 사람?
누런 이를 한껏 드러내면서 비굴하게 웃는 이 사람은 목포만호 김세동이란 사람이다.
이제 서로 안면을 튼 지 이틀 밖에 안 됐지만 마음에 안 드는 위인이다.
만호는 군사 직급중 하나다. 21세기의 그것과 정확히 비교하긴 어렵지만 하는 일과 부대 단위를 보면 최소 중대장 이상의 책임자라고 볼 수가 있다.
근데 하는 행동이 지휘관이라기 보다는 아첨꾼 같다.
마음에 안 드는 건 그 때문이었다.
뭐랄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목포에 있는 지금 이 순간 왜구가 쳐들어온다면 이 사람이 우릴 지키기는커녕 씨몰살 시키는데 일조할 것 같달까?
군사(軍事)에 해박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런 사람이 만호로 있으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다.
그래서 어쩔 거냐고?
어쩌긴 뭘 어째.
서계에 저 사람 평가도 첨부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니까.
“예, 뭐. 덕택에.”
그래도 웃는 얼굴에 침뱉을 순 없는 노릇.
고개를 끄덕거리자 김세동은 입꼬리가 귀에 걸려서 자리를 떠났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입니다.”
내 생각만은 아니었던지 부사로 이번 사행길에 참가하게 된 장곤 선생님이 짤막하게 말을 덧붙인다.
아, 장곤 선생님은 몇 주 전 낙점되셨다.
이조좌랑에 계시다가, 얼마 안 있어 이후 홍문관 교리로 승진을 하셨고, 그 다음 이번 사신단의 부사로 거론이 됐다가 결국 낙점되셨다.
정오품의 선생님이 부사로 낙점되신 건, 명나라 때문이다.
정사로 왕자인 내가 가는데 부사마저 높은 관직의 사람이 간다면 명에서 트집 잡을 걸 우려한 조정에서 당하관들 중에 부사를 물색하게 된 것이다.
거기서 낙점 된 게 바로 장곤 선생님이고.
뭐, 나로선 다행스런 일이지.
얼굴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같이 가니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장곤 선생님은 나보다 앞서서 목포에 도착하셨다.
내가 17일 전에 도성을 출발했다면 장곤 선생님은 그보다 앞선 25일 전에 선발대를 이끌고 도성을 출발하셨다.
선박들도 점검하고, 선박에 짐들도 선적하고, 전반적인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제 내일이면 볼 일도 없을 텐데요, 뭘.”
“그렇긴 할 테지요.”
만반의 채비를 갖췄다. 이제 내일이면 출국이었다.
그럼 김세동을 볼 일도 없을 터였다.
“한데 대감.”
“유구국과 교린을 하면 정말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이옵니까?”
“글쎄요. 부강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자들은······.”
선생님은 객사 옆 행랑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서경덕과 반석평을 흘겼다.
“저자들은 굳게 믿고 있던 걸요.”
“그렇습니까?”
“걱정하실까봐 말씀을 못 드렸는데··· 오늘 아침에는 화담(서경덕의 호)과 정암(조광조의 호) 사이에 논쟁도 있었사옵니다.”
“논쟁?”
“예. 정암은 소국과 교역을 한다면 이문이 있긴 하겠지만 나라가 부강해지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 주장했고 반대로 화담은 눈으로 보지 않고 재단하는 건 금물이라며 서로 논쟁을 좀 했었습니다.”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진을 빼고들 있군요.”
이거, 조광조는 괜히 데려왔나 싶기도 한데··· 후회하면 뭐 해?
이미 데려왔는데.
나는 장곤 선생님과 담소를 더 나눴다.
장곤 선생님은 의문점이 한가득이신 것 같았다. 날 가르치신 분이라 더 의아하실 터였다.
내가 천자문도 제대로 모르는 천치(?)였다는 걸 잘 알고 계신 분이었고, 조선의 예법이나 풍습에도 어두운 사람이었다는 걸 잘 아시는 분으로서, 그런 내가 주장한 외국과의 교역 재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논리가 의아하실 법도 하지.
나는 굳이 장곤 선생님을 설득하진 않았다.
그저 내가 아는 선에서 형님께 설명드린대로 설명을 드렸다.
납득은 선생님 몫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음 날이 밝았다.
우리는 꼭두새벽부터 포구로 나갔다. 포구에는 가쓰히로가 만든 배들이 도열해 있었고 우린 차례로 승선을 했다. 내가 탈 대장선의 깃대에는 형님께 받은 용기(임금의 깃발)와 우리의 국적을 알릴 조선(朝鮮)이란 글자의 깃발도 매달았다.
그리고.
“갑시다.”
“출항하랍신다!”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우리가 탄 배는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내 마음대로 항해일지]
《1506년 3월 29일 미시(오후1시~3시)》
-어딘지는 모르겠다. 아까까지 보이던 한라산이 이제는 안 보인다. 북풍이 심하게 불어서 배가 마구 흔들렸다. 선상에 있던 나랑 장곤 선생님은 갑판 아래로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선생님께 내가 아는 오키나와를 설명해드렸다. 생전에 슈리성은 꼭 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가게 됐다. 의외로 멀미가 심할 줄 알았는데 멀미는 하지 않고 있다.
《1506년 3월 30일 오시(오전11시~오후1시)》
-바람이 엄청 심하게 불어서 후미를 따라오던 배가 뒤집어질 뻔 했다. 서경덕이 그럴 보고는 사색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제주에서 동남으로 계속가다보면 흑치(黑齒)라는 야만인들이 사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거기로 떠밀려 가진 않겠지요?”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흑치라는 부족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인지 불안해 했다. 사람들이 흑치라는 부족을 무슨 야만인의 최고봉으로 여기면서 생각 이상으로 불안해하길래 “내가 흑치섬에 표류해 온 제주사람에게 들었는데, 흑치라는 오랑캐들은 쇠를 무서워해서 쇠를 지닌 사람들은 안 건든다고 합디다.” 했다.
물론 흑치섬에 표류한 제주인 따윈 없다.
그래도 이 말에 사람들이 안정을 찾아서 다행이다.
《1506년 4월 5일 해시(오후9시~11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쓰히로와 김비을개가 날 불렀다.
“비가 오려는 듯 합니다.”
두 사람의 말에 밖으로 나가보니 정말로 한바탕 비가 잔뜩 쏟아지려는지 천둥번개가 마구쳤다. 천둥번개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선원들이 또 불안해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수신(水神)에게 치성을 드리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수신인지 용왕인지 있거나 말거나지만,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 보다는 나을 테니까.
내가 탄 대장선의 취사부(炊事夫)들을 통솔하고 있는 차걸남(次傑男)에게 밥을 짓게 했다. 그러고는 김비을개에게 들은대로 그 밥을 선미에 올려놓고, 옆에는 술잔을 따라 수신에게 치성을 들였다.
치성이라 해서 거창할 것 같았는데 별 건 없었고, “무탈하게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뭐, 이렇게 외치고 끝이었다.
치성을 들이고 나서도 먹구름이 안 가시고 비가 엄청 쏟아졌다. 파도는 거세졌고 당장이라도 그 파도가 우리 배를 집어 삼킬 것 같았다.
두려운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진지, 선원들 모두 꿇어 엎드린 채로 관음보살을 외워댔다. 근데 신기하게 비가 뚝 그치지 뭔가.
괜히 용왕에게 치성 들인 내가 다 민망해졌다.
《1506년 4월 8일 신시(오후3시~5시)》
-저녁밥을 해먹으려고 차걸남에게 저녁 준비하라 일렀는데 차걸남이 밥을 지으려고 하자 갑자기 고래가 출몰했다. 물위로 부상해서 물을 뿜어내는 모습이 신기해, 계속 바라봤다.
-섬이 보였다. 나는 처음에 저기가 오키나와인줄 알았는데 오키나와에 한 번 표류해 본 적이 있는 김비을개가 아니란다.
김비을개는 무인도라고 했는데, 식수도 구할겸 가보니 정말 무인도였다. 잠깐 닻을 내리고 섬에 탐사차 가봤는데 섬은 매우 작은 편으로, 나무들이 많았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가장 많았는데 기후는 약간 후덥지근한 게 우리나라로 치면 5~6월 정도 같았다.
다행히 시냇물이 있어서 식수로 길러왔다. 뱃사람들을 차례로 쉬게하다가 다음날 출항했다.
《1506년 4월 12일 신시(오후3시~5시)》
-젠장. 왜구를 봤다. 솔직히 왜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멀리서 우릴 쫓아오려는 왜선을 보고 시력이 좋은 김비을개에게 배 위에 탄 사람들의 행색을 묻자
“머리는 푸른 수건으로 싸매고 있고, 아래는 아무것도 가린 것이 없이 위에 검은색의 장의(長衣)만 입고 있습니다.”
했다. 겉모습만 보고서 왜구인지 아닌지 판단 할 순 없겠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은 99%의 확률로 왜구라 확신했다. 놈들은 한 7~800m를 쫓아오다가 뱃머리를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쫓아가서 포로로 삼아버리고 싶었는데 그럴 순 없지.
《1506년 4월 19일 유시 (오후5시~7시)》
-원래라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오키나와가 자꾸 안 나타나서 며칠 전부터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드디어 육지가 보였다.
내심 불안해하던 김비을개와 가쓰히로 역시 환호성을 터뜨렸다. 정상적이었다면 2~3일 전에 도착했을 텐데, 2~3일 전에 분 북서풍이 문제였을 것 같다고 김비을개는 말했다.
어쨌든 잘 도착했으니 다행이지.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식도락 여행 시작해봐야겠다.
겸사겸사 나랏일도 좀 하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