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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60화 (160/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60화>

    ***

    상황 1. 형님이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갔다.

    상황 2. 집경당에서 난리가 벌어졌다.

    상황 3. 분노한 형님에 장녹수 자매는 체포됐다.

    상황 4. 궁궐이 발칵 뒤집혔다.

    자,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들이다.

    이 모든 게 단 반시진, 그러니까 한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장녹수 자매가 염매의 범인으로 지목돼서 체포가 됐다는 사실에 궁궐은 어수선했다.

    이 어수선해진 분위기에 나는 감히 이덕을 용서해달란 말을 입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뭐, 그건 차차 말씀 드리기로 하고, 이제 다음이 문젠데······.

    무슨 다음이냐고?

    보다시피 상황 5 말이다.

    “어쩌시겠사옵니까, 대감?”

    영의정 허침의 말에 나는 “에······.” 말끝을 흐렸다.

    사실 이렇게 주목 받아 본 적이 많지가 않아서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그··· 일단 추국(推鞫)부터 하긴 해야겠는데 말입니다.”

    추국이란 말에 빈청의 모든 이목이 나에게 집중된다.

    하··· 제기랄.

    장녹수 자매에게 체포령을 내리신 형님은 승정원을 통해 내게 막중한 소임을 맡기셨다.

    그래, 여러분들의 짐작이 맞다.

    해당 역모 사건을 나더러 다스리라신다······.

    근데 내가 역모 사건을 다뤄봤어야지?

    이론은 빠삭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려니 좀처럼 말이 나오질 않았다.

    “준비하라 이를까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례인 건 아는데 당혹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고갯짓이 먼저 튀어나왔다.

    내 무언의 대답에 허침 씨가 시립하고 있는 금부 관원에게 눈치를 줬다. 예의 관원은 후다닥- 빈청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둬둔 장녹수 자매를 추국장으로 데려오기 위함이리······.

    어라, 왜 다시 들어와?

    “송구하오나 대감.”

    “지밀나인 김이덕은 어찌 하올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당연히 추포해야지.”

    대답은 대사성 김전이 대신했다.

    그의 대답에 금부 관원은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덕이를 살리고 싶긴 하지만, 일단은 사건 당사자 중 하나였다.

    처벌 문제는 둘째치고 심문은 불가피했다.

    일단 자세한 정황은 알아야하니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참으로 통탄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역모 사건의 대략적인 윤곽과 처리가 결정되자, 어디선가 탄식이 새어나왔다.

    우의정 채수의 탄식이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설마 집경당의 소행일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그 탄식을 받은 건 홍문관 전한 이행이었고,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 않습니까.”

    다시 이행의 말을 받은 건 대사간 김굉필이었다.

    “전하께서 상심이 크실 듯 하오.”

    장녹수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점점 많아질 즈음.

    의금부 도사 권적(權勣)이 들어왔다.

    “대감, 심문 준비는 끝났사옵니다.”

    “그래요? 갑시다.”

    ***

    반시진만에 심문이 끝났다.

    염매라는 어마무시한 반역죄인 걸 감안하면 생각보단 일찍 끝난 심문이었지만, 그럴만도 했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고작 세 명 밖에 없었다.

    장녹수, 장복수, 김이덕.

    물론 장녹수는 죄를 자백하진 않았다.

    오히려 바락바락 대들며 “난 죄가 없다, 이놈들!” 떠들어 댔다.

    누가 보면 정말 죄없는 사람 누명 씌운 줄 착각할 만큼 죄를 자백하진 않았지만, 누가 그랬던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장복수가 다 실토했다.

    심지어 고신도 가하지 않았다. 그저 선의의 거짓말을 했을 따름이다. 그 죄를 남편과 자식에게 만큼은 묻지 않겠다는 제안에, 장복수가 금방 죄를 실토한 것이다.

    아, 물론··· 말했다시피 선의의 거짓말이다.

    이번 사건은 역모다. 역모라서, 이들에 대한 처벌은 오직 형님께 달렸다.

    사헌부에 들어온 죄인들은 뭐, 내가 봐준다고 봐줄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이번 건 아니란 소리다.

    이덕이는 내가 묻기도 전에 구구절절히 사건을 까발렸다.

    얼추 사건이 종결 된 셈이지만 모두 끝난 건 아니었다.

    난 이 사건을 형님께 위임 받았다. 당연히 이 사건의 끝은 보고였다.

    “···해서 숙용은······.”

    “숙용은 무슨. 그저 장 씨다.”

    “···예. 장 씨는 금부에 가둬뒀고, 장복수 역시 다른 칸에 가둬두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장 씨가 죄를 실토하진 않았습니다만, 사건 당사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다면 장 씨가 이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그렇겠지. 중전은?”

    죄인들을 심문하면서 이례적이었지만 중전마마도 행차를 하셨었다.

    형님께선 중전마마께 이 일을 최대한 비밀로 하시고자 하셨지만, 사실 궁궐 전체가 발칵 뒤집혀진 상황에서 언제까지고 비밀로 할 수도 없거니와, 이미 이덕이 중전마마께 용서를 구한 뒤였다.

    중전마마는 이덕이를 용서하신 건진 몰라도, 장녹수 자매 다음 이덕이를 심문할 차례가 되자 눈물을 보이셨다.

    “중궁전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별 말은 없었고?”

    형님의 질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려다 도로 닫았다.

    “···예.”

    이 또한 선의의 거짓말이다.

    모든 심문이 끝나고 형님께 보고를 드리러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나한테 다가온 중전마마는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그런데 그런 말까지 해서 형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진 않다.

    “중전이 받은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텐데 그건 어떻더냐?”

    “저도 중전마마의 속까지 들여다본 건 아닌지라 그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시기엔 괜찮으셨습니다.”

    “그거 참 다행이구나. 너도 알다시피 중전의 마음이 좀 여리더냐.”

    “형님은 어떠십니까?”

    “나?”

    “예. 형님도 상심이 크실 것 같습니다.”

    “배신을 한 두 번 당하는 게 아니다 보니 화가 나는 것도 잠시다. 이젠 무감각하다. 다만 괘씸하긴 하지. 내 그년에게 보여준 의리에 대한 보답이 염매였다니······.”

    갑자기 울적해지셨는지 한숨을 내쉬던 형님이 이내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머금었다.

    “너는 배신하면 아니 된다. 그리하면 난 정녕 믿을 사람이 없어진다.”

    “···걱정마십시오.”

    “그래, 빈청에서도 장 씨에 대한 처벌을 논했을 텐데 어찌 말들 하더냐?”

    “이미 사건을 실행에 옮긴 것 자체가 역모고, 이 사건이 까발려진 뒤부터 역적의 신분이 됐으니 응당 역적에 준하여 벌함이 온당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지. 능지로 다스림이 옳겠다. 하면 장복수는?”

    “애당초 이 사건 자체가 역모긴 합니다만, 장복수는 노비입니다. 노비로서 상전을 해한 건 강상에 해당하는데 심지어 기군(欺君)하고, 국모를 모해하는 일에 동조하고 꾀를 냈으니, 설령 장 씨는 용서하더라도 복수는 거열로 다스려야 된다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거열이라.”

    “남은 건 이제 이덕인데··· 이덕이는······.”

    “어쩌자고 하더냐?”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두 가지로?”

    “한 쪽은 역적이니 역적으로서 벌함은 응당 한 것인데, 다만 지밀을 모시고 있는 나인이 벌인 일이니 가죄(加罪)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엄벌에 처하고, 또 남녀궁인 모두가 감히 역모는 생각도 못 하게끔 이번 일로 단속해야 한다는 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흠. 나머지는?”

    “이제 나머지가 문젠데······.”

    “어떤 것인데 그러하냐?”

    음.

    긴장 되는 걸.

    아니, 긴장 되는 것 보다 형님께 죄스럽다.

    이런 타이밍에 이런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나는 배신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배신감 느끼는 거 아닐지 모르겠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지금 아니면 할 시간이 없다.

    “이덕이 지은 죄가 천만 죽을죄인 건 맞지만, 녹수의 사주에는 협박이 있었던데다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니 매를 때려 작게나마 죄를 뉘우치게 하고, 궐에서 추방하는 정도로 그치자는······.”

    쾅!

    “누구냐. 감히 누가 그런 망발을 지껄였단 말이냐!”

    뜨끔.

    “그게 말입니다, 형님.”

    “내 그 말을 한 자가 누군지 알아야겠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파직하여 망발을 한 데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게요.”

    “허. 추방? 역적을 극형으로 다스리라 해도 모자를 판국에 추방? 대사성이냐?”

    “···접니다, 형님.”

    “···?”

    “···”

    갑분싸해버렸다.

    아무래도 타이밍 잘못 잰 것 같다.

    “아니, 그 무슨······.”

    길길이 날뛰던 형님도 당혹스러우신지, 표정 관리를 못 하신다.

    “형님 일단 말씀드리기에 앞서서요. 이건 아까 형님이 말씀하신 배신 같은 게 아닙니다. 아셨죠?”

    “···아, 알았다.”

    “제가 이 사건을 알게 된 계기가 이덕이 때문이었다고 말씀드린 거 기억하시죠?”

    “하다마다.”

    “이덕이가 죄책감에 크게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와서 죄를 자백한 거구요.”

    “하지만 역적이다. 역적은······.”

    “압니다. 알아요. 형님이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이덕이가 역적 아니란 거 아닙니다. 역적이죠. 죽일년 맞구요. 근데 전 이덕이를 살리고 싶습니다.”

    형님이 화를 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형님은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다.

    “넌 늘 나를 지지했다. 나에게 반(反)하는 일은 절대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네가 이덕이를 살리고 싶다고 하는 거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무엇이냐?”

    “모정 때문입니다.”

    “모정?”

    짧게 답한 나는 이덕에 대한 상황을 형님께 말씀드렸다.

    자식을 어찌 해버리겠다는 장녹수의 협박.

    장녹수가 협박한 자식 장동이 우리집에 있는 상황.

    자신은 어찌 돼도 상관이 없으니 장동이 만큼은 살리고자 하던 이덕이의 모정.

    “저도 신배가 태어나기 전이었으면 아마 그런 게 어딨어? 역적인데 하고 말았을 겁니다. 근데 형님도 생각을 해보십시오. 형님이 이덕이 입장이라고 가정을 해보구요.”

    “···”

    “장 씨가 내 말을 안 들어주면 성이(창녕대군)나 황이(세자)를 어떻게 해버리겠다고 협박합니다. 그러면서 진짜로 행동에 옮기려고 해요. 형님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웃전에 고했을 것이다.”

    “믿었을까요? 형님인들 저인들. 별 볼일 없던 일개 노비 출신에, 중전마마의 은혜 덕에 지밀에 갓 들어온 나인의 말을 형님인들 저인들 믿었겠냔 말입니다.”

    “으음.”

    “이덕이는 웃전에 고할 수도 없었습니다. 장 씨랑 몸종 시절부터 함께하던 사이니까요. 그리되면 장 씨가 다칠 걸 아니까요. 이렇게 행동하면 장 씨가 다치고, 저렇게 행동하면 제 자식이 다칩니다. 이덕이를 이해하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덕이의 관점에서, 이덕이가 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점을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그래, 네 말대로 이덕의 사정이 딱한 건 맞다. 하지만 그게 죄를 사해줄 근거가 되진 못 한다.”

    “형님.”

    “말하거라.”

    “형님은 살면서 이덕이처럼 딜레··· 아니, 이도저도 못 하는 상황을 놓고 고민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없진 않겠지. 하지만 이덕이 만큼 심했냐고 한다면 그건 잘 모르겠구나.”

    “제가 이제 드리는 말씀은 분명 무례할 겁니다. 그래서 죄송스럽습니다.”

    “무례?”

    “예, 이덕이처럼 이도저도 못 하는 상황을 놓고 고민하게 만들 거거든요.”

    “···?”

    “형님이 저더러 계속 조정에서 보좌해달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억하십니까?”

    “하다마다. 생각이 바뀐 것이냐?”

    “아뇨. 바뀌진 않았습니다. 다만요. 이덕이를 살리신다면 제 생각도 바뀔 겁니다.”

    “생각이 바뀐다면··· 남아 있겠다는 말이렷다?”

    “예.”

    형님께 무례한 건 안다.

    사건을 겪은지 이제 하루 밖에 안 됐는데 이런 딜레마에 빠지게 했으니 죄송스럽기도 하다.

    내 뜻을 남한테 강요하기 위해 타인의 약점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정말 양심에 찔린다. 하지만 내 양심 한 번 찔리면 이덕이랑 장동이를 살릴 수 있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타인의 생사에 관여 할 일이 얼마나 될까?

    거기서, 죽을 위기에 처한 타인을 살릴 일은 얼마나 되고?

    최소한 두 사람은 살릴 수 있으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 잠시 뒤로 미뤄두자.

    자, 이제 형님의 선택만 남으셨다.

    이덕이는 장 씨와 장동이냐 VS 중전마마냐 하는 딜레마에서 결국 전자를 택했다.

    형님은 나냐, 이덕이냐에 대해서 어떤 선택을 하실까?

    “아, 미안하구나. 내 잠시 얼이 나갔던 모양이다.”

    후, 그래. 이해한다. 얼이 나갈 만도 하지.

    이덕이처럼 딜레마에 빠지신 게 분명하다.

    다시 한 번 이해한다. 나를 택하자니 역적인 이덕이를 살려야하고, 이덕이를 택하자니 나를 버려야 하니, 충분히 큰 딜레······.

    “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당연히’ 이덕이를 살려야 할 것 같구나. 이덕이가 참으로 딱한 것 같다.”

    아니, 자, 잠깐만··· 이, 이렇게 쉽게?

    이렇게 쉽게 이덕이를 살려주신다고?

    "자, 그래서 말인데 진성아. 네가 사헌부에선 충분히 조정의 일을 경험했으니······."

    왠지 딜레마는 형님이 아니라 내가 빠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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