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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58화 (158/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58화>

    ***

    구린 내가 났다.

    이건, 진짜로 대사헌의 직감이었다.

    사헌부의 일이란 건 사실 옥석을 가린다기 보다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일에 가깝다.

    거짓말로 일관하는 탐관오리.

    거짓말로 일관하는 죄인.

    거짓말로 일관하는 관리.

    죄인들은 몰라도 명색이 관리 씩이나 되는 이들을 고신까지 하면서 추궁 할 순 없으니 당연히 단순한 심문 정도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CCTV라던지 녹취랄 게 없는 이 세계에서는 심문으로 그 죄를 특정 할 수 밖에 없다.

    증거가 있긴 하지만 증거를 남기는 어수룩한 관리는 사실 많지 않다.

    그렇잖아?

    명색이 상위 1%의 엘리트들이다.

    음서로 관직에 진출했으면 몰라도 대부분 과거를 통해 진출했을 텐데 상위 1% 엘리트들이 어수룩하게 범죄를 저지를 리가 없다.

    작정하고 남을 속이려 들면, 정보화 세계인 21세기에서도 깜빡 속아 넘어가는데 하물며 여기서 작정하고 남을 속이려 들면 눈 뜬 사람 코도 베어갈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대사헌을 하면서 거짓말을 숱하게 들었다.

    사실 사람과 나눈 대화나 심문 보고서 정도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건지 진실을 말하는 건지 판단하긴 대단히 어렵다.

    다만 감은 좀 생겼다.

    왜, 어른들이 그러잖나.

    나이가 들다보니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생기더라고.

    어른들이 말하는 거랑 좀 비슷하다.

    당연히 난 신이 아니다. 신이 아니다 보니 100명의 거짓말쟁이를 판단 할 순 없다. 하지만 뭔가 촉이 올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다.

    그녀는 어디 가고 있냐는 내 질문에 길을 잃었다는 대답을 했다.

    이것부터 말이 안 된다.

    “길을 잃으셨다구요?”

    “예.”

    당혹스러워하던 부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신색을 가다듬었다.

    “어디 가시는 길이었습니까?”

    “사옹원엘 좀 가려던 참이었습니다만.”

    궐내각사 중 하나가 사옹원이다.

    사옹원에 간다는 거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긴 한데······.

    나는 숙용 부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사실 거짓말 하는 사람을 분별하는 건 어렵지만 대강 파악은 할 수 있다.

    사람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찔릴 게 없는 사람은 눈을 바라봐도 불편함이 전혀 없다.

    하지만 찔릴 게 있는 사람은 동공부터가 흔들린다.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 괜히 안절부절 못 해 하면서 머리나 목을 긁적거린다.

    저저, 봐.

    숙용 부인도 그러잖아.

    ‘뭔가 찔리는 게 있긴 한가 본데······.’

    날 꼬시려는 게 아닌데 왜 목덜미를 어루만져?

    “그······.”

    “편전에 가시던 참 아니셨습니까?”

    “아, 예. 뭐, 그렇긴 한데.”

    “정사가 우선인데 일 보시지요. 전 이만.”

    이라고 말하면서 쌩- 바람처럼 사라져버린다.

    사적으론 작은 형수(?)님 같은 사람인데 다시 불러세워서 추궁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멀어져가는 그녀를 바라만 봤다.

    그러다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강 내관.”

    광화문을 나서던 날 붙잡은 게 강 내관이다.

    “예, 대감.”

    “지금 염매 때문에 패초 보낸 거 남녀궁인들이라면 다 아는 소식입니까?”

    “아뇨. 사안이 사안인데다 전하께서 중전마마께오서 아시면 마음이 크게 상하실 걸 우려하셔서, 언제 드러나긴 드러나도 최대한 기밀에 붙이라 하셨사옵니다.”

    “근데······.”

    나는 허둥지둥 사옹원으로 바삐 움직이는 숙용 부인을 바라봤다.

    ‘편전에 가는 건 어떻게 알았지?’

    눈대중으로 맞췄다기엔 신기에 가깝잖아?

    “이상하네.”

    “예?”

    “아. 아닙니다. 가죠.”

    “예.”

    그렇게 의심쩍은 마음과 함께 편전으로 걸음한 지 얼마나 됐을까.

    멀리 편전이 보일 즈음.

    누군가 날 불러세웠다.

    “중전마마께오서 부부인께 전하는 서간이옵니다.”

    아마 지밀나인이나 되는 모양이다.

    궁녀가 내게 서간을 건네는 일이 한 두 번 있던 일도 아닌지라, 예의 궁녀에게 받은 서간을 잘 갈무리했다.

    중전마마와 사이가 애틋하니 서간을 전달 받으면 부인도 기뻐할 거란 생각에 나도 덩달아 기뻐진다.

    “고맙네.”

    “저, 저기······.”

    “음?”

    고개를 돌리자 예의 궁녀가 손가락을 괜히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뭐, 따로 전할 중전마마의 전언이라도?”

    “그건 아니옵고··· 송구하오나 어딜 가시는 길이시옵니까?”

    “편전 가는 길이네만?”

    왜인지는 모르겠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궁녀의 동공이 마구잡이로 흔들거린다.

    왜 그럴까 싶어 물으려던 그때.

    치맛단을 꽉 움켜쥔 궁녀가 말했다.

    “송구하오나 잠시 시간좀 내어주실 수 있을는지요?”

    “급한데······.”

    “화급을 다투는 일이옵니다.”

    중궁전 소속 나인이 나한테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 뭐가 있을까?

    암만 생각해도 없지만 표정이나 행동을 보니 적잖이 큰 일이긴 한 모양이다.

    “강 내관, 지금 늦었겠죠?”

    “예. 다른 분들은 모두 드셨을 것이옵니다.”

    “그럼 늦은 김에 조금 더 늦지, 뭐.”

    “전하께서 기다리실 것이옵니다.”

    “이해해주실 걸요?”

    “···”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된 강 내관을 뒤로한 채, 인적이 드문 수정전 처마로 향하는 궁녀를 뒤따랐다.

    “그래서 할 말이란 게?”

    “그게······.”

    “첩으로 들여달란 건 당연히 아니겠지? 하하.”

    오해는 말라.

    이름 모를 이 궁녀가 한껏 긴장한 것 같아 분위기 풀려고 농담한 거니까.

    모든 궁녀가 승은을 받든 안 받든 형님의 여자란 거, 나도 모르진 않는다.

    “말 안 하면 나 갈걸세?”

    “자, 잠깐. 그러니까 말이옵니다······.”

    드디어 입을 여는 그녀에 나는 팔짱을 낀 채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

    내가 아까 말한 거, 기억나지?

    대사헌의 자리는 옥석을 가리기 보다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자리란 거.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나는 얼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김이덕이라고 밝힌 궁녀는 전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궁녀가 하는 진술은 무엇보다 일관성이 있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기 마련이다.

    그래서 추궁을 계속하거나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어딘가 수상쩍은 구석이라던지 앞뒤 맥락이 안 맞는 부분이 드러나게 마련인데, 이덕의 진술은 일관됐다.

    앞전의 숙용 부인처럼 눈을 피하지도 않았고 불안한 듯 얼굴이나 목을 긁적거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게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떠 나서 내가 얼이 나간 건, 염매의 계획자가 숙용 부인이란 데 있었다.

    장녹수.

    앞전에 내가 조광조도 익히 들어본 이름이라고 했던 거 기억하나?

    그 외 들어본 이름이 또 있다면 바로 장녹수다.

    한국사 제일의 요녀이자 악녀로 악명이 자자했고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는 대중 가요로도 나온 사람 아니던가.

    물론 그녀가 살아생전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어떤 행적을 남겼는지는 역알못인 내가 알 순 없었지만, 다만 진성대군이 뭘 하게 될 사람인지도 모르던 내가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인물중 하나가 바로 숙용 부인, 장녹수였다.

    사실 그녀를 마주한 건 별로 안 된다.

    대화를 나눠 본 적도 별로 없고.

    근데 형님이 의지를 많이 했다는 소리는 들었다.

    장녹수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그게 전부다.

    문제는, 장녹수에 대한 형님의 의존도다. 예전에는 입궐하면 숙용 부인과 함께 있다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었는데, 요새는 그런 일이 일절 없었다.

    이제는 과거형이 된 장녹수에 대한 형님의 의존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님이 장녹수를 신임하고 총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중전마마를 모해(謀害)하려고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다만 의구심은 남아 있었다.

    “이덕이라고 했나?”

    “···예.”

    “이게 까발려지면 자네도 무사치는 못 할 텐데 어찌 내게 이런 중대한 사안을 알려주는 건가? 숙용 부인과는 어려서부터 한 행랑에서 머물던 사이라며?”

    이덕이 장황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실 사람의 감정은 때론 납득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예컨대 본인이 다칠 걸 뻔히 알면서도 타인을 구하려는 의협심.

    본인이 손해 볼 걸 뻔히 알면서도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려는 정의감.

    사실 ‘합리적’이라는 단서를 붙이면 이 모든 건 비합리적인 일이 된다.

    이덕의 설명도 그랬다.

    ‘합리적’이라는 단서를 붙이면 이덕의 진술은 비합리적이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테니까.

    하지만 이덕은 본인의 진술에 ‘합리적’이라는 단서 대신 ‘양심’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본인에게 잘해주는 중전마마를 염매 했다는 데 대해 양심이 찔렸다는 것이다.

    거짓말 같진 않았다.

    또, 이덕이 숙용 부인을 음해하기 위해 말을 꾸며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말을 꾸며내는 거라면 ‘숙용 부인이 염매를 행했다.’라고 진술만 하면 되는데 그 과정에 본인도 가담했다고 진술하고 있지 않나.

    중전마마에 대한 염매는 반역죄로 다스려질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또 그녀의 말에 신빙성을 느낀 대목은 모정이었다.

    “그러니까, 우리집에 있는 장동이? 장동이가 자네 아들이라고?”

    “그러하옵니다.”

    그녀는 우리집에 있는 행랑식구 중 하나인 장동이가 본인 아들이라 밝혔다.

    장동이는 이극균의 노비로 있다가 형님이 역적들의 재산을 적몰하고 공신을 책봉하는 과정에서 내게 하사한(?) 아이였다.

    그녀는 ‘양심’이란 단서 뒤에 ‘그 아이 만큼은’이라는 모정을 단서로 달았다.

    함구만 했으면 발각될 가능성도 낮았겠지만 양심에 찔렸고, 양심고백을 하는 과정에서도 어릴 적 헤어진 자신의 아들이 걱정 된 것이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보자면, 거짓 같진 않다.

    오히려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장동이는 살 수 있을까요?”

    사색에 잠긴 나를 이덕이 걱정스럽다는 듯 올려다봤다.

    말했다시피 중전마마에 대한 염매는 반역죄다.

    반역은 삼족이 멸해지는 처분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한데 어릴 적 헤어졌다고는 해도 역적 주동자의 아들인 장동이가 무사 할 리 있을까?

    ‘어렵겠지.’

    장동의 나이가 일곱 살 미만이었다면 어찌 선처가 베풀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장동이는 열 네 살이다.

    어려울 거다.

    그렇다고 장동이나 내부고발한 이덕의 용기를 높이 사서 이 일을 함구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형님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는 걸 떠나, 아마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조정에는 또 다시 피바람이 불 터였다.

    엄한 사람이 죽고 다치는 피바람 말이다.

    그것 때문에라도 이 일을 함구 할 순 없다. 오히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형님께 이 사실을 아뢔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선뜻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협박을 받았든 뭐든 결국 실행에 옮긴 건 사실이니 이덕에게도 잘못이 있는 건 맞았다.

    하지만 상전의 강요와 압박에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심지어 생이별한 자식 머리을 룰렛판으로 세우고 협박을 한다면?

    많지 않을 것이다.

    고심을 이어가던 나는 이덕과 눈이 마주쳤다.

    “자네.”

    “예?”

    “살고 싶긴 하지?”

    “죽을 죄를 저질렀으니 어찌 살기를 바라겠사옵니까? 그저 아까 말씀드린대로 장동이만이라도 어찌······.”

    “젠장.”

    엄한 장녹수가 여러 사람 고생 시킨다.

    이렇게 막돼먹은 요녀였단 거, 알았으면 진작 싹을 쳐내버리는 건데.

    “자네는······.”

    “···”

    “자네는 중전마마께 가서 빌어. 손이 파리가 되도록 빌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이덕이 흠칫 몸을 떨었다.

    하긴.

    양심에 가책을 느꼈어도 차마 중전마마께 아뢰진 못 해서 나한테 말한 걸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살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내가 자네 살릴 수 있겠다고 확신은 못 하겠는데, 최소한 장동이 한 번 쯤은 만나 볼 수 있게끔 손을 좀 써볼 테니까, 장동이 얼굴 보고 싶으면 그렇게라도 하고 있으라고.”

    “아, 알겠사옵니다.”

    자식 생각 때문일까.

    이덕은 인사도 생략한 채 허둥지둥 중궁전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던 나는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요새 욕 안 하려고 했는데 절로 욕이 나온다.

    시발! 시발! 시발!

    형님과 거래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끈끈한 혈육의 정을 형님께 느껴버리기도 했고, 거래란 건 너무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지니까.

    그런데, 이덕이랑 장동이를 좀 살리고 싶다.

    나 원래 합리적인 사람이라 이렇게 손해 보는 장사 같은 건 안 하는 타입인데··· 이덕의 모정이 날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치자.

    자, 그래서 내가 무슨 형님께 무슨 거래를 제안할 거냐고?

    대군으로 살어리랏다를 걸 참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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