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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57화 (157/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57화>

    ***

    궁궐이 발칵 뒤집혔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국모가 기거하시는 중궁전에서 염매의 흔적이 발견됐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패초를 받고 입궐한 중신들은 긴장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어떻게 불똥이 튈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요즘 임금은 선정을 베풀고 있었다. 비록 경연(經筵)은 다시 폐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오히려 태평성대라는 말까지 간간이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그 어떤 성군일지라도 염매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

    특히나 어디로 튈지 전혀 예측 할 수 없는 금상이라면, 친국이 열려도 할 말이 없다.

    “진성은 아직인가?”

    긴장한 표정의 중신들을 돌아본 융이 빈 자리를 바라보며 묻자, 상선이 예의 빈 자리를 흘긴 채 말했다.

    “예. 아직이신 듯 하옵니다. 기다렸다 진행하오리까?”

    융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방금 식사를 하면서 간만에 거하게 먹어 탈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우스개 소리를 진성이 했는데, 측간이라도 간 모양이었다.

    “기다릴 만한 일은 아닌 듯 하니 속개하겠다.”

    상선이 물러났다.

    융은 다시 좌중을 훑었다. 모두들 좌불안석인지 초조함이 융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전하, 관상감 봉사 홍성생(洪盛省) 들었나이다.”

    “들라하라.”

    잠시 후, 내관의 안내를 받아 관상감 봉사 홍성생이 들었다.

    그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도 맞은 사람처럼, 눈을 얻다 둬야할지 모르는지 눈알을 마구잡이로 굴리고 있었다.

    “그대가 홍성생인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내 듣기로 그대가 방술에 조예가 있다 하여 불렀다.”

    “조, 조예까진 아니옵고 그저 귀동냥 정도······.”

    “중궁전에서 죽은 지네와 피묻은 독사 대가리와 제웅(짚인형)이 발견됐다. 이는 뭘 위한 저주인 것이냐?”

    홍성생은 피묻은 독사 부분에서 흠칫 몸을 떨었다.

    “어찌 그러하냐?”

    “그게······.”

    “괜찮다.”

    “신 또한 방술에는 크게 뜻을 두지 않아, 그저 잠시나마 학문 삼아 익힌 수준인지라 확실하진 않사옵니다. 또한 방술가마다 염매를 행하는 방법 역시 각양각색이라, 신의 해석이 다를 수도 있사오나······.”

    “네 해석은 어떠한가 묻는 것이다.”

    홍성생은 마른 침을 꼴깍거렸다.

    “방술에서 지네는 양(陽)을 상징하옵니다.”

    “양기 말이냐?”

    “그러하옵니다.”

    “계속하라.”

    “반면 독사는 음을 상징하는데··· 대가리의 형태는 어떠했사옵니까?”

    “산 채로 대가리가 잘렸는지 눈을 뜨고 있었다.”

    꿀꺽.

    “지네와 독사는 상극이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방술에서 지네는 양을 상징하옵고, 독사는 음을 상징하기 때문이옵니다. 한데 두 흉측한 것들이 함께 있었던데다 독사 대가리에는 피까지 흠뻑 적셔 있었으니, 이는 양의 기운을 가진 지네로서 음의 기운을 가진 독사를 덮치고 그 위에 피로서 아예 음기를 앗아간단 것을 뜻하옵니다.”

    “그리고?”

    “문제는 제웅인데··· 제웅에 혹 성명이나 간지(출생한 해)가 적혀 있었사온지요?”

    “아니다. 내가 중전에게 올린 존호 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

    “전하께오서도 아시다시피 제웅은 보통 액막이의 용도로 쓰이옵니다. 신이 알기로 방술에서는 쓰임이 없사온데, 다만 최근에는 제웅을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사오니 이를 토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방술에서 독한 사술을 쓰는 경우 액이 행한 사람에게 옮겨 갈 수가 있사옵니다. 이때 이를 막기 위한 제물이 필요한데, 예전에는 산재물을 썼습니다만 이 경우에는 제웅을 사용한 게 아닌가 싶사옵니다.

    “제웅을?”

    “예··· 한데 이 경우에도 보통은 남을 극도로 증오하지 않는 이상은 본인에게 돌아올 액을 인형에 옮겨가게 하는 정도로 그치온데 거기에 중전마마의 존호와··· 아, 혹 중전마마의 물품이 발견 된 것 없었사옵니까?”

    “머리카락이 발견되긴 했는데 그게 중전 것인진 모르겠다.”

    “···”

    “어찌 그러는 것이냐?”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제웅에 중전마마의 간지 대신 존호와 중전마마의 머리카락이 들었으니 이는 염매를 행한 자가 혹 액이 본인에게 돌아올 걸 우려해서 제웅으로 액을 막으려한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액이 중전마마께 가도록······.”

    쾅!

    “이런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놈이 있단 말이냐!”

    털썩.

    “주, 죽여주시옵소서.”

    “널 탓한 것이 아니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상선은 황급히 홍성생에게 눈짓했다.

    눈짓을 받은 홍성생이 조심히 뒷걸음질해서 물러나자,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융이 말했다.

    “이건 역모다.”

    “···”

    “역모가 아닌가?”

    “역모가 맞사옵니다, 전하.”

    “역모를 그냥 넘길 순 없다. 금부에선 속히 사건을 수사토록 하라. 범인이 잡히는 대로 과인이 친국할 것이니라.”

    “예, 전하.”

    ***

    궁녀 김이덕(金伊德)은 지밀나인이었다.

    그녀가 모시는 분은 중궁.

    국모셨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왕비를 모신 건 아니었다.

    그녀는 제안대군의 몸종, 즉 일개 사노비에 불과했다.

    원래라면 평생을 제안대군의 종으로 살 팔자였던 그녀가 궁관으로 발탁 된 건 장 숙용(장녹수) 때문이었다.

    장 숙용은 얼녀(첩의 자식)였다. 어미가 천출이다 보니 자연스레 노비의 신분이었고 그러다가 우연히 이덕이 있던 제안대군 댁에 몸종으로 들어오게 됐다.

    원래 지체 높으신 어른들 댁에 갑자기 노비로 들어온 사람들은, 기존에 있던 행랑 사람들의 텃세를 이기지 못 하는 법이었다.

    이덕도 본래는 다른 집안에 몸종으로 있다가 열 살 때 혈혈단신으로 제안대군 댁에 왔기 때문에 그 설움을 잘 알았다.

    좀체 구박만 받는 녹수가 안쓰러워, 가까이 했고 친근하게 굴었다. 나이대도 얼추 비슷했고 마음도 맞았기 때문인지 이덕은 녹수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임금이 종친들을 불러 베푸는 연회 자리에 제안대군이 ‘내게 노래를 잘 하는 몸종이 있다’라 하였고, 임금이 윤허하여 녹수가 불려갔다.

    그 뒤로 녹수는 임금의 눈에 띄어 단숨에 숙용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다만 구중궁궐의 생활이란 게 다 그렇듯 좀처럼 외로움을 이기지 못 했는지, 임금께 본인과 친하게 지내던 이를 입궐시켜달라 아뢨고 그게 이덕이 궁궐에 들어온 까닭이었다.

    궁녀로선 늦은 나이··· 아니, 아예 들어올 엄두도 못 내는 나이에 입궐했기 때문에 미움도 많이 사고, 적응하기도 어려웠지만 제안대군 댁에 있는 것 보다는 나았다.

    거기서 받는 구박이나 꾸지람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제안대군 댁에선 조금만 잘못을 저질러도 수노(우두머리 노비)들이 굶기기 일쑤였는데 적어도 궐에선 굶을 일은 없었다.

    그렇게 이덕은 궁궐 생활에 적응해나갔다.

    처음 배속 받은 곳은 당연히 집경당(장녹수의 처소)이었다.

    하지만 특지를 받고 입궐한 그녀라 할지라도, 한 곳에만 머물 순 없는 법이었다.

    어쩌다 수라간에 나인으로 뽑혀갔고, 그녀의 음식 솜씨에 반한 중전께서 자주 불러다 칭찬을 하셨으며, 그러다 보니 지밀나인이 될 기회가 생겼다.

    왕비께서 어느 곳으로 가고 싶냐고 하길래 처음 이덕은 녹수가 있는 집경당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뢨었다.

    하지만 녹수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차라리 지밀에 머무르라 했다.

    서로 만나긴 전보다 더 어려울지 몰라도 그게 우리 두 사람이 궐에 오래 살아 남을 비법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녹수는 이덕이 유일하게 의지하는 사람이었고, 이덕은 그녀의 말을 따랐다.

    생각해보면 지밀에 드는 게 나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웃전을 받드다 보니 다른 궁관들도 함부로 못 할 테고 말이다.

    생각이 바뀐 이덕은 왕비께 ‘지밀에 들고 싶다’라고 하였고, 잠시 당혹스러워 하던 왕비는 상궁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지밀에 들게 해줬다.

    그러기를 벌써 3년이 흘렀다.

    지밀 생활 3년차.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3년 전의 선택을 다시 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집경당이 아니라 바로 지밀에 들겠다는 선택을 할 만큼이나 만족스러웠다.

    중전마마는 온화하셨다.

    일개 천출에 근본도 없는 자신에게 조차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줄 정도였고, 본인도 잊고 있는 생일마저 챙겨주실 만큼이나 덕이 후한 분이였다.

    반면 녹수는 3년간 변했다. 이전 제안대군 댁에서 알던 온화하고 따뜻한 녹수는 온데간데 없고, 어떻게든 임금의 총애를 사려는 요부로 변했다.

    그녀는 자잘한 부탁을 많이했다.

    중궁전의 상황이나 중전마마의 상태나··· 등등.

    소위 말하는 ‘전달’이었지만 참았다. 녹수 때문에 궐에 들어왔고, 녹수 때문에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오히려 협박까지 했다. 과한 부탁에 못 들어주겠다고 하면 ‘네가 내게 이런 사실을 알렸다는 걸 중궁전에 고하겠다.’ 라던지, ‘널 전하께 아뢔 다시 내쫓겠다’ 라던지······.

    악순환의 반복인 건 알았지만, 양심에도 찔렸지만 서른이 넘은 나이에 궐에서 쫓겨나면 어떤 비참한 생을 맞이할지 이덕은 잘 알고 있었다.

    기껏해야 몸 파는 창기로 생을 마감하던지, 이리저리 떠돌다 죽던지.

    둘중 하나였다.

    물론 녹수가 채찍질만 한 건 아니었다.

    이덕은 열다섯에 낳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 역시 자연히 노비였고, 세 살 무렵 다른 집에 팔려갔는데 그 이후로 생사를 몰랐다.

    녹수는 자신이 그 아이를 찾아주겠다는 말로 이덕에게 채찍질 뿐만이 아닌 당근도 줬다.

    이덕은 이번 한 번만, 이번 한 번만이라는 말에 녹수의 부탁을 들어줬다.

    그리고.

    -이것만 중궁전 기둥 밑에 잘 숨기고 오면 내 꼭 네 아들을 찾아주마.

    라는 부탁을 들었다.

    이덕은 고심했다. 녹수가 들려준 건 제웅과 죽은 지네와 독사 대가리였다.

    일자무식이었던 이덕도 궁궐에 들어오며 약식이나마 공부를 했다.

    때문에 이게 염매를 위한 재료라는 건 손쉽게 파악 할 수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 녹수에게 말했지만, 이미 녹수는 임금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을 만큼 변해 있었다.

    할 수 없다고 하자, ‘네 아들이 원래는 전 좌의정 이극균이의 노비로 있다가 지금은 진성대군의 집에 있다고 들었는데 내 손을 써서 네 아들을 죽여버리겠다.’ 라는 협박만 들었다.

    어미의 품에서 자라지도 못 하고, 이집 저집을 떠돌던 아이였다.

    은혜를 베푼 왕비껜 송구스럽고 죄스러운 일인건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부탁만 잘 들어주면 큰 재물을 주는 건 물론, 진성대군의 사노로 있는 아이도 전하께 잘 말씀드려 면천시켜 함께 살 수 있도록 배려 해주겠다는데 어쩌겠는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이덕은 술기운을 빌려 녹수가 지목한 곳에 염매의 재료들을 숨겼다.

    그러기를 열흘이 지났다.

    열흘간 이덕은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다. 차라리 중전께 말씀드리고 은혜에 보답할까 고민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서른번씩 그런 고민을 하며 열흘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인지 아니면 염매 때문인진 몰라도 중전께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시며 혼절한 적이 있었다.

    단순히 기력이 쇠해져서 혼절한 걸로 밝혀졌지만 이덕에겐 염매 때문이라고 밖에 해석할 길이 없었다.

    죄책감은 더욱 가중됐다.

    그녀의 죄책감을 더욱 가중 시키는 것은, 왕비의 성품이기도 했다.

    그녀가 지밀에 들 때 마다 환히 웃어주며 반기는 건 물론, 밥은 먹었냐··· 날이 추우니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 잠깐 늦어도 괜찮으니 충분히 쉬어라··· 모조리 자신을 걱정하는 말들만 해주셨다.

    죄책감과 왕비에 대한 죄스러움에 눈물로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진성대군이 입궐한단 소식이 알려졌다.

    이덕은 망설여졌다. 중전께는 아뢔지 못 해도 대군께 아뢰면 어떻게 방법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또,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이 진성대군 댁에 계시다니 본인은 염매를 도운 일로 목숨을 잃을지라도 아들만은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궐 안팎에서 진성대군은 부처의 현신 내지는 생보살이라고 까지 불려졌다. 그만큼 너그러운 인품과 사람을 흡인하는 성격 때문이리라.

    오전 내내 고민만 했다.

    주구장창 고민만 하던 그녀에게 중전이 서간을 쥐어주면서 전언을 시키셨다.

    중전마마와 친족이기도 하신 부부인께 전하라는 서간이었다.

    다른 아이들을 시킬까 싶었지만, 갈 만한 아이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녀 본인이 가야했다.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진성대군이 계시다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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