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156화 (156/365)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56화>

***

황은 무척 재밌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재미를 느껴 본 일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재밌다는 이 기분이 낯설었다. 사실 이게 재밌다는 감정이 맞는 건지 아직 확신이 서진 않았다. 다만 실없이 웃음이 튀어나오고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걸로 미루어 볼 때, 재미라고 확신할 뿐이었다.

특히 이 땅따먹기란 게 참 재밌었다.

손바닥을 흙바닥에 대고 한바퀴 휘 돌려 자기 영역을 만들고,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것.

손에 흙을 묻혀 본 기억이 얼마 없는 황으로서는 신선하면서도 재미를 느낄 놀이였다.

땅따먹기 놀이를 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다른 놀이는 또 없는 것이냐?”

세자로서 위엄을 갖춘답시고 제법 근엄한 어조로 말했지만 만으로 아홉 살에 불과한 아이가 옷과 얼굴에 흙을 한가득 묻히고 위엄을 갖추면 얼마나 갖추겠나?

그 귀여운 모습에 남녀궁인들은 소리 내서 웃진 못 해도 흐뭇하게 바라봤고, 물음을 받은 창녕과 개똥은 다른 놀이를 골몰했다.

“숨바꼭질 하까요?”

그 와중에 창녕이 말하자 황은 숨바꼭질이란 놀이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숨바꼭질은 무슨 놀이냐?”

“세자형 바보. 숨바꼭질도 몰라요?”

세자를 ‘바보’라 표현하자 이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남녀궁인들이 화들짝 놀라 창녕대군을 제지했다.

“마, 마마.”

“응?”

“저하께 예를 갖추셔야 하옵니다.”

“내 형인데? 형한테 예 갖춰?”

내 형인데 너희들이 뭐 어쩔거냔 말에 꿀먹은 벙어리가 된 남녀궁인들.

그들을 대신해 세자 황이 말했다.

“됐다. 그래서 숨바꼭질은 무슨 놀인데?”

“술래가요, 찾는 건데. 다른 사람들은 숨는 거에요.”

“숨어?”

“네.”

나쁘지 않은 놀이 같았다.

“그럼 그걸로 하자, 개똥이 넌 어때?”

그새 친해진 개똥이에게 묻자, 개똥은 잠시 골몰하는 표정을 짓더니 큰 품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도 숨바꼭질 좋아요.”

“술래는 누가 하는 것이냐?”

“원래 술래는 정하는 건데. 그치 개똥아?”

“난 술래 안 할 건데요.”

“나도 술래는 싫어.”

다들 싫다니 황이도 술래는 하기 싫어졌다.

그러던 황의 눈에 강 내관이 들어왔다.

“강 내관이 하게. 할 수 있지?”

지목을 받은 강 내관이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조아렸다.

“···예, 저하. 아, 한데 저하.”

“응?”

“술래는 어찌 하는 것이온지······.”

대답은 코를 후비던 개똥이가 대신했다.

“30초 세면 돼요.”

“3, 30초가 무엇인지······.”

“숫자 서른 까지 세면 된다구요.”

“아, 서른까지··· 예, 서른까지 세고 찾으면 되는 것이옵니까?”

“네, 눈 감고 있다가 서른까지 세고 찾으면 되는 거에요.”

“알겠사옵니다. 시작하겠사옵니다. 하나, 둘, 셋, 넷······.”

내관이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자 숨바꼭질이란 놀이를 처음 접하는 황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했고, 창녕과 개똥은 익숙하게 숨을 자리를 찾았다.

“어, 어디로 숨으면 되는 것이냐?”

그러다 숨을 곳이 눈에 띄지 않자 개똥에게 도움을 구했다.

개똥은 말없이 황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이끌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중궁전이었다.

“어마마마께서 쉬고 계실 텐데······.”

“숨는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럼 어디 숨지?”

개똥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하는 저기 숨으세요.”

개똥이 가리킨 곳은 작은 화단 뒤였다.

“너는?”

“저는 여기.”

그리고 개똥이 숨은 곳은 중궁전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 들켰다!”

저 멀리서 창녕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강 내관의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디 계시옵니까, 저하.”

황은 입을 흡 틀어막았다.

아, 이게 이런 재미구나.

입꼬리가 살며시가 올라갔다.

그때.

화단 위로 검은 그림자가 아른거리더니 머리가 불쑥 나타났다.

강 내관이었다.

“찾았사옵니다, 저하.”

“치, 조금만 늦게 찾지 그랬는가?”

“송구하옵니다, 못 찾은 척 할까요?”

“그럴 순 없지. 개똥이나 찾아보게. 아마······.”

황은 ‘못 찾을걸?’ 이라는 말로 말을 마무리 하려 했다.

지금과 같은 이변(?)이 없었다면 말이다.

“와!”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니 개똥이 숨어 있는 곳이다.

와! 소리 친 개똥이 후다닥 튀어나왔다.

“저하, 저하. 저 이거 주웠는데 가져도 되죠?”

호들갑 떠는 개똥이에 황은 피식거렸다.

거기서 뭘 주울 수 있을 리가 없······.

“인형이넹.”

창녕의 첨언과 함께 바라보니 그의 손에는 과연 인형이 들려 있었다.

흙이 좀 묻고 기괴하게 생겼지만 분명 볏짚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염매?’

어린 황이지만 그는 다른 아이들이 천자문을 뗄 적부터 소학을 읽었다.

또, 제왕학을 익히다 보면 여러 술법도 알게 되기 마련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염매에 관한 것이었다.

아주 사악한 마술(魔術)로서, 남을 저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책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의 기억이 맞다면 저 인형은 보통 인형이 아닐 터였다.

“강 내관. 어서 확인해보게.”

“예, 저하.”

강 내관이 허둥지둥 개똥의 인형을 뺏어들었다. 그리고 상세히 살펴보더니 이내 사색이 됐다.

사색이 된 강 내관에 다른 내관은 개똥이 인형을 발견한 곳으로 다가갔다.

“으악!”

그러고는 단말마 비명을 토해내곤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가 있길래 하는 호기심에 남녀궁인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황을 포함한 수십쌍의 눈들이 목격한 것은······.

죽은 지네와 눈을 부릅뜬 독사 대가리와 그 대가리를 흠뻑 적신 피와 헝겊이었다.

***

“그래서 말인데··· 다른 자리는 어떠하더냐?”

“다른 자리시라면······.”

“대사헌으로서 직무를 봤으니 뭐, 다른 곳 말이다. 사간원도 괜찮고 홍문관도 괜찮고, 그게 아니라면 의정부(議政府)도 괜찮다.”

“생각해보지 않아서··· 딱 1년만 출사를 마음 먹은 거라서요.”

“주변에 어진 신하가 없으니 어진 신하를 기용하려 함이 아니겠더냐? 네가 지금 물러 난다면 지금 당장은 속이 후련하겠으며, 또한 평안하겠지만 장차 나라의 일을 생각해보거라. 다시 간신적자와 난신적자들이 횡행할 것이 뻔하다.”

“그래도 저는 좀··· 내키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재고해 줄 순 없는 것이냐?”

“···예.”

진성은 단호했다.

유비가 제갈량이라는 군사(軍師)를 영입 하기 위해 했다는 삼고초려처럼, 거듭 세 번 씩이나 물어봤지만 여전히 내키지 않은 기색이었다.

‘종친이라도 모름지기 대장부라면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고 싶을 텐데······.’

그게 의아했다.

권력욕과 명예욕 없는 사람은 드물었다.

적어도 융이 알고 있는 사람이란 존재는 그러했다. 그런데 재상의 자리를 넘어 수상의 자리에 앉히겠다는 우회적인 청에도 단호히 거절한다.

아쉽지만 뭐, 어쩌겠나.

싫다는 상대에게 강요 할 수도 없는 일인 것을.

나중에 마음이 바뀌거든 얼마든 다시 불러 들일 수 있을 터였다.

“전하! 전하!”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차를 들던 그때였다.

동궁(세자)을 보필하던 강 내관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슨 일인가?”

“그게 망측하오나 중궁전에······.”

벌떡!

“중궁전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더냐?”

“망측하오나 여, 염매가··· 해, 행해진 듯 하옵니다.”

“염매라니 그 무슨······.”

융은 할 말을 잃었다.

염매라니 얼토당토 않은 말이었다.

“혹 《서경》 상서의 열명편에 나오는 그 염매(鹽梅)를 잘못 말한 것이냐?”

음식을 만들 때, 짠 맛과 신 맛을 조화시켜 알맞게 간을 맞춘다는 뜻으로, 어진 신하로 하여금 덕치를 보좌케 하는 뜻의 염매가 있었다.

혹 그 말을 잘못 전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럴 상황도 전혀 아니었다.

다짜고짜 찾아와 어진 신하를 기용해 임금의 덕치를 보좌케 하라는 말을 동궁내관인 강 내관이 할 리가 없잖은가.

“···”

과연 혹시나 열명편에 나오는 그 염매인가 하고 물었지만 강 내관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온화하던 융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어디냐.”

“안내하겠사옵니다.”

융은 진성에겐 잠시 집에 돌아가 있으라 말한 뒤, 강 내관을 뒤따랐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중궁전.

“여기였사옵니다.”

강 내관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절로 토악질이 일었다.

수십 마리의 죽은 지네와 독사 대가리가 보였다. 그 옆에는 염매에 흔히 쓰이는 인형도 보였는데 오른쪽 가슴과 음부 쪽에 말뚝이 박혀 있었다.

“저건 뭐라고 쓰인 것이냐?”

당혹함을 가까스로 잠재운 융이 인형을 가리키며 물었다.

말뚝과 함께 종이도 박혀 있었는데 다만 먹이 번져서 글이 잘 보이지 않았다.

“···”

“뭐라고 쓰여 있는 것이냔 말이다!”

“제, 제인원덕왕비(齊仁元德王妃) 신씨 라고 쓰여 있었사옵니다.”

제인원덕왕비는 작년 여름쯤, 융이 중전에게 준 존호였다.

신하들이 이는 선례에 없는 일이라며 말렸음에도 부득불 밀어붙여 받아낸 존호기도 했었다.

그만큼 중전을 아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중전에게 누군가 사술을 행했다.

중궁전에서 이 염매의 흔적이 발견 된 것만 해도 대상이 중전임은 알 수 있었지만, 심지어 인형은 제인원덕왕비라는 존호가 말뚝과 박혀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 대상이 중전임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참을 수 없었다.

융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가까스로 분기를 참고 있는 게 분명해보였다.

“중전은 알고 있느냐?”

“아직 모르시옵니다.”

심약해서 궐안 누군가 본인에게 염매를 행했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 까무러칠 터라 모르게 하고 싶었지만, 사특한 방법으로 중전을 해하려 한 년놈들을 찾으려면 모르게 할 수만도 없었다.

“영영 모르게 할 순 없겠다만 최대한 늦게 알게 해야 한다.”

“예, 전하.”

“그리고 이 사실은 속히 관상감에 전하고 방술에 능한 자에게 이 해괴한 사술이 뭘 위한 염매였는지 밝혀라. 또한 지난 보름간 강녕전, 중궁전, 동궁 등의 전각과 당에 입직(숙직)한 남녀궁인들의 명단은 모조리 가져오라. 또, 승정원에 사람을 시켜 패초를 보내도록 하라.”

“대사헌도 부르오리까?”

이제 막 돌려보낸 진성대군.

걱정스럽다는 듯 영문을 묻던 진성대군이 떠올랐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모두 부르는데 진성대군만 안 부르는 것도 이상했다.

“아직 광화문을 나서진 못 했을 테니 속히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부르라.”

“예.”

강 내관이 허둥지둥 자리를 뜨자 융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누가 됐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염매는 행해선 안 되는 일이다.

하물며 중전에게 행했으니 그 죄는 삼족에게 물을 생각이었다.

***

막 광화문을 나서던 나는 갑작스런 형님의 부름에 한달음에 편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인지 날 불러세운 강 내관이란 사람에게 물었는데······.

“여, 염매?”

나는 염매 때문이란 말에 깜짝 놀라 소리치고 말았다.

아, 내가 염매는 어떻게 아냐고?

경전 읽어보면 많이 나오는 게 염매다.

툭 하면 XX왕이 염매 때문에 빡쳐서 궁궐을 이 잡듯 뒤졌다.

또 툭 하면 XX왕이 염매 때문에 실성을 한 거였다.

그리고 다시 툭하면 XX왕은 염매를 행한 궁녀를 찢어 죽였다.

뭐, 이런 글귀들을 종종 볼 수가 있었거든.

염매.

그래, 흔히 말하는 저주술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저주술이든 뭐든.

나같이(?) 미신 따위 믿지 않는 현대인이 보기엔, 마치 애가 태어나면 금줄을 치거나 천연두에 걸렸을 때, 무속인을 불러 낫게 해달랍시고 작두를 타게 하는 것처럼 똑같은 민간 신앙 같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 기준에선 좀 다르다.

비록 16세기라지만 관상감이란 기관이 존재해서 별도 관측하고, 기상(氣象)에도 대비하는 사람들이 저주술 좀 행했다고 호들갑 떠는 게 이상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여기선 그렇다.

염매 자체는 중죄로 취급된다.

오죽하면 나라에서 대사면령을 내려면서 강도와 장오(뇌물죄)죄를 저지른 관리는 용서해줘도, 역적질한 사람과 강상죄를 저지른 사람과 이 염매를 행한 사람들은 절대 용서 안 해준다.

물론, 일반인이 일반인에게 행했을 때 기준이다.

근데 그 대상이 중궁전··· 그러니까, 일국의 왕비이자 나한테는 형수님인 중전마마시다?

이건 사실 역모죄나 다름이 없다.

여기 사람들은 케바케긴 해도 염매 같은 방술로 정말 사람을 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근데 어떤 간 큰 놈이 그런 미친 짓을.’

간이 어지간히 크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어떤 미친 놈이 칼빼들고 형수님께 달려든 것과 같은 거다.

아니, 칼만 빼든 게 아니다. 실제로 칼까지 휘두른 죄에 가깝다.

염매란 죄가 그만큼이나 중죄다.

그래서 어떤 간 큰 놈이 그런 미친 짓을 했을까 고민해봤다.

선뜻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누차 말하지만 형수님은 인자하시기로는 정평이 자자하다.

한낱 무수리에게까지 존댓말 한다는 게 절대 과장이 아니다.

아마 사람 취급 안 받는 백정이나 여진족 포로한테도 존댓말을 하실 분이다.

당연히 염매를 행해야 할 만큼 형수님께 원한이 있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다면 수백이 넘는 남녀궁인들이 범인은 아닐 것이다.

남녀궁인들 사이에선 중전마마를 모시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수백의 용의자는 제치고, 다음으로 숙위를 하는 금군들.

이 사람들도 딱히 중전마마께 원한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밤 근무 하는 사람들에게 야참까지 내어주고, 좀 추워 보인다 싶으면 중궁전에 있는 솜이불까지 덮어 쓰게 하는, 이 시대의 붓다가 중전마마시거든.

그런 의미에서 금군들도 용의선상에선 제외.

‘관리들?’

궐밖 출입이 잦은 관리들과 궐내각사(궐에 있는 관아) 관리들이 떠올랐지만 이들 역시 용의선상에선 제외됐다.

왜냐고?

당장 우리집 구조를 생각해봐라.

나조차도 안채에 건너갈 땐, 미리 기별을 넣거나 허락을 받고 건너간다.

하물며 여긴 왕과 왕비가 사는 경복궁.

그런 예법이 철두철미하게 지켜진다.

남녀궁인들이라면 몰라도 중궁전에 용무가 전혀 없을 관리들이 중궁전에 가거나 괜히 그 근처에 어슬렁거렸다가는 의심사기 딱 좋다.

‘그럼 누구지.’

고민하던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대감.”

사색에 잠겨 걷다보니 인기척도 느끼지 못 했다.

누가 인사를 하나 싶어 고개를 들었다.

“아, 숙용부인.”

장녹수라는 형님의 후궁이었다.

“궐이 소란스러운 듯 한데 혹 무슨 일이라도 났습니까?”

“아, 그게······.”

중궁전에서 염매의 흔적이 발견됐단 말을 꺼내려던 나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왜일까.

왜 형사의··· 아니, 요새는 뜸하던 대사헌의 직감이 꿈틀거리는 걸까.

뭘까, 뭔가 이상하다.

주위를 둘러봤다. 바로 뒤에 영제교가 보이고 앞에는 근정문이 보인다.

반면 숙용부인의 처소인 집경당은 근정전을 지나 사정전을 지나 강녕전을 지나, 또 중궁전을 지나 한참을 더 걸어야 되는 곳에 위치해있다.

단순히 산책 삼아 나왔을 수도 있지만 왜 여기까지?

“한데 숙용부인은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아, 길을 잃어서······.”

내 물음에 당혹해하던 숙용 부인이 길을 잃었다는 답변을 해온다.

경복궁이 겁나 크다지만 제 집인데 어떻게 길을 잃겠나?

이거 뭔가 더 의심스러워진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