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146화 (146/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46화>

    ***

    “···그러니까, 이 교역이란 것은······.”

    한참 설명을 이어 나가던 와중에 석평이가 소심하게 손을 든다.

    흐름이 자주 끊겨 불만이라면 불만이었지만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학생을 막을 수도 없고······.

    “그래, 석평이.”

    “그럼 왜 안남과 교역을 해야 하옵니까?”

    “지금 설명하잖아.”

    “예······.”

    “자, 왜 안남과 교역을 해야 하는가. 왜 해야 하는 거냐면······.”

    젠장.

    까먹었다.

    뭘 설명하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뭐였지?

    아! 기억났다.

    “자, 경덕아.”

    “에? 예! 스승님.”

    “조선의 특산물이 뭔 것 같냐?”

    잠시 고민하던 경덕이가 조심스레 답을 내놓았다.

    “선···비?”

    뭐, 사람이 특산물(?)이라면 특산물일 수도 있지.

    “명은?”

    “문방구가 있겠사옵고 또한 대국의 서책과 비단이 있겠사오며······.”

    앞전과는 달리 경덕이의 입에서 막힘없이 중국의 특산물이 술술 흘러나온다.

    “그래. 네 말대로 벌써 몇 가지냐? 당장 네가 답한 것만 아홉가지잖아?”

    “그렇사옵니다.”

    “근데 조선의 특산물이 뭐냐고 물었을 땐 답을 못 했고.”

    “예.”

    “우리나란 크게 특산물이라 부를 게 없지?”

    “그런 듯 하옵니다.”

    “근데 보자.”

    나는 방안을 쓱 둘러봤다. 가장 먼저 도자기가 눈에 들어왔고, 병풍이 눈에 들어왔다.

    “형님, 잠시 실례좀 하겠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긴 내 집이 아니라 경복궁 강녕전이다.

    한마디로 형님의 침소란 말씀.

    이 도자기랑 병풍도 형님꺼다.

    형님께 이해를 구한 나는 도자기를 슬쩍 들어올렸다.

    “이 도자기. 이 도자기는 특산물일까 아닐까?”

    “널리고 널린 게 도자기인데 어찌 특산물이 되겠사옵니까? 스승님도, 참······.”

    “그럼 여기서 또 질문. 안남에는 이런 게 있을까?”

    “···이 제자가 듣기로 안남에는 문명이 없다 들었는데 문명이 없는 나라에 어찌 도자기가 있겠사옵니까?”

    이건 경덕이의 답변.

    “안남은 대국과 가깝고 또한 우리처럼 입조(入朝)하여 하례를 드리곤 하니 있지 않겠더냐?”

    이건 형님의 답변이다.

    한 사람은 없다하고, 또 한 사람은 있다고 한다.

    솔직히 정답은 나도 모른다.

    우리 나라 역사도 잘 몰랐는데 동남아 역사를 어떻게 알겠나?

    하물며 격동의 16세기에 베트남에 도자기가 있는지 없는진 어떻게 알아?

    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깔끔하게 없다고 가정을 해보자구요.”

    “···”

    “경덕이 말대로 이 도자기는 우리 조선에선 흔한 겁니다. 막말로 길가다 발에 채이는 게 도자기니까. 맞죠?”

    “맞구나.”

    “근데 안남에는 이게 없어요. 조금이나마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습니다. 그럼 이 도자기는 특산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그들이 도자기에 관심을 갖는다면 특산물이 될 테고,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안 될 듯 합니다.”

    석평이다.

    정답을 외치는 석평이에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정답! 다만 사람은 누구나 본인이 안 가진 거에는 관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특히 이렇게 아름다운 도자기에는요. 안남 사람이라고 다를까요? 천만에. 분명 특산물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여기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 안남과 교역을 해야 하는가. 도자기가 없는 안남에서 이 도자기를 필요로 하듯이, 안남의 특산물··· 어, 예컨대 쌀이라고 칩시다.”

    베트남하면 당장 떠오르는 게 안남미 밖에 없다······.

    “이 쌀이 우리나란 아주 부족하지요?”

    물론 부족하진 않다.

    내가 조선에서 좀 살아보니 알겠더라.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과 조선이나 별 반 다를 바 없다.

    상위 계층 1%가 부를 독점하고 대한민국처럼, 이 조선도 상위 계층 1%가 부을 독점하고 있거든.

    생산량 자체는 적지 않지만 모든 백성들에게 돌아가진 않는단 말이다.

    “근데 안남엔 아주 많이 납니다. 아주, 아주 많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우리에겐 발에 채이는 게 도자기고, 그 사람들에겐 발에 채이는 게 쌀인 거죠. 그리고 이 안남인들은 도자기를 필요로하고, 우린 쌀을 필요로 합니다. 서로 부족한 걸 교환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상부··· 상조?”

    음.

    어떻게 보면 상부상조가 맞을 수도 있겠다.

    “자. 거기에 더해서 이제 일본도 쌀이 부족하네? 우리보다 더. 훨씬 더. 근데 그 나라는 안남하고 교역도 안 하고 있고. 반면 안남하고 교역을 한 우리나란 쌀이 좀 풍족해졌습니다. 그러면······.”

    “안남에서 가져온 쌀을, 그러니까 좀 남은 쌀을 일본에 가져다 판다?”

    “그겁니다. 차익이 얼마나 남을지는 각자 주판알 튕겨보시면 금방 알 테구요. 여기서 중요한 건 교역국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겁니다.”

    나는, 주판알 튕겨보라는 농에 정말 주판알을 튕겨보고 있는지, 천장을 바라보고 중얼거리고 있는 형님을 불렀다.

    “형님?”

    “응, 그래. 이해했다.”

    되도록 이해하기 쉽게 풀이했는데 다행이다.

    표정을 보면 정말 이해하신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끝은 아니다. 이건 기초 경제학(?)의 이해를 돕기 위한 첫 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한데 스승님.”

    “경덕이 왜?”

    “지금 말씀하시는 건 모두 이해했사옵니다. 하지만 그리되면 국가가 부국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백성이 부국해지는 건 아니지 않겠사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 중국도 세계 경제 대국중 하나였지만, 경제 대국이란 말과 달리 헐벗은 사람들이 많았었다.

    소위 말하는 빈부 격차 때문에 말이다.

    “음. 그렇지. 근데 여기서 낙수 효과란 말이 등장하는데······.”

    “낙수 효과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흔히 콩고물 떨어진다고 하지?”

    “예.”

    “콩고물 떨어진단 말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어떻게 말이옵니까?”

    말문이 막혔다.

    간단하게 국가 경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고용 시장에서 부양 할 수 있는 인력도 많아진다고 설명을 하면 되는데, 그렇게 되면 또 말문이 막히는 질문을 받을 것 같았다.

    좀 더 쉽게 설명해야 한다.

    “자. 우리가 안남하고 교역을 한다고 해도 나라에서 매번 관리 할 순 없겠지?”

    “안 되옵니까?”

    “국가적으로만 보내는 게 아니라 규제를 좀 풀어서 민간인도 보내야지.”

    “민간인이요?”

    “일반 상인들. 그들을 보내면 소위 말하는 큰 손들이 생기겠지? 거상들.”

    “그럴 것 같사옵니다.”

    “근데 그 거상들이 혼자서 상단을 모두 관리하겠어? 아니지?”

    “예.”

    “못 해도 수십명에서 수백명은 잡부로라도 쓸 거 아니야. 짐꾼이라던가.”

    “그렇겠지요.”

    “근데 그 사람들이 부역에 동원되는 거야? 당연히 삯 받고 일 도와주겠지?”

    “예.”

    “근데 안남이면 이역만리야. 경덕이 너라면 한 해에 2석 줄테니까 짐꾼으로 고용돼서 안남가라면 갈래?”

    “저라면 아니 가지요.”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물론 갈 사람도 있겠지. 군입 하나라도 덜려고 부모가 보낼 수도 있고··· 근데 모두가 그러진 않는단 말이야. 결국 큰 손이 된 그 거상은 삭 값을 올릴 수 밖에 없어. 2석에는 아무도 안 가니까. 한 10석? 그래, 10석. 그럼 당연히 사람이 몰리겠지?”

    “예.”

    “그럼 이 사람들이 10석 받고 뭘 할까?”

    “전답을 마련하지 않겠사옵니까?”

    “전답을 마련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비를 하는 사람도 생기겠지? 뭐, 평소에는 보리밥만 먹던 사람인데 큰 맘 먹고 쌀을 소비한다던가?”

    “예.”

    “내가 아까 소비는 뭐라고 했냐?”

    “또 다른 부를 가져온다고 하셨었사옵니다.”

    “그래. 이렇게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 계속 늘어. 나라에선 당연히 세금을 받겠지? 그럼 세수가 늘겠어, 줄겠어?”

    “늘겠지요?”

    “나라가 부국해지고 백성들도 조금은 먹고 살 만 해지겠지?”

    “예.”

    “자, 여기까진 다 이해했지 그럼?”

    나는 세 명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정말로 이해한 건지 안 한 건지 의심이 들어 재차 물었는데도 모두 이해를 했다고 답한다.

    “후.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까지 설명하는데 장장 두시진을 할애했다.

    진이 다 빠져서 더는 못 한다.

    강사들이 왜 학생들에게 강의할 수업 내용을 연구하는지 이제 좀 알겠다.

    준비 하나 없이 몸으로 부딪혔더니 이게 영 쉬운 일이 아니다.

    집에 가서 휴식도 좀 취하고, 다음 수업 준비도 좀 해야 할 것 같다.

    ‘대군으로 꿀 빨줄 알았는데 꿀은커녕 고생만 오지게 하네.’

    ***

    해적이라 생각하고 겁을 잔뜩 먹었던 일단의 무리들.

    그들은 해적이 아니라 관군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해적이었다면 어찌 됐을지 장담 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들은 유구국 관군과는 달리 적의도 없어보였다.

    몇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망망대해를 떠돌았다. 해적에게 쫓긴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몇 달간을 간 졸이며 살 수 밖에 없었다.

    한데 적의가 없다는 것만 해도 어린 여형으로서는 감사한 일이었다.

    다만 문제가 아주 해결 된 건 아니었다.

    “···먹어도 될까요?”

    꿀꺽.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가는 음식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가끔 물과 음식을 얻기 위해 기착을 하긴 했지만, 혹시 해적이 급습을 해올까 금방 떠나야 했었다.

    당연히 음식 다운 음식도 한정된 물자 때문에 많이 접할 수는 없었다.

    이따금, 아주 이따금 가뭄에 콩나듯 음식다운 음식을 입에 넣을 수 있을 뿐이었다.

    한데 오해가 풀리자마자 이곳 태수로 보이는 자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준비해왔다.

    이국의 음식이지만 형형색색의 음식 다운 음식들에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이런 극진한 대접은 본국을 떠난 이래로 받아보지 못 했기에, 여형은 혹시 하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독이라도 탔으면 어쩐단 말인가?

    오히려 그게 더 이치에 맞을지도 몰랐다.

    어느 누가 이방인을 이리 후하게 대접해준단 말인가?

    “태수와 필담을 나눠본 결과, 그리 악한 자로 보이진 않았사옵니다.”

    “황제 폐하도 악하게 생기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호남형이죠.”

    의심을 거두긴 이르다는 말에 범구화는 다소 어색하게 웃었다.

    여형은 어린 나이에 고초를 너무 많이 겪었다.

    이게 황자의 삶이라지만, 안쓰러울 뿐이다.

    “해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아까 난파된 배에서 해하지 않았겠사옵니까? 도주로도 차단 됐었으니까요.”

    “그렇긴 한데······.”

    망설이는 여형에 구화는 먼저 수저를 들었다.

    본국에서였다면 대단한 무례였겠지만 독이라도 들었을지 의심하고 있는 황자를 안심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이름도 모르는 음식을 입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아무 일도 없지 않사옵니까? 저들은 생면부지인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사옵니다.”

    여형은 고개를 돌려 이 나라의 관군들을 살폈다.

    과연 적개심 보다는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이곳을 흘기고 있었다.

    “그럼······.”

    젓가락을 든 여형은 조심스레 음식들을 입안에 넣었다.

    아! 하는 감탄이 절로 터져나왔다.

    이 얼마만에 맛 보는 음식다운 음식이란 말인가.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자신들을 안심시킨 뒤에 쓱삭- 하려는 계략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의심을 거두진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들은 호의만 베풀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 갔다.

    평온한 일상들이었다.

    해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폭풍을 만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일상들.

    왜 생면부지인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범구화의 말로는 그게 이곳 사람들의 풍습이란다.

    그게 진실이라면 아름답고 인간적인 풍습이 아닌가?

    여형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나라가 마음에 들었다.

    저녁 노을이 지는 무렵, 난파된 배가 있는 해안에 올라 석양을 바라보는 것도.

    한가하게 포구에 앉아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나아가는 어선들을 눈에 담는 것도.

    이곳의 원로들과 필담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서로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바다로 나가는 해녀들도.

    이방인인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태수와 관리들도.

    성급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명 보다는 이곳에 정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 태수는 과거에도 안남 왕자가 조선에 정착한 사례가 있다는 말까지 해줬었다.

    처음이 아니라 세 번째인 게 자존심 상하지만, 뭐 어떤가.

    그렇게 여형이 조선에 정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즈음.

    여형 무리를 한양으로 호송하라는 어명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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