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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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건 뭐 도때기 시장에서 호객 행위 시키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발언권이라니······.
근데 형님과 내가 또 얼마나 우애가 깊나?
아무래도 내가 없는 사이에 장안에서 무슨 사건이 터진 것 같은데 일단 발언권이 주어졌으니 말하는 게 인지상정인 것 같다.
그나저나 만백성이 앎을 공부한다라······.
“예?”
나는 일단 반문하며 시간을 끌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질문에 맥락이 없잖은가?
만백성이 앎을 공부하는 세상이란 주제가 주어진 것도 아니고 만백성이 앎을 공부하는 것이라니··· 이거, 어떻게 운을 떼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형님이 힌트를 주셨다.
“예전에 대사헌이 내게 이른 말이 있지 않은가? 서역에는 만백성이 앎을 공부하는 나라가 있다 말이다.”
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육 실상(?)을 설명드리면서 대한민국을 서역이라 뭉뚱그렸었다.
지금 보니 그때 한 말씀을 편전에서 해보라는 것 같다.
그렇다면 또 거리낄 게 없지.
“아. 서역에 있는 대한민국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대한민국.”
대한민국이란 국명이 형님의 입에서 나오자 대소신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들이 마치 ‘그런 듣보잡 나라가 있었나?’ 머리 굴리는 모습들 같았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그렇다.
본인이 모르는 부분에서는 가만 입 다물고 있게 되거든.
괜히 ‘그런 나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했다가 증명이 된다면 본인의 무지와 무식만 증명하는 꼴이 되잖은가.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
이 말은 편전에 계신 위정자들이라면 더더욱 지켜야 할 덕목 같은 거다.
다들 난다긴다 하시는 분들이니 당연히 듣보잡 나라라는 인지는 했을지언정, 감히 대꾸하지 않고 있는 건 그 때문이기도 했다.
“아, 예··· 그 서역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만백성이 일정 수준에 이르기까지 국가에서 교육을 시킵니다.”
“양천(良賤) 없이 말입니까?”
대사성 김전이 다소 놀란 듯 토끼눈을 하고선 말했다.
양천이 없다는 건, 신분에 구애 받지 않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근데 21세기 대한민국.
다들 살아봐서 알잖아?
원칙적으로 계급 같은 건 없다.
사회적인 지위.
경제적인 우열.
뭐, 이런 것들로 우위를 가르고 편을 가르곤 하지만··· 사실 그게 신분은 아니잖나?
돈이 많다고 투표를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돈이 없다고 투표를 못 하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돈이 많다고, 없다고 의무교육을 못 받는 건 더더욱 아니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유전무죄란 게 있긴 하다만··· 그런 부정적인 것 까지 이 사람들한테 설명할 필요는 전연 없다.
그래서 내 답은.
“예, 양천 없이 모두요.”
편전이 들썩였다.
다들 웅성거리는 꼴들이 가관도 이런 가관도 없다.
그만큼 놀라운 일인가?
나 스스로 질문에 해보니 확실히 놀라운 일인 것 같긴 하다.
나는 여기서 2년 남짓 살면서 노비가 공부한다는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 했다.
하물며 이 사람들은 수십년 살면서 간혹 한 두 번 듣거나 봤을 테니, 모든 사람이 공부하는 세상이란 게 얼마나 충격적일까?
“그런 나라가 있단 말씀이십니까?”
“네, 있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양천없이 모두가 학문을 갈고 닦을 수 있습니다. 나라에서 특정 나이가 되면 의무적으로 입학을 시키거든요.”
“입학이라 하시면······.”
“학교에 들어간단 말입니다. 8살부터요.”
“그, 그래서 몇 살까지 가르친답니까?”
다들 알다시피 의무교육은 중학교 때 까지다.
근데 이 사람들 반응을 보면 살짝 과장을 해도 될 것 같다.
“19살까지요.”
“약관(20살)에 가깝도록 나라에서 선비를 배양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번에는 김전처럼 다소 놀란 듯 토끼눈을 하고선 묻는 김굉필이다.
“선비만 키우는 게 아니라 상인도 배양하고 철공도 배양하고, 뭐 여러 직군의 사람들을 키웁니다.”
“지방의 서당 훈장도 삯을 받습니다. 심지어 요새는 중구난방이라 격물의 이치를 깨닫지 못 한 건 물론, 소학을 갓 뗀 위인도 선비랍시고 서당을 열곤 하지요. 대감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어찌 나라가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세금을 수령들이 착복하거나 혹은 내야 될 사람들이 안 내질 않습니다.”
물론 절세라는 이름으로 탈세가 빈번하고, 고액 세금 미납자가 넘쳐나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여기보단 덜할 거다.
“그렇게 모은 세금으로 만백성에게 교육을 베푼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국고에 들어오는 돈이 모두 교육에 쓰이겠군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부분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 대학 때 우리나라의 교육 불평등에 관한 강의를 들으면서 교육부에 할당된 예산을 들은 기억이 난다.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17년도에 70조 정도였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1년 예산이 500조가 조금 못 되는 470조쯤이었으니 전체 예산에서 8%정도가 교육 관련한 예산으로 집행이 되는 것이었다.
적은 건 아니지만, 김굉필의 질문은 국고의 돈이 모두 교육에 쓰인다는 거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통계적으로 1할 정도만 쓰이는 셈이니까요.”
“1할이요? 그 나라는 무슨 대국이라도 된답니까? 아니, 설령 대국도 그리는 못 할 터인데······.”
나는 이들이 좀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방안을 떠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21세기의 경제 문제는 복합적이고, 나라와 나라 간에 얽히고 설킨 게 많아서 딱 잘라서 이거다 말하긴 어렵다.
다만.
“그 나라는 무역을 많이 합니다. 학자도 우대하지만 상인도 우대하거든요. 그 상인들은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중간에 지방관들은 착복하지 않고, 그 세금이 고스란히 중앙의 조정에 전달되는 겁니다. 그리되면 조정에서는 각각 필요한 분야에 예산을 할당하는 거죠. 근데 우리 나란 어떻습니까?”
“무얼 말씀하시는지······.”
“상인을 배척하고 학자들만 숭배하지 않습니까. 사실상 국고에 돈을 가져다 주는 건 상인들인데요.”
아, 오해는 말라.
학자 비하발언 아니니까.
“그 나라처럼 될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상인들을 배척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새시는 듯 합니다.”
김전이었다.
“크흠. 뭐, 말 좀 하다 보면 좀 새고 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사실이잖습니까?”
“사실이라니요?”
“백날 위정자들이 노력한다고 해서 우리 조선이 공자께서 말씀하신 지상낙원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공자는 큰 도가 행해진 상태에서 사람들이 어진 이를 선출하고, 관직을 맡기며 사회적 약자가 배려받고 절도나 폭력 같은 범죄가 없는 세상을 꿈꿨다.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세상이 만들어 질 수 있다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왜 변질됐겠나?
아니, 생각해보니 19세기 사상까지 갈 필요도 없다.
지금 조선도 그래.
공자나 노자나 묵자나 맹자나··· 그들이 말하는 근본은 결국 같았다. 근데 그걸 이행하는 사람들이 해석을 잘못하거나 제 꼴리는 대로 해석을 해서 문제였지.
그런 의미에서 말이다.
“솔직히 위정자들이나 선비들이 틈만 나면 군자의 나라니··· 뭐, 중화니 말들 해대는데 군자의 나라고 나발이고 간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없어야 군자의 나라지, 굶어 죽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게 무슨 군자의 나랍니까? 샌님들 모아 놓은 나라지.”
“···”
“아까 제가 말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만백성에게 앎을 가르치는지 여쭈셨지요? 그 나라는 군자의 나라가 되려고 하질 않습니다. 만백성에게 교육을 베푸는 나라가 군자의 나라가 되려고 하질 않는다니 좀 모순 같은데. 진짭니다. 사람마다 천성이 있습니다. 각기 다른 성격을 타고 태어나는 거죠. 당연히 재능도 다릅니다. 대사성이 명필가시지만 말을 잘 타진 못 하시겠지요?”
김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반면 말을 잘 타는 사람은 명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기 가진 재능이 다르고,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다른데 군자의 나라? 그런 이상적인 나라가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반면에, 그 나라는 모두에게 교육을 베풀지만 모두에게 군자가 되라고 강요하진 않습니다. 학문에 뜻이 있으면 학문을 공부하도록 두고, 상업에 뜻이 있으면 상업을, 공업에 뜻이 있으면 공업. 이렇게 세분화 시켜서 백성 개개인이 가진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가 아님을 모두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조선은 백날 공부만 해대죠. 상인들이 지나가면 수군거리기 일수고, 그들이 뭐 좀 해댈라고 하면 배척하기 일쑵니다.”
“요지가 무엇인지요.”
김전이 요지를 물었다.
요지.
“간단합니다. 만백성이 교육을 받는 나라건 못 받는 나라건. 결국 나라 곳간에는 돈이 많아야 합니다. 돈이 없다면 백성을 지킬 수도 없고, 백성을 가르칠 수도 없고, 먹일 수도 없거든요.”
음··· 의무교육을 설명하다가 이야기가 이상하게 삼천포로 새버린 것 같긴 한데.
사실 이게 맞잖아?
의무교육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
***
경덕은 코를 후비적거리며 조보를 읽고 있었다.
자신이 올린 상소문 때문에 그 여파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래서 같은 동기생들은 물론 사학의 샌님들도 자신을 성균관에서 출재시켜야 한다 말이 많았지만, 딱히 신경은 안 썼다.
샌님들 말에 일일이 귀 기울일 시간에 학문을 갈고 닦는 것이 이로웠기 때문이었다.
다만 지금 조보를 읽고 있는 건 간단하다.
평소에는 조보를 읽는 게 쉽지 않다. 필사본도 많이 없을뿐더러 간혹 들어가는 필사본도 명문가나 세도가의 집에나 들어가지, 이렇게 서울에 연고가 없는 서생 나부랭이 따위에게 까지 조보가 들어오진 못 한다.
이번엔 그저 운이 좋았다.
“다 읽었으면 나도 좀 읽세. 내가 가져온 거지, 자네가 가져온 거던가?”
다른 사람들 모두 경덕을 배척하고 쉬쉬하곤 했다.
다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는데, 송애(松厓) 이 친구가 그러했다.
이름은 반석평(潘碩枰).
유일하게 자신을 허물없이 대하는 건 물론, 성균관에선 유일하게 생각이 맞는 친구기도 했다.
이 조보도 사실 이 친구 덕에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다 읽고 준다니까. 자네는 그게 문젤세. 매사에 성급해.”
“아니, 그야 당연히 내가 가져왔으니··· 아니. 말을 마세. 얼른 읽기나 하게나.”
석평을 일별한 경덕은 조보를 다시 읽어나갔다.
그러다 그는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깜짝아! 왜 그러나?”
“아··· 아닐세. 갑자기 방귀가 나오려고 해서.”
“방귀가 나오는데 무슨 사람이 벌떡 일어나?”
“책이나 읽게.”
대충 얼버무린 경덕은 입을 벌렸다.
‘만백성이 앎을 공부하는 세상?’
그런 나라가 과연 있을까?
있다 한들 이상적일 수 있을까?
또 이상적이다 한들 나라가 제대로 운영이 될까?
스스로 자문을 해봤지만 답이 나오진 않았다.
답은 조보에 있을 터였다.
계속해서 조보를 읽던 경덕은 어느 대목에 이르러서 눈살을 찌푸렸다.
‘상인을 배양한다?’
조보를 다시 살피니 대사헌의 발언이시다.
선비를 배양하고 상인을 배척하진 못할망정 상인을 배양해야 한다니··· 대사헌 그 양반 좋게 봤더니 헛똑똑이라는 생각을 하던 그때였다.
***
-간단합니다. 만백성이 교육을 받는 나라건 못 받는 나라건. 결국 나라 곳간에는 돈이 많아야 합니다. 돈이 없다면 백성을 지킬 수도 없고, 백성을 가르칠 수도 없고, 먹일 수도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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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발언이었다.
생각해보면 이게 당연했다.
하다못해 선비를 배양하기 위해서도 돈이 있어야 했다. 선비들은 돈을 터부시했지만, 땅만 백날 파고 있으면 성현의 말씀이 뚝딱 떨어진다던가?
집에 땅이라도 얼마간 있고, 여유가 있어야 학문에 뜻도 둘 수 있는 법이었다.
“아직 멀었나?”
“잠깐. 잠깐만 기다려보게.”
“아니, 이 친구야. 왜 처음부터 다시 읽나?”
“기다려 보게.”
석평을 일별한 경덕은 대충 읽던 조보를 세세히 읽어나갔다.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깨달은 기분이었다. 아니, 깨달았다기 보단··· 뭐랄까.
호기심?
호승심?
뭐, 죽었던 열정이 불타오른달까?
그는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조보만 들여다봤다.
이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
뭔가 딱딱한 성균관 샌님들하고는 다르게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 어떤 느낌이 든다.
결국 경덕은 조보를 내던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담 어, 어디가나?”
“자네도 같이좀 가지.”
“아니, 어디 가는지는 알고 가야······.”
“대사헌 댁.”
“대, 대사헌 댁? 거길 갑자기 왜?”
“내 그 사람 그릇을 좀 봐야겠네. 얼른 일어나게. 축 쳐진 돼지처럼 늘어져 있지만 말고!”
“아니, 멀쩡한 사람을 왜 갑자기 돼지에 비유를 하나······.”
“멀쩡한 사람이면 얼른 일어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