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133화 (133/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33화>

    ***

    비누 공장의 일이 대강 마무리 되었다.

    영업 뛴 보람이 있었다.

    이제 내가 신경 쓸 일은 별로 없었다.

    생산 라인도 가동됐고··· 판매망이 문제라면 문제인데 사실 이것도 기생들의 입소문 덕분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보인다.

    바로 사흘 전에 800명이던 사전 예약(?) 손님이 벌써 2000명에 육박했거든.

    이 소식을 덕복이에게 듣고 나는 얼척이 없었다.

    손님들이 비누 판매를 문의할 때 나는 덕복이에게 꼭 가격도 안내를 해드리라 신신당부를 했다.

    내가 책정한 비누의 가격은 백미 20석이라 어지간한 재력으로는 예약 조차도 안 되니까.

    이게 얼마나 많은 돈인지 감이 안 오지?

    일반적인 소작농들이 일반적인 지주의 땅을 경작해서 일반적인 소출이 발생할 때 가져가는 게 보통 2~3석이다.

    음, 편의상 3석이라 치자.

    그리고 이 3석을 잡곡으로 환산하면 쌀값의 시세에 따르지만 평균적으로 8~10곡의 잡곡으로 환산 할 수가 있다.

    잡곡 8~10곡이면 4~5인의 평범한 서민 가정에서 1년을 소비할 양이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비누의 가격은 어지간한 직장인들 6~7년치 연봉이란 셈이다.

    내가 이 가격을 책정했을 때, 덕복이나 다른 사람들이 참 반대를 많이했더랬다.

    그렇게 비싸게 팔면 누가 사겠냐면서.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비누는 영구적··· 하다못해 반영구적인 제품도 아니었다.

    순전히 소모품이었다.

    물론 여긴 목욕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조선이라, 대략 주먹 하나 크기 정도 되는 비누를 소모하는데 1년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겠다만, 어쨌건 소모품이란 소리였다.

    그러니 만큼 백미 20석에 팔면 팔리긴 커녕 욕만 쳐먹을 거란 반대가 있었다.

    근데 내가 이 비누를 돈 벌려고 파는 게 아니잖은가.

    사치를 키우려고 파는 거지.

    게다가 원래 사람의 소비 심리란 희한하다.

    가격이 저렴하면 싼게 비지떡이라 욕하고, 가격이 비싸지도, 그렇다고 싸지도 않은 애매한 수준이면 이것저것 재면서 고민해버린다.

    하지만 얼토당토 않게 비싸다면?

    상위 1%의 경쟁 심리와 자존심을 자극한다.

    개소리라고?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다.

    방학 때 지인의 추천을 받아서 모 백화점 VIP 주차장에서 발렛으로 알바를 뛴 적이 있었다.

    그때 VIP 주차장을 이용하는 손님들의 대화와 행동을 살펴보면 그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필요한 소비를 위해 온 게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등급을 위한 소비, 그러니까 해당 백화점의 VIP 등급을 유지하기 위한 소비를 했다.

    비누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의외인 모습은 어쩔 수 없었다.

    돈이 저축은 되는데 쓸 곳은 제한적이라, 어쩌다 한 번 쓸 데가 생기면 팍팍 쓰는 건가?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 사전 예약이 2천명에 육박했다는 건 비누 판매가 청신호란 소리니 기분 나빠 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비누 판매가 청신호를 맞으면서 신경 쓸 일이 하나 줄게 되면서 숨통도 트였다.

    알다시피 대사헌 직은 꿀빠는 보직(?)이다.

    내가 비누에 대해 신경만 안 쓰면 뭐, 남아 도는 게 시간이랄까.

    모처럼 시간이 남아돌자 나는 개똥이를 사헌부로 불렀다.

    물론.

    내가 상관이라서 막무가내로 부른 건 절대 아니다.

    부하 직원들에게 허락은 맡았다.

    나 아는 사람 중에 개똥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좀 불러도 되겠냐 라고 말이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허락을 해준 덕에 부른 거지, 아마 한 사람도 그건 좀··· 이라고 했다면 관청에 개똥이를 부르진 않았을 것이었다.

    “개똥이 너 오랜만이다?”

    집무실에 앉아있던 나는 배녹사 김희저에게 개똥이가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밖으로 나오자 반갑다는 차원에서 인사를 건네자 개똥이 헤헤 웃는다.

    “이레(일주일) 전에 봤는데용.”

    “일주일 전에 봤어도 인마.”

    원래 만날 보던 사이에서 일 때문에 어쩌다 한 번씩만 보게 무지 반가운 법.

    “너 그새 머리 하나는 더 큰 것 같다?”

    “밥 많이 먹고 있거든요. 아, 밥은요. 사실 엄마가 밥은 꼭 이밥(쌀밥)으로 먹어야 된다고 해서 이밥 먹었는데 아부지는 왜 맨날 이밥 내오냐고 하거든요. 내가 그래서 나는 이밥이 좋아서······”

    여전하군.

    “그래서 이밥 많이 먹고 있는 거구나.”

    “넹.”

    “그래. 밥은 많이 먹을 수 있으면 많이 먹어야지. 그나저나 개똥이 너, 내가 일주일 전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숙제를 내줬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요즘 내가 사헌부의 일로 바쁘다 보니 이전처럼 1:1 수업이 잘 안 돼 숙제로 대체하는 일이 많다.

    일주일 전에도 그런 차원에서 숙제를 내줬었다.

    뭐, 개똥이가 하기 힘들 정도의 숙제는 아니고··· 내가 소홀한 틈에 겨우 외운 글자를 까먹을 수도 있겠다 싶어 천자문 백자를 필사하는 숙제를 내줬었다.

    사실 놀고 먹는(?) 개똥이 입장에서 천자문 백자 정돈 하루면 끝낼 아주 간단한 숙제였다.

    간단한 숙제인데······.

    “우와.”

    이 녀석 또 동문서답 하는 걸 보니 안 해 왔나 보다.

    사헌부 청사를 둘러보면서 우와거리기만 하지, 정작 숙제를 해왔다, 안 해 왔다 답은 안 한다.

    “이거요. 이거는 우리집 마루랑 다른데요?”

    “재질이 다르니까, 다르겠지 이 녀석아. 그래서 숙제는 했어, 안 했어?”

    후다닥 달려온 녀석이 내 관복을 살핀다.

    “앗. 이거 엄청 멋있다. 관복이예요?”

    끄덕.

    “왜 다른 사람들하고 달라요?”

    아, 내 관복은 개똥이가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

    한가운데 해태가 수놓아져 있거든.

    일반적으로 문관의 관복에 공작이나 학, 백한(꿩과에 속한 새) 같은 고고한(?) 조류들이 수놓아진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는데, 다른 게 아니라 이 해태가 정의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대사헌으로서 정의를 지키고 선악을 잘 구분하여 제대로 일을 하라는 의미가 담긴 셈인데··· 솔직히 꿀빨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정의는 언제 지키고 선악은 언제 구분해야 되나 싶다.

    “왜, 멋있냐?”

    동문서답은 개똥이가 아쉬울 때마다 하는 소리지만, 나는 늘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녀석에 맞춰준다.

    귀여워서 혼 낼 수가 없거든.

    “헤헤.”

    녀석, 조금만 덜 귀여웠어도 머리 한 대 쥐어 박는 건데······.

    “넹. 엄청 멋있어요.”

    “자식.”

    “아, 아버지랑 어머니는 잘 계시지?”

    팔석 씨를 못 본 지도 꽤 된 것 같았다.

    “잘 지내요. 삼촌은요?”

    “삼촌?”

    아!

    뭔 말인가 했다.

    “전하는 잘 지내시지. 너가 그걸 왜 궁금해 하냐?”

    “삼촌이니까요. 궁금해 하면 안 되요?”

    “그건 아닌데······.”

    다른 사대부 가(家)에서 이 모습을 봤다면 엄청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개똥이 형님을 삼촌이라 부르고 다니니··· 이만한 빽이 어딨어?

    “뭐, 됐고. 왔으면 공부 해야지?”

    “고, 공부요?”

    “너 언제는 얼른 문관 돼서 삼촌 보필하고 싶다며? 그러러면 공부해야지.”

    “아니··· 저 사실은 꿈이 바뀐 것 같아요.”

    피식.

    “또?”

    “네. 저 장군될래요, 장군. 아, 제가 왜 장군이 되고 싶냐면요······.”

    “너 근데 장군 되려고 해도 공부는 해야 돼.”

    “왜, 왜요?”

    “머리 나쁜 장군은 없거든.”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가동이 형이 장군은 공부 못 해도 된댔는데······.”

    “자, 어쨌든 공부 시작하자. 책 갖고 왔지?”

    “···네.”

    나는 시무룩해 하는 녀석을 내 집무실로 안내했다.

    아니, 안내하던 그때였다.

    “대감!”

    장령 안처직이었다.

    안처직은 나와 개똥이를 흘기더니 나를 바깥으로 이끌었다.

    “왜요? 개똥이 가르쳐야 되는데.”

    “제좌청에 와보셔야 할 듯 하옵니다.”

    “제좌청에? 오늘은 제좌청에 모일 일 없지 않습니까?”

    “그랬는데··· 일이 터진 듯 하옵니다.”

    아니, 하필 이럴 때······.

    아쉽지만 어쩔 수 있나.

    개똥이를 가르치는 것도 가르치는 거지만 그보다는 공무가 우선인 걸.

    “개똥이 너 자습하고 있어. 자습 뭔지 알지?”

    “노는 거!”

    “아니, 본인 스스로 공부하는 거! 저기 앉아. 저기 앉고 얼른 책 펴.”

    “···네.”

    개똥이가 내 집무실 의자에 앉고 책을 펴는 모습까지 지켜본 나는 안처직을 따라 제좌청으로 걸음을 옮겼다.

    간만의(?) 사건인데 이번엔 어떤 사건이려나?

    ***

    서경종은 지방의 아전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주목의 호방으로 있었다.

    비록 소과나 대과에 급제해 문명을 떨치진 못 했지만 그럭저럭 본인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부모께 물려받은 산이며 밭이며 논들이 모두 합해 5결이었고 물려받은 노비들은 30구에 달했으니 사실 불만족스러워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아전으로 있으니 적당히 군림 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 서경종의 좌우명은 인생은 굵고 길게였다.

    짧고 굵은 것보다는 이왕이면 굵고 길게 가는 게 좋지 않은가.

    그의 좌우명에서 ‘굵다’는 재물을 상징했다.

    명예?

    그런 게 밥 먹여주진 않는다.

    하지만 재물은 다르다.

    밥도 먹여주지만 군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자자손손 물려줄 게 생긴다.

    자손들이 헐벗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고 살게 할 바에는 재물을 좀 밝힌다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굵게 사는 것이 이롭지 않겠는가.

    서경종은 치부(致富)에 열을 올렸다.

    정상적인 방법도 있었지만, 사실 재산을 모은다는 것이 합법적으로만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았다.

    불법인 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양심의 가책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내 자손이 우선이지, 남의집 자손들이 우선이던가?

    그는 여러 가지 편법으로 부모께 물려받은 재산을 증식시켰다.

    호방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고을의 장부를 조작하고 조세미를 착복하는 것은 사실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건 솔직히 불법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관습이고 관행이지.

    그가 재산을 증식 시킨 방법은 무주지를 개간하는 것과 화전민들의 땅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주인 없는 땅인 무주지를 개간하는 일에는 목민들을 이용했다.

    부역이라는 공역이 있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알짜배기면서도 뒷탈이 없는 건 화전민들의 땅을 강탈하는 일이다.

    화전민들이 개간해 놓은 땅은 장부상 올라가지 않은 무주지인 동시에 불법적인 농토다.

    이 화전민들을 몰아내고 법에 근거해 처벌한 다음, 그들이 개간한 땅은 꿀꺽하게 된다면 뒷탈도 없다.

    아니, 뒷탈이란 게 생길 건덕지가 없다.

    도망자 신세인 화전민들이 어디가서 신세 한탄을 할 건가?

    그 다음은 환곡이다.

    흉년이 들었을 때, 갑이라는 목민이 2석을 꿔가면 장부상으로는 1석을 기재하고 나머지 1석은 본인에게 갚게 하는 방식이었다.

    너무 노골적인 강탈이라 걸릴 위험이 크지 않겠냐고?

    부임한 목사가 감사(監事)를 하면 그럴 위험이 있지만 대개 공주목에 부임한 목사들은 감사를 꺼린다.

    하긴 해도 형식적이었고 설령 감사를 시행해서 장부를 조작하고 환곡미를 착복한 사실이 들통 나도 눈감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관행이고 관습이니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이렇게 부모께 물려 받았던 임야와 전답 5결은 15년만에 그 6배인 30결로 늘어나 있었고, 30구의 노비는 그 2배인 60구로 늘어나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이번엔 글러 먹었다.

    부임해 온 목사가 아주 꼴통이 따로 없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건 물론, 툭 하면 장부 가져와라, 대조해보니 틀리다, 해쳐먹은 거 아니냐?

    의심을 하기 일쑤였다.

    수령이란 게 지방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외지에서 온 호구라 할지라도 일단 수령은 수령이다.

    그의 눈에 거슬리면 아전이고 나발이고, 모가지가 달아나게 생겼으니 그가 부임해 있는 동만이라도 재산 증식을 자제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15년 하던 일을 멈추니 좀체 좀이 쑤셔서 참을 수가 있나.

    서경종은 편법을 강구했다.

    합법적이면서도 적당한 구실로 재산 증식에 일조 할 수 있는 방법.

    설령 사또한테 들통 나더라도 ‘어쩌라고?’ 강짜를 놓을 수 있는 방법.

    21살 조카도 급제한 소과도 급제 못 한 대가리가 이럴 때 만큼은 비상한 지, 금방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그의 땅 인근에 있는 저수지였다.

    그의 땅이 있는 석한리(石寒里) 일대에는 농민들이 모내기 법으로 농사 짓는 일이 잦았다.

    엄연히 불법이었지만 고을에 해가 되는 것도 아니라 눈 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석한리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저수지를 만든 일이 있었다.

    문제는 관의 허락을 득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관의 허락을 득하지 않는 저수지에 그 근방이 본인의 땅이다.

    어떤가?

    딱 감이 오지 않은가?

    비록 큰 돈은 만질 수 없겠지만, 사또의 감시가 서슬퍼런 시국에, 지대를 요구해서 용돈 정도는 만질 수 있을 터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