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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32화 (132/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32화>

    ***

    비누 공장이 완공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나는 구인 광고(?)를 냈다.

    대체할 노비가 있지 않냐고?

    있지.

    있는데··· 일단 내가 가진 노비 수는 거짓말 안 하고 1000단위가 넘어간다.

    나도 정확히 안 세봐서 사실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천명은 넘어간다는 점이었다.

    천명이나 되는 공짜 노동력을 갖고 있으면서 구인 광고라니 뭔가 모순 같겠지만··· 여러분. 솔거노비랑 외거노비 들어봤겠지?

    자, 내가 갖고 있는 천명의 노비들 중에서 95%는 외거노비들이다.

    방방곡곡에 흩어져서 나한테 신공을 바치는 외거노비들 말이다.

    솔거노비는 고작 100여 명도 안 되는 실정인데 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어떻게 노비들을 갖다 쓸 수 있겠나.

    게다가 모두 알다시피 이미 있던 솔거노비들도 비누 공장을 연답시고 면천을 시켜줬었다.

    서른 네명이나 되는 노비들을 말이다.

    이게 최대 한계치였다.

    하지만 명색이 공장인데 서른 네명의 노비들로 가동 시킬 수 있을까?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걸 사람이 손으로 해야 하는 시대에서 말이다.

    무적권법으로 사람을 구해야만 했다.

    물론 알바몬스터나 알바 지옥 같은 사이트가 없다 보니 구인 광고는 전적으로 사람을 통할 수 밖에 없었다.

    굳이 말하면 다단계식이다.

    빨래하러 가는 계집종들을 시켜다 빨래터에서 내가 사람을 구한다는 소문을 내게 하고, 그 소문을 토대로 사람을 구하는 방식이랄까?

    엄밀히 따져보면 다단계도 아니네.

    아무튼.

    이 구인 광고 아닌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물경 삼백명이 넘었다.

    사실 비누를 만드는 일이 원리만 알면 대단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서 굳이 사람을 선별할 필요는 없었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구하는 인원은 오십명 남짓이었다.

    그런데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원을 했으니 면접을 볼 수 밖에.

    물론 면접이라고 거창한 건 없고 주로 인성만 봤다.

    말했다시피 비누 만드는 게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건 아니라서 말이지.

    다만 몸이 다소 불편하다거나 딸린 입이 많은 사람들은 최대한 조건 없이 뽑았다.

    전생에선 피고용자였던 사람이 현생에선 고용자가 되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만··· 뭐, 그래서 젊은 거지는 무시하지 말란 말이 나온 거 아니겠어?

    아무튼, 6: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사람들은 모두 쉰두명이었다.

    기존에 면천시킨 솔거노비들까지 합하면 여든 여섯명.

    스타트업(?) 기업치고는 제법 많은 직원 수라고 할 수 있는데 애당초 내가 이 비누 공장을 차린 것도 형님의 정사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였지, 이걸로 무슨 떼돈을 버려고 했던 건 아니라서 사실 크게 상관은 없다.

    적자만 안 보면 그만이지, 뭐.

    일단 내가 비누 공장에서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완공된 공장을 둘러보는 일 정도?

    새로 고용된 사람들을 가르치는 건 앞전에 면천시킨 서른 네명의 노복들이 할 것이었다.

    이미 서른 네명에게 비누 만드는 법은 전수해줬었으니까.

    실제로 그 서른 네명이 지난 기간 동안 뭘 했겠나?

    비누 만드는 실습만 했었다.

    막상 공장을 개장(?)했는데 손에 안 익어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이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잖은가.

    그럼 내가 할 일은 아예 없는 거냐고?

    그건 또 아니다.

    자, 보시라.

    “색이 참 고운데 어디에 쓰는 물건이옵니까?”

    “이것아, 척 보면 모르겠니? 분이잖아, 분.”

    “분이 이리 딱딱하단 말이오?”

    여긴 월교방(月嬌房)이라는 기루다.

    사실 기방을 텐프로나 룸싸롱이랑 비교하기에는 기생들에게 참 미안한 일이지만, 마땅히 비교할 게 없어서 비교를 해본다.

    이 월교방이란 기루는 텐프로에서도 1급 에이스들만 모아놓은 업소라고 보면 된다.

    장안 제일 가는 기생들이 모여있는 특S급 기루랄까.

    그래서 사실 이 기루는 어지간한 명함 갖고는 출입도 어려울 정도다.

    나?

    나는 대군이라 프리패스 한 거고.

    대군이라 프리패스를 했건 월교방이 특S급 기루건 나발이건.

    마누라도 있는 내가 왜 여기에 있냐고?

    나는 분이네 아니네 씨름하는 기생들에게서 비누를 가볍게 빼앗아 들었다.

    “색만 고운 게 아닙니다.”

    “색만 고운 게 아니라니요?”

    “맡아 보실래요?”

    뺏은 비누를 하란(河蘭)이라는 기생에게 건넸다.

    그냥 건넨 건 아니고 코에 가져다대줬다.

    킁킁.

    기생 하란이 비누 향을 가볍게 킁킁거리며 맡더니 이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분이 아니라 향낭(일종의 향수)이었사옵니까?”

    “어때요?”

    “꽃향기가 나옵니다.”

    기생 하란의 시선이 어느 새 비누에 고정돼있다.

    “이게 바로 비누라는 겁니다.”

    “비누요?”

    “네. 이미 왕실에선 어마마마랑 중궁마마도 쓰고 계신 거죠. 전하께서도 쓰고 계시구요.”

    “이 비누란 걸 말이옵니까?”

    끄덕.

    “왕실에서 이걸 왜 쓰겠습니까?”

    사실 물건을 팔 때 소비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유명인을 모델로 내세우는 일이다.

    CF에서 왜 광고주들이 연예인들을 모델로 내세우겠나?

    내가 어마마마랑 중궁마마도 쓰고 계시다고 한 건 같은 맥락이다.

    뭔가 신뢰성을 더해주잖아.

    게다가 진짜로 쓰고 계시니까 허위 광고도 아니고.

    “향이 좋기 때문에 향낭을 대체해서 쓰시는 것이옵니까?”

    “하란 씨 똑똑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헛똑똑이네.”

    “···”

    “이게 말입니다. 두창을 박멸하는데 효험이 있다 아니겠습니까.”

    “두창을요?”

    “뭐···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내가 전하께 부탁드려서 혜민서에 종두도감이 생긴 건 아시죠?”

    “예. 저희들도 종두를 맞았는 걸요.”

    “이건 여러분들한테만 말씀드리는 건데.”

    “···?”

    “사실 종두만 맞는다고 두창이 완전히 물러가는 게 또 아니거든.”

    “아니라구요?”

    “뭐, 사람에 따라 다른데··· 확실하지가 않다는 거지.”

    “확실하지 않다는 말씀은······.”

    “종두만으로는 안심 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근데.”

    “근데?”

    “이 비누. 이 비누만 있으면··· 아니, 종두에 이 비누만 있으면 두창은 아예 일평생 걸릴 일이 없을 겁니다. 어디 두창 뿐입니까? 하란 씨.”

    “네?”

    “코가 맹맹한 걸 보니 고뿔?”

    “어찌 아셨습니까?”

    사실 이건 정말로 기생 하란에게서 코맹맹이 소리가 나서 맞춘 건 아니다.

    원래 밤에 일하는 사람치고 면역력 좋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다 요즘 같은 환절기라면 감기 걸리기 딱이지.

    물론 그런 걸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고.

    “이걸 쓰면 고뿔 같은 잔병도 막아준다 이 말입니다.”

    “고뿔도 말이옵니까?”

    “에이, 대감. 그런 만병통치약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혹하는 하란과 다르게 방금 전까지 하란과 티격태격했던 다른 기생은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하긴 나같아도 못 믿지.

    근데 뻥은 아니다.

    이 비누로 손발만 잘 씻어도 감기를 어느 정돈 예방 할 수 있으니까.

    “내가 왜 여러분들 한테 거짓을 이르겠습니까? 진짜라니까요? 아까 말했잖습니까. 이 비누는 왕실에서도 쓰고 있다구요. 왕실에서 이걸 왜 쓰겠습니까? 잔병을 막기 위해 모두들 애용하고 계신 겁니다.”

    “참말입니까?”

    “참말이죠. 아, 물론 이걸 쓴다고 무조건 잔병치레를 막을 수 있단 건 아닙니다. 어느 정도 효험이 있다, 이거죠. 말했다시피 왕실에서도 그래가지고 쓰고 있는 거구요.”

    “참말이라면 참으로 신통한 귀물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귀물은 귀물이죠. 자, 봐요.”

    나는 하란과 기생들이 내 약팔이(?)를 눈치 챌까 얼른 비누를 미리 받아둔 세숫대야 물에 적셨다. 그러고는 거품을 내고 하란의 코에 손을 갖다댔다.

    “어때요, 향 좋죠?”

    “예. 은은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향낭보다 더한 듯 하옵니다.”

    “이렇게 은은한 향기도 나면서 두창까지 막을 수 있는 게 바로 이 비누라는 겁니다. 어때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은 하온데······.”

    “하온데?”

    “궁금한 것이 있사옵니다.”

    “말씀하세요.”

    “왜 이런 귀물을 저희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인지······.”

    왜 보여주긴.

    영업 뛰려고 보여줬지.

    라는 본심은 고이 접어두고.

    “예쁘니까?”

    주변에서 까르르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 비누 팔기 겁나 힘들다.

    “여러분들이 누굽니까. 조선 제일 기생들이라는 월교방 기생들 아닙니까? 월교방 기생들이 유행에 뒤처지면 되겠어요?”

    아닌 게 아니라 여기도 패션이란 게 존재한다.

    당연히 유행이란 것도 있다.

    규수들은 기생을 웃음 파는 계집들이라며 천하게 여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생들이 입거나 바르는 것들은 모조리 완판 돼버린다.

    유행의 선구자들이 기생들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 대표주자들은 다름 아닌 월교방 기생들.

    월교방 기생들이 유행에 뒤처진다는 건 보통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이 아니었다.

    “아니 되지요.”

    “네. 안 되지요. 이 비누가 조만간 팔도 기생들 사이에 널리 퍼져나갈 테고··· 에? 기생들 사이에 퍼져나가면 규방에도 퍼져나갈 텐데 우리 월교방 기생들만 이 비누가 없어 봐. 이, 이··· 응? 얼마나 자존심 상해?”

    “음.”

    “두창도 예방하고 몸에서 은은한 향기도 내게하고 잔병도 막아주고··· 일단 쓰기만 하면 유행까지 선도 할 수 있다니까? 이정도면 일석삼조. 아니, 오조다, 오조. 인정?”

    하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오케이!

    “자, 인정 받은 의미에서 이건 선물로 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 귀한 걸 말이옵니까?”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는 하란에 나는 일단 주먹부터 말아쥐었다.

    앞으로 칠 멘트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거든.

    ‘후우.’

    자, 준비 완료다.

    “아무리 귀하다 한들 여기 꽃님들보다 귀할까?”

    꺄르르-.

    “자자, 다른 분들도 하나씩 받으세요.”

    “한데 정말 이 귀한 걸 선물로 주셔도 되는 것이옵니까?”

    “암, 되고 말고. 대신!”

    “대신?”

    “입소문만 내주세요.”

    “입소문이요?”

    “네, 입소문.”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알겠사옵니다.”

    신기한 듯 비누를 만지작거리는 기생들을 눈에 담은 나는 빈 술잔에 술을 한가득 따랐다.

    하··· 영업직들 존경스럽다, 진짜.

    ***

    영업 뛴(?) 보람이 있었다.

    월교방에 가서 영업 뛴 지 보름도 안 돼 장안에는 비누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왕실에서도 쓰는 귀물이라더라.

    만병통치약으로는 그만한 게 없다더라.

    봄내음이 물씬 나서 집나간 남편도 돌아오게 한다더라··· 등등.

    때론 과장된 소문도 있었지만 어쨌든 월교방 기생들은 약속을 잘 지켜줬다.

    홍보가 제대로 이뤄졌으니 이제는 비누의 위용을 과시할 차례였다.

    사실 비누의 위용을 과시하는 건 돈 안들이고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형님한테 부탁만 하면 됐거든.

    비누 공장에서 생산되는 비누 일부를 왕실에 납품하라는 명령을 내려달라는 게 바로 내 부탁이었다.

    명령이 내려지는 거랑 비누의 위용을 과시하는 거랑 무슨 연관이 있냐고?

    연관이 있지.

    내가 사석에서 형님한테 비누 일부를 왕실에 납품하라는 명령을 내려달라 했을 리가 없다.

    공식적인 석상.

    그러니까, 듣는 귀가 많은 곳. 듣는 귀가 많아서 그 귀들이 또 다른 귀로 전달되게끔 최대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그런 명령을 내려달라 부탁을 드렸다.

    이렇게 되면 왕실에서도 쓰는 귀물이라더라.

    라는 소문이 사실화되는 거니까.

    과연 예상대로였다.

    만병통치약으로 소문이 부풀려진 지 딱 이틀만에 비누를 왕실에 납품하라는 지엄한 령이 떨어졌다는 소문도 퍼져나갔다.

    내가 이 비누 공장이 완공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공장의 체계를 세운 일이었는데, 다른 건 아니고 일전에 혜민서의 의원들을 김 부장이니 김 과장이니로 불렀던 것처럼 일종의 직급을 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단 공장의 이름.

    아니, 공장이라기 보다는 일단 비누를 판매하려면 비누가 XX 회사의 제품이라는 걸 알려야 하잖은가.

    이 회사의 이름은 삼성(參星)으로 지었다.

    별 다른 뜻은 없고, 여기선 별자리의 하나인 오리온 자리를 삼성이라고 한다지 뭔가?

    오리온 자리의 조선식 명칭이 재벌스러워서 삼성으로 지었다.

    사원들은 직급별로 위계를 지키게 했다.

    사장 직함을 준 건 내가 면천시켜준 덕복이라는 사람이었다.

    사헌부에서 격무에 시달리느라 비누에 신경을 쓰지 못 했던 나는 이 덕복이에게서, 비누 판매 문의가 빗발친다는 소식을 들었고, 예약 손님도 벌써 팔백명이 넘었다는 소식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도 덕복은 서둘러 생산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덕복의 말에 따라 예정보다 조금 일찍 비누 공장의 생산 라인을 가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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