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10화>
임금의 하루, 그리고 나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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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멘탈은 의외로 쉽게 흔들린다.
어쩌면 한국인들이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도 보호 본능 때문일지도 모른다.
A가 옳다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B가 옳다 말하고 받는 비난이 두렵기 때문에.
여담으로 어떤 기사에 나온 통계를 봤다.
현대인들은 4명중 1명 꼴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기사였다.
기사를 보자마자 고개를 자동적으로 끄덕여졌다.
현대인은 특히 절망과 좌절에 노출 된 일이 많다.
남보다 잘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남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남에게 꿀릴 게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래를 보기보다 위를 보게 되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
아무리 노력해도 위로 올라갈 수 없는 좌절.
이런 사회 속에서는 충분히 다수의 정신질환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말을 듣는 여러분은 콧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난 아닌데?
우리 가족은 아닌데?
아니라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정신질환이 과연 현대인만의 질병일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장담 할 수 있다.
절대 아니다.
비교할 대상이 많아진 현대에서 박탈과 좌절 때문에 정신질환자의 비중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어디 16세기라고 감기가 없겠나?
여기도 얼마든 정신질환자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내가 막 대군으로 적응(?)을 하고 있던 1년 전 쯤.
강원도에서 살인사건이 났단다.
피해자는 셋.
모두 동일한 수법으로 살인됐다는데 범인을 아직 잡지 못 해 해당 고을 수령이 경질됐다는 소식이었다.
가해자의 정신이 어떤 상태인진 모르겠지만 현대 사회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는 연쇄살인과 흡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단언컨대 형님이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너가 의사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진단하냐고?
태가 나거든.
매사에 밝았던 표정은 표정 하나 담지 않은 것처럼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형님은 급한 일이 있으면 몰라도 본인이 피곤하다고 날 물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한 달만의 만남인데 고작 10~15분.
일다경 가량의 짧은 독대를 뒤로하고 피곤하다는 형님의 말에 난 침소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한 달 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형님의 모습에 침소를 나오자마자 상선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저러신 겁니까?”
“한 달이 조금 안 된 듯 하옵니다.”
“의원들은요?”
“모르겠사옵니다. 심병을 운운하는데··· 언제부턴가는 어의도 물리셔서······.”
“어의를 물려요?”
“예.”
“전하께서 어의를 물리시는데 다른 백관들은 뭘 하고 있는 겁니까?”
표면적으로는 충이 우선되는 사회가 조선이다.
임금이 단식한다.
죄가 없어도 제발 숟가락좀 들라고 석고대죄 해야 한다.
임금이 치료를 거부한다.
당연히 석고대죄를 해서라도 진찰을 받게 해야 한다.
조선이 임금이고 임금이 곧 조선이니까.
형님이 치료 받기를 거부하더라도, 백관들 모두가 석고대죄 한다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랄까.
“말은 안 해서 잘 모르겠지만 모두들 두려워하는 것 같사옵니다.”
“두려워한다구요?”
“평소 같았다면 불호령이 떨어질 일에도 괜찮다며 물러가라 하시고··· 대소신료들이 윤대(면대면으로 직무보고하던 일)를 청해도 대충 알아서 하라는 말씀만 하시니······.”
“아무리 두려워도···허.”
나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미 역알못인 내가 가지고 있던 선비의 상은 깨진 지 오래다.
하지만 고작 이런 두려움 때문에 치료 받기를 거부하는 임금을 방치한다니 실망감이 배가 되는 기분이다.
“대감께서 어의를 들이라고는 말씀해보셨습니까?”
묻자마자 상선 대감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웬 걸요. 몇 번이고 권했지요. 도저히 진찰을 받지 않겠다는 말씀에는 그러면 차라리 신의 목을 치시라고 간언하면서 까지 권했사옵니다. 한데 계속 나중에, 나중에라고만 하시니··· 휴. 대감께 서신을 띄운 것도 대감을 뵈면 용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줄 알고 그런 건데 똑같으시니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한숨을 푹푹 내쉰 상선 대감은 전각을 돌아보았다.
나도 자연히 대감의 시선을 따라 전각을 돌아봤다.
걱정이 앞선다.
마음의 병은 사람들이 간과하기 쉽지만 굉장히 무서운 병이다.
치매가 왜 무서운 병이겠나?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나’로 불릴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형님이 우울증을 앓고 있든 다른 질환을 앓고 계시든.
마음의 병은 치매처럼 나도 모르게 찾아오고,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린다.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 한 채 말이다.
‘아주 중증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한데······.’
바로 얼마 전 까지는 축구도 했단다.
그런 걸 보면 중증까진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정말 심각한 상태라면 무기력함에 하루종일 누워만 있었을 테니 말이다.
“어찌 하는 게 좋겠사옵니까? 전하께서 그나마 의지하시는 분이 대군인지라······.”
다른 사람이 충신이 아니라 상선 대감이 충신 같다.
이런 사람(?)들을 고자라고 희화화한 미디어 매체들은 반성해야 한다.
라는 생각도 잠시.
‘흠.’
고민에 빠졌다.
내가 의사라도 됐다면 냉큼 이렇게 하시고 저렇게 합시다.
조언을 했겠지만 그게 아니다 보니 선뜻 말하기가 껄끄러웠다.
내 말 한 마디로 형님의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가만 있을 순 없고······.’
형님의 상태가 우울증 초기 증세라면, 이럴수록 주변 사람이 도와야 한다.
특히 정신질환은 처음에 간과하기 쉽고, 사회적 인식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이미 당사자의 속은 썩어 문드러질대로 문드러진 상태가 되고 만다.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불쑥 들려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심하던 나는 일단 원인부터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요새는 대중에 잘 알려진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도 어떤 트라우마, 즉 원인에 의해 나타난다.
“일단, 대감.”
“말씀하십시오.”
“요 한 달. 아니, 보름이라도 좋습니다. 전하의 일정이 어땠는지 요약해서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일정 말씀이십니까?”
“예.”
“방책이라도 있으시온지······.”
말했다시피 그 안에서 원인을 찾아 볼 생각이었다.
상선 대감께 일정을 받아봐도 도무지 형님이 저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고심해봐야겠지만 일단은 이게 최선이다.
하지만 그걸 굳이 상선 대감께 설명 드릴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이 시대 말로 순화하기가 어렵거든.
“일단 뭐라도 좀 해봐야하니까요.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일단 소인이 매일 일기를 쓰고 있으니 그건 어렵지 않겠사옵니다.
“다행이네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약 되는대로 저희집으로 좀 보내주시구요.”
“알겠사옵니다.”
얼떨떨해하는 상선 대감을 뒤로한 채 나는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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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ㅡ새벽에 병조판서 이게동이 아뢸 말이 있다 하여 입시했다.
ㅡ진시(오전7~9시) 편전에 거둥하시고 정승들에게 과거 시험에 대해 하문하시고······.
ㅡ신문고에 대한 방안이 어찌 됐는지 물으셨으나 답변이 없었다.
ㅡ전가사변 되어 사진으로 내쳐진 자들의 처지에 대해 하문하셨는데 답한 자가 없었다.
ㅡ미시(오후1시~3시)에 입시한 예조판서 임사홍에게 올 추수가 어찌 될지 하문하셨다. 사홍이 ‘악한 일이 많았지만 모두 길하게 처리하였으니 필시 풍년이 들 것입니다’말하니 전하께서 흡족해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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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ㅡ묘시(오전7~9시)에 조반을 들고 매화틀을 대령하셨다. 엊그제 매화틀을 대령하였으니 실로 이틀 만의 일이다.
ㅡ판윤 반우형이 입시하니 전하께서 전날 사건이 없었는지 하문하셨다. 우형이 별다른 일은 없다고 답했다.
ㅡ반우형이 퇴궐하자마자 도성에 살인사건이 났음을 포청에서 일러왔다. 여아가 살해된 일은 끔찍하여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금부에서 수사케 했다. 범인이 곧 잡혔다.
ㅡ간원들이 들어 요즘 경연을 열지 않음을 비난했다. 전하께서 ‘너희는 경연만 중하고 치국은 뒷전이란 말이냐?’호통치니 간원들이 ‘치국의 일환이 경연이니 서둘러 재개하소서.’답했다. 내가 가만히 보건대 이들은 후대에 알려질 본인들의 기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ㅡ낮 것을 들고 대사간 박삼길(朴三吉)을 물러 간원들의 태도를 힐책하고 신문고에 대한 방안을 물었다. 삼길이 답하지 못 했다.
ㅡ오시말(오후1시)사헌부 헌납 김극성(金克成)을 불러 신문고에 대한 방안을 물었다. 김극성이 치국의 도를 읊으면서 ‘백성을 계도하게 되면 신문고가 곧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하니 전하께서 김극성을 샌님이라 조롱하고 물리셨다.
ㅡ신시(오후3시~5시)에 삼정승들을 불러 신문고에 대한 방안을 물었다. 좌의정 허침이 읍(揖)하면서 ‘지금 조정에서 의논하는 바가 있지만 의논만 하고 있으니 결론이 나오질 않으므로 전국의 선비들에게 구언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물었다. 전하께서 ‘조금 더 기다려보고 그리 함이 좋겠다.’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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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ㅡ진성대군이 사람을 보내 진해현감 방봉구의 비리를 고했다. 전하께서 대노하시어 재상들의 집에 패초를 보내도록 하니 모두 앞다투어 입궐했다. 전하께서 진성대군의 장계를 재상들에게 읽어보게 한 후 감상을 묻자 모두 입을 열지 못 했다. 전하께서 중신들을 힐책하시면서 ‘도대체 지방관이란 작자들의 서경을 어찌 하길래 매번 이런 비리만 보고가 되냐’묻자 사간 최해(崔瀣)가 ‘수령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실로 일부이온데 지금 방봉구가 그 일부에 속하니 사람을 보내 단속토록 하소서.’하니 전하께서 다시 대노하시어, ‘일부도 없도록 함이 옳은 것 아니냔 말이다.’하셨다.
이 날 위사들과 축구를 하였다.
ㅡ삼정승들을 불러모아 말하길 ‘지금 탐관오리를 단속할 방편이 어떤 게 있겠는가?’하니 우의정 박숭질이 ‘아직은 드러나지 않는다면 효과적으로 단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전하께서, ‘부민고소금지를 폐하면 되지 않겠는가?’물으니 박숭질이 화들짝 놀라 ‘제 고을 수령을 탄핵하는 일이 빗발칠 것이고 무고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허침을 둘러보며 ‘경도 같은 생각인가?’하니 ‘지금 갑자기 폐하면 우상의 말처럼 폐해가 들끓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다면 논할만 한 일 같습니다.’하였다. 이에 빈청에 부민고소금지 폐지의 가부를 묻도록 하셨다.
ㅡ백관들이 부민고소 금지 폐지는 선왕의 업적을 부정하는 것이고 효과적인 통치와 동떨어진 일이니 있을 수 없다 상소를 올렸다. 전하께서 상소를 모조리 불태우라 명하였다.
ㅡ상소를 올린 언관들(12명)을 불러 ‘그럼 내가 지금 경연을 폐한 것은 선왕의 업적을 부정한 것이냐?’물으니 어디서 ‘예’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다시 전하께서 ‘내가 역적들을 거열하지 않고 능지한 것 역시 선왕의 업적을 부정한 것이렷다?’물으니 감히 답하는 자가 없었다.
ㅡ이 날 위사들과 축구를 하였다. 실로 오랜만에 용안에 미소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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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ㅡ전하께서 삼정승 이하 육조판서들을 불러 모아 신문고에 대한 방안을 묻자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습니다.’하였다. 전하께서 알았다고 답하시고 속히 알아보라 하셨다.
ㅡ낮 것을 드시고 빈청에 직접 행차하셨다. 빈청의 당상들이 깜짝 놀라 전하를 맞이하매, 전하께서 ‘내 어제 부민고소금지 폐지를 묻도록 하였는데 이는 어찌 되었는가?’하니 답하는 자가 없이 모두 우물거리다 박숭질이 ‘앞선 자들의 상소처럼 아직은 시기상조인 듯 합니다.’하였다. ‘알았다.’답하고 침소에 드셨다.
ㅡ위사들을 불러 축구를 하다가 시합을 중지하고 침소에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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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ㅡ예조판서 임사홍을 불러 묻기를 ‘나는 성군이 되고자 역신들을 모두 죽임하지 않고 사진으로 내쳤는데 어찌 신하란 작자들은 일을 못하는 것인가?’하니 임사홍이 ‘심지를 굳건히 하시옵고 오직 나라의 종묘사직만 생각하소서.’아뢨다.
ㅡ이 날 전하께서 날 불러 하문하시기를 ‘진성은 마음이 여려 내게 사람을 죽임하지 말라 하였다. 그 말대로 역신이더라도 죽임하지 않고, 난리에 침묵한 자들에게도 그 죄를 묻지 않았는데 지금은 후회된다.’ 내가 깜짝 놀라 고개를 조아리니 전하께서 ‘그때 모조리 죽였어야 한다.’하였다. 답하지 못 하니 전하께서 웃으시면서 ‘농이다.’ 하였다.
ㅡ전하께서 저녁을 드시고 패초를 보내 신문고에 대한 방안을 물었다.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말에 모두 물렸다.
“···”
나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건 한 사람의 일정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고문 계획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발암을 유발하는 일들이 많았다.
상선 대감께 전하의 일정을 요약해서 보내 달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이 요약본을 통해 지금 형님의 상태를 규명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단서나마 찾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 작은 단서를 토대로 형님을 케어(?) 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누가 보더라도 형님의 원인은 재상들에게 있었다.
그렇다고 재상들이 나쁜 사람이란 건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두려웠을 수 있다.
형님이 하교한 일을 잘못 처리했다가 모가지가 달아날 수도 있다는 인간적인 두려움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럼 일을 관두던가.’
하지만 그게 자리만 꿰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변명은 될 수 없었다.
두렵다면 물러나면 된다.
누구도 그 자리를 강요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자리는 자리대로 꿰차면서, 권세는 권세대로 꿰차면서 하교한 일처리는 하지 않는 재상들에 형님이 느꼈을 실망과 배신과 좌절과 원망은 얼마나 컸을까?
정치와는 1도 상관이 없는 나도 이만큼 피꺼솟인데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특히 마지막 문구들이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형님은 내 말대로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비를 베풀고 관용을 베풀었다.
그 끝이 속앓이였다니··· 후회가 막심하다.
더구나 13일 이후로 보여지는 요약본은 ‘미음을 들었다’, ‘취침하셨다’ 같은 단조로운 일상들 밖에 없었다.
13일 이후 기록된 요약본을 통해 보자면, 하루 평균 16시간 이상을 주무시기만 한 것이다.
그런데도 백관들은 가만히, 그저 가만히 있었다는 점에 분노가 치밀었다.
촤락-.
요약본을 접은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토악질을 가까스로 억눌러 참고, 덕산이를 불렀다.
“어디 가시게요?”
덕산이의 질문에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끓어 오르는 분노에 막상 덕산이를 불렀지만 순진무구하게 묻는 덕산이를 보니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요약본에, 이래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재에 가자. 준비해라.”
“별충위에요? 알겠습니다요. 얼른 준비할게요.”
별 말 없이 준비하러 나서는 덕산이에 나는 요약본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나도 피 좀 묻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