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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01화 (101/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01화>

    파락호를 토벌하라

    ***

    “좌상이 돌아오니 내 훨씬 든든한 마음이다.”

    편전.

    오늘 드디어 비어있던 좌의정의 자리가 채워졌다.

    북정군 도원수로 출정을 했었던 허침은 압록강을 넘자마자 성희안 등이 반란을 일으킨 통에, 역적들에게 볼모로 잡혀 있다가 이제 막 서울에 돌아 올 수 있었다.

    평안도 관찰사 채수가 오합지졸들을 불러 모아 별충위가 회군할 시간을 벌고, 반대로 역적들의 남하를 저지한 공을 세워 공을 세웠다면 허침은 비록 직접적인 교전은 벌이지 않았어도 끝까지 절개를 지킨 공을 세웠다.

    역적질에 가담하라는 성희안에게 호통치기도 했고, 가담하지 않으면 처자의 안위를 장담 할 수 없다는 수원부사 장정의 겁박에는 자진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절개까지 보였었다.

    다행히 급소는 비껴가서 목숨은 구명 할 수 있었지만 달포가 넘도록 몸을 추슬러야 했기에 이제야 그 얼굴을 볼 수가 있게 되었다.

    두 달 만에 보는 허침의 안색은 아직 병색이 짙었다.

    역적들에게 고초도 심하게 겪었는지 두 달 전과 달리 안색도 수척했고 다부졌던 몸도 깡 말라 있었다.

    “성은에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경이 회맹제에는 참가하지 못 했지만 군신의 의리를 맺음이 굳이 제(祭)를 지내지 않아도 알 만 한 것이었으니, 어찌 논상치 않을 수 있겠는가? 경을 정충장의익운정난(精忠壯毅翊運靖難) 공신에 녹훈하고, 후손들에겐 그 영화를 길이, 길이 전할 수 있도록 내 마땅한 성은을 내릴 것이다.”

    허침이 고개를 조아렸다.

    “경에게는 역적의 집안에서 사용하던 수원의 별서(별장) 한 채와 각지의 전답 80결과 노비 5구를 상사할 것이고, 경이 이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특히 오늘 역적이 발호 함에 있어 뜻있게 일갈한 일은 만세에 귀감이 될 일이니 그 공을 기리지 않을 수 없어 내 빈청에 문의 하였는데 마땅히 군호를 내림이 온당하다는 말들이 나왔다. 내 듣기에도 그러하다. 경을 해성군(海城君)에 봉하니 앞으로도 정사를 위해 힘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감읍해하는 허침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임금이 마침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자, 이를 지켜보던 중신들은 마른 침을 꼴깍거렸다.

    요즘은 임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살 떨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좌찬성(강귀손).”

    “예, 전하.”

    “내 동반(문신)의 당상관들과 모두 합심하여 상선을 가자하는 일을 논해보라 하였는데 이는 어찌 되었는가?”

    “상선 김처선은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겸 상선의 직책을 겸하고 있으니 내시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그러하다.”

    “더욱이 처선이 전하를 호종하면서 목숨까지 내놓았으니 비록, 내시부가 문신과 무신의 반열에 들지 못 한다고는 하지만 대부의 호칭이 없다면 누가 이를 수긍 할 수 있겠사옵니까. 지금 처선이 본인을 가자하는 일을 마다하고 있사오나, 공신을 우대하는 법도가 이와 같진 않고 처손이 겸양을 부리는 것이니 부디 정헌대부(정2품 상계)에 봉하시어 위무하소서.”

    “정헌대부?”

    “예.”

    “상선이 한 일은 여기 편전에 있는 대신 열 사람의 공을 합친다 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그런데 정헌대부에 봉하라? 당상들은 그리 결론 내렸는가?”

    “그, 그러하옵니다. 처선 본인도 마다하고 있는지라······.”

    쯧쯧.

    용상에서 혀차는 소리가 들려오자, 상선의 일을 논했던 당상들 모두 몸을 움찔거렸다.

    “처선이 본인을 가자하는 일을 마다하는 것은 눈총이 두렵기 때문이지, 어찌 일신으로 영예 누림을 마다하겠는가. 이에 이른다.”

    “···”

    “비록 대전(경국대전)에서 내시부에 속한 이는 종이품 이상 품계를 올릴 수 없다 되어 있다지만, 대개 법이란 것은 나라의 형편을 헤아리기 위함이고, 기준을 정하여 벌이 남발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며, 또한 형평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함 때문에 제정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법이 모든 상황에 들어 맞는 것은 아니다. 상선의 일이 그렇다. 임금을 호종한 공이 어찌 대부로 논상한다고 그칠 수 있겠는가?”

    “따로 어지가 있으시온지······.”

    “나는 경들이 당연히 상선의 공을 헤아려 군호를 내림이 온당한 처사라 이구동성으로 아뢸 줄 알았다. 뭐, 경들이 이미 정헌대부에 봉하라 주청하였으니 내 거절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 경들이 누차 말한대로 정사란 군신이 함께 도모하는 것이니 어찌 독단으로 처결하겠는가.”

    꿀꺽.

    “···”

    “그런대로 정헌대부에 봉해야지.”

    “···”

    “후······.”

    임금의 한숨에 중신들은 반대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차라리 XX군으로 봉하겠다고 말이라도 꺼내신다면 이리 두렵지도 않지, 그럴 거면 당최 빈청에서 논의케 한 건 어인 영문이란 말인가?

    ‘전하께서 상심이 크신 듯 하십니다.’

    ‘그러니까, 정헌대부 보다는 숭정대부에 봉함케 함이 온당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대부가 아니라 군으로 봉군 하고 싶어하지 않으시오.’

    편전에 데구르르-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오랜만에 복귀(?)한 허침은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고개만 갸웃거렸지만 이미 눈알 굴리면서 의견을 주고 받는 데에는 이골이 난 중신들은 한참 동안 눈알만 굴려댔다.

    ‘내시로서 군호를 봉작 받은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 않소.’

    ‘맞소이다. 더군다나 지금 전하께서 상선을 믿고 의지하는 바가 큰데, 우리가 미처 전하의 어지를 헤아리지 못 한다면 이 또한 불충 아니겠소?’

    ‘그럼 전하의 뜻대로 하라 하십시다.’

    그리고 도출된 결론.

    “전하.”

    “후. 왜 그러시오.”

    “신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하의 말이 실로 윤당한 듯 하옵니다.”

    “윤당? 무엇이 윤당하단 말이오?”

    “전례를 살펴본다면 내시부에 속한 이가 군호를 봉작 받은 이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사온데 신들이 빈청에서 의논하기를, ‘내시로 이미 장관의 자리에 올랐고, 당사자인 처선도 가자하는 일을 극구 꺼리고 있는데다, 대전에도 특지가 없다면 종이품 이상 승진은 불가하다’ 라는 구절 때문에 미처 군호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온데 이처럼 전하께서 군호를 언급하시니 어찌 윤당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우상만 그리 생각하시면 무엇하겠소. 더군다나 경들이 말한대로 우리 나라의 예법에는 환관에게 시호 주는 일이 없으니 군으로 봉작하고 대신의 예로 대한다면 반드시 후세에서 불편해 할 것이외다.”

    “아니옵니다, 전하. 후세가 불편해하는 것은 실로 쌓은 공이 없는 이가 군호를 받기 때문이지, 처선이 어찌 공 없이 군호를 봉작 받는 것이겠사옵니까?”

    “좌찬성(강귀손)의 생각도 그러하시오?”

    “예.”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신 또한 생각이 같사옵니다.”

    “그 옛날 내시로서 공을 세운 엄자치(嚴自治)와 전균(田畇)은 각각 영성군(寧城君)과 하음군(河陰君)의 봉군을 받았사온데 오늘의 일이 어찌 전례에 없는 일이 될 수 있겠사옵니까?”

    “그러하옵니다. 더욱이 세조께서는 하음군 전균과 영성군 엄자치에게 난신에게 적몰한 재산까지 하사하셨으니 봉군을 거리낄 것이 없는 일이옵나이다. 신들은 전하께서 논상을 제대로 못 하시어 상심을 얻는 것이 더욱 저어되는 마음 뿐이니, 간하건대 처선에게 군호를 내리시옵고 마땅히 이번 공신들을 우대한 일을 천하에 알리시옵소서.”

    이구동성으로 처선을 봉군하라는 말에 융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음. 경들의 뜻이 정 그러하니 내 어찌 마다하겠소. 하면 내 상선 김처선을 숭록대부(종1품 상계)에 봉하고 풍원군(豊原君)의 군호를 내려, 의리를 지킨 공신을 예우케 하겠소이다.”

    “실로 공명정대한 처결이옵고 만세에 다시 없을 군신의 아름다운 의리이옵니다.”

    오랜만에 편전 안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던 그때.

    “전하. 송구하오나 상선이옵니다.”

    “아, 상선. 내 마침 상선의 논상을 재상들과 논하고 있었다.”

    “저기,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진성대군께서 급히 입궐하셨사온데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시어······.”

    “진성대군? 오, 그래. 어서 들라하라.”

    머잖아 숨이 끝까지 차오른 진성이 편전에 들었다.

    “경들은 모두 나가보시오.”

    축객령에도 중신들은 별 말 없이 편전을 빠져 나갔다.

    “하하. 우리 아우님이 편전에는 어인 행차실꼬?”

    “큰 일 났습니다, 형님!”

    “큰 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융에 진성은 개똥의 일을 털어놓았다.

    개똥의 일이 전해지면 질수록, 융의 표정도 일그러져갔다.

    ***

    “개새끼들 다 죽었어.”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됐다.

    이건 내가 선포한 게 아니다.

    개똥이의 일을 들은 형님이 버럭 소리를 질러대시면서 그런 파락호들이 장안에 활보하기 때문에 민생이 고단한 것도 있다면서, 토벌을 명하신 것이다.

    자, 확실히 하자.

    체포가 아니다.

    토벌이다.

    실제로 형님은 이번 사건을 포청이 아니라 의금부와 별충위에 지시하셨다.

    의금부와 별충위!

    물론 의금부가 모두 중죄인만 다루는 건 아니다. 별충위 역시 포도를 소관하진 않고.

    하지만 의금부와 별충위에 지시했다는 건, 이놈들을 역적으로 다스리겠다는 의지 표명이나 다름이 없었다.

    형님의 지지를 받은 데 모자라 이번 사건에 대한 권한까지 일임 받았는데 거리낄 게 뭐가 있을까?

    나는 궐에서 가까운 금부에 들러서 금부도사 안처직과 금부에 속한 관리들을 대동하고 구름재(지금의 운니동)로 발길을 재촉했다.

    뜬금없이 왜 구름재냐고?

    “아니, 대감··· 예까진 어인 행차시옵니까?”

    억수 씨다.

    다른 게 아니라 구름재에 별충위의 관청이 소재하고 있다.

    훈련은 주로 한강변이나 산기슭에서 하지만, 행정 업무까지 한강변에서 할 수 없는 관계로 설치가 되었는데 공신의 작호를 받은 억수 씨는 그 공으로 저택과 재물까지 하사 받았고, 건공장군(종3품 상계)에 까지 봉해졌다.

    그걸로도 모자라 별충위의 부사령관 격에 해당하는 종삼품직 별충위 별장(別將)에 제수되었다.

    불과 몇 개 월 전까지만 해도 벼슬 하나 없이 대립질했던 억수 씨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승진이다.

    아이진에서 있었던 일로 종9품 아이권관으로 서반서용(무관으로 등용함)되더니, 아이진에 부임도 안 해 보고 종7품 부사정으로 파격 승진을 했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공신으로 녹훈되면서 건공장군에 봉해지기 까지 했으니, 사람 인생이란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

    ‘아,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억수 씨의 인생을 회상(?)할 때가 아니었다.

    “어명이외다.”

    나 대신 금부도사 안처직이 말했다.

    안처직은 전하가 내린 어지를 들춰보였다.

    억수 씨가 무릎을 꿇고 어지를 받들자, 안처직이 어지의 전문을 읽어나갔다.

    “···하므로 역신의 난리를 당한 지 불과 달포도 되지 않았고 하물며 공신의 작호를 내린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았거늘 이런 참담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냐. 이에 진성대군 이역을 토포사(토벌군 대장)로 임명하니, 별장 김억수는 속히 위사들을 소집해 토포사의 군령을 받들라.”

    “어명을 받드옵니다!”

    일련의 의식이 끝나고 억수 씨는 분주하게 관청의 관리들을 닦달했다.

    위사들을 소집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체감상 10분도 채 안 걸린 것 같았다.

    나는 별충위에 속한 관노비의 도움을 받아 말에 올랐다.

    그러고는 말허리를 가볍게 걷어찼다.

    목적지는 파락호들이 있을 법한 기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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