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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00화 (100/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00화>

    개똥이 건드린 새끼 나와

    ***

    “엿 사시오!”

    책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던 개똥의 눈이 반짝거렸다.

    꿀꺽!

    “엿 먹구 싶다.”

    녀석은 손을 쪽쪽거리면서 입맛만 다셨다.

    먹고 싶지만 사먹을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난 크면 꼭 엿장수 해야지.”

    그러면 마음대로 엿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새삼 장래에 대한 꿈을 다진 개똥은 길을 재촉했다.

    늦으면 어머니께 또 혼날지도 몰랐다.

    요즘 부쩍 들어 웃는 날이 많은 어머니지만, 화나면 산군님도 못 당하신다.

    아부지도 그러셨다.

    “네 엄마 화 나면 산군님이 와도 못 당할 걸? 아니, 산군이 뭐야. 그슨대(요괴의 일종)가 와도 나보다 더한 산사람은 처음 본다고 도망 칠 게다.”

    아부지는 거짓말을 안 하신다.

    어머니는 분명 그슨대 보다 무섭다.

    “개똥아!”

    잔뜩 화가 나서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부르르 몸을 떨며 길을 재촉하길 얼마나 지났을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개똥이는 고개를 돌렸다.

    “돌석이 형!”

    돌석은 개똥이 잘 따르는 동네 형이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

    웃옷은 어디 갖다 팔았는지 가슴께까지 바지를 끌어올린 돌석이 형이 휘적휘적 걸어온다.

    쪼르르 돌석에게 다가간 개똥이 헤실헤실거렸다.

    “나 북촌. 아, 북촌은 왜 갔냐면 내가 어젠가 책을 놓고 왔는데 이 책을 놓고 오면 공부를 할 수가 없어서··· 어무니가 나는 나중에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소학이라는 책이거든. 그런데······.”

    돌석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또 시작이네. 됐어, 인마. 너 집에 가는 길이지?”

    “응.”

    “그럼 됐어. 얼른 집에 가. 어무니 걱정하시겠다.”

    “왜? 왜 그러는데?”

    “집에 가야 된다면서.”

    “아냐. 나 안 가도 돼. 형 놀러가지? 놀러가는 거면 나도 책만 많이 읽어서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막, 대감마님이 그러셨는데 내가 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냐고 물으니까, 원래 어린 나이에는 밖에서 뛰어놀고 그래야······.”

    “휴··· 지금 갑돌이랑 망구 바위에서 아랫마을 녀석들하구 전쟁 놀이 하러 갈 건데 갈 거야, 말 거야?”

    “전쟁 놀이?”

    “응.”

    “장수는 누가 하는데?”

    “우리 마을에선 당연히 내가 하지.”

    “아랫마을은?”

    “음. 아마 병식이가 하지 않을까?”

    “병식이 나랑 동문데. 왜 걔가 장수야?”

    “몰라.”

    “걔가 장수하면 나도 장수 시켜줘. 만날 형들만 장수 했잖아. 나도 장수 시켜주면 갈래.”

    “안 돼.”

    “아, 왜.”

    “넌 나이도 어리고 몸도 작아서 아랫마을 놈들이 만만하게 본단 말이야.”

    “시켜줘, 시켜줘, 시켜줘. 나도 장수 시켜줘.”

    떼를 쓰기 시작하는 개똥에 갑돌은 못 말린다는 듯 개똥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넌 그러면 내가 군관 시켜줄게. 됐지?”

    “군관?”

    “원래 장수보다 군관이 더 중요한 거야.”

    “그래! 나 그럼 군관할래! 가자!”

    개똥이 소학을 옆구리에 꼭 끼운 채 돌석의 뒤를 따랐다.

    “너 근데 그거 집에 놔두고 와야 되는 거 아니야?”

    “이거? 아냐. 이거··· 아니, 원래는 집에 놔두고 와야 하는데. 음, 원래 선비는 책이랑 한시도 떨어지면 안 된다고 해서 지금은 괜찮아.”

    “너가 선비냐?”

    “나 선빈데.”

    피식.

    “너가 선비면 난 옥황상제다.”

    “맞거든? 왕자사부 대감이 그랬거든?”

    “왕자사부가 어떻게 대감이야.”

    “대감 맞거든? 대군마마가 대감인데, 대군마마가 왕자사부 대감한테 존댓말하니까 절대적으로 대감이거든?”

    “그래, 그래. 너 말이 다 맞다.”

    본인 말이 맞았다는 데서 기쁨을 감출 수 없는지 개똥이 또 다시 헤실거렸다.

    그러던 그때.

    흠칫거린 돌석이 개똥이 입을 틀어막았다.

    돌석의 장난인 줄 안 개똥이 돌석의 손을 핥자 사색에 질린 돌석이 말했다.

    “우, 웃지마.”

    “읍읍. 아, 왜.”

    이유를 묻자 돌석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저 앞에 댓명의 선비님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장안에서 유명한 파락호야.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린대.”

    “파락호? 파락호가 뭔데?”

    “무서운 사람.”

    “우리 어무니가 더 무서운데. 우리 어무니 보다 더 무서워?”

    “응. 너네 어무니 보다 더 무서워. 그러니까 웃지 말구, 조용히 지나가자.”

    어무니 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없어야 맞다.

    하지만 돌석이 형의 말대로 어무니 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면 조용히 지나치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건, 어린 개똥도 아는 사실이었다.

    “···응.”

    어무니 보다 더 무서운 파락호들과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다 보니 파락호들이 떠드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옥단이 옷고름은 언제쯤 푸는 겐가?”

    “예끼, 옥단이 옷고름을 왜 자네가 물어?”

    “아니, 궁금하잖나. 정성 들인 게 벌써 얼만데.”

    “크흠. 조만간 희소식 있을 걸세.”

    “그 희소식 거린 게 벌써 반년 아닌가. 반년이면 옥단이가 아니라 옥단이 애미 옷고름도 진즉 풀었겠네. 하하하.”

    음담패설이란 걸 알 리가 없는 개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옷고름을 왜 풀어?”

    “쉿.”

    “웅.”

    그렇게 파락호들과 옷깃도 스칠 정도로 가까워졌을 즈음.

    “응?”

    파락호 한 명이 고개를 돌렸다.

    흠칫.

    “왜, 왜 그러십니까요, 나리?”

    “잠깐.”

    “자네 왜 그러나?”

    “아니, 이 발칙한 놈을 좀 보게.”

    “발칙? 뭐가 말인가?”

    무리들이 개똥과 돌석에게 다가왔다.

    파락호들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은 돌석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고 영문을 모르는 개똥만 코를 후비적거렸다.

    “소학 아닌가?”

    “소학?”

    “잘 됐구만. 안 그래도 옥단이한테 줄 선물이 필요했는데.”

    “예끼. 행색을 보아하니 어디 소작 부치는 애비를 둔 것 같은데, 그런 애 책을 뺏으려 그러나?”

    파락호 무리들이 낄낄 웃어댔지만, 돌석과 개똥을 멈춰세운 파락호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개똥이 옆구리에 낀 소학을 뺏으려 들었다.

    “안 돼요! 나 그거 가져가야 된단 말이에요. 내일도 가져가서 공부해야 되고, 오늘도 집에가서 복습하라고 했단 말이에요. 복습하면 나중에 훌륭한 사람 될 수 있다고 했으니까, 얼른 줘요!”

    당연히 개똥이 막아섰지만 성인의 완력을 당해내기란 역부족이었다.

    “뭔 놈의 애새끼가 말이 이리 많어?”

    파락호가 살짝 밀치자 개똥이 볼썽사납게 나자빠졌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자마자 씩씩거렸다.

    “얼른 줘요!”

    “줘? 허. 이 맹랑한 녀석좀 보게. 어디, 가져가보거라.”

    파락호가 책 든 손을 허공 높이 올리자, 개똥이 암만 낑낑거려도 닿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대감이 준 책이 손에 닿지 않자, 결국 개똥은 파락호의 허벅지를 콱 깨물었다.

    “악! 이 쥐방울만한 놈이······.”

    열이 뻗쳤는지 허벅지를 쓱쓱거리던 파락호가 개똥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걷어올렸다.

    한 대, 두 대··· 여섯 대가 넘어가자 개똥의 입이 다 부르터졌다.

    “이 사람아, 애 잡겠네. 그만하고 가세. 가뜩이나 요새 시국이 흉흉한데 양인 아이 하나 잡을 일 있나?”

    “그래. 이만 가세. 힘자랑은 옥단이한테나 하고.”

    벗들의 농에 피식 거린 파락호가 멱살쥔 개똥이를 내동댕이쳤다.

    “그래, 힘자랑은 옥단이한테 해야지. 가지.”

    ***

    “적응은 하고 있냐?”

    “뭘 말입니까요?”

    “이번에 들어온 노비들 자식아.”

    “저희들도 적응을 해야지 이제 어쩔 겁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행랑이 꽉 차서 임시방편으로 김 선달네 집에 머물게 했던 노비들은 어제부로 창고 대용으로 쓰던 행랑을 비워, 전부 그곳으로 옮겼다.

    덕산이 말대로 아씨니 도련님으로 불리면서, 남 수발 받고 살았을 테지만 이제 적응을 해야한다.

    잔인 할 수도 있지만,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차차 적응하겠지.

    아.

    개똥 밭 하니까 생각났다.

    “덕산아. 그러고 보니까 개똥이 아직 안 왔냐?”

    “네, 아직 안 왔습니다요. 이런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마루에서 공부좀 할랬더니.”

    볕이 좋아서 오늘은 마루에서 공부할 참이었다.

    마루에 펴놓은 서안과 서안 위에 올라간 소학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대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딱 대문 밖으로 나가면 개똥이가 헐레벌떡 뛰어들어 올 것 같았는데 웬 걸.

    개똥이 그림자도 안 보인다.

    대문 밖 층계에 쪼그리고 앉아서 일다경 정도를 기다려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뭔 일 난 거 아닐깝쇼?”

    “설마.”

    “개똥이 녀석이 좀 모자라 보이긴 해도 이렇게 늦은 적은 없었잖습니까요.”

    “어제 일 때문에 피곤해서 늦잠 잔 거 아냐?”

    공신회맹제는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어린 개똥이에겐 고단한 하루였을 수도 있다.

    “해가 벌써 중천에 떴는뎁쇼?”

    덕산의 말에 하늘을 바라보니 과연 해가 중천에 떴다.

    “그러네.”

    “제가 다녀와볼깝쇼?”

    그러라고 하려다 관뒀다.

    어제 팔석 씨··· 아니지. 이제 창산군이지?

    창산군과 담소다운 담소도 못 나눴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장래 계획(?) 같은 것도 좀 논해 볼 겸 금석리로 직접 가야겠다.

    가볍게 채비를 마치고 금석리로 향했다.

    북촌과는 지척인지라 말을 타고 가니 일식경이 조금 넘어 도착 할 수 있었다.

    “계십니까?”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 개똥이네 집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며 사람을 불렀다.

    두어번 더 부르자, 안면이 있는 개똥이 어머니가 나오셨다.

    다만 만날 밝던 개똥이 어머니의 모습이 오늘은 왠지 울상이었다.

    “아이구, 대감마님. 누추한 곳까진 어찌······.”

    “오늘 개똥이 수업날인데 개똥이가 안 와서요. 고뿔(감기)이라도 들었습니까?”

    “그게······.”

    말을 흐리던 개똥이 어머니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신다.

    그리고 그때.

    끼이익-.

    “···처방한 약은 하루 두 번 꼭 먹이셔야 하오. 하기(下氣)부터 시켜야 상처가 아물 테니 말이오.”

    방문이 열리더니 의원이 그 방에서 나왔다.

    “예, 감사합니다. 의원 나리.”

    “나, 나리라니 당치도 않소. 말씀 편하게 하시오. 아니, 하십시오, 창산군 대감.”

    머쓱해하는 창산군을 일별한 의원이 집을 나섰다.

    “창산군.”

    “대감. 오셨습니까?”

    “개똥이 탈이라도 났습니까? 왜 의원이······.”

    “아, 예. 녀석이 고뿔이 들었지 뭡니까. 발발거리면서 밤늦게까지 뛰어다니더니··· 하하.”

    “그럼 의원이 말한 상처는요?”

    “사실, 대감마님······.”

    “이 사람아. 가만있어. 큼. 밤늦게 쏘다니다가 넘어졌는지 상처가 좀 크게 난 모양입니다. 그래서 의원을 불렀습지요.”

    “사실대로 말씀해보세요. 말이 안 되잖습니까. 멀쩡한 개똥이가 갑자기 고뿔에 걸린 건 그렇다 쳐도, 타박상 정도로 의원을 부를 일은 없잖아요.”

    머뭇거리는 창산군과 개똥이 어머니에 나는 성큼성큼 방문을 열어제꼈다.

    얼굴 곳곳에 멍이 들고, 입술이 부르터진 개똥이가 시름시름 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개, 개똥아!”

    “대감··· 나 공부해야하는데······.”

    “창산군. 개똥이 왜 이럽니까?”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는 창산군 대신, 개똥이 어머니가 사건의 전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들을수록 열불이 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괜히 나와 형님께 누가 될까봐 포청에 신고도 못 했다는 말에는 울컥할 정도였다.

    “당장 식구들 부터 모을깝쇼?”

    분기탱청하긴 덕산이도 마찬가지였는지, 녀석은 손을 비비적거리면서 당장이라도 몽둥이 들고 튀어갈 모양새였다.

    덕산의 말에 그럴까도 싶었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문명인 답게 해결하자. 문명인 답게.”

    “무, 문명인··· 이라굽쇼?”

    덕산이가 알아 듣건 말건 나는 발길을 돌렸다.

    목적지는 경복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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