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98화 (98/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98화>

    이놈의 개 같은 공신

    ***

    “경들에게 내 일찍부터 공신 책봉을 빈청에서 논의하라 명했건만 지금껏 소식이 없는데다 방금 두 의정이 침소에 들어 ‘신들이 공신을 논의하는 것은 온당치 못 한 일이니 오직 전하의 뜻대로 하소서.’ 하므로 내 그 정성을 살펴 친히 공신을 책봉하노라.”

    갑작스런 부름과 함께 입조한 재상들의 얼굴에는 의문문이 떠올랐다.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순과 박숭질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금군은 어찌 됐습니까?’

    ‘용안에 왜 노기가 보이는 겝니까?’

    ‘일이 잘 안 됐습니까?’

    무언이 담긴 수십쌍의 눈길에 유순은 인상을 구겼다.

    그의 표정을 보고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중신들은 마른 침만 꼴깍거렸지만, 각기 다른 인격체들이 일심동체로 행동 할 순 없는 법.

    어딜가나 눈치 없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다.

    병조참지 이중현처럼.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지금은 공신보다 금군을 늘려 궐의 방위를 튼튼히 함이 옳은 줄로 아뢰옵······.”

    “금군?”

    “그러하옵니다.”

    “참지도 고작 한다는 말이 금군이란 말이냐?”

    “예?”

    실소를 머금은 융은 혀를 찼다.

    그러고는 편전 문 밖을 가리켰다.

    “지금 경들이 내게 주달해야 할 것은 금군을 늘려 궁궐의 숙위를 강화하는 것 보다도 저 궁궐 담장 너머의, 민생의 고충과 역란의 발생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백성과, 차후 오랑캐를 어찌 굴종시키냐 하는 것이어야지, 어찌 참지나 두 의정들은 내 하문하지도 않은 금군만 논하고 있는 것이냐?”

    “시, 신은 그저 전하께서 상심을 얻으셨을까 하여 걱정되는 마음에······.”

    “내 이번 역란으로 상심을 얻을까 걱정되는 충심은 있고 내 하명한 일을 따를 충심은 없단 말이냐? 아닌 말로 내 공신 책봉을 빈청에서 논하게 한 것이 도대체 며칠이나 흘렀느냐 말이다!”

    털썩!

    “화, 황송하옵니다.”

    “재상이란 작자들이 정사를 주모가 탕반(국밥)말 듯이 도모하고 있으니,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경들은 들어라.”

    “···”

    “호종공신들은 일전에 이른 예에 따라 상사(재물을 내림)토록 하겠다. 다만 호종공신으로 언급하지 않은 이가 있어 다시 언급하니 모두 똑똑히 머리에 새기라.”

    “하, 하명하시옵소서.”

    “황구를 호종공신 삼등에 녹훈 할 것이다.”

    웅성웅성.

    정체불명의 이름이었다.

    “화, 황구란 자가 어디 사는 이온지······.”

    “사람?”

    “예.”

    “금석리에 살고 있는데 우상은 어찌 꼬치꼬치 캐묻는 바가 그리 많은가?”

    “하, 하오나 신들은 팔석과 다른 호종공신들이 공을 세운 일은 들었어도, 황구란 자가 호종했다는 일은 들어본 적이 없는지라··· 송구하오나 혹, 어떤 공을 세웠는지요?”

    융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호종공신 일등에 녹훈할 팔석의 집 앞마당에 기거하는 황구가 난리통에 임금의 마음을 헤아려 재롱을 부렸으니, 이것이 호종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순간 중신들은 인지부조화가 일었다.

    재롱까진 이해하겠다.

    그런데 팔석의 집 앞마당에 기거한다?

    앞마당이라는 키워드에 ‘개’를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우의정 박숭질이었다.

    그는 기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건 개가 아니옵니까?”

    “말 못 하는 미물도 충심을 보였다면 녹훈함이 정당한 일이다. 호종공신 삼등에 녹훈할 것이니 그리 알라.”

    “하오나··· 하오나, 고금을 막론하고 미, 미물을 공신으로 책봉한 일은······.”

    “아니, 무슨 그리 잔말이 많은가? 이리 잔말이 나올 것 같으니 내 경들에게 공신 녹봉을 논의하라 한 것이 아니냐! 여염집 아낙들이 빨래터에서 남 시샘하는 것도 이보단 더하지 않을 터인데, 어찌 말이 이리 많단 말이냐. 우상이 과인의 뜻대로 하라지 않았느냐?”

    “···”

    “태조께서도 유린청(이성계가 타던 팔준마의 하나)이 죽자, 석조로 관을 짜서 친히 후하게 장사까지 치루게 했으니 그것과 공신을 책봉하는 것이 무에 다를꼬. 앞으로 경들은 금석리를 지나는 일이 있다면 삼등공신에게 필히 안부를 하고 지나가라. 이를 어긴다면 공신을 무시한 처사로 알고, 유형으로 다스릴 것이니 그리 알라.”

    사람이 기가 차면 말이 안 나오는 법이다.

    똥개를 공신으로 예우하라니, 말은 커녕 사고가 정지한 느낌들이었다.

    “그리고 정난공신.”

    “하명하시옵소서······.”

    “본래 공신은 삼등급으로 나누는 것이 전레이나, 이번 역란은 특히 역도의 창궐이 창졸 같았고 우레와 같이 힘있게 떨치고 일어났으니, 막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난공신들은 이를 막은 공이 있으니 어찌 전례에 따라 예우 할 수 있겠는가? 공신을 삼등으로 나누는 것은 전례에 따르나, 일등의 위에 특별할 특(特)자를 붙여 특등공신으로 삼고자한다.”

    “하오면 특등공신으로는 누굴 삼을 생각이시온지요?”

    “특등공신으로는 진성대군 이역만 삼고, 일등공신으로는 김억수, 평안도 관찰사 채수, 부응교 이행, 최수성, 교리 정붕, 공서린, 김안국, 왕자사부 이장곤, 8인을 녹훈하겠다. 이등공신으로는 경기도 관찰사 안윤덕, 고양군수 장백손, 예조판서 임사홍, 풍원위 임숭재, 도승지 김감, 금부도사 안처직······.”

    특등~삼등공신까지 책록될 사람들은 모두 72인이었다.

    그에 따라서 위사와 관군들은 모두들 원종공신에 책록이 됐다.

    전례에 따르자면 당연히 이등공신보다 삼등공신이 많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오히려 이등공신이 더 많았고, 삼등공신이 유이하게 딱 두 사람 있었는데 진성대군의 부부인 신 씨와 홍건의사들을 키운 공로가 있다고 융이 극찬을 마지 않았던 김굉필이었다.

    삼등공신에는 딱 이 두 사람만 들어가게 되었다.

    “···이리 공신을 녹훈하도록 하고 다만 지금 국가가 피폐해진 지 오래라 상사는 특별히 내리기 어려우나, 공로가 있는 사람들에게 상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특등공신 이역에게는 노비로 삼은 능지처참 당한 역적의 자손 20구를 하사하고, 적몰한 각지의 전지 500결을 하사하고, 마침 진성대군의 이웃에 적몰한 역적들의 저택이 한 채 있으니 이또한 하사하며, 계속해서 은 200냥, 내구마(內廐馬) 3필, 두정갑주 한 벌, 호피 다섯 장, 사인검 한 자루를 하사한다.”

    중신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건 많아도 보통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하사하는 노비는 적정 수준으로 볼 수 있었지만 전지 500결과 저택에 은 200냥이라니······.

    “진성대군은 상가(상으로 가자하던 일)할 수 없어 상가는 제외한다만 일등공신 김억수, 채수, 이행, 최수성, 정붕, 공서린, 김안국, 이장곤 8인은 상가하여, 3자급을 초수(벼슬의 3등급을 뛰어넘어 제수함)하고, 부모와 처자에게도 그에 맞게 초수하라. 또, 전지 80결과, 은 30냥, 노비 5구, 반당(하인) 5인을 하사한다. 이등공신은······.”

    각각 차등에 맞게 상사가 진행했다.

    하지만 그리 많은 재정적 부담도 아니었다.

    특등공신에게 상사하는 품목을 제외하면 일등~삼등공신까지는 사실 익대공신(예종 즉위년에 있었던 남이의 옥사를 다스린 공신)들이 상사 받는 품목에 한참 미달 되는 것들이었다.

    여기에 원종공신들에게도 각각 백미 3석씩 하사가 됐고, 각각의 공신들에게는 칭호도 내려졌다.

    특등공신 진성대군 이역에게는 특등에 정충분의장의보국결책익운정난(精忠奮義壯毅保國決策翊運靖難)이라는, 14글자의 정난 공신호(功臣號)가 내려졌고, 일등공신들에게는 정충장의결책익운정난 10글자, 다음 이등공신들은 정충장의익운정난 8글자가, 삼등공신들에게는 정충장의정난 6글자의 공신호가 내려졌다.

    여기서 이례적으로, 융은 특등공신에 책록될 진성대군에게는 나라의 선비라는 차원에서 국사(國士)라는 칭호를 내렸고, 김굉필에게는 큰 스승이란 차원에서 태사(太師)라는 칭호를 각각 내렸다.

    속사포 같이 쏟아지는 임금의 공신 책록 의지에 기진맥진해 하는 중신들이었지만, 융은 중신들이 뒷목 잡고 쓰러질 법한 한 마디를 더 얹었다.

    “내 암만 생각해도 호종공신 일등에 책록될 팔석의 공도 작지 않은 듯 하다. 호종공신들 또한 특등에서 삼등의 4등급으로 나누고, 팔석을 특등공신으로 책록해야겠다. 이에 따라 전지 300결과 노비 10구를 하사하고, 적몰한 저택 한 채를 하사해 위무하겠다. 또한 마땅히 특등공신에 책록하였으니 군호를 내려야겠다. 팔석을 창산군(昌山君)에 봉하고, 의롭게 행동한 바가 여러 공신들보다 우위에 있으니 의(義) 씨를 사성(성씨를 하사함)하여, 한양을 본으로 삼도록 하겠다. 이를 알고 따르라. 이제, 경들이 내게 맡긴 일이니 여기서 이견을 제시한다면 소인으로 간주하고 남을 시샘하는 간적으로 알고 대할 것이니 잘 헤아려서 따르라.”

    충격적인(?) 하명에 중신들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했다.

    공신 책봉의 일을 중신들에게 일임했을 때, 한시라도 빨리 처리했어야 했다는 후회까지도.

    ***

    공신 책봉을 받았다.

    뭐, 정난 공신이라나 뭐라나··· 전지, 그러니까 논밭도 하사 받았다.

    무려 500결에 달하는 논밭이었다.

    각지에 흩어져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사실 이 시대에서 대지주라 함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 보다도 전국구에 땅을 둔 대지주가 훨씬 많다.

    단점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500결에 가까운 논밭을 하사받았고, 거기에 더해 이웃집의 열칸짜리 기와집도 하사 받았다.

    내가 앞전에 말한 것 기억하나?

    우리 집과 이웃한 집이 두 채가 있는데 하나가 열칸짜리 김 선달이라 불리는 사람 집이고, 또 하나가 열다섯칸으로 박 거상이라 불리는 사람의 집이라고 했던 거.

    몰랐는데 글쎄, 김 선달이 역적질에 가담을 했지 뭔가.

    그래서 저번에 목이 뎅겅- 잘려나갔다.

    당연히 그가 가진 재산도 모두 적몰됐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진 모르겠지만 그 역적의 적몰한 저택이 나한테 하사가 된 것이다.

    나는 이 집의 담장을 허물고 우리 집과 연결시켰다.

    원래 역적의 집은 모두 부숴버리고 연못으로 만드는 게 괜히 부정 타지 않는 방법이라고 덕산이가 노발대발(?)을 했지만, 그런 게 어딨어?

    연결한 김 선달의 집은 목욕탕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목욕탕이 따로 없어서 목욕통에 물을 받아서 씻곤 하는데, 내가 원하는 건 널찍한 목욕탕이지, 목욕통이 아니다. 아, 은자도 받았다.

    내구마라는 말도 3필이나 받았고 장군으로서 역적을 몰아낸 공로가 있다고 해서 두정갑과 액운을 막는다고 알려진 사인검도 하사 받았다.

    돈으로 환산하기도 힘든 값어치의 품목들을 한꺼번에 하사 받았지만··· 음.

    이러면 배 부르다고 할지 모르겠는데 사실 별 감흥은 없다.

    그런가 보다 싶다.

    재수 없는 소리 하나 더 하자면, 전재산이 100만원인 사람한테나 1억이 큰 거지, 전재산이 1000억인 사람한테 10억이 큰 돈일까?

    없이 살았던 나지만 현생에서 누리고 사니 이런 막대한 재물에도 별 감흥이 없어진다.

    어쩌면 여기선 이렇다 할 사치품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만 모든 하사 품목들에 감흥이 없던 건 아니었다.

    “이 사람들이냐?”

    “예, 대감마님.”

    나는 내 앞에 도열한 사람들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특이점이 있다면 모두 젊은 여성이거나 어린 남자아이라는 점이었다.

    대부분 젊은 여자들인걸 보면 저번에 덕산이가 말한 ‘노리개’와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았다.

    ‘인생 참 기구하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마님이라 불리거나 아씨라 불렸을 텐데 한순간에 원수라면 원수인 내 집에서 노비 노릇을 하게 됐으니 얼마나 기구해?

    “안내는 다 했고?”

    “아직 안 했습니다요.”

    “근데 행랑에 자리 있던가?”

    “없습죠.”

    “그러면 일단 이번에 하사 받은 김 선달네 집에 머물게 하고······.”

    “역적년들을 기와집에서 머물게 하시게요?”

    “인마, 역적년들이 뭐냐, 역적년들이······.”

    찌릿-.

    고개를 돌린 덕산이가 역적년(?)들을 잡아 먹을 듯 째려본다.

    “역적년들 맞잖습니까요. 이년들 서방이고 애비들이 죄 역적질 해서 나라님이 그 갖은 수모를 다 하셨구, 또 대감마님도 그 먼 길 달려오신 거 아닙니까요.”

    나는 덕산이의 머리를 콕 쥐어 박았다.

    “너 인마 내가 역적질해서 너도 모가지 잘리면 안 억울해 할 거냐?”

    “대감마님이 왜 역적질을 하십니까요?”

    “만약에 이 자식아.”

    “어, 억울하긴 할 것 같은뎁쇼.”

    “같은 거야. 알았으면, 김 선달네 집에서 머물게 하고, 또 무슨 행랑식구들하고 같이 짝짜꿍해서 텃세 부린답시고 괴롭히지도 말고. 특히, 아직 장가 못 간 행랑식구들, 아랫도리 간수 못 해서 패가망신 할 일 없게 잘 처신하라고 신신당부 해. 알았냐?”

    “···알겠구만요.”

    “밥 때 됐다, 찬밥 말고 밥 새로 해서 먹이고. 그럼 나 다녀온다.”

    덕산이에게 신신당부를 한 뒤에 나는 집을 나섰다.

    어딜 가냐고?

    공신회맹제(임금과 공신들이 단결을 맹세하던 의식)란 것에 참가하러 간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