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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87화 (87/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87화>

    스승님이 왜 거기서 나와요?

    ***

    “와, 고생 진짜 많으셨네요.”

    경복궁으로 가는 길.

    이전까지는 상황이 하도 급박해서, 그럴 여건이 안 돼서 기껏 해후(?)한 형님과 회포를 나눌 시간도 없었지만 상황이 얼추 80%는 종결 됐다고 볼 수 있는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 완전히 안심하기엔 이르지만 도성에 들어오면서 한껏 긴장하고 있던 형님도 마음이 조금은 풀어진 건지, 우린 그간 밀린 회포를 맘껏 풀었다.

    형님은 마음 고생이 여간 심한 게 아니었던지 울분을 잔뜩 토해냈다.

    얼마나 울분이 쌓였었으면 지난 며칠 간의 일을 회상하면서 가슴을 쾅쾅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흐느끼기 까지 할 정도였다.

    “내 정말 그때······.”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는지 형님은 말을 잇다 말고 멈칫거렸다.

    얼핏 보니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그때 익선관까지 버려가면서 금구로 도망간 일이 꼭 지나간 망령처럼 떠올랐다. 시체로 변장해서 성을 빠져 나간 일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내 정말 캄캄한 관 속에 갇힌 것 같은 착각이 인다.”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 힘듦의 정도는 가늠 할 수 있는 법이다.

    확실히 힘드시긴 하셨던 것 같다.

    ‘임금으로 살다가 하루 아침에 도망자로 살았는데 안 힘들면 그게 더 이상하긴 하지.’

    “하지만 이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이 무언지 아느냐?”

    “또 있으세요?”

    “단 한 사람도, 단 한 사람도 들고 일어난 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진성이 너 말곤 말이다.”

    바득.

    이 가는 소리가 살벌하다.

    ‘하긴······.’

    형님의 분노가 노이해(?)인 건 아니었다.

    이해하고 말고.

    서대문에 파진하고 도성의 상황을 대략적으로나마 관찰사(안윤덕) 영감께 전해 들으면서 나는 얼척(?)이 없었었다.

    관찰사 영감이 ‘단 하룻밤 사이에 궐이 함락됐고 패초를 받고 입궐한 재상들의 줄이 광화문 밖까지 이어졌었습니다.’ 라는 말에는, 선비는 개뿔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을 정도였다.

    조선의 사상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때론 고리타분하다고 까지 느끼는 내가 이 정도일 텐데, 평생을 충효의 가르침을 받고 살아온 형님에겐 배신 그 이상의 감정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만큼 형님의 분노는 십분 이해한다.

    이해는 하는데······.

    힐끗.

    나는 형님을 힐끗거렸다.

    불의를 보고도 맞서지 않은 선비들에 대한 분노가 아직도 가시질 않는지 주먹을 꽉 말아쥔 형님이 보인다.

    그런 형님께 공감한답시고 ‘그런 놈들이 선비는 무슨 선비입니까? 개새끼들 싸그리 잡아서 족쳐버리죠?’ 할 순 없었다.

    나는 형님을 폭군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의 가치관과 성격이 폭군으로 전락하기엔 아쉬운 때문도 있었지만, 정치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드문드문이나마 성군의 자질이 보였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은 아직도 유효한다.

    근데 그놈들 잡아서 족쳐버리자는 말을 어찌 하겠나?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아니고······.

    “에이, 하도 갑작스러워서 그랬을 거예요. 관찰사 영감 말로는 조정에 안 나간 사람도 많다던데요?”

    “방관도 결국은 무언의 동조다. 선비는 신념을 지켜야 한다. 신념을 지키지 않은 자는 그저 선비의 탈을 쓴 위군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자는 있느니만 못 하다.”

    강경하신 걸?

    사태가 수습되면 피바람이 불지도 모르겠다.

    “흠. 일단은 수습이 먼저니까··· 수습만 우선 순위로 두고 생각하시게요. 입성은 했다지만 경복궁을 탈환한 것도 아니고 밖에선 박원종이도 아직 이갈고 있을 거예요.”

    “그래, 맞다. 네 말이 맞아.”

    조금 진정이 되셨나?

    진정이 되신 거면 다행이겠는데······.

    “아, 진성아.”

    “예?”

    “내 미처 말하지 못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편히 말씀하세요.”

    “고맙구나.”

    머쓱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6번째 듣는 감사 인사였다.

    “제가 무슨 한 일이 있다구요. 위사들이 다 한 걸요.”

    “결정권자는 너였다. 네가 회군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조만간 역도들의 손에 잡혔을지도 모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이건 칭찬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전라도 무안하기만 하다.

    무안한 마음에 형님과 눈을 맞추기 뻘줌해진 나는 거리로 튀어나온 백성들에게 눈길을 던졌다.

    임금이 환궁하고 있다는 선전이 통한 건지 거리로 튀어나온 백성들은 하나같이 주상전하 천세를 외치고 있었다.

    독재자의 압제에 신음하던 국민들을 해방시키는 장군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일던 것도 잠시.

    경복궁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느슨해 진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일 수 밖에 없었다.

    미리 보내둔 척후에게서 매복은 없다는 보고는 받았었지만 경복궁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휘하의 장수들은 제안대군의 치세를 거부하는 민중들이 일으킨 소란이라는 점에 무게를 실고 있었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은가.

    무슨 일이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홍건적?”

    그리고 도착한 육조거리.

    거리는 한산했지만 멀리 보이는 광화문에선 과연 척후가 전한대로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인상적인 건 홍두건을 쓴 사람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머리에 홍두건을 쓰고 있는 건 물론이고 변변한 무기 없이 식칼이나 농기구 같은 무기들로 수문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반정 세력들 사이의 내분이 아니라 확실히 민중들이 일으킨 소란 같았다.

    “어찌 하올까요?”

    억수 씨가 형님을 바라보며 묻는다. 다시, 형님은 날 바라본다.

    “궐이 코앞인데 여기서 파진하는 것도 우습지 않을까요?”

    끄덕.

    형님의 OK 사인에 우리는 광화문으로 계속 나아갔다.

    한참 접전을 벌이고 있던 두 집단도 뒤늦게 우리를 발견했는지, 전투는 소강 상태에 접어 들었다.

    “나는 성종대왕의 적자이자 금상 전하의 아우인 진성대군이다! 너희의 정체를 밝혀라! 안 밝히면 역적으로 간주하겠다!”

    뭔가 중2병 감성이 돋는 멘트 같지만 아직 사극체(?)에 익숙하지 않은 내겐 이게 한계였다.

    “진성대군?”

    “별충위가 서대문에 파진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구만!”

    “살았다, 살았어!”

    홍건적(?)들은 확실히 민중들이 맞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우릴 반길 이유가 없잖아?

    “그, 말했다시피 나는 성종대왕의 적자이자 금상 전하의 아우인 진성대군이고··· 그리고, 여기 계신 분은 전하시다! 얼른 예를 갖추어라!”

    앞전의 중2병 감성의 멘트가 홍건적들에게 한 것이라면 이번 멘트는 홍건적들과 싸우고 있던 수문군들에게 한 멘트였다.

    내 멘트 한 번에 홍건적들이 우르르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홍건적들이 점점 가까워지면 질수록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익숙한 얼굴 하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익숙한 얼굴이 점점 확대될 무렵.

    나는 눈을 동그랗게 치켜 떴다.

    “아니, 스승님! 스승님이 왜 거기 있어요?”

    ***

    “아니, 스승님! 스승님이 왜 거기 있어요?”

    진성의 음성에 융은 눈길을 돌렸다.

    왕자사부 이장곤이 보였다.

    교전 중에 부상을 입었는지 군데군데 핏물이 묻어 있다.

    “대군마마!”

    “스승님. 스승님이 왜 거기서 나오냐니까요?”

    진성의 음성에서 반가운 마음반 걱정되는 마음 반이 전해졌다.

    곧 이장곤이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그래서 당직청도 살펴봤습니다만 전하께선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크흑.”

    자초지종을 털어놓은 이장곤이 울음을 터뜨린다.

    아니, 울음이 아니라 대성통곡에 가까웠다.

    경황이 없어 미처 자신을 보지 못 한 것 같았다.

    “전하라면 여기 계신데요?”

    “···?”

    진성의 소개에 융은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앞전에 서대문에서 착용한 투구의 처마를 살짝 들자 역광에 가려져있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저, 전하!”

    털썩!

    이장곤의 부복을 필두로 홍두건의 의사(義士)들이 일제히 부복했다.

    “전하! 신 왕자사부 이장곤 전하의 평온한 용안을 뵈오니 진실로 기쁘기 한량 없사옵니다. 신들이 불충하여 역적들의 발호를 막지 못 했사오니······.”

    이장곤은 장황하게 자죄를 늘어놨다.

    융은 손을 내저었다.

    “그대들은 죄가 없다. 과인이 부덕한 소치다. 일어나라.”

    “전하··· 크흐흑.”

    “역적들은 궐 안에 있는 것인가?”

    “그런 듯 하옵니다.”

    고개를 끄덕거린 융은 장곤의 어깨를 두어번 두들겨주었다.

    “고생했다. 이제 쉬거라.”

    전하를 뫼시겠다는 장곤의 무리를 어명으로 휴식을 취하게 만든 융은, 장곤에게 ‘이따 봬요.’라는 말을 남긴 진성과 위사들을 이끌고 궐로 향했다.

    이미 의사들의 돌발 행동으로 이상 분위기는 감지 했는지 광화문의 수문군들이 주춤거리고 있었다.

    “임금이 환어하고자 하니 속히 성문을 열지어다!”

    수문군들이 저희들만 바라보면서 눈치를 살피자 경기도 관찰사 안윤덕이 나서서 호통을 쳤다.

    “이놈들! 너희가 역적 수괴의 꾀임에 넘어가 임금을 배반했다 한들 사직(나라)을 배반한 것은 아닐지언대 어찌 아직도 전하의 앞 길을 막는단 말이냐! 속히 길을 열고 벌을 청하지 못 할까!”

    안윤덕의 걸걸한 호통에 화들짝 놀란 수문군들이 성문을 열었다.

    열린 성문으로 들어가자 수문군들이 일제히 부복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들을 추포해두라 명한 융은 광화문을 통과했다.

    늘 보던 광화문이고 늘 통과하던 광화문이지만, 지금은 감회가 새로웠다.

    궐안 분위기도 그랬다.

    예전에는 숙엄한 분위기에서도 밝고 산뜻한 느낌이 있었더라면 지금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을씨년스러운 기분을 털어낸 융은 홍례문을 통과하고 영제교(근정문으로 가기 위한 다리)를 건넜다. 그러고는 곧장 근정문을 지나쳤다.

    소란을 들었는지 근정전 주위의 금군들이 몰려 들었지만 금방 그의 용안을 알아본 것인지 앞전의 상황처럼 넙쭉 부복하며 바들바들 떨어댈 뿐이었다.

    이들 역시 추포하라 명한 융은 그들을 지나쳐 사정전으로 향했다.

    사정전에선 바깥의 소란에도 저희들끼지 아웅다웅거리는지,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융은 사정전 바깥에서 기웃거리며 안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를 가만히 귀 기울여 들었다.

    인상적인 건 제안대군의 음성이었다.

    -···눈이 있으면 내 꼴을 보아라! 이게 어디 왕이란 말이냐!

    “지금 딱 들어가시면 역적 놈들 놀라서 까무러칠 것 같은데요?”

    진성의 말에 융은 한차례 피식거렸다.

    놀라 까무러치다 뿐인가.

    아마,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할 터였다.

    “들어가실까요?”

    “좋다.”

    고개를 끄덕거리자 진성이 위사에게 받은 도끼로 편전 문을 박살냈다.

    “아니, 멀쩡한 문은 왜······.”

    “이래야 좀 더 극적이잖아요.”

    뭔가 일리가 있는 말에 설득 당한 융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편전을 올랐다.

    “우리 당숙께서 아주 실성을 하진 않은 것 같아 이 종질은 마음이 놓입니다.”

    그렇게 말한 융은 편전 안의 면면들을 살폈다.

    역시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몰골들이다.

    “역적들을 모조리 추포하라!”

    ***

    “뭐? 그게 참말이더냐!”

    구수영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어느 안전이라고 소인이 거짓을 고하겠사옵니까? 소관이 똑똑히 보았사옵니다.”

    “허어······.”

    그는 곧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글쎄, 진성대군의 별충위가 결국은 서대문을 넘었단다.

    이 정도라면 충격을 당하지도 않겠지만 문제는 별충위에 폐군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진성대군의 별충위가 서대문을 넘었다는 것과 폐군과 함께 하는 별충위가 서대문을 넘었다는 건 그 의미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박원종이는 도대체 무얼 했단 말이냐!”

    “별충위의 기병들을 대비하다가 미처 공세할 때를 놓친 것 같았사옵니다.”

    “이런 팔푼이 같은 놈!”

    그런 놈을 믿고 거사에 동참했다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도성의 상황은 듣지 못 한 것이냐?”

    “예. 이미 사대문 전부가 별충위와 수령들의 손에 함락 됐던지라··· 하지만 별 소란이 없던 걸 보면 무사히 장악을 한 것 같았사옵니다.”

    “그랬을 테지······.”

    모두가 반정 세력을 반긴 건 아닐 터였다.

    박원종 그 팔푼이는 대비전의 교서도 받지 못 한 채 제안대군을 왕위에 올렸다. 도성 안팎의 분위기는 싱숭생숭 할 수 밖에 없었을 테고, 그러한 때에 폐군이 등장했으니 설사 거사에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이라 한들 등을 돌렸을 가능성이 컸다.

    서둘러 새 동아줄을 잡지 않는다면 역적으로 몰릴 게 불보듯 훤하니 말이다.

    설령 거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역적으로 분류가 됐다 한들, 폐군을 추숭한다면 집안의 풍비박산은 면할 수도 있었을 테니, 살기 위해서라도 폐군을 뫼셨을 것이다.

    ‘하면 이제 나는 어쩐단 말이냐······.’

    구수영은 탄식을 내뱉었다.

    성희안과 장정 구수영이 이끌고 있는 북정군은 이제 막 강음현(지금의 황해북도 금천군) 초입에 들어선 상태였다.

    평안도 관찰사 채수의 저항이 격렬했던데다 뒤늦게 투항을 했을 때도, 지름길이 있다며 속이곤 기만을 했었다.

    게다가 평양성 전투에서는 평안도에서 차출됐었던 평안도 군현의 수령들이, 채수가 반란을 모의했을 리 없다며 역반란을 일으킨 덕에 그걸 진압한다고 늦어졌다.

    진작 도착하고도 남았어야 할 북정군이 이제 강음현 초입에 들어선 건 그런 연유 때문이었다.

    ‘이제 폐군은 근왕병들을 불러들일 것인데······.’

    도성을 다시 장악한 폐군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삼남의 관찰사들에게 병부(군사권)를 발동하고 근왕병을 불러들여 북정군을 막으려 들 것이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북정군의 처자들을 인질로 삼고 버틸 수도 있었다.

    설령 본인이나 성희안, 장정 같은 지휘관들이 처자를 버린다 한들 휘하의 사람들이 모두 동조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런 가능성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많아졌는데 누가 처자를 버리겠는가?

    게다가 북정군에 대한 지휘관들의 사령은 확고한 편이 아니었다.

    각 도의 각 군현에서 차출된 형편이다 보니, 처음에야 도원수 허침과 그 일당들이 반란을 도모했다는 명분으로 군권을 잡을 수 있었다지만 그 시간이 점점 흐르다 보니 명분으로 인한 군권도 느슨해지고 있었다.

    실제로 북진하는 도중에는 발생하지 않던 탈영병도 속출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때에 도성에 진입한다 한들 제대로 싸우기란 요원했다.

    허침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명분으로 이들을 사령했는데 알고 보니 본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의심이 증폭된다면 어떤 명분으로 사령을 하겠는가?

    이미 도성이 폐군의 손아귀에 넘어간 뒤에 거사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박원종이 이 미련한 놈.’

    원망이 박원종에게 향했지만, 원망을 한다 한들 후회를 돌이킬 순 없었다.

    이젠 거사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가릴 게 못됐다.

    이제 생각해야 할 건 살길을 모색하는 방편 뿐이었다.

    아니, 본인은 죽더라도 가문은, 집안은, 처자들은 살릴 방법이라도 찾아야 했다.

    “이 소식을 성희안과 장정은 알고 있느냐?”

    “아니옵니다. 아직은 장군께만 아뢰었사옵니다.”

    어둡던 구수영의 얼굴에 한줌 미소가 피어났다.

    “잘 했다, 잘 했어. 너는 절대로 두 장군께는 이 사실을 함구해야 한다.”

    “예?”

    “이놈!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걸린 것이다! 절대로 함구해야 한다. 알겠느냐?”

    “아, 예······.”

    “그리고······.”

    말을 흐린 구수영은 장정과 성희안이 머물고 있는 장막을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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