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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73화 (73/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73화>

    우리 모내기로 농사짓자

    ***

    이미 조정은 주전론이 대세로 기울어버렸다.

    이장곤을 주축으로 한 젊은 관리들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임금이 주전론자였다.

    대세는 정해졌고, 숱한 숙청을 보아온 중신들로서는 싫든 좋든 대세를 따를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편전.

    “···당태종의 당군 또한 요동의 겨울에 꼼짝없이 고립되어 결국 수십만 대군이 지리멸렬하였으니 겨울에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병법에서도 하책으로 치옵니다. 전하께서 다른 뜻이 없······.”

    형조참판 정숙지(鄭叔墀)의 말에 융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누가 보더라도 정숙지의 입을 가로막는 제스쳐였다.

    “경은 날 얼마나 한심하게 봤으면, 산간벽지의 전쟁 놀이하는 남아들도 알 만한 일을 새삼스레 조언이랍시고 꺼내는가?”

    정숙지가 마른 침을 꼴깍거리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아무래도 오늘 임금의 기분은 썩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소, 송구하옵니다, 전하.”

    “정북(征北)은 마땅히 내년 봄 언 땅이 녹을 즈음에 할 것이다. 토벌이 단기간에 이뤄지는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자칫 우리 군사들이 고립되어 놈들의 협격을 받는다면 당군의 꼴을 면치 못 할 게 아닌가. 다만 과인이 하문한 것은 병략을 잘 아는 장수를 거론해보라는 것이었다.”

    “···”

    “누가 있겠는가?”

    임금의 하문에도 중신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이미 중신들 사이에서 임금은 예측불허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불경죄로 일으킨 숙청.

    사사시킨다던 사람을 갑자기 참형시키거나, 반대로 참형시키려던 사람을 사사로 대신해주는 변덕.

    방금 정숙지처럼 무안만 당하면 다행이지만, 천거한 장수가 일군을 이끌다가 패퇴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면키 어려울 것이었다.

    “팔도에 장수라 부를만한 자가 진정 없는가?”

    “···첨지중추부사 유기창(兪起昌)이 무략으로 전대부터 이름을 날렸고 군사(軍事)에 신통하다는 평이 있었으니, 유기창은 어떠시옵니까?”

    마지 못했는지 영의정 성준이 유기창을 언급했다.

    “경도 알다시피 첨지는 노신이오. 예순이 훌쩍 넘었는데 어찌 무거운 갑주를 입히고 전장터에 내보낼 수 있겠소.”

    “···송구하옵니다.”

    “장수가 없으니 내 친정을 도모해봄은 어떻겠소들?”

    편전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임금의 친정이라니······.

    아무리 임금이 예측불허하고 말타기를 좋아한다지만 전쟁은 애들 소꿉 놀이가 아니었다.

    얼어붙은 분위기에 융은 한바탕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 농이오들, 농. 거, 진담과 농담들을 구분 못 하시오.”

    중신들의 표정은 흡사 ‘무슨 농을 그딴 식으로······.’ 라는 듯 했지만 융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허심탄회하게들 말해보오. 설령 단기(單騎)로 적진에 뛰쳐 나간다 한들 굴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겠소?”

    “무신으로는 전림(田霖), 여자신(呂自新)과 여윤철(呂允哲) 부자, 양관(梁灌) 황형(黃衡), 유담년(柳聃年), 장정(張珽), 이거인(李居仁) 등 8인이 있겠사옵고 문신으로는 유순정(柳順汀), 성희안(成希顔), 조숙기(曺淑沂), 신용개(申用漑) 이 4인이 쓸만 하옵니다.”

    “신용개는 귀양을 가 있지 않은가?”

    일전에 처벌을 받은 고관대작중 한 사람이었다.

    다만 무재가 쓸 만하다고 하여, 매를 때린 뒤 영광으로 유배 보냈었다.

    “저······.”

    “내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 하였으니 예판은 눈치보지 말고 말해보아라.”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신용개는 비록 대죄를 짓긴 했지만 일신의 무재도 뛰어 나거니와, 기품이 높아 백성들에게도 신망을 받는 인물이옵니다. 지금 그를 벌한다면 당장은 후련한 마음을 가지실지 모르겠사오나, 이미 서울에서 멀리 유배 보내 죄를 주었으니 본인도 깊이 반성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다시 불러 들여 소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어떨는지요?”

    다른 사람이 했다면 불호령부터 떨어졌을 일에 중신들은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임금의 충복으로 알려진 임사홍의 발언이었기에 내심 기대하는 눈초리로 융을 흘겼다.

    융은 짐짓 노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생각이 바뀐 듯 턱을 어루만졌다.

    “신용개가 원칙을 잘 따르긴 하지.”

    그 원칙이 언관으로 재직 시절 자신의 숨통을 옥 죄어서 문제였지.

    “그렇사옵니다.”

    “예판의 말대로 하는 게 좋겠다. 다만 죄인을 영광으로 유배 보낸 지 두달도 채 안 돼서 불러들이는 것은 우습기 그지 없으니, 도성에 들어올 때는 광희문을 통해 들어오도록 해라.”

    광희문은 흔히 시구문이라고도 불렸다.

    시체를 내보내던 문이 바로 시구문이었기 때문이었다.

    “필시 감읍에 감읍을 거듭할 것이옵니다.”

    “북정의 장수들은 예판이 천거한 이들 중에서 고르면 되겠고··· 도원수는 누가 좋겠는가?”

    임사홍이 영의정 성준을 흘깃거렸다.

    “영상께서 일전에 허종의 막하에서 부원수(副元帥)로 활약한 일이 있고, 또한 지난 날에는 북정 도원수로 활약을 떨친 일이 있으니, 제격 아니겠사옵니까?”

    “음. 영상, 어떻소? 맡아 보시겠소?”

    “하, 하오나 신은 이미 노구의 몸이 되었사온데 자칫 정벌군에 누가 될까 우려 되옵니다. 우의정은 어떻사옵니까?”

    우의정은 허침(許琛)이었다.

    좌의정이었던 이극균이 사사되고, 그 자리를 우의정이었던 유순이 옮겨갔고, 유순에게서 후임으로 추천 받아 우의정의 자리에 오른 지 한 달이 조금 못 되었다.

    “우상?”

    “신은 재주가 부족하니 소임을 다할지 우려되오나, 소임을 주신다면 마땅히 따르겠사옵니다.”

    “좋소.”

    융은 그 이후 전비 확충 문제를 논했다.

    ***

    “헉! 헉! 아오, 힘들다! 이런 걸 맨날 한다구요?”

    본격적인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되면서 수확이 시작 되었다.

    집에서 빈둥거리던 나는 와야 할 개똥이가 오지 않아 팔석 씨의 논을 찾았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이제 가을걷이 일손을 보태야 돼서 못 온 것이란다.

    학생은 부모의 일을 돕는 효도도 좋지만 공부해서 입신양명하는 게 곧 효도다.

    그런게 개똥이 놈이 공부 대신 부모의 일을 돕는 효도를 택하겠다는데 내가 어째?

    일손이라도 조금 보태면 오늘 일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날까 싶어 이렇게 일손을 보태고 있었다.

    내가 개똥이 공부 시키려고 별 짓을 다한다, 진짜.

    “당분간은 맨날 할 겁니다요.”

    그럼 나도 이 짓을 매일···?

    당장 개똥이 손 잡고 글공부 하러 가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리는 그때.

    새참이 왔다.

    새참은 소금간도 안 한 주먹밥과 미지근한 동치미가 전부였다.

    “근데 왜 벼들이 저렇게 균등하질 못 해요?”

    주먹밥을 앙 한 입 크게 베어물고, 논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태 궁금했던 것이기도 하다.

    내가 전생에서 본 논들은 대개 직사각형에 벼들은 줄지어 살랑거리는 형태였었다.

    그런데 여기 논밭들은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삐뚤빼뚤했다.

    내 질문이 어이가 없었는지, 새참을 들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폭소를 터뜨렸다.

    “벼를 처음 보십니까요?”

    “처음 본 건 아닌데 다들 삐뚤빼뚤하길래요. 원래 논은 좀 반듯하니 줄지어 있지 않나?”

    “그런 논이 어딨습니까요, 하하. 대감께서 말씀하신 논은 쇤네들도 직접 보진 못 했는데 모내기 한 논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요. 소인들은 볍씨를 직접 뿌려서 재배합지요.”

    “볍씨를 뿌린다구요?”

    아,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인가.

    국사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얼핏 났다.

    직파와 모내기법이었지, 아마?

    “모내기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아요? 왜 볍씨를 직접 뿌려서 재배합니까?”

    팔석씨 밭의 품을 도와주러온 마을 사람들은 역시나 폭소를 터뜨렸다.

    “헤헤, 대감마님 직접 안 뿌리고 하는 건 나라에서 금지하는 건데 모르세요?”

    옆에서 주먹밥을 맛나게 먹던 개똥이가 놀리듯 말했다.

    어린 개똥이에게 놀림 아닌 놀림을 받았지만 딱히 창피하진 않았다.

    사람이 모를 수도 있지, 뭐.

    “그랬냐?”

    “네. 나라에서 금지하는 거래요.”

    개똥이에게 시선을 거둔 나는 팔석 씨에게 물었다.

    “나라에서는 왜 금지 하는 겁니까?”

    “비가 제때 안 오거나, 둑을 제때 틀지 않으면 그 해 농사를 모두 망쳐버리니 금지하는 것입지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요. 둑이나 제방이 없는 곳이 허다합지요. 그런 곳은 정말 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니 노름짓도 아니고 어찌 한 해 농사를 담보로 도박을 하겠습니까요.”

    음. 이상한 일이다.

    내가 장곤 선생님께 배운 걸로는 시골 선비의 미덕은 향민들을 계도함과 동시에 수리(水利), 즉 물을 잘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고, 지방에 부임한 수령들 역시 수리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제방이 없는 곳도 허다하다니.

    나는 찬찬히 금석리의 형세를 살폈다.

    사실 금석리는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청계천이 흐르는 줄기 옆에 위치한지라 물을 끌어다 쓰기가 용이한 편이었다.

    “우리, 다음 농사는 모내기로 지을래요?”

    자기들끼리 잡담을 나누던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예?”

    “여기 바로 앞에 청계천··· 아니, 대천(청계천)이 흐르지 않습니까?”

    “그, 그렇습죠?”

    “여기에 둑을 조금만 파서 물을 끌어다 쓰면 효율적으로 농사 지을 수 있는데 뭐하러 비효율적으로 농사를 지어요? 강수를 말하셨는데 말했다시피 여긴 대천 물 끌어다 쓰면 되니까, 대천이 마르지 않는 이상은 끄덕 없잖아요, 둑만 파놓으면.”

    “그, 그래도 그건······.”

    형님께서 민택의 적몰한 땅을 다 주시면서 금석리 일대 역시 내 소유가 됐다.

    그 말은 민택의 땅을 부쳐먹던 금석리 사람들 대다수가, 내 소작농이 됐다는 말이었다.

    지금 나와 함께 새참을 들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 역시 내 소작농들이었다.

    “나라에서 엄금한 일입니다요. 하삼도에선 관의 눈을 피하거나 관에서 묵인해서 모내기 농사를 짓는다고 듣긴 했사온데 서울과 지척인 여기서 모내기 농사를 지었다가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경을 칠 겁니다요.”

    “나랏님께 허락만 맡으면 되죠?”

    “나랏님 허락도 허락이지만, 모내기로 농사 지었다가 한 해 농사 망치면 쇤네들은 쫄쫄 굶습니다요, 대감.”

    “그건 걱정마세요. 모내기법으로 농사 지었다가 그 해 농사 망치면 제가 예년에 여러분들이 부치는 땅에서 발생하는 곡식량 정도로 보상해드릴 테니까요.”

    “그, 그렇다면 마다할 필요가 없긴 하온데······.”

    ***

    금석리에서 시범적으로 모내기 농사를 짓겠다는 부탁을 형님은 흔쾌히 들어주셨다.

    형님의 허락까지 맡았으니 모내기 농사를 지어야겠지만, 일단은 수확이 먼저였다.

    나는 수확기 동안 집에서 빈둥거리기 보다 금석리에 나가서 일손을 도왔다.

    그러는 한 편, 사치를 장려(?) 하는 일에 대한 고민도 계속했다.

    고민은 수확기가 끝나고, 동짓달(11월)이 되어 동지사(동지에 중국에 보내던 사신)들이 출발하던 때까지 이어졌다.

    할 수 있는 게 많지가 않았다.

    조선이 교역국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산업 인프라도 전무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양잠이 떠올랐지만, 비단은 중국걸 제일로 친다는 말에 관뒀고, 당초 생각한 대로 비누를 사업적으로 구상했다.

    크게 어렵진 않았다.

    동짓달이 되기까지 혜민서에서 접종 받은 사람들은 6만명이 넘어갔다.

    그만큼 천연두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증거였다.

    20세기 대한민국의 정부가 반공과 반일을 국시로 삼아, 이득을 취했던 것처럼 나는 이 천연두를 이용해야 했다.

    천연두를 이용해먹는 방법은 종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비누가 있었다.

    천연두에 잘 걸리지 않으려면 비누로 박박 씻어야 한다는 언플(?)을 할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비누를 생산할 공장 부지를 구했다.

    부지는 금석리에서 가까운 개석 바위라는 곳에 구했고, 사비를 들여 건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지가 절반쯤 완성되었을 때.

    언 땅이 슬슬 녹는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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