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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72화 (72/365)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72화>

근데 사치를 어떻게 키우지?

***

형님의 반응에 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더 쉽게 설명을 드렸다.

지금 조선에서 소비 활동을 할 수 있는 인구래봐야 1할도 채 안 되는 실정이었다.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이 경제 활동을 할 순 없으니까.

그런데 그 1할도 채 안 되는 소비 인구가 사치를 부리기는(?) 커녕 멀리 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도 중용을 강조했다.

본의 아니게 조선판 수험생이 돼서, 머리에 먹물 들어간 티를 좀 내자면 공자께서는, 군자는 중용을 몸소 실행하고 소인은 중용을 어긴다고 하셨고 주자는 중용을 치우치거나,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평상의 이치로 꼽았었다.

뭐, 여기서 말하는 중용은 관계에서 빚어지는 중용이지만 어쨌든.

이놈의 나라는 중간이란 게 없다.

겉으로는 사치를 멀리하고 가까이서 보면 집안에 금은 보화가 한가득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뭐해?

돈이 집 밖으로 돌질 않는데.

가장 큰 문제점은 검소함이 선비의 미덕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21세기로 비교하면 지금의 조선은 대기업이라 볼 수 있는 기업들이 경기가 조금 어렵다고 해서 예산을 감축하고, 투자 자체를 금하면서 돈을 꽁꽁 숨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조선은 농업 국가라서 21세기 대한민국과 1:1로 비교하기는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가면?

그래.

자급자족하면서, 가끔 흉년이 들면 아사자도 얼마씩 생기면서 그냥 저냥은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건 형님께서 말씀하신 ‘부강’과는 거리가 멀다.

“이해 되세요?”

쉽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형님은 이해를 못 하신 것 같다.

‘괜히 말했나.’

복잡미묘한 표정을 보니 괜히 말했나 싶다.

“한데 진성아.”

“네?”

“네 말대로 사치를 키워서 이 소비를 할 수 있는 사족들이 사치품을 마구 사들인다고 치자꾸나. 그런데 어찌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이냐? 그들은 결국 그들의 농토에서 나온 소출, 그러니까 재화로 사치품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냐?”

“사치품이 무조건 수입품이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여기서 사치품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물건은 문방구다.

그것도 중국제 문방구.

21세기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적힌 물건은 싸구려 이미지가 있는데 여기선 정 반대인 것이다.

“어인 말이냐?”

“사족들이 사치를 억제하지 않고 남 눈치 안 보면서 마음껏 소비 활동을 하면 농사만 짓던 백성들이 뭘 할까요? 비녀도 만들고, 예술품도 만들고, 자기도 만들고, 그 사람들 입맛에 맞는 사치품을 만들어 팔겠죠?”

“그럴 테지.”

“그럼 그 사람들은 농사가 아니라 상업과 공업에만 종사를 할 테구요.”

끄덕.

“이렇게 나라 안의 경제가 조금씩 활성화 되면 당연히 남는 물건들이 있을 겁니다.”

“남는 물건? 사치를 키우면 사족들이 모두 사들이지 않겠느냐?”

“지금은 수요가 3에 가까워서 시장에 나오는 5의 공급을 메우고도 남겠죠. 하지만 제가 말한 것처럼 조금씩 시장 경제가 커진다면 수요는 10이 될 거고, 공급은 20으로 계속 늘어날 겁니다. 이렇게 되면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 해서 헐값으로 처분되거나, 그래도 남게 될 건데 제가 말씀드린 남는다는 게 바로 이런 거예요.”

“흐음. 한데?”

“지금부터가 중요하죠.”

“지금부터?”

“밖에다 내다 팔아야 됩니다.”

“밖이라면 왜국이나 대국 말이냐?”

“네. 왜국과 대국 뿐만이 아니라 안남(베트남)도 갈 수 있으면 안남도 가고, 서이(서양 오랑캐)랑도 접촉할 수 있으면 서이랑도 접촉해서 자국에서 남는 물건을 팔아야죠. 그 대금으로 상대는 또 다른 사치품을 가져오게 될 테구요.”

역시 이해가 안 되시는지 형님은 눈을 껌뻑거리신다.

“그렇게 돼서 백성들이 모두 상공업에 종사하면 농사는 누가 짓느냐?”

“모두가 상공업에 종사하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위에만 머물러 있던 부가 조금씩 아래로 향한다는 뜻이니, 그 사람들은 곡물을 사먹을 수도 있는 거구요. 쌀만 먹던 사람들이 이제는 생선과 고기도 먹게 되겠죠. 그러다 보면 식사량도 줄을 테구요.”

“식사량이 줄어?”

너무 나갔나 보다.

긁적긁적.

“너무 어렵나요?”

“어렵구나.”

“못 들은 걸로 하실래요?”

도리도리.

“네 말대로라면 나라 안에 재화가 쌓이는 것인데 어찌 못 들은 걸로 하겠느냐? 일단, 네 말은 사치를 장려하고 무역을 장려하란 뜻이냐? 나는 그리 이해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네, 맞아요.”

나는 그 이후로도 조선의 경제를 논하다가, 윤대(일종의 서면 보고)가 있다는 상선 아저씨의 말에 편전을 빠져 나왔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형님께는 다음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나도 피곤하다.

***

때아닌 경제학 강의(?)에 몸이 노곤해질대로 노곤해졌지만 당초 형님을 만나기로 했던 게 비격진천뢰 때문이었으니 궐을 나오자 마자 군기시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군기시.

“뉘십니까?”

군기시에 들어오면서부터 들리는 여러 소리들에, 자연스레 위축되어 있던 나는 한 켠에서 걸걸한 음성이 들려오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 것처럼 화들짝 놀랬다.

“흡.”

근육질의 아저씨다.

3년간 짧게나마 헬스를 병행했던 내가 알기로는 분명 근육을 효과적으로 키울 수 있는 웨이트 트레이닝은 20세기 말에나 나왔을 텐데도 불구하고 우락부락한 게 혹시 로이더(스테로이드 복용자)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다만 키는 엄청 작았다.

152~155cm?

땅딸막한 키에 우락부락한 근육질 체형을 보니 중학교 시절 잠깐 돌려봤던 판타지 소설의 드워프가 연상된다.

“아. 대군 마마이시옵니까?”

“네.”

“승정원에서 연통을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지요. 아, 소인은 파진군(화포장)들을 통솔하고 있는 근사(종7품의 잡직) 김갑동이라고 하옵니다요. 듣자니 병기를 만들고 싶으시다던데요.”

“네, 뭐.”

“아, 이쪽으로 오시지요.”

나는 드워··· 아니, 갑동 씨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 비슷한 곳으로 이동했다.

사실 집무실은 아닌 것 같고 휴게실 비슷한 느낌인데, 전혀 휴게실 같진 않다.

오히려 창고 가까워보인달까.

“어떤 병기를 이르심입니까?”

갑동 씨는 거두절미하고 내가 만들고자하는 무기에 대해 물었다.

“겉은 둥근 박하고 같은데요.”

슥삭.

“그 안에는 화약하고 쇳조각? 같은 게 들어있는 형태입니다.”

“화약하고 쇳조각이요.”

“네. 도화선은 따로 있는데 여기에 불을 붙이면 터지는 겁니다.”

“질려포통 아니옵니까?”

질려포통이 대체 뭔데 다들 비격진천뢰 얘기하는데 질려포를 언급하는지 모르겠다.

“질려포통이랑은 좀 다릅니다. 이건 화포로 쏘아 올리고, 도화선의 길이에 따라서 터지는 시간을 조절 할 수 있게 만들거든요. 만들 수 있을까요?”

내가 말하고도 무안했다.

단서가 적어도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무슨 공대생도 아니고, 잠깐 검색해서 뇌리에 남아있는 비격진천뢰에 관한 건 이게 전분데.

하지만 다행히도.

“대충 이런 형태이옵니까?”

갑동 씨가 그림을 내밀었다.

내 설명을 들으면서 대강 쓱싹거린 그림이었다.

“네, 맞아요. 이렇게 생겼습니다.”

“질려포와 원리는 흡사한 듯 하니 크게 어렵진 않을 것 같사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소인이 연통을 드리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럼 부탁좀 드릴게요.”

***

‘사치라······.’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저녁밥도 거른 채 사색에 잠겼다.

형님께 나라의 재화가 돌기 위해서는 사치를 장려하라고 했지만, 사실 그게 쉽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사람들의 눈총 때문에?

아니.

사치를 부릴만한 물건이 별로 없다.

기껏해봤자 중국제 문방구나 또는 병풍, 비단옷, 책 정도인데 이런 것들은 한 번 사면 최소한 몇 년은 쓴다.

한 번 사 놓으면 돈 쓸 일이 전혀 없다.

당장 나만 해도 그래.

전생으로 치면 재벌집 막내아들과 같은 포지션이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방탕하게 놀거나,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제한적이다.

여기서 뭐 페라리를 뽑을 수가 있어, 건물을 몇 채 살 수를 있어, 골프를 칠 수가 있어, 명품을 컬렉션 할 수가 있어, 신발을 수집 할 수가 있어?

하다못해 돈이 많으면 뭐해, 집도 마음대로 못 꾸미는······.

‘집?’

사랑방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그러고는 마당을 둘러봤다.

휑해도 너무 휑하다.

집이 수십칸이면 뭐하나, 조경이랄 게 전혀 없는데.

‘정원 같은 거 꾸밀 수 있게 조금만 풀어줘도 되겠고.’

아닌 게 아니라 여긴 법전에 딱 명시되어 있다.

이 제약만 좀 풀어줘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건덕지가 하나 더 늘 것이다.

‘그 다음은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내 눈에 비누가 들어왔다.

비누!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당장 이거 하나 만드는 데에만 어마무시한 돈이 들어간다.

‘자, 비누.’

까먹을지도 몰라서 조경과 비누를 메모해뒀다.

그 뒤로도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책이 떠오르긴 했지만 책은 부피도 크고 무게도 너무 나간다.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책들이라야 팔릴 텐데, 인력으로 어느 세월에, 책을 다 가져온단 말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늦은 저녁을 들었다.

뭐, 이것도 될대로 되겠지.

***

“전쟁을 놀이라 생각하시는 건지··· 참.”

검댕이 얼굴 한가득 묻은 갑동의 투덜거림에 휘하에 있는 파진군 영종이 피식거렸다.

“그래도 일가를 이루었는데 설마 놀이라 생각하시는 거겠소. 게다가 종두도 대군이 만들었다지 않소. 형님도 종두 맞아 놓고는······.”

“크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철부지 같으시다.”

“다 전쟁터 나가서 도움이 되려고 하는 거 아니겠소, 도움이.”

영종의 말에 갑동은 엊그제 군기시를 찾은 그 철부지 대군이 전장터에 나가게 됐다는 걸 상기했다.

“그랬었지?”

“명색이 종친이 참전하는 전쟁인데 창칼만 달랑 들고 오랑캐 놈들 토벌하긴 그랬나 보지. 뭐, 덕분에 우린 퇴청도 못 하고 있소만.”

“비격진천뢰인지 뭔지 하나 뚝딱 만들어 드리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려나?”

“콩고물? 떨어질지도 모르지. 왜, 작년에도 전하께서 파진군들한테 백미 1석씩 하사하시지 않으셨소.”

“백미 1석을 누구 입에 갖다 붙여?”

“그래도 명색이 전하께서 하사하시지 않으셨소, 전하께서.”

“우리 파진군들 대우가 이리 박하니, 석우나 방동이나 최 씨 할배도 다 관두고 떠난 거 아니냐. 일도 고되, 변경에서 일 터지면 찾고 보는 게 파진군 아니냐.”

변경에서 변고가 생기면 파진군들은 변경으로 파견되는 일이 잦았다.

안전한 성곽이나 진영에 있기 때문에 오랑캐들과 직접 칼을 맞대는 병사들보다는 사정이 나았지만, 가끔 눈 먼 화살이나 오랑캐에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꼭 파견 나가지 않더라도 파진군의 소임 자체가 화약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폭사하는 일도 왕왕 있었으니, 파진군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내놓고 산다는 소리나 진배 없었다.

그런데 대우마저 박하니, 작년에만 그의 휘하에 있던 파진군 둘이 그만뒀다. 재작년엔 화약고가 터지면서 휘하 파진군이 폭사하는 일도 있었다.

위무 차원에서 파진군 전원에게 백미 1석씩 하사해주셨지만, 그걸 누구 입에 갖다 붙인단 말인가.

그저 전하께서 하사해주셨다는 데에 의의가 있을 뿐, 생계에는 하등 도움도 안 되는 재물에 지나지 않았다.

“왜, 형님도 관두시게?”

“관두기는. 내가 관두면 처자식은 누가 먹여 살린단 말이냐?”

이게 현실이었다.

평생 검댕을 묻히고 살아온 갑동은 당장 일을 관두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을 관둔 최씨 할 배는 노령으로 관둔 셈이었고, 석우나 방동은 피붙이가 남는 땅을 떼어줘서 관둘 수 있었다.

“괜히 우울해지네.”

“쉰소리 늘어놓지 말고, 대군마마 놀이감이나 만들자, 이놈아.”

“예예, 여부가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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