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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71화 (71/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71화>

    나라를 사치에 물들게 하십시오

    ***

    “화거(火車)를 말씀하십니까?”

    자진 퇴청하고 후다닥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억수 씨를 불러다 앉혔다.

    아이권관 직에 제수 받기는 했지만 아직 몸을 추스르지 못 한 천동 씨와 다른 대립군들에, 억수 씨 역시 우리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억수 씨를 불러다 앉힌 나는 화거라는 이름이 생각이 안 나 장장 30분이 넘도록 내가 알고 있는 화거의 이미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드디어 30분째 설명하던 때.

    억수 씨의 입에서 화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네네, 화거요. 화거.”

    “진작 화거라고 말씀하셨으면 알아 들었을 텐데 소인이 다 송구하옵니다.”

    화거를 모르니 대강 이미지만 설명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아, 내가 화거를 알고 있는 건 영화 《신기전》덕이다.

    앞전에 한 달 좀 못 되게 썸 탔던 수영이랑 《간신》을 보기 일주일 전에 자취하는 수영이 집 가서 보게 됐다.

    물론 영화보다는 수영이의 허여멀건 다리만 봤지만, 본 건 본 거라서 무슨 내용인지는 안다.

    모니터에서 화차의 위력이 뿜어져나오니 수영이 다리를 보던 내가 조선에도 저런 무기가 있었어? 신기해하면서 끝까지 봤거든.

    “하온데 화거는 어찌?”

    “아이진에도 화거 있었나요?”

    “화거요? 아니요. 아이진에는 없었습니다. 거진(절제사가 머무는 진영)에는 배치가 됐사온데, 아이진 같은 제진(작은 진영)에 까지는 배치 될 수가 없지요. 한데 그건 어찌 물으시옵니까?”

    억수 씨의 말에 나는 똥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표정 관리를 하려고 해도, 도저히 안 된다.

    전쟁터에 나간다니··· 당장 북한과 대치 중이었던 21세기에서도 전쟁은 나와 관계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건 군대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은 70년 전 6.25 전쟁이 바로 전쟁이었고, 가장 최근의 전쟁은 월남전이 전부였다.

    당장 북한의 위협과 도발이 계속 되던 21세기에서도 생각지 못 한 전쟁을, 전생에서 개똥 밭에 구르다 현생에서 대군이란 꽃밭을 걷게 돼서 하게 됐는데 표정 관리를 어떻게 해?

    “저, 이번에 전쟁 나가게 생겼거든요······.”

    “그게 참말이었사옵니까?”

    “뭐가요? 전쟁요?”

    “예. 도성에 소문이 파다하더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누구도 생각지 못 할 일이거늘······.”

    억수 씨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탄을 터뜨렸다.

    그에 나는 그게 아니라는 듯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래서 말인데요. 화거가 거진에만 있다고 하셨죠?”

    “예. 제진에 까지 그런 병기가 배치 됐다면 김운율도 도망하진 않았을 것이옵니다.”

    “그럼 억수 씨는 화거의 위력은 직접 보진 못 한 거네요?”

    “웬 걸요. 소인도 대립질만 10년이 넘도록 했사옵니다. 제진에만 배치가 됐었겠사옵니까? 9년 전인가요. 회령진에서 대립질 하던 때였지요. 그때 오랑캐 놈들이 침범해 왔사온데, 성 앞에 줄지어 늘어선 게 어림잡아 기천은 되어 보였습지요. 첨사께서 화거를 쏘아 올리라 명하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랑캐 놈들이 픽픽 쓰러지지 않겠습니까? 그러고는 놈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갔습지요.”

    “여진족하고 싸울 때, 화거가 충분히 효과가 있다는 말씀이네요?”

    “예. 소리도 위협적인데다 화살비를 퍼부으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럼 공성전말고 평지 같은 데서 회전(會戰)할 때도 쓸모가 있을 것 같으세요?”

    곰곰이 생각하던 억수 씨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를 말입니까. 말씀드렸다시피 그 소리가 하도 위협적인지라, 이 소리만으로도 적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데에 충분할 것입니다.”

    결심했다.

    내 무슨 수를 쓰더라도 화거를 가져가야겠다.

    부족하면 내 사비로라도 만들어서.

    하지만 화거가 끝은 아니다.

    화거 설명만 들을 거면 내가 왜 바쁜(?) 억수 씨를 불러다 놨겠나.

    “억수 씨 혹시 군기시(軍器寺)에 아는 사람 있어요?”

    “변경에서 대립질 했던 소인이 군기시에 안면이 있는 사람이 어찌 있겠사옵니까. 하하.”

    “그래요.”

    “어찌 그러시옵니까?”

    “제가 좀 만들고 싶은 무기가 있는데, 제가 손재주는 영 꽝이라서 군기시 장인들 도움좀 받고 싶어서요.”

    “흠. 그런 거라면 전하께 직접 상주(임금께 아룀)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전하께요?”

    “예. 대감께서 어떤 병기를 만드시려는지 소인이 알 까닭은 없습니다만, 실전에서도 아군에 유익한 병기라면 전하께서 어찌 마다하시겠습니까?”

    듣고보니 그렇다.

    나는 무기 만들겠다고 운운하는 거 자체가 약간 월권 같은 행위라 여겨져서 말씀 안 드린 건데 생각해보니, 군기시 장인을 통해서 은밀하게 ‘그걸’ 만드는 게 더 다크다크한 일이다.

    ‘오늘 전하께서 바쁘시니까 내일 아뢰러 가야지.’

    그렇게 말한 나는 다시 억수 씨를 바라봤다.

    “억수 씨. 부탁이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저 칼 잡는 방법좀 알려줄래요?”

    “카, 칼 잡는 방법이요?”

    실소를 머금고 되묻는 억수 씨에 나는 얼마 전, 혼자 설치다가 부상 당한 손을 내보였다.

    “혼자서 하려니, 애들 전쟁 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좀 배우고 싶어서요. 그래야 만에 하나라도 여진족 맞딱뜨리면 써먹을 수 있죠.”

    “어려운 일도 아닌데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는 억수 씨에 그 날부터 나와 억수 씨는 특훈(?)에 돌입했다.

    ***

    다음 날.

    전 날 특훈의 여파로 근육이 찢어질 듯한 통증과 함께 강녕전을 찾은 나는 전하를 알현했다.

    “군기시?”

    “네?”

    “군기시는 어찌?”

    “만들고 싶은 무기가 좀 있는데, 군기시 장인들에게 설명하면 뚝딱 만들지 않을까 싶어서요.”

    “어떤 무기인데 군기시를 찾으려는 것이냐?”

    “이름하여······.”

    “이름하여?”

    “비격.”

    “비격?”

    “비격진천뢰······.”

    “비격진천뢰?”

    “네.”

    “어찌 쓰임이 있는 무기인고?”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비격진천뢰의 효능을 설명했다.

    역알못인 내가 비격진천뢰를 알고 있는 건, 게임 덕분이다.

    소싯적에 1년 정도 했던 《거상》이라는 게임에 나오는 스킬이었는데 스킬이 임팩트가 있어서 검색하면서 알게 됐다.

    “질려포(蒺藜砲)와 비슷한 원리인가?”

    “지, 질려포요?”

    “그래, 질려포.”

    애석하게도 비격진천뢰는 알지만 질려포는 뭔지 모른다.

    질려포는 거상에 안 나왔거든.

    “근데 어찌 그 무기를 만드려는 것이냐?”

    당연히 조금이라도 더 발전된(?) 첨단 무기가 있어야 내가 부상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지만, 내 목숨줄 때문에 만든다고 하면 없어 보여도, 엄청 없어 보이니까.

    “제가 이번 전쟁에 나가게 됐는데 조금이라도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창과 칼보다는 화약 무기가 제격이죠.”

    “흠. 네가 말한 그 비격진천뢰라는 무기가 확실히 살상력은 커보이니 군기시 장인들이 제대로만 만들면,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겠구나. 내 따로 군기시에 일러둘 터이니, 시간이 날 때쯤 찾아가보거라.”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하하.”

    목적은 달성했지만 목적만 달성했다고 당장 군기시로 뛰쳐나갈 순 없었다.

    나는 형님과 함께 다과를 들면서 담소를 나눴다.

    별 내용은 아니었다.

    형님은 주로 요새 시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느니 오랜만에 정사를 돌보는 일에 탄력이 붙었기 때문인지 부쩍 힘에 부친다느니··· 말그대로 자잘한 대화였다.

    나?

    나는 뭐, 전쟁터 나가니 억수 씨한테 직접 칼 쓰는 법좀 배우고 있다니 군기시 장인들한테 비격진천뢰 설명하면 후딱 만들 수 있냐니, 말이 나온 김에 억수 씨를 부관으로 데려가도 되냐니··· 그런 시덥잖다면 시덥잖은 주제들이었다.

    시덥잖은 대화와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진 건 형님이 ‘치국’에 대해 운을 떼면서 부터였다.

    “임금은 구언(임금이 신하에게 조언을 구하던 일)을 널리 구한다 하였으니 너에게 치국에 대한 구언을 받고 싶구나.”

    “치국이요?”

    “내 너를 한 사람의 선비라 하였으니 혈육에게 치국을 물은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선비에게 치국의 안을 묻는 것이다. 내 어찌 하면 백성들이 굶지 않고 또한 나라가 부강해지겠느냐?”

    실실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한결 무거워진 분위기와 진지해진 형님에 갑자기?

    라는 부사(副詞)가 생뚱맞게 떠올랐다.

    “구언이라 하니 어려운 것이냐? 너무 어렵게 생각지 말거라. 사람이란 본시 각기 다른 생각을 품고 있으니, 중신들의 생각 말고 너의 생각이 궁금한 것 뿐이니.”

    “중신들은 뭐라는데요?”

    형님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늘 듣고, 또 듣고, 들었던 말만 하지, 별 게 있겠느냐.”

    늘 듣고 들었던 말이라니, 중신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겠다.

    ‘뻔하지.’

    금욕을 강조하고 백성들 계도하고 또 나라에 군자를 키워 여진족이나 왜구 같은 오랑캐들도 우리의 문물에 감화되도록 하고··· 등등.

    말대로만 되면 나라가 왜 가난해?

    그럼 공산주의는 뭐, 유토피아였나?

    “사치를 막을 게 아니라 키워야죠.”

    내가 경제는 잘 모르지만, 이런 농본 국가가 힘을 기를 수 있는 일은 사실 많지 않다.

    그런데도 꼽자면 ‘일단은’이라는 전제를 붙여 사치를 키우는 일이다.

    물론 이건 조선에만 한정된다.

    “사치를 키워?”

    지금껏 듣던 말과는 상반되는 말에 귀가 솔깃함을 넘어 어이가 없으신지, 형님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간다.

    나는 차를 홀짝거리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네.”

    “중신들은 모두 백성들이 사치를 알면 나라가 가난해지고, 나라가 가난해지면 곧 파국이니 나라가 부강해지는 일의 제일 중요한 것으로 금욕을 강조했다. 하지만 너는 어찌 사치를 키운단 말했더냐?”

    “조선에 농토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얼마나 되나요?”

    “노, 농토? 자작농 말이냐?”

    “네.”

    “정확히 모르겠구나.”

    “지주는 얼마나 되나요?”

    “사족이라 함은 보통 지주를 말하니 사족의 8~9할을 지주라 부를 수 있을 테지.”

    “우리나라 농토 대부분은 전하께서 말씀하신대로 지주들이 경영하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예컨대 우리나라 전 농토에서 나오는 쌀이 100석이라고 가정을 해볼게요.”

    끄덕.

    “근데 이 100석을 소수인 지주들이 적게는 6할에서 많게는 7할을 가져갑니다.”

    국민총생산(GDP)에서 적게는 6할 많게는 7할을 일부 기득권층이 가져간다는 건 빈부 격차 수준으로 말해선 안 되는 문제였다.

    사회의 구조가 언밸런스 하다는 뜻이니까.

    아, 물론 전근대 국가라는 점은 필히 감안해야 하지만.

    “이 말은 특정 가문, 특정 인물, 특정 이해 집단에 부가 쏠린다는 거겠지요?”

    “음. 그렇겠지. 당장 백성들은 올 한 해만 흉년이 들어도 내년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드니.”

    “네. 근데 이 특정 가문, 특정 인물, 특정 이해 집단이 전국민··· 아니 온백성 중에 몇 할이나 될 것 같으세요?”

    “1할? 어쩌면 그 이하 일지도 모르겠구나.”

    형님은 1할이라고 하셨지만 난 그 이하라 생각했다.

    많이 쳐줘야 1할(10%)고 어쩌면 5푼(5%)나 될까 말까한 사람들이 국민총소득과 총생산의 7할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국가에서 힘을 기를 수 있는 일?

    “현실이 그런데 사치를 억제 시키면 될까요?”

    내 질문이 어려웠나?

    형님은 이해가 안 가시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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