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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68화 (68/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68화>

    츤데레 장곤 선생님

    ***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 선생님.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어이가 없잖아요, 어이가.”

    “맹자께서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 하셨으니 이는 곧······.”

    복습 해두길 잘 했다.

    아는 단락이 나오자, 나는 냉큼 선생님의 말을 받았다.

    “군자삼락.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첫째는 부모님과 형제가 무고한 즐거움이요, 둘째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사람에 부끄럽지 않은 즐거움이요, 셋째는 천하의 뛰어난 인재를 가르치는 즐거움이다.”

    “잘 아시는군요.”

    “앙불괴어천(仰不傀於天), 부불택어인(俯不澤於人). 저는 이 두번째 구절이 제일 마음에 와닿는데, 선생님은 어떠세요? 이 구절, 편전에 있는 분들한테 적용하면 죄다 하늘에 부끄러워해야 할 걸요? 안 그래요?”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인개유불인인지심(人皆有不仁人之心)······.”

    “아, 선생님!”

    “후······.”

    여태 무시로 일관 했던 장곤 선생님이 짧은 한숨과 함께 책을 덮으신다.

    드디어!

    나는 똘망똘망 눈을 빛내며 장곤 선생님의 입에 시선을 집중했다.

    부디 선생님도 나와 같은 생각이기를!

    “대군마마.”

    “네!”

    “제가 누차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대군께서는 특히 종사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구요. 하물며 어찌 편전에서 종사를 논하셨습니까. 대군께서 어떤 지위에 있으신지 잊으셨습니까?”

    안다.

    아주 잘 알지.

    계승 서열만 따지면 세자 다음일 거다.

    역모라는 가정 하에서의 계승 서열을 생각하면 1순위고.

    역적들이 당연히 형님 전하의 계통인 세자와 창녕대군을 옹립할 리는 없으니, 성종의 정통성을 겸한 나를 추대할 게 안 봐도 블루레이거든.

    그 말은 달리 말하면 구설수에 연루되면 빼도 박도 못 한 역적으로 전락 할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장곤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싶었지만 선생님과 함께 온갖 경전과 역사서를 공부하다 보니 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의외로 역사 속에선 왕좌를 위협하는 대군 혹은 황자로 천수를 누린 사람보다, 역적이 돼서 단명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거든.

    그래서 그런지, 장곤 선생님은 내가 조금만 이상 행동(?)을 보일라치면 ‘종사에 관여하셔서는 안 됩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라서 들을 때 마다, 물론이죠 하고 넘어갔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반박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근데 제가 안 나설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니까요? 제가 안 나섰으면 그 영감님들 기세가 등등해서 ‘아니 되옵니다, 전하’만 외쳐댔을 걸요?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명색이 나랏일 하신다는 분들인데.”

    “후··· 나서신 결과는 무엇이옵니까?”

    “겨, 결과요?”

    장곤 선생님이 방안을 둘러보며 어깨를 으쓱거리신다.

    “근신형 아니십니까.”

    “···”

    팩력배가 따로 없으시다······.

    선생님의 말대로 나에겐 근신형이 떨어졌다.

    학교 다니는 학생으로 치자면 일주일~한달 화장실 청소 정도?

    “그나마 전하께서 마마를 총애하셔서 이 정도지, 아니 었다면 어찌 됐을지 모릅니다. 옛날에 양녕대군이 횡행 할 수 있었던 것은 임금들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인데, 다른 대군들의 삶을 살펴보소서. 누가 양녕대군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횡행한 자가 있었사옵니까?”

    음.

    ···나?

    라고 말하면 옆에 있는 등편(말채찍)으로 한 대 맞을 것 같다.

    “···없었죠.”

    “대군께서는 항상 몸가짐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어제 편전에 드셨던 분들은 모두 노신입니다. 나라에 이바지한 공로가 있는 분들이고, 모두 나라를 이롭게 하려는 데 뜻이 있으신 분들이란 말입니다. 그런 분들 앞에서··· 특히 어전에서 태평성대를 운운한 건 경솔하신 행동입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경을 치는 정도론 안 끝났을 겝니다.”

    “···알죠.”

    조금 서운하다.

    나라에 이바지한 공로가 있으면 뭐, 매국노도 공신인가?!

    라고 말하고 싶지만 역시 옆에 있는 등편으로 한 대 맞을 것 같다.

    “그래도 뭐······.”

    “···?”

    “일화를 듣고서 조금은 통쾌했습니다.”

    반색.

    활짝 웃은 내가 말했다.

    “그죠? 선생님도 같은 생각이시죠?”

    피식.

    “으스대지 마십시오. 강론 계속하겠습니다.”

    ***

    그 날 밤.

    이장곤의 저택.

    형형색색의 도포와 답호를 입은 청년들이 사랑방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상석에는 장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의 표정은 어딘가 심각했다.

    “그럼 대군께서 하신 말씀들이 모조리 틀렸다는 말인가?”

    “금헌(이장곤의 호). 그 의미가 아님을 알잖는가.”

    “노신을 호통치는 모습은 무례라면 무례라 할 수 있네. 하지만 옛말에 군자라면, 삼척동자에게도 배울 게 있으면 스승으로 모시라 했고, 한낱 밭 가는 농군에게도 배울 게 있다면 마땅히 스승의 예를 갖춰 대하라 하였네. 하물며 우리 스승님께선 어쩌셨는가?”

    청년들은 모두 장곤의 동문(동기)들로, 스승은 무오사화에 연루된 김굉필이었다.

    “못 질 하는 목수나 대천(청계천)에서 빨래하는 아낙에게도 배울 게 있다면 그들을 일사(逸士, 세상을 등진 선비)라 여기고 마땅히 가르침을 전수 받으라 하셨었네. 정녕 대군께서 하신 말씀에 틀림이 있었던가?”

    장곤의 말에 그 바로 아래 앉아 있던 청년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네. 틀림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네. 다만 정책이 과격하다는 말일세. 사족으로 하여금 전비를 마련하라 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가? 의사(뜻있는 선비)들은 동의할 테지만, 요즘 세상의 형편을 헤아려 보시게. 어디 뜻있는 선비들이 있던가? 오히려 잘 난 선비는 시샘하여 어떻게든 고꾸러뜨리려는 모리배들이 넘쳐나는 세상일세.”

    “···”

    “특히 우리는? 사족들에게 밉보인다면 사문이 함께 연좌되어 화를 입을 수 있음일세.”

    “모재(김안국의 호). 하면 자네는 나라가 위급에 처한대도 선비의 탈을 쓴 모리배들의 눈치만 보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심산인가?”

    “어찌 그리 해석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장 칼을 거꾸로 쥐고라도 외적을 막을 걸세.”

    그 말에 장곤은 더 답답하다는 듯 서안을 가볍게 내려쳤다.

    “그런데 어찌 모리배들의 눈치만 보자는 것인가? 외적에게 침입을 받아야만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것인가? 저 옛날 송이 어찌 망했겠는가? 저 옛날 주나라가 어찌 망했겠어? 전하의 위엄에 압도된 일부 신하들이 지금이 바로 태평성대라 말하네. 하지만 과연 지금이 태평성대인가?”

    “···”

    “위로는 오랑캐가 변경을 침탈하고 아래로는 왜구가 말썽을 일으키니 우리 삼한(조선)의 역사에 이처럼 혼란한 적이 또 없었네. 태조대왕께서 회군하실 적에 과연 어떤 마음으로 말머리를 돌리셨겠는가?”

    “···”

    “대군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네. 무릇 부패한 나라는 오래가지 못 하고, 부패하여 오래가지 못 한 나라는 결국 분열하네. 삼한의 일국이었던 백제국을 떠올려보게. 백제국의 인민들과 사족들은 그 영화가 수백년 지속될 줄 알았지마는 결국 그 말로는 비참했네. 사족들의 분열과 본인은 절대 희생 할 수 없다는 이기적인 마음에 나라가 결국 망하지 않았나?”

    잠자코 장곤의 말을 듣던 김안국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어쩌자는 말인가?”

    “모재.”

    “말씀하시게.”

    “자네에게 묻겠네. 사족에게 전비를 걷자는 말이 과연 얼토당토 않은 말이었나?”

    “그게 어찌 얼토당토 않은 말이겠나. 다만 실효성이 없다는 게지.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로 인한 국론의 분열일 뿐일세. 그게 아니라면 백번 지당한 게 사족들로 하여금 전비를 걷는 일이지.”

    “자네의 말이 맞네. 우리 나라의 사족들을 보시게. 대군께서 말씀하신대로 의무는 지려하지 않고 권리만 누리려 하고 있음일세. 이들을 배척하는 것이 선비의 도리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썩고 곪아버린 부분은 파내자는 의미이니 이것이 어찌 그릇된 일인가? 그런 의미에서······.”

    “···?”

    “연명(여러명이 서명한 상소)을 올리세.”

    “여, 연명? 금헌. 지금 같은 시국에 함부로 연명을 올렸다가 어찌 되는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아직 숙청의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여차하면 무오년(무오사화)의 일로 연좌 될 수도 있었다.

    그럼 정말 사문 전체가 멸문 당할지도 몰랐다.

    물론 안국은 이게 겁나지는 않았다.

    스승님은 언제나 의로운 일이라면 죽음을 망설일 필요가 없다 하셨으니, 담담하게 일을 받아들이실 터였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선비의 씨가 말라버릴지도 몰랐다.

    “전하께 힘을 실어드리는 일인데 전하께서 어찌 우리를 벌하시겠는가? 자네는 전하께서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점을 걱정하네만, 전하께선 총기가 남다른 분일세. 세간에는 전하의 총기가 흐려졌다 하네만, 총기가 흐려지신 분이 어찌 노신들을 숙청할 수 있으셨겠는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많은 노신들을 숙청하는 건 왕의 권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걸 설계하고 실행할 용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건 총기가 흐려진 군주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설령 벌하신다 한들 선비가 옳은 말을 하고 죽는 일은 곧 영광일진대 어찌 노신들과 일부 사족들의 눈치를 보며 옳은 일은 틀렸다 말하고, 틀린 일은 옳았다 외치겠는가?”

    “흐음.”

    “옳은 걸 틀렸다 말하는 건 선비의 도리가 아닐세. 내 그 날 편전에 들지 않아 잘 모르지만 그 날의 일을 돌아보면, 대군께선 전쟁에 앞서 1만석을 기부하겠다 하셨네. 이건 선비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겠다는 뜻이셨네. 이에 대해 중신들이 반대 의견을 피력하니, 그들의 논리를 논파할 심산으로 일선에 나아가겠다고 하셨던 거고.”

    “음.”

    “개국 초기를 제외한다면 왕자가 전쟁에 나간 적이 있었는가? 대왕(성종)의 적통을 이은 대군께서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구국의 마음으로 한 목숨 바칠 의사가 있다 편전에서 공언하였는데, 이를 지지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어찌 이것이 선비라 할 수 있겠는가?”

    “자네 말이 맞네. 동참하겠네.”

    안국의 말을 시작으로 여기 저기서 동참하겠다는 말이 들려왔다.

    동문들을 설득하는 일에는 성공했지만, 함부로 거사를 벌일 순 없었다.

    이젠 참여한 동문들의 가족들을 설득해야했다.

    빈한한 동문도 있었지만, 대개는 지방과 서울 인근에 수십, 수백결의 농장을 운영하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사족들로 하여금 전비를 걷는다는 말은 결국 그 가족들에게도 해가 갈 수 있는 일이니, 가족들의 허락이 절실했다.

    ***

    “···차라리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죽여주시옵소서.”

    숱한 숙청으로 임금의 권위는 하늘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이었다.

    선대왕들을 여럿 모신 윤필상 마저 벌했으니 중신들로서는 임금의 권위에 압도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권위도 명분이 있을 때나 발동이 가능했다.

    사족들에게 전비를 걷겠다는 말은 기군망상이니 하는 대외적인 명분으로 포장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아닌 게 아니라 조정에 입조하는 신하들과, 출사한 사람들 모두 그 내력을 따져보면 얽히고 설켜 있는 경우가 많았다.

    또 가족이나 문중이 지방에 큰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들로서는 목숨을 바쳐서 반대해야 할 일에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들을 기군망상이니 하는 두리뭉술한 죄목으로 처형하고, 속전을 바치게 하기엔 면도 서지 않았거니와 명분이 없었다.

    그들을 벌하고 재산을 적몰하는 일은 모든 수단이 통하지 않았을 때라야 비로소 가능한 수단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오히려 과도한 숙청과 명분 없는 숙청으로 신망만 잃을 가능성이 컸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도대체 어쩌라는 것이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신들이 어찌 사사로운 재물에 눈이 멀어 부득불 반대를 외치는 것이겠나이까. 이는 종묘사직을 보전하는 일에 관계되는 것이기에 신들이 목숨을 바쳐 수호하려는 것이옵나이다.”

    “그렇사옵니다. 지금 사족들에게 전비를 걷게 한다면 필시 반발이 클 것이옵고, 그 반발을 잠재우는 일이 어려울 것이옵니다.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인데 나라의 녹을 받는 신들이 어찌, 뻔한 결과를 알면서도 뜻에 따르겠나이까. 부디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융은 눈살을 찌푸렸다.

    민란 운운하는 건 엄연한 협박이었다.

    ‘며칠 잠잠하니 제 세상들 만났구나.’

    정말 최후의 수단을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래서 저들의 더러운 입을 꽁꽁 꿰매버리고, 그들이 꽁꽁 감춰준 재산을 모두 적몰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그랬다가는 반가의 민심을 잃고 도처에서 민란이 안 일어나리란 보장이 없었다.

    ‘호응하는 자가 한 둘만 나와도 나을 텐데.’

    한 두 사람만 호응해도, 중신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책에 동의는 해도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던 자들이 봇물 터진 듯 지지를 할 텐데, 그 한 두 사람이 안 나온다.

    한 두 사람만 힘을 실어줘도 명분이 설 테고, 이것이 바로 민심이고, 여론이라 말하면서 윽박질러서라도 전비를 확충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저 무도한 오랑캐를 벌하지 않는 것은······.”

    어제 했던, 그리고 그제 했던 논쟁은 오늘도 반복됐다.

    소모적인 논쟁에 다름이 없었다.

    ‘내 차라리 네놈들의 모두 베고 신망을 잃더라도 전비를 확충해야겠다.’

    얼마나 질렸으면 융은 결국 잠시 보류시켜뒀던 최후의 수단마저 떠올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만 흘러갈 무렵.

    승정원에 있는 도승지 김감이 편전에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전하!”

    “무슨 일이오?”

    퉁명스럽게 되묻자, 만면에 미소를 그득 머금은 김감이 말했다.

    “연명소가 올라왔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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