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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65화 (65/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65화>

    광화문에서

    ***

    “가면 안 됩니까요······.”

    머뭇거리는 덕산이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 봐서 뭐하게?”

    “그래도······.”

    좀처럼 투정(?)을 부리지 않는 덕산이라서 더 이해가 안 됐다.

    글쎄, 이놈이 김운열이를 팽형하기로 한 광화문에 가자고 조르지 뭔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데, 녀석은 별 생각도 없는지 계속 광화문 가자고 졸라댄다.

    “볼 거면 혼자 다녀와. 그런 걸 왜 자꾸 같이 보재?”

    “혼자 가면 구경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요··· 딱 가갈하면서 대감마님 위세좀 빌려가지고 구경하려는 것입죠.”

    “아주 너가 상전을 물로 보는구나?”

    “아니, 그런 것이 아니오라······.”

    “정 그러면 숭재 씨랑 다녀오던가. 내가 부탁할 테니까.”

    친구의 친구 또한 친구였다.

    내가 숭재 씨랑 허물 없이 친해지면서 덕산이도 숭재 씨랑 친해 질 수 있었다.

    물론 노비와 부마의 신분의 벽은 존재하지만, 같이 가자는 덕산이를 내치진 않을 것이었다.

    “그거랑은 좀 느낌이 다른뎁쇼······.”

    “안 그러는 놈이 자꾸 보채니까 더 그러네. 무섭지도 않냐?”

    “뭐가 말입니까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이 시대에 적응이 됐다고 철썩같이 믿었는데 아니다.

    반만 적응 된 것 같다.

    팽형을 구경가자고 보채는 건 덕산이 뿐만이 아니었다.

    “덕산이 형님이 그렇게 가자고 조르는데 가면 안 돼요?”

    개똥이.

    이 녀석도 같이 구경가자고 보채고 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난 조선 사람이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도성 전체가 떠들썩했다.

    팽형.

    쉽게 말하면 사람을 삶아 죽인다는 것이다.

    나는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리지만, 도성 사람들은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죄 광화문으로 몰려갈 기세였다.

    간만의 구경거리라나?

    뭐, 사람을 삶아 죽이는 광경을 ‘구경거리’로 치부하는 이 사람들을 잔인하다고 욕하고 싶진 않았다.

    그만큼 즐길거리가 없고, 봉건적인 관념을 타고 난 사람들에겐 탐관오리를 팽형으로 조진다는 데 있어 일종의 희열을 느낄 테니까.

    실제로 도성 전체가 떠들썩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죄인 김운열에게 팽형을 가한다길래, 팽형이 원래 있던 형벌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들어보니 처음으로 시행되는 형벌이고, 조정에서 논의가 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란다.

    “넌 더 안 돼, 이 자식아.”

    나는 개똥의 머리를 한 대 콕 쥐어박았다.

    덕산이는 혼자가서 구경이라도 하라고 놔둘 수 있다지만, 개똥이 이놈은 절대 안 된다. 나이도 이제 아홉 살 밖에 안 먹었으면서 뭘 그런 걸 구경한단 말인가?

    “치이.”

    “그건 그렇고, 개똥이 너 숙제는 해왔어?”

    “수, 숙제요? 그런 게······.”

    “있었지.”

    “아, 숙제 하니까 생각 나는 건데요. 대감마님은 혹시 쑥떡 좋아하시나요? 이 쑥떡이 쫀뜩쫀득해서 저희 아버지가 참 좋아하는데, 저도 좋아하거든요. 근데 그거 아세요? 쑥떡 안 먹으면 뒷간가도 똥이 안 나온데요. 왜 안 나오냐면······.”

    “개똥아.”

    “네?”

    “숙제에서 갑자기 쑥떡이 왜 나오냐?”

    “아. 숙제요. 안 했어요. 헤헤.”

    해맑게 안 했다고 자진하는 개똥이.

    이 녀석을 가르치겠답시고 팔자에 없는 선생질(?)을 마음 먹은 내가 죄인이다.

    아주 내가 죄인이야, 그냥.

    “너 크면 저기 있는 아저씨들처럼 무관 되고 싶다고 했지?”

    참을 인자를 되새기면서 손가락을 가리켰다.

    내가 가리킨 곳은 사랑방이었다.

    저 사랑방에 손님들이 머물고 있었는데, 그 손님이란 사람들은 다름 아닌 억수 씨와 천동 씨다.

    상태가 심한 사람들은 아직 혜민서에 남아 치료 중이었지만 상태가 금방 호전된 억수 씨는 퇴원(?)을 했다.

    천동 씨와 마찬가지로 갈 데가 없다 그래서 내 집에서 좀 쉬라고 했는데, 억수 씨와 천동 씨를 본 개똥이는 입이 떡 벌어지면서 멋있다를 연발했었다.

    그 뒤로는 자신도 저 아저씨들처럼 무관이 되고 싶다나 뭐라나.

    집중력 부족한 이놈이 군인이 될 수 있을지나 걱정이다만, 일단 녀석을 자극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니까 다행이다.

    “아! 그랬어요.”

    “너 그러려면 내가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고 했어, 안 했어?”

    “무관은 공부 못 해도 된다고 그랬는데요.”

    “뭐? 누가?”

    “억수 아저씨가요.”

    아니, 이 양반이 얘한테 헛소리를 늘어놔서는··· 젠장.

    “억수 아저씨가 잠깐 헷갈리신거야. 너 술 달린 투구 쓸려면 최소한 사서는 외울 수 있어야 돼. 근데 너, 숙제도 안 해오면 술 달린 투구는 고사하고 띠돈(환도를 패용할 때 쓰는 도구)이나 찰 수 있겠어?”

    “음.”

    “자, 열심히 하자?”

    “네!”

    ***

    “자네는 무슨 몸이 강철이라도 된단 말인가?”

    혜민서.

    김 과장님이 억수 씨의 상처 부위를 바라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어떤데요?”

    그 사이를 내가 쑥 끼어들었다.

    “놀랍다 못 해 경이로울 지경입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사를 장담 할 수가 없었거늘··· 허.”

    “나리의 의술이 소인을 살린 것이지, 소인이 특출난 것이 아니옵니다.”

    “자넬 살린 게 어디 이 사람인가? 대군이시지. 아, 물론 내 의술이 없었다면 자네가 금방 쾌차 할 수 없었을 거란 사실은, 겸손으로는 조선 팔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 김공저도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네. 하지만, 놀랍구만. 놀라워.”

    “그러니 그 사지에서도 살아 돌아오신 것 아니겠어요?”

    연신 감탄사를 발하는 김 과장님에 옆에서 보조하던 장금이 말했다.

    “아, 그것도 그렇구만. 하여간 장하네, 장해.”

    “민망하옵니다, 나리.”

    “민망은 무슨··· 그나저나, 오늘 잘 할 수 있겠는가?”

    꿀꺽.

    “사실 많이 떨리옵니다. 천하디 천한 대립질 하던 놈이 전하를 알현하게 되다니···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이 환자 보호 차원에서 내가 같이 가줘야 하나. 흠. 그래, 확실히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겠군. 따라 가야겠어.”

    “김 과장님도 같이 가고 싶으신가봐요?”

    “예? 아닙니다. 저는 순전히 환자 보호 차원으로다가··· 이, 억수가 전하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혼절하면 안 되니, 그런··· 어떤, 뭐랄까요. 의원으로서 할 일을 하기 위함이랄까요?”

    김 과장님은 역시 말 한 번 참 기똥차게 잘 하신다.

    “하하. 정 가고 싶으시면 같이 가셔도 되요. 제가 자리 마련해드릴게요.”

    “아, 아닙니다. 그러다 무슨 경을 치려고··· 농이었습니다, 농. 자, 억수. 다 됐네.”

    억수 씨의 몸에 붕대를 다 감은 김 과장님이 억수 씨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끝을 알리자, 억수 씨가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아, 대감.”

    “예?”

    “종두는 언제쯤 하는 게 좋겠습니까? 팽형으로 기일이 미뤄졌으니 새로 논해야 할 듯 한데요.”

    위에서 명이 떨어졌다.

    원래는 어제가 도성 백성들을 대상으로 종두를 시행하는 날이었지만, 김운열의 팽형이 잡혔으니 흉한 일(?)을 앞두고 좋은 일에 대한 시행은 좀 미루라는 게 그 명령의 골자였다.

    나름 일리가 있는지라 알겠다고 대답했는데, 그 이후에 대한 건 논의한 적이 없었다.

    “흠. 김 부장님은 언제가 좋을 것 같으시대요?”

    “대감의 의중을 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순서상 그게 맞지 않겠습니까?”

    “음. 그럼 전하한테 여쭤볼까요?”

    “저, 전하에게 말이옵니까?”

    “네. 안 그래도 미뤄졌따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던데 되도록 빨리 처리하려면 전하한테 여쭤보는 것 말고는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하면 소인이 김 부장··· 아, 아니. 영감(내의원정 김흥수)께도 대감께오서 전하께 아뢰보신다고 따로 말씀드리겠사옵니다.”

    “네.”

    ***

    강녕전.

    “나흘 뒤요?”

    “그래. 나흘 뒤가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나흘 뒤로 알고 있을게요.”

    “기대가 컸을 텐데 미뤄져서 상심이 크겠구나?”

    “아뇨, 상심이랄 것까지야··· 어차피 곧 시행되는데요.”

    형님께서 흐뭇하게 웃으시면서 고개를 끄덕거리신다.

    그러기를 잠시.

    별안간 인상을 굳힌 형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보다 진성아.”

    “예?”

    “세시진 뒤에 김운열에 대한 팽형이 있다. 너도 구경 올 참이냐?”

    “아뇨, 저는 담이 약해서 그런 거 못 볼 것 같습니다. 굳이 갈 필요 없죠?”

    “그럼. 물론이다. 그런 못 볼 걸 볼 필요가 있겠느냐. 다행이구나. 난 네가 구경오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시 말하지만 난 그런 잔인한 건 못 본다.

    팽형을 구경 간다는 건 좀비 영화 보러 CGV 간다는 거랑은 맥락이 다르잖은가.

    “이 형님이 달리 보이진 않았더냐?”

    “달리 보인다니요?”

    “김운열을 팽형에 처한다고 하니 중신들 모두가 반대했었다. 잔혹한 형벌이니 당연한 반응이다만, 너는 어떠하냐?”

    나는 잠시 생각했다.

    생각 한다는 것도 팽형에 대한 심각성을 고민한다는 게 아니라, 팽형에 대한 내 생각을 어떻게 말로 풀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답변은 금방 튀어나왔다.

    “시대에 따른 벌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같은 거라고 봅니다.”

    “시대에 따른 벌?”

    “극단적으로 태평성대의 처벌과 혼란한 전국시대의 처벌이 같을 순 없다는 뜻이에요. 뭐, 그 이상은 제가 왈가왈부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구요.”

    형님의 인상이 일순 환하게 밝아진다.

    이건 딱히 형님을 신경 쓰고 한 발언은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뜻이 시대에 따른 법은 존재한다.

    지금이 물론 내가 예로 든 태평성대와 전국시대는 아니지만, 일단 내가 바라보는 팽형에 대한 시각은 범죄 억제력을 가진 형벌이었다.

    물론 팽형이 잔인한 형벌이 아니란 건 아니었다.

    아예 사람 대우를 하지 않는 형벌이기 때문에 잔혹성에서 만큼은 어떤 형벌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문인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했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더 큰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알베르 카뮈의 말에 공감한다.

    솜방망이 처벌은 더 큰 범죄를 키우는 꼴 밖에 안 된다.

    때로는 강력한 처벌도 필요하다. 그래야 제2의 김운열이 생기는 걸 방지 할 수 있을 테니까.

    “네가 그리 생각한다니 다행이구나. 참으로 다행이야.”

    이런 걸로 무슨 다행 씩이나······.

    그 이후 나는 형님과 한시간 가깝게 담소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

    진성이 집으로 돌아간 얼마 뒤, 광화문.

    광화문은 구름떼처럼 모인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중앙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 모두 그 가마솥에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정말 저기다가 삶는대?”

    “나랏님이 허언이라도 하셨겠나? 정말 삶는다고 하셨었네.”

    “팽형은 처음 아닌가?”

    “처음이지.”

    “으으.”

    백성들이 팽형을 앞두고 기대반 두려움반 재잘거리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부의 관원들이 죄인을 압송해왔다.

    죄인은 곳곳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온 몸이 멍투성이인 건 예삿일에 끼지도 못 했고, 압슬이라도 받았는지 다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 그마저도 쏟아지는 시선과, 욕설에 눈물 콧물 다 빼면서 애꿎은 금부도사만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금부도사는 그 눈길을 애써 외면한 채, 죄인 김운열이를 광화문 한가운데에 놓인 가마솥으로 끌고갔다. 그러고는 손수 준비된 장작에 불을 지폈다.

    불씨를 머금은 장작이 활활 타오르자, 백성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당사자인 김운열은 안절부절 못 하며 방방 뛰었다.

    그렇게 잠시 후.

    “주상 전하 납시오!”

    광화문이 찌그덕- 열리더니 내관의 가갈이 들려왔다.

    그러자, 혹시 모를 불순분자들을 제압할 임무를 띤 금군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부복했다.

    부복도 보통 부복이 아니라 도게자 절에 가까운 오체투지였다.

    내관의 도움을 받아 어좌에 착석한 융은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민(백성)들은 모두 들으라.”

    “···”

    “아이권관 김운열은 여진족을 방어하지 않았다. 대관절 나라를 수호할 권관이 도망한 것이 고금은 물론이고 고서 어디에 있다더냐?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일뿐더러 감히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율에 의거하면 참형을 면치 못 하는 대죄다. 그러나 김운열이 더 큰 죄를 범했으니 첫째는 백성을 버리고 도망한 죄요, 두 번째는 휘하의 군사를 모함한 죄요, 세 번째는 임금을 기만한 죄다. 이에 따라 과인은 읍참마속의 심정과, 권관의 도망에 안절부절 못 해 했을 아이진성 백성들의 심경을 헤아려 팽형을 결정하였음이니, 이것이 과연 잔인한 일인가?”

    “···”

    “호사가는 말하기를 ‘이제 임금이 고대에나 시행하던 팽형을 내렸으니 후세에 어떤 말이 나올까 두렵다’ 떠든다마는 후세에 어떤 말이 나올지 과인이 어찌 두려워 해야 하는가? 대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아량을 베풀어 사사(독살)같은 작은 벌로 죽게 한다면 오히려 후세에 어떤 말이 나오겠는가? 과인은 차라리 팽형을 집행한 군주라는 오명을 쓰더라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겠다.”

    “···”

    “형을 집행하라!”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금부 관원들이 죄인을 가마솥에 잡아 넣었다.

    마지막 까지 발악을 하면서 살려달라 애걸복걸 했지만 융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마침내 죄인이 커다란 가마솥 안으로 들어가자, 금부 관원들은 그 뚜껑을 봉함으로써 죄인이 빠져나올 일말의 가능성마저 봉쇄시켰다.

    머잖아 고기 익는 냄새가 광화문 일대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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