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64화>
죄인을 삶아 죽여라!
***
“오호라.”
임금이 감탄성을 터뜨리자, 소위 어깨가 승천해 어깨뽕을 맞아버린 김운열은 뒤늦게 겸양을 떨었다.
“하오나 어찌 신의 공이겠사옵니까? 모두가 합심하여 싸운 덕택이옵고, 주상 전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이 저 험지에 있는 아이진에도 닿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사옵니다.”
“허어. 이런 무관이 어찌 벽지에 쳐박혀있었단 말이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천하에 다시 없을 무사가 아니냐.”
“과찬이시옵니다, 전하.”
“모름지기 나라에 공을 세운 자는 마땅히 포상하는 것이 도리다. 이것은 공을 세운 너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군의 사기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내 꼭 너에게 상을 내려야겠다.”
김운열의 입이 귀에 걸릴 즈음.
“도사는 속히 멍석을 가져와라!”
“에?”
“듣지 못 하였느냐? 멍석을 가져오라.”
“머, 멍석··· 아, 예!”
금부도사가 황급히 뛰어갔다.
잠시 후.
헐레벌떡 뛰어온 금부도사 안처직이 멍석을 갖다 바쳤다.
친국장에 모인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릴 무렵.
융이 저벅저벅, 섬돌을 내려왔다.
그러고는 김운열을 친히 일으켜세웠다.
“마, 망극하옵니다.”
“내 너에게 상을 주려함이니 이 멍석에 편안히, 아주 편안히 드러눕거라.”
“···?”
아닌 밤중에 홍두깨 축에도 못 끼는 엽기적인 명에 어리벙벙한 표정의 김운열이 머뭇거리자, 융이 호통을 쳤다.
“어허, 어명이다. 누워라.”
연이은 채근에 김운열이 쭈뼛거리며 자리에 누웠다.
“중신들은 모두 보아라!”
“···”
“이, 김운열이라는 자가 나라에 얼마나 큰 공을 세웠단 말이냐? 그 공은 감히 열성조의 어느 무관에 견주어도 감히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다.”
“···”
융이 자연스럽게 손을 내뻗었다.
척하면 탁이라더니, 안처직이 몽둥이를 건넸다.
“퉤.”
“저, 전하?”
“내 너에게 친히 상을 내리마. 뭣들 하느냐, 말아라!”
“저, 전하! 전하!”
김운열이 발버둥쳤지만, 나장 수 명의 완력을 당해낼 순 없는 법이었다.
결국 김운열이 멍석에 돌돌 말리자, 융은 몽둥이로 있는 힘껏 멍석을 내리쳤다.
퍽!
“이건 임금을 기만한 상이요.”
퍽!
“이건 내 백성을 버린 상이요.”
퍽!
“이건 내 군사를 상하게 한 상이요.”
퍽!
“이건 용감한 군사를 모함한 상이요.”
퍽!
“이건 네 죄를 뉘우치지 못 한 상이요.”
퍽!
“이건 상관을 능멸한 상이요.”
퍽!
“이건 칼 한 번 휘둘러보지 않은 상이요.”
퍽!
“이건 전투 중에 도망한 상이요.”
퍽!
“이건 임금을 배알하는데 목욕재계도 하지 않은 상이요.”
퍽!
“이건 내 백성들에게 임금을 얕보이게 한 상이요.”
퍽!
그렇게 한참.
융은 한참을 있는 죄, 없는 죄 갖다 붙이며 몽둥이를 내리쳤다.
“이건, 이건··· 감히 얼굴에 커다란 사마귀가 있는 상이다!”
퍽!
“윽.”
“헉헉.”
온 힘을 쏟아부어 몽둥이질을 했는지, 융은 비틀거리며 몽둥이를 내던졌다. 그러고는 다시금 사정전 위로 올라가 어좌에 착석했다.
“심문도 아니하고 죄인을 난장 친 것이 과인의 죄다.”
“시, 심문이 필요 없는 죄였사옵니다. 전하께선 천번만번 온당한 일을 하셨나이다.”
“그래?”
“그렇사옵니다.”
“중신들도 모두 한 대씩 치시오.”
“···”
“뭣들하는가? 한 대씩 치라지 않는가?”
“저, 전하······.”
“저 천하에 찢어 죽일 죄인을 난장치는 일이 내키지 않는단 말이냐? 아니면 그대들은 하도 고결한지라 손에 피를 묻히기도 꺼려하는 것이란 말이냐?”
“그,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총대를 멘 성준이 눈을 질끈 감고 몽둥이를 내려쳤다.
그 이후, 중신들은 차례, 차례 김운열을 내려쳤다.
이전까진, 신음이라도 토해내던 김운열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신음도 뚝 끊겼다.
움직임이 멎자, 융은 금부도사에게 눈짓했다.
안처직이 황급히 뛰어가 죄인의 맥을 짚었다.
“아직 살아있사옵니다.”
“다행이구나.”
“···”
“이 죄인을 어찌하면 좋겠소들?”
융이 물었지만 중신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임금이 친국장에서 죄인을 친히 난장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어느 누가 담담하게 죄인의 죄가 이러하니 저러시옵소서, 말할 수 있겠는가?
“···”
“형판. 대전(경국대전)에 탈영한 군사는 어찌 벌하라 되어있소?”
형조판서 송질이 다른 정승들과 재상들의 눈치를 살피며 아뢨다.
“군문에 효수하여 본보기로 삼는 것이 기본이옵니다.”
“군문에 효수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이자는 감히 기회를 주려는 임금을 기만하기까지 했다. 어디 그뿐인가? 모름지기 무사라 함은 백성을 앞에 두고 겁을 상실하여야 하는 법인데, 지레 겁부터 먹고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놓았다. 여기까지라면 내 불씨(승려)들이 말하는 대자비를 베풀어, 목숨만은 살려뒀겠으나 도망한 본인을 대신해 싸운 군사를 모함하고, 살인멸구하려 하기 까지 했다. 이것이 대관절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이냐?”
임금의 행각에 겁을 먹긴 했어도,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임금이 언급한 사안중 하나라도 군관으로선 저지르면 안 되는 죄들이었다.
“죄인 김운열이는 감히 전투 중에 도망했다. 이 죄가 죽어 마땅한데, 임금을 기만하였고, 백성을 버렸으며, 또한 상관을 능멸했고, 용감한 군사를 해하려 하였다. 내 이런 죄는 일찍이 접한 바가 없으나, 삼척동자에게 물어도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지는 다 알 것이라 믿는다.”
“···”
“내일 날이 밝는대로 죄인을 도성에서 조리 돌려라. 광화문에서 출발해, 성곽을 한바퀴 다 돌아 모든 백성들이 놈의 죄를 보고, 들을 수 있게 하라. 또 조리돌림을 하기에 앞서 등과 가슴에 탈영(脫營)이라는 문구를 낙인을 찍어서 조리 돌려라. 조리돌림이 끝난다면 압슬을 가해, 도망간 그 두 다리를 망가뜨리도록 하라.”
“분부 받들겠사옵니다.”
“아, 그리고 참수는 죄인이 저지른 죄치고는 너무 작은 감이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능지하거나 거열하여 본보기로 삼으소서.”
“능지와 거열은 고통이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찰나의 고통을 받고 나면 그대로 숨이 끊어지니, 어찌 죄인이 벌을 받는다 할 수 있겠느냐? 팽형을 실시함은 어떤가?”
임금의 입에서 ‘팽형’이란 말이 거론되자, 모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임금이 주최하는 친국임을 알면서도 중신들 사이에서는 소란이 일었다.
팽형.
말그대로 죄인을 삶아 죽인다는 뜻이었다.
준비된 장작과 가마솥에 죄인을 집어넣고 불을 지핀다.
죄인이 몸부림치면서 뚜껑이 열릴 수 있으니, 뚜껑도 단단히 봉한다.
그럼 물이 자글자글 끓다가, 팔팔 끓게 되는데 죄인은 결국 죽기 직전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는 게 바로 팽형이었다.
그 어떤 형벌보다 잔혹하기 때문에 전조 고려에서 조차 시행 된 적이 거의 없었다. 하물며 아조(조선)가 개국한 이래로 논의 조차 된 적이 없는 게 바로 팽형이었다.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했단 말인가? 왜 이리 시끄럽단 말이냐!”
웅성거리는 소음에 인상을 찌푸린 융이 호통치자, 모든 중신들이 재잘거리는 입을 닫았다.
“아,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전하. 팽형은 전조에서도 시행 된 적이 없는 형벌이옵니다. 전하께오서 팽형을 명하신다면, 신들이 어찌 반대하겠습니까마는 죄인을 팽형에 처한다면 후세에 말들이 많을 것이니, 어찌 전하의 업에 누가 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부디 통촉하여주시옵소서.”
“그러니 문제라는 말이다. 죄인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음은 세상의 이치요, 천하의 백치도 다 아는 사실이다. 대관절 나라에서 죄인에게 벌을 줌은 어떤 까닭이란 말이냐? 죄인의 죄를 국가가 징치하기 위함도 있지만, 연관된 사람들을 위로하고 후세에 본보기를 삼기 위함도 있다. 하지만 참형으로 곱게 죽인다면 어느 누가 경계하지 않겠는가?”
물론 참형도 극형중 하나였다.
오죽하면 융도 마지막엔 마음을 바꿔 이극균을 참형이라는 극형에서 사사로 감(減)해줬을까.
죽음으로 귀결되는 건 같아도, 그 과정에서 참형은 극형 중의 극형으로 분류가 되는 것이다. 하물며 팽형은 극형 중의 극형이 아니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형벌에 가까웠다.
곳곳에서 통촉해달라는 말들이 날아들었다.
융이 이세좌를 비롯한 중신들을 숙청하면서 부터는 듣지 못 한 말이었다.
그만큼 팽형은 살얼음 걷는 나날에서도 통촉을 울부짖을 만큼 경악을 금치 못 할 일이란 방증이었다.
하지만 융의 뜻은 확고했다.
죄인에게 극형을 주지 않고서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없었다.
***
“전하께오서 무슨 취지에서 팽형을 언급하셨는지 신들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저 극악무도한 죄인으로 인해 천동을 비롯한 군사들이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바치다, 역으로 국가에서 파견한 무관에게 살해당할 뻔 하였으니, 그 상심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옵니다. 그러나 주자(朱子)는 몸과 마음을 수습하고 정신을 보전하여 아끼라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신하들에게만 국한되는 말이겠사옵니까? 전하께오서는 부디 통촉하여 일의 전후를 헤아려주시옵소서.”
“통촉하여주시옵소서.”
“그러면 피해자의 넋은 누가 기릴 수 있단 말이냐?”
“···예?”
“국가가 대신해서 가해자에게 벌을 주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넋은 누가 기릴 수 있냔 말이다. 저, 절간의 불씨들이 우상하는 불상이 기려준단 말이냐? 아니면 소위 말하는 도사(도교 수행자)들이 기려준단 말이냐?”
“···”
“영상은 주자가, 몸과 마음을 수습하고 정신을 보전하여 아끼라 하였다고 했다마는 대관절 성현이 하는 말은 모두 옳단 말이냐? 성현이 산 시대는 짧게는 수백년에서, 길게는 수천년 전인데, 당시와 지금이 같겠느냐? 어찌 성현이 그런 말씀을 남겼다고 하여 따르라 할 수 있단 말이냐. 하면.”
“···”
“하면 제나라 위왕(환공의 아들)이 아대부(阿大夫)를 팽형에 처하고 난 뒤에 제나라를 융성하게 만든 일은 어찌 설명하랴?”
“···”
“경들은 들어라. 백성을 징계하는 것만이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법이란 말이냐?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것은 위왕이 했던 것처럼 탐오한 관리는 벌하고, 또한 잔학한 관리를 벌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일벌백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백성이 편안할 일이 없고, 그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하오나 전하······.”
“이는 사직을 보전하기 위함이다. 감히 백성을 두고 도망한 군관을 일벌백계해서 다스리지 않는다면, 또 이런 일이 재발하지 말란 보장이 있단 말이냐? 만약 왜구가 쳐들어와서 하삼도의 백성들을 약탈하는데, 수령들이 김운열이처럼 도망하였다면 어찌 되겠느냐? 또, 나라에 전란이 일었는데 모든 무사들이 김운열의 일을 두고 일이 잘못되어봤자, 참형에만 처해진다 믿고 도망하면 어찌 되겠느냐 말이다. 그때가서 백성들에게 방을 붙이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외적을 막으라 하겠느냐? 그럼 어느 백성이 나라를 믿고 일어난단 말이냐?”
“···”
“또한 김억수와 천동의 공이 가히 작지 않다. 김억수는 김운열이가 도망간 틈에도 평소의 신망을 토대로 군사를 규합하여 오랑캐를 막은 공이 있고, 천동은 김운열의 악행을 수백리 길을 달려와 아뢴 공이 있으니, 이들을 치하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김운열이를 벌하지 않는 것과 같다. 김억수는 취재를 통하지 않고 아이권관에 제수하여 변방을 수호토록 할 것이고, 천동에게는 백미 30석을 하사해 그 공을 치하해야겠다. 또한, 억수와 천동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진군들에게도 백미 20석을 하사하고 평생 면역(병역이나 부역을 면함)토록 하여 그 공을 치하하겠다.”
통보하듯이 명을 내린 융이 사정전을 빠져나갔다.
“영상대감.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낸들 수가 있겠소.”
“하오나 팽형입니다. 어찌 사람을 삶아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럼 판부사가 전하를 막아보시지 그랬소?”
“아니, 그건··· 크흠.”
“도리가 있겠소. 전하께서 대노를 하신 듯 하니, 따를 수 밖에.”
대책을 논의해본답시고 금세 시끌벅쩍해진 사정전 뜰이었지만, 대책이란 게 나올 리 만무했다.
임금은 여러모로 예전의 임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