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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56화 (56/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56화>

    맛있구나왕의 유머, 소장금.

    ***

    “음. 맛있구나.”

    경회루.

    된장조치(된장찌개)를 들던 형님이 눈을 지그시 감고 맛을 음미하신다.

    평소에 된장조치를 즐겨 드신다는 건, 몇 차례 식사를 함께 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지만 언제나 맛있으신 모양이다.

    미식가의 면모가 보인다.

    나는 그게 그거 같은데.

    후루룹.

    “이 된장조치를 만든 이가 누구더냐?”

    “소주방(수라간) 나인 장금이가 만들었나이다.”

    “장금이? 그러고 보니 네 이름도 장금이라 하지 않았더냐?”

    이런 우연이 또 있네.

    형님의 말에 나는 된장조치를 먹다 말고 부복해 있는 장금이를 흘겼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네가 초학의로 있다고 하였으니 훗날 내의녀(일종의 전문의)가 되어 입궐한다면 구분하기 쉽도록, 소주방 장금이는 대(大)장금이라 부르고, 너는 내의원 소(小)장금이라고 부르면 되겠구나. 하하하!”

    형님의 농에 밥 먹다 말고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사실은 그 반대인데.

    “그래. 도제조에게 들으니 네가 종두를 시범 보이는 일에 처음으로 자원하였다지?”

    여기서 말하는 도제조는 나다.

    사실 허울뿐인 감투지만 종두도감도 도감은 도감이라서 구별하기 쉽게 도제조라고 불리는 것 같다.

    그나저나 우리 장금이.

    왜 이렇게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

    “장금아. 안 떨어도 돼.”

    내 소반 바로 앞에 부복한 장금이에게 속삭이자, 장금이 울상이 된 표정으로 말한다.

    “하오나······.”

    나는 만날 보는 전하니까 그런가 보다 싶지만, 역시 다른 사람들한텐 하늘 같은 존재인 모양이었다. 안 떨어도 된다니까 더 떤다.

    “어허. 전하께서 하문하셨다.”

    장금이에게서 대답이 없자, 숭재 씨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나무랐다.

    “소, 송구하옵니다. 소녀 궁궐의 예법에는 어두워 혹 무례를 저, 저지를 것 같아··· 주, 죽여주시옵소서.”

    “너의 공을 치하하진 못 할망정 내 어찌 널 죽이겠는고?”

    “화, 황공하옵니다.”

    “본시 사람은 두려움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두려워한다. 종두도 이와 같다. 알려진 치료법이 아니니, 혹시 발생할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원을 했다. 의원들도 꺼린 일을 초학의인 네가 했으니 참으로 기특한 일이다.”

    “서,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장금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형님께서 된장조치를 뜨다 말고 날 바라보신다.

    “진성아.”

    “예, 전하.”

    “이 아이에게 어떤 상을 내리면 좋겠느냐?”

    상?

    모름지기 상이든 선물이든 받는 사람 입장에선 현금이 최고다.

    하지만 여긴 현금이랄 게 없으니······.

    “본인이 원하는 걸로 주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요?”

    “본인이 원하는 것? 으음··· 과연 그렇겠다. 장금아.”

    “에, 예··· 전하.”

    “네 원하는 것이 따로 있더냐? 출사케 해달라는 원이 아니라면 내 뭐든 들어주마.”

    “하오나 어찌 소, 소녀가 고작 그, 그런 일로 나랏님··· 아, 아니. 전하께 상을 받을 수 있겠사옵니까.”

    “괜찮다. 말해보아라.”

    장금이가 내 눈치를 살폈다.

    그에 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형님은 호리호리한 체격과 다르게 호탕한 분이다.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실 것이었다.

    물론 이러려고 장금이를 데려온 건 아니다.

    그 동안 장금이랑 알 게 모르게 친해진 것도 있고, 또 진짜로 자원한 공이 있기에 치하하는 마음에서 데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처럼 화기애애하게 진행되니 의도하지 않았어도 기분은 좋다.

    ‘땅 달라고 해, 땅.’

    은근히 눈치를 줬다.

    아닌 게 아니라 장금이와 친해지면서 장금이의 가정 형편에 대해 들을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 한 분만 계시는데 장금이 밑으로 동생만 네 명이란다.

    당연히 굶는 건 예사로 살아왔고, 장금이가 초학의가 되면서 입 하나 덜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가정 형편은 어려우니 언젠가 여력이 되면 어머니께 땅 하나 해드리는 게 평생 소원이라는 말을 우연찮게 들었었다.

    지금이 그 절호의 기회기도 했다.

    하지만 장금의 입밖으로 나온 소원은 의외의 것이었다.

    “하면···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혜민서에 의원을 더 할당해주실 수 있으시옵니까?”

    “혜민서에 말이냐?”

    “예. 지금은 종두도감이 설치돼서 혜민서를 찾아오는 백성들도 덩달아 시료(무료 진료)를 받고 있으니, 그 혜택이 도성은 물론이고 성저십리의 백성들에게도 돌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형국이옵니다. 하오나 종두도감이 해체된다면, 혜민서에 잠시 들르신 의원님들도 다시 내의원과 전의감으로 돌아가실 테니 의원은 부족해질 테고, 혜민서에서는 지금 만큼 백성을 살필 수가 없게 되옵니다.”

    “허어.”

    형님께선 말문을 잃으셨는지 작게 탄식을 흘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장금이가 의료인으로서의 기본 자세가 돼있는 건 일찍부터 알았다. 천성이 밝고 선한 마음씨를 갖고 있는 것도 함께 지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이건 거의 성녀라 불러도 할 말이 없을 박애 정신이다.

    ‘나 같으면 땅 달라고 했을 텐데······.’

    아니, 나 같은 놈이 땅이 뭐야?

    더한 것도 달라고 했을 거다.

    그래서 더 기특하다.

    “전하. 장금이 너무 기특하지 않습니까? 너무 좋은 생각 같지 않으세요?”

    형님께서도 동감하시는지 고개를 주억거리신다.

    “좋다 마다. 그래, 장금아. 네 나이가 몇 이라고 하였느냐?”

    “열 넷이옵니다.”

    정확히 말하면 열다섯이다.

    여긴 나이를 만으로 계산하거든.

    “열 넷. 어린 나이에 기특한 원을 말하니,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네 나이 때 그런 생각은 하지 못 했다.”

    “소, 송구하옵니다.”

    “송구는. 상선 있는가?”

    “불러 계시옵니까, 전하.”

    “혜민서를 확충하는 것이 좋겠다. 승정원에 령을 내려 육조당상들로 하여금 논의케하라.”

    “그리 전하겠나이다.”

    상선이 물러가고 장금이를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던 형님이 말했다.

    “장금아.”

    “네, 전하.”

    “너는 꼭 내의녀가 되거라. 아니,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아름다운 마음을 내의녀가 되도록 간직하거라. 그 마음이라면 네가 살릴 수 있는 병자가 수천은 넘을 것이니라. 알겠느냐?”

    “그, 그리 하겠사옵니다.”

    본의 아니게 자리를 주선(?)했던 나는 흐뭇하게 둘의 대화를 지켜봤다.

    ***

    “아, 맞다. 전하.”

    나는 활시위에 화살을 먹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수박을 한 입 크게 베어물려던 형님이 날 바라보신다.

    “음?”

    “혹시 몇 달 전에 김감불이라고 기억하세요?”

    “김감불? 김감불이라··· 흐음, 누구일꼬?”

    “단천에서 온 철간인데 형님 전하 앞에서 시연도 했다던데요?”

    “아아. 이제 기억이 나는구나. 그래. 그런 기특한 자가 있었지. 한데 네가 그자를 어찌 아느냐?”

    형님의 물음에 나는 마저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그리고,

    쒸익-!

    날아간 화살은 맥없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목표물로 세워둔 과녁을 아예 맞추지도 못 한 것이었다.

    과녁에서 좀 떨어진 곳에 세워진 막 안에 있던 금군은 본인이 다 뻘쭘한 지 괜히 들고 있는 관중 깃발을 만지작거렸다.

    “한 보름 전부터인가? 저희 집에서 머물고 있거든요.”

    “그자가? 내 알기로 단천으로 돌아갔을 텐데?”

    “아. 사정이 좀 있나봐요.”

    “음. 한데 그자가 왜?”

    “형님 전하께서는 은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은광? 재물이 나니 옛날에 빗대면 소금산이 아니겠느냐?”

    “그렇죠?”

    “그렇지.”

    “근데 왜 김감불은 나라에서 이용하지 않는 거래요? 아, 이용이라고 하니까 좀 어감이 이상한데 등용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광산 쪽은 문외한이어도, 그쪽 방면으론 꽤 박학다식한 것 같던데 말이예요.”

    “당시 중신들이 반대를 했었다.”

    “중신들은 왜 반대한 거래요? 은광이 개발되면 국고에 돈이 쌓이니 좋은 거 아닙니까?”

    “좋지. 다만 중신들은 나라가 사치에 물들까 염려하는 것이었다. 뭐,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만.”

    “지금이라도 개발하면 되지 않을까요?”

    “은광을 말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처에 널리고 널린 게 금광산이고 은광인 걸로 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강탈해간 금과 은만 해도 지금 시대에선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양일 테고.

    그런 걸 뒀다가 뭐하는지 솔직한 심정으로 모르겠다.

    로또가 눈앞에 있는데 마다하다니?

    “네. 은광이 좀 개발된다고 백성들이 사치스러워 진다니 그건 좀 우습잖아요.”

    “음. 틀린 말은 아니구나. 내 생각해보마.”

    “넵.”

    나는 마저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쐐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는 분명 들렸던 것 같은데,

    푸식-.

    젠장할.

    잘못 쐈는지 화살이 가다가 고꾸라진다.

    “하하. 활쏘기를 좀 더 배워야겠다. 자, 그럼 내 차례인가.”

    긁적긁적.

    “전하. 다른 거 하실래요?”

    “다른 거?”

    “이게 또 엄연히 내기잖아요?”

    “그렇지?”

    가볍게 소화나 시키자면서 형님께서 제안한 게 이 활쏘기였다.

    내가 흔쾌히 응하자, 내기까지 얹으셨는데 형님이 거신 건 민택의 적몰한 땅이었다.

    반면 내가 내건 건 시였다.

    뭐, 정말로 형님이 내기에서 지신다고 하셔도 그 큰 땅을 주시긴 어렵겠지만, 밑져야 본전이잖아?

    하지만 하다 보니 안 될 것 같다.

    벌써 몇 번을 쐈는지 모르겠다. 나는 활하곤 안 맞는 것 같다.

    하나도 과녁에 도달한 적이 없다.

    “근데 내기가 성립하려면 서로 동등한 조건이어야 하는데 이건 제가 좀 불리한 것 같습니다.”

    “불리? 하하하. 그래. 불리한 것 같구나. 하면 무얼 하면 좋겠느냐?”

    설령 내기에 이겨서 민택의 적몰한 땅을 주신대도 내기에 건 것 치곤 너무 큰지라 마다할 생각이지만, 이놈의 승부욕이 제발 하나쯤은 이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승경도(陞卿圖)도 지고, 바둑도 지고, 장기도 지고, 활쏘기마저 져버렸다.

    이번엔 꼭 이길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나는 곰곰이, 그리고 신중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축구 어떠세요, 축구.”

    “축구? 그건 무어냐?”

    ***

    그 시각, 전라도 강진.

    “죄인은 전하께서 자비를 베푸심을 알아야 할 것이오.”

    금부도사의 말에 바로 얼마 전까지 삼의정중 한 사람으로 편전에 들었던 이극균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를 말이겠나.”

    “다른 죄인들은 모두 능지를 면치 못 했소. 죄인은 이세좌와 친족이면서도, 친족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세좌를 벌주라 간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전하께서 친히 사사로 대신하라 하신 것이오. 그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말길 바라오.”

    “어찌 잊겠는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시오?”

    극균은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벼룩과 이가 들끓는 방 안이었다.

    바닥에선 사사를 앞두고 장작을 때우고 있는지, 온기가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었다.

    “내 하나만 물어도 되겠는가?”

    “말씀하시오.”

    “세좌의 마지막을 본 것도 그대였었지?”

    “그렇소.”

    “내 조카는 어찌 갔는가? 덤덤했는가 아니면 발버둥을 쳤는가? 그것만 말씀해주시게.”

    “흠. 덤덤하셨소. 남길 말은 그게 전부요?”

    “전하께 하직 인사를 올려도 되겠는가?”

    금부도사는 냉소를 보내면서도 굳이 반대하진 않았다.

    극균은 의관을 정제하고 임금이 계실 방향을 향해 절을 올렸다.

    일련의 의식을 끝마치고 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또로록 흘러내렸다.

    “다 끝나셨소?”

    “전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네.”

    “하시오. 전해드릴 테니.”

    “자비를 베풀어주심이 매우 큰 은혜이나, 한 번 더 자비를 베풀어 부디 일족들만은 화를 면하게 해주시옵소서. 이것이 노신의 바람이옵니다.”

    금부도사는 노골적으로 극균을 비웃었다.

    “직언이랍시고 전하를 겁박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문중을 걱정하시오? 가당키나 할 것 같소이까.”

    “전해나 주시게. 전하께서 노신과의 의리가 조금이라도 남아 계시다면 은혜를 베풀 것이요, 그게 아니라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지 극균은 뒷말을 꾹 삼켰다.

    “뭐, 전해는 드리겠소.”

    금부도사가 곧 사약이 담긴 질그릇을 내려놓고 방문을 닫았다.

    머잖아 훈훈한 열기가 방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어지. 왕은 전한다. 죄인 이극균은 지난 세월 노신으로 우대 받자 크게 고무되어, 임금을 겁박하기에 이르렀다. 선왕 시절에는 폐비의 일에 연루되기 까지 하였고, 계략을 세운 윤필상과 함께 공모하여 진성대군을 이번 일에 끌어들여 일을 무마시키려 한 죄가 있다. 또한··· 중략. 이하 12가지 죄목으로 사사하니 감사한 마음으로 사약을 들라. 죄인은 속히 사약을 드시오!”

    금부도사가 어지를 다 전하자마자 극균은 질그릇에 담긴 사약을 두 눈 질끈 감고 들이켰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래서 누군가에겐 간신이요, 누군가에겐 충신이었던 자의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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