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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50화 (50/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50화>

    단천사람 김까불

    ***

    단천 출신 김까불(金甘佛)은 철간(鐵干, 일종의 광부)이었다.

    신량역천(身良役賤)중 하나인 철간이었지만 그는 스스로의 삶을 비관하는 백치는 아니었다.

    차별 받는 때가 많았고, 천시 받는 때가 훨씬 많았지만 까불은 스스로의 삶에 어떤 확신과 긍지를 갖고 살아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로 두 달 전까지는 그랬다.

    몇 년 전.

    그는 의문 하나를 갖게 되었다.

    연철(鉛鐵)에도 필시 은이 함량 되어 있는데, 그 은을 골라 낼 수도 있을까?

    어찌보면 쓸데없는 의문이었다.

    의문을 품게 된 그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저기 철쟁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철광(鐵狂)이 아냐?”

    사람들이 비아냥거려도 까불은 무시로 일관하며 연구만 거듭했다.

    그 결과.

    그는 작년말 연철에서 은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단천 관에 속한 검둥이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몰랐다.

    연철은 조선 팔도라면 어디든 나는 광석이었다.

    팔도 어디든 있는 연철에서 은을 추출 했으니 까불과 검동은 크게 고무 될 수 밖에 없었다.

    나라에 보탬이 되는 발명을 했기 때문이었다.

    은(銀)은 곧 화폐요 재화가 아니던가?

    이로 말미암아 나라가 부국해진다면, 일개 철간에 지나지 않았던 그 이름은 수세기 동안 전해질 터였다.

    고상한 양반님네들도 남기기 힘든 이름 석 자를 말이다.

    까불은 한껏 상기된 마음으로 단천 관아에 알렸다.

    관에서도 당연히 난리가 났다.

    연철에서 대량의 은을 추출한다니··· 이는 은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린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네 거짓이라면 수령을 농락한 죄로 볼기를 쳐 기어나가게 만들 것이다.”

    군수의 으름장과 함께 까불은 긴장된 마음으로 시연을 보였다.

    시연은 성공적이었다.

    화들짝 놀란 군수는 곧바로 장계를 올려 이 사실을 조정에도 알렸다.

    곧바로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사람이 조정에서 보내졌고, 까불은 검둥이와 함께 한양땅을 밞았다.

    나랏님 앞에서 시연하라는 지엄한 명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앞전의 상황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긴장됐지만, 어전에서 보인 시연도 성공적이었다.

    먹물 깨나 잡수신 나리들이 탄성을 내지를 때는 짜릿한 전율이 일 정도였다.

    반응이 반응인지라 까불은 내심 기대를 하게 됐다.

    나랏님은 실제로 그에게 백미 30석을 하사하시면서 치하를 했다.

    하지만 백미 30석은 아무래도 좋았다.

    까불이 바라던 건 은광 개발의 참여였다.

    나랏님이 청이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떨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아뢸 정도였다. 나랏님께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지 고개를 주억거렸었고.

    하지만.

    “신분이 미천한 자와 천역을 은광 개발에 투입 시킬 순 없사옵니다.”

    그의 청을 듣자마자 날아온 말은 까불을 낙담시키기에 충분했다.

    중신들이 반대를 표명하니 나랏님도 어쩔 수 없으셨는지, 백미 30석을 하사하는 대신 은광 개발 참여는 도리가 없겠다고 말씀하셨다.

    그가 바란 건, 은광 개발에 책임자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일개 철간으로라도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무릅쓰고 아뢨다.

    내가 바라는 건 철간으로라도 참여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그랬더니 돌아온 말은,

    “같잖은 재주에 여러 사람을 놀래켰다 하여, 네놈의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호통이었다.

    결국 연철에서 은을 추출하는 방법을 공조 속사(屬司)인 공야사(攻冶司)의 철간들에게 일러주고 까불과 검동은 상심만 한가득 안고서 단천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원래라면 돌아 갈 수 밖에 없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러기는 곧 죽어도 싫었다.

    그가 바라던 건 역시 은광 개발이었다.

    은광으로 나라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

    물론, 그런 공명심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보다는 돈욕심이 큰 게 사실이었다.

    철간으로 살아오면서 일평생을 가난에 시달려야했다.

    안사람에겐 흔한 동비녀 하나 해주지 못 했고, 아이들에겐 이밥에 고깃국 한 번 마음 편히 먹여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은광 개발에 참여한다면 최소한 그정도 콩고물은 떨어질 테니, 무식이 곧 용감함이라고, 죽음까지 무릅쓰고 나랏님께 아뢴 것이었다.

    하지만 나라에서 행하는 은광 개발에는 참여 할 수 없게 됐으니 까불은 대안을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대안은 잠채(潛採, 관의 눈을 피해 만든 광산)였다.

    철간으로 서른 평생을 살아온 그는 잠채에 관한 소문도 숱하게 접했다.

    성종대왕 시절 운산군(雲山郡)에서 잠채하던 자들이 있다는 소문.

    세종대왕 시절 왕명을 받고 파견된 채방사(採訪使, 광산 탐사를 위한 관직)를 따라 평안도를 순회했던 아무개 채방별감(採訪別監)이 영문도 없이 관직을 그만두더니 곧 창성군(彰聖郡)에서 잠채를 해서 거부가 되고 나라에 흉년이 들자 큰 돈을 기부해 통정대부(通政大夫, 종삼품의 품계중 하나)에 봉해졌다는 구전.

    은산현(殷山縣)에 도망온 중국인들이 잠채를 하다가 적발됐다는 소문.

    소문이나 구전이 전부 사실은 아닐 테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은광 개발에 참여 할 수 없다면 소문의 장본인들처럼 잠채라도 하겠다.

    까불은 그렇게 마음 먹었고, 결국 연고 하나 없는 한양땅에 머물렀다.

    잠채를 만들기 위해선 많은 돈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른 평생 철간으로 살아오면서 안사람에게 동비녀하나 해주지 못 한 그가 무슨 잠채 할 돈이 있겠는가?

    그의 편의와 돈까지 대줄 고관대작은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밑천을 대줄 거상 정도면 족했다.

    단천으로 당장 돌아가지 않고 한양에 머문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이 잠채요, 밑천을 대줄 상인이었지 그의 말만 믿고 밑천을 대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사기꾼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가져온 노잣돈도 슬슬 바닥을 보였고, 거렁뱅이와 다름 없이 거리를 배회 할 수 밖에 없었다.

    거렁뱅이 꼴을 한 그를 만나줄 상인은 더더욱 없었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점점 지쳐 갈 수 밖에 없었다.

    동냥질이라도 하면 사정이 나으련만, 그마저도 이미 동냥패가 따로 있어, 함부로 동냥질 했다가는 얻어 맞기 일쑤였다.

    운좋게 동냥질에 성공한다 한들 단순히 허기를 달랠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굶주림의 나날은 계속됐다. 그렇게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거지꼴로 거리를 배회하던 까불은 의식을 잃고 말았다.

    세상을 너무 물로 본 게 탈이었다.

    이대로 요절 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은광 개발에 대한 마음은 접고, 단천에 돌아 갈 걸······.

    그랬다면 최소한 허무맹랑한 꿈을 갖고 객지를 떠돌다 아사하는 꼴은 면했을 텐데······.

    후회가 막심했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원없이 밥이나 먹고 싶네.’

    두 달이 넘도록 굶다시피 해서였을까.

    까불은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는 순간에도 가족 생각보다 먹을 것부터 생각 난다는 게 서글펐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면 바로 단천에 돌아가서 가난하나마 가족들 곁에 있을 걸 그랬······.

    ‘으음······.’

    정신은 아득해지고 저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는 기분마저 이제는 옅어질 무렵.

    착각일까?

    의식의 너머 저 멀리 꿈틀거리고 있는 혀에서 찌르르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보오. 정신이 드시오?”

    “으으음······.”

    “다행이오, 다행. 의원 말로는 기력이 많이 쇠해 기력을 보하려면 열흘이 꼬박 걸려도 모자르다 하더이다. 편히 누워계시오. 나는 냉큼 주인 어른께 말씀 아뢰고 올 테니.”

    의문의 목소리를 곱씹을 새도 없었다.

    의식이 다시금 흐릿해져갔기 때문이었다.

    ***

    “상소요?”

    나도 모르게 언성이 올라가고 말았다.

    내 눈앞에 있는 분이 할아버지 뻘에 가까운 분이란 걸 감안하면 대단한 무례였지만, 다행히도 불쾌해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언성이 올라가게 만든 장본인은 파평부원군이란 분이셨다.

    시종일관 방글거리는 게 인상적인 분인데, 그런 분 면전에서 언성이 올라간 건 다름 아니라 상소 때문이었다.

    이 부원군 할아버지(?)가 찾아온 건 반시진 전.

    그러니까, 한시간 전 가울 할아버지로부터 집 밖에 왠 시체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허둥지둥 행랑에 갔을 때였다.

    가울 할아버지의 말대로 집 앞에는 초췌하고 깡마른 남자 하나가 쓰러져있었다.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가울 할아버지의 말대로 시체는 아니었다.

    남자를 서둘러 안으로 옮기던 그 무렵.

    이 부원군 할아버지께서 찾아오셨다.

    그 다음?

    예법이라면 예법이겠지만, 한식경이 넘도록 신변잡기에 가까운 잡담을 나눴다.

    한식경은 곧 30분이다.

    30분 동안 본론으로 들어가지도 못 했으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데다, 집 앞에 있던 남자가 정신을 차렸는지도 몹시 궁금했지만 애써 집안으로 들인 분을 내칠 수도 없었다.

    할아버지 뻘에 가까운 분을 어떻게 물릴 수 있겠나?

    그렇게 30분이 넘도록 신변잡기에 가까운 말들을 나누다가 드디어 본론이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본론의 하이라이트 부분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나도 모르게 언성이 올라간 상태로 되묻고 말았다.

    글쎄, 이 할아버지께서 주상 전하께 상소를 올려줄 수 있냐니 뭔가?

    상소라니······.

    평소 생각지도 못 한 게 바로 상소였다.

    다른 사람들이 올린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직접 보지도 못 했다.

    게다가 내가 왜 상소를 올린단 말인가?

    상소 올릴 시간에 직접 가서 말하면 그만 아닌가?

    “아, 오해하지 마시옵소서.”

    “오해는 안 했습니다. 다만 생각지도 못 한 건지라······.”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 하니 설명을 드려도 되겠나이까?”

    “네.”

    “요즘 정국이 어수선한 건 마마께오서도 아시리라 믿사옵니다.”

    “친국 말씀하시는 건가요?”

    “조정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았음이니 그걸 바로잡고자 하는 일이 어찌 정국이 어수선한 일의 원인이겠사옵니까. 다만 그로인해 전하께오서도 날로 상심을 얻고 계시옵고, 또 불경에 관해서 신하들을 불신하고 계시오니 이는 곧······.”

    부원군 할아버지가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으신다.

    말을 빙빙 돌리시지만, 요약하자면 내가 여쭌대로 친국 때문에 정국이 어수선하단 말씀이시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벌써 스물이 넘는 자들이 옥에 갇혔사옵니다. 아뢴대로 전하께서는 날이 갈수록 신하들을 불신하고 계시오니 조정의 분위기 또한 어둡기 그지 없지요.”

    “아, 네······.”

    “하관들은 상관이 언제 끌려갈지 모르니 몸을 사리고 또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몸이 되었으니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사옵니다. 간언이 사라진 것이지요. 비록 몇몇 젊은 관리들이 직언을 하겠답시고 글월을 적어 올린 적이 있사오나 오히려 옥중 신세를 면치 못 하게 되었사옵니다. 사정이 이리되니, 어느 누가 글월을 올릴 수 있겠사옵니까?”

    “부원군 대감이 올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뭘 비꼬는 게 아니라 단순한 의미로 물었다.

    부원군은 군호의 하나다. 그런 군호를 왕족도 아닌 사람이 갖고(?) 있으니 당연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란 것 쯤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어려운 글일수록 높은 사람이 올리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 여쭌 것이다.

    “소, 소인이 올릴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지요.”

    근데 왜 당황해하시지?

    “하지만 전하께선 소인에게 원한을 갖고 계신 듯 하니 글월을 올린다 한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겠사옵니까. 뜻을 곡해하실까 그것이 걱정될 뿐이지요.”

    “음.”

    “나라 안팎 분위기가 이처럼 어수선하니 마마의 말씀처럼 소인이 글월을 올리는 것이 백번이고 천번이고 지당한 일이나 그렇지 못함이 통탄스럽고 한스러울 뿐입니다.”

    “···”

    “···”

    침묵이 감돌았다.

    뭔가 언질을 하신 건 맞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파악을 못 하겠다.

    한참을 고민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제가 이해를 못 하겠어서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대신 상소를 올려달란 말씀 맞죠? 상소로 친국을 중단좀 해달라, 뭐 그렇게?”

    “꼭 그런 것은 아니오나 마마께오서는 전하의 혈육이기도 하시니 어찌 상소를 마다하시겠사옵니까? 마마께오서 상소를 올림으로 인해 정국이 바로 잡힌다면 저 사군과 육진의 무지한 백성들도 마마의 덕과 전하의 어짊을 칭송할 터이니 어찌 이로운 일이 아니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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