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군으로 살어리랏다-31화 (31/365)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1화>

예방접종 실시!

***

“저기······.”

종이배 만큼이나 허접한 나룻배로는 1500근에 육박하는 수소를 태울 수가 없었지만 마침 마포나루로 가던 조운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웃돈이라도 줘서 타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난색을 표하던 조운선의 선장에게 덕산이가 귀엣말로 내 군호를 판 것이다. 그러자 조운선 선장이 굽실거리면서 배에 태워줬고, 예상보다 쉽게 육지(?)를 밞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연신 음메에에에- 거리는 수소와 함께 귀가하는 길.

소를 몰고 가던 덕산이 뒤를 돌아보며 말을 흐린다.

“응?”

“주제 넘은 말씀인 건 아는뎁쇼······.”

“왜? 말 해.”

“대체 이 소는 왜 웃돈까지 줘서 사신 겁니까요?”

덕산이의 말에 나는 멀뚱멀뚱 왜 안 가냐는 듯 덕산이만 바라보는 누렁이를 어루만졌다.

“이 소?”

“예. 쇤네 머리로는 당최 이해가 안 가서 말입니다요. 아까 학당리에서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말씀 여쭙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두창 걸린 소는 보통 병든 소로 관아에 신고해서 배 갈라버리기 마련인데 잔칫날에 쓸 소라면 굳이 학당리까지 가서 사올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요? 게다가 우두 걸린 소는 쓸모도 없구······.”

“궁금해?”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병든 소인데 웃돈까지 주신 건 좀······.”

“그 사람 사정이 딱하잖아. 소 주인이 어떻게 해코지 할지도 모른다는데. 그리고 너 이거 값어치 잘 몰라서 그래. 이게 보물이거든.”

“보, 보물이라굽쇼?”

“응. 지금은 말해도 몰라.”

“···”

“가기나 하자. 날 덥다.”

“아, 예.”

덕산이 묵묵히 집으로 소를 이끌었다.

그리고 도착한 집.

집에서는 당연히 난리가 났다.

잠깐 출타좀 하겠답시고 나갔다가 돌아오신 주인 마님이 수소 한 마리를 떡하니 달고 왔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건 안방마님도 마찬가지였다.

“이 소는 어인 영문으로······.”

“아, 부인. 저녁은 드셨습니까?”

“아, 예··· 한데 이 소는······.”

설명을 바라는 부인의 태도에 나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소에 죽고 소에 산다》라는 소설에서는 종두법에 얽힌 에피소드도 소개가 됐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종두를 하면 소처럼 우둔해진다고 꺼린 사람도 많았고, 총독부에서 종두를 강제로 접종시켰을 땐 부정이라도 탈까봐 소금물로 박박 씻는 사람들도 허다했었다.

내가 이 소를 산 이유를 덕산이한테 설명 해주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대경실색 할 게 뻔하니까.

행랑 식구들과 함께 미쳤다고 수군거릴 게 뻔하니까.

‘비밀로 하는 게 좋겠지?’

난 종두를 내 친인척들은 물론 내 집안 노비들 모두에게도 접종 시킬 생각이었다.

두창에 걸린 적이 없는 내 부인, 여울 씨도 접종 대상중 하나다.

그런데 미리 말했다가 위에 반응을 보이면 나가리다.

내가, 툭하면 역병이 창궐하고 전염병이 도는 이곳 사람들 보단 전염병을 체감하는 온도는 낮을지 모르겠지만, 전염이란 것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충분히 안다.

만약 내 집안 사람들중 한 사람이라도 걸리면 줄초상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괜히 종두를 할 거라고 설레발을 칠 필요는 없겠지.

“아. 소고기를 좀 먹고 싶어서요.”

“갑자기요?”

“갑자기라기 보다는··· 어······.”

뭐라고 얼버무릴까 하던 찰나 덕산이가 눈에 들어온다.

“아. 본격적으로 날 더워지기 전에, 소 한 마리 잡아서 노복들 몸보신이라도 좀 시켜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사왔습니다.”

“아랫것들에게요?”

부인 여울 씨가 희한하다는 듯 쳐다본다.

하긴.

희한하긴 할 테지.

어느 누구도, 인심이 암만 좋다는 상전 그 누구도 노비들에게 소고기를 갖다 해먹이진 않으니까.

“노비도 하나의 재산 아니겠습니까? 재산이 축나면 안 되죠. 하하··· 하.”

시대에 맞는 적절한 변명을 하자, 이내 여울 씨도 수긍을 하신다.

“날도 더운데 들어가계시죠.”

“알겠습니다.”

부인과 노비들 마저 행랑으로 돌려보낸 나는 집 뒤편에 있는 빈 마장에 수소를 넣어놨다.

이제 남들 몰래(?) 두묘를 채취할 차례다.

***

두묘를 채취하는 일은 제법 어려웠다.

소가 발버둥을 쳤기 때문에 진정 시키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소가 진정이 되면 채취 자체는 쉬운 편이었다.

학당리에서 사온 두창 걸린 소는 몸에 두창 종기가 나있었는데, 그 두종을 소독한 침으로 살살 긁어내기만 하면 됐다.

그 다음은 종기가 아물면서 생긴 딱지.

그러니까, 이 딱지 역시 침 같은 도구로 살살 긁어내서 떼주면 종두의 재료는 모두 구비가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간밤에 한시간도 채 안 걸려서 재료를 준비한 나는 점심을 먹자마자 접종 준비를 서둘렀다.

1차적으로 깨끗이 씻고 2차적으로는 삶아 살균 처리한 작은 병에 담아둔 두묘를 늘어놓고, 이른 아침에 덕산이를 시켜 사온 침들을 모두 소독시켰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나는 행랑 식구들을 소집(?) 시켰다.

때아닌 부름에 행랑 식구들이 어리둥절해 하며 마당으로 몰려들었다.

“자. 살면서 나는 두창 한 번 쯤은 걸려 본 적이 있다, 왼쪽으로. 반대로 나는 살면서 두창 한 번도 안 걸려 봤다. 오른쪽으로.”

덕산이를 포함한 열댓명의 노복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왼쪽으로 움직였다.

‘스물 세명인가?’

두창이 걸려본 적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이들은 스물 세명 정도였다.

개중에는 덕산이가 사모해 마지 않는 전금이도 있었다.

“대감마님. 주제 넘은 말씀인데 어찌 사람들을 이리 모으셨습니까요?”

한참 바쁠 때다.

사내종들은 사내종들대로 바쁜 시간대이고, 계집종들은 계집종들 대로 바쁜 시간대다.

행랑 식구들의 수노(首奴, 우두머리 노비) 역할을 하는 질동 할아버지로서는, 아침 일찍부터 분주히 움직이던 내가 한창 일해야 할 사람들을 불러 모은 데 모자라 분류까지 시켜버리니 의아 할 수 밖에 없을 터였다.

“좋은 질문입니다. 이제부터 말씀드릴게요. 자, 두창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는 다들 알죠?”

이미 두창에 걸려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치를 떨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아직 두창을 앓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학을 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죽하면 경전 공부하신 나리들도 무당을 찾겠습니까요. 무서운 병입지요.”

“맞습니다. 엄청 무서운 병이죠. 자, 이건 그 엄청 무서운 두창을 예방 할 수 있는 약입니다.”

난데없이 약팔이가 된 기분이지만, 어쩌겠나.

소두창 걸린 소에게서 채취한 고름이라고 하면 학을 뗄 텐데.

어쨌거나.

“그, 그런 게 있습니까요?”

내 말에 행랑 식구들이 웅성거린다.

오죽하면 나랏님도 구제 못 하는 병이 두창이라고 했었다.

그 병을 예방 할 수 있는 약이라니··· 행랑 식구들 입장에선 신통함을 넘어 믿기지 않을 테지.

“대국에서 건너온 겁니다.”

아직 완전한 적응이 안 돼서 말 실수를 할 때가 많은 나였다.

특히 행랑 식구들은 뭔가 좀 더 편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말실수가 잦았다.

의아해 하는 행랑 식구들에게 ‘대국’ 이 한 마디면 어지간한 의문들은 모두 해결이 됐었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

“한데 그 귀한 걸 어찌······.”

“나랏님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냐구요?”

“송구합니다요.”

나는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나랏님께는 조만간 말씀 드릴 겁니다. 나도 우연히 손에 넣은 거라서요.”

“하온데 대감마님.”

역시 질동 할아버지였다.

“말씀하세요.”

“그런 걸 어찌 쇤네들한테 보여주시온지··· 이 천것들 모두 일자무식에 도덕이라고는 쥐뿔도 몰라서 혹시라도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요.”

제 아무리 주인 것이라도 함부로 보여줬다가는 도적질 할 수 있다는 조언.

잘 알아들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차피 모두에게 줄 생각이었거든요.”

“예?”

아니나 다를까.

마당이 시끌벅쩍해지기 시작했다.

‘그럴만도 하려나?’

시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이건 행랑 식구들을 위한 일이기 이전에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내 집에서 두창 걸린 환자들이 속출해서 모두 실려나간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자괴감이 들겠나?

꼭 그게 아니어도 내 집에 두창 환자가 있다는 건, 종두 접종을 맞았다고 하더라도 께름칙한 일이고.

“자자. 조용, 조용.”

“···”

“이미 두창에 걸려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다시 두창에 걸릴 일이 없으니 이 약은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여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 두창에 걸릴지 모르니 지금부터 한 명씩 이 약을 놔서 두창을 예방할 겁니다. 덕산아.”

“에? 예! 대감마님.”

“안채에 가서 마님부터 뫼셔와라.”

“아, 알겠습니다요!”

잠시 후.

때아닌 두창 예방접종이 시작됐다.

그렇게 꼬박 네시간이 걸려 접종을 끝낸 초저녁 즈음.

"전하께서 저녁 수라를 함께 들자고 입궐하라십니다."

승정원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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