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0화>
소에 죽고 소에 산다
***
다들 살면서 이런 적 한 번 쯤은 있을 거다.
빈둥빈둥 누워서 시간을 축내고 있는데 머릿속에 번뜩!
잊고 있었던 중요한 일이 떠오른 적.
지금 내가 그랬다.
김감의 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만 보면 괜스레 마음이 우울해져서 고개를 높이 쳐들고 흘러가는 구름만 바라보던 순간, 잊고 있었던 소설 하나가 파팍! 하고 떠올랐다.
《소에 죽고 소에 산다》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는 수업 때문이었다.
「문학 비평의 이해」라는 전필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이 소설에 대한 비평을 레포트로 제출하라 말씀하셨고, 본의 아니게 찾아서 읽게 되었다.
근데 비평이 어디 말처럼 쉽나?
소설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어도 어려운 게 비평인데 별 재미가 없어서 대충 읽고 레포트를 제출해서 이 과목은 C를 맞았었다.
뭐, 점수가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지석영이라는 구한말~일제강점기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소설의 포인트는 이 사람이 퍼뜨린 종두법에 있었다.
내 머릿속에 번뜩! 하고 떠오른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종두법이었다.
종두법.
내 기억이 맞다면 두창 예방접종이 바로 종두법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천연두에 걸리면 꼼짝없이 내 목숨을 믿지도 않는 신한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예방접종이라니······.
“더, 덕산아! 덕산아 어딨냐!”
헐레벌떡 일어나 덕산이부터 찾았다.
“찾아 계십니까요, 대감마님?”
“너 우두 좀 아냐?”
“소두창 말씀 하십니까요?”
“어, 소두창. 알아?”
덕산이가 별 걸 다 묻는 듯 한 표정으로 답했다.
“소두창 모르는 사람이 조선 팔도에 어딨겠습니까요? 압지요.”
“너 그럼 혹시 최근에 두창 걸린 소 있다는 소리 못 들었냐?”
“으음······.”
“있어, 없어?”
“아!”
“있어?”
“그러고 보니까 최근에 강너머에서 소두창이 돌아서 소 수십마리가 도축 당했다고 했습죠, 아마?”
여기 사람들은 한강 너머, 그러니까 강남이나 강동, 영등포 지역을 통상 강너머라고 표현했다.
지금도 덕산이가 강너머라 했으니 그 어디 쯤 인 것 같다.
“잘 좀 기억해 봐. 정확히 어디서 소두창이 돌았는지.”
“그게··· 아니, 근데 그건 어찌 물으십니까요?”
“뱁새가 황새 뜻 알려고 하면 다친다. 얼른, 얼른.”
늘 느긋했던 내가 재촉이란 걸 하자, 덕산이도 덩달아 조급해진 것 같았다.
녀석은 미간까지 좁혀가며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리고.
“아!”
“기억 났어?”
“정확히 어디서 소두창이 돌았는지는 잘 모르겠는뎁쇼. 최근에는 학당리(學堂里)에서 소 두 마리가 우두에 걸렸다고 들었습니다요.”
“학당리? 거기가 어딘데?”
“광평대군께서 계신 곳 모르십니까요?”
어찌 그걸 모르냐는 듯 묻는 덕산이에 뜨끔한 나는 종두법이고 뭐고 말을 얼버무렸다.
“아, 알지! 과, 광평대군. 그 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일단 대군인 걸 보면 나랑 신분은 엇비슷 한 것 같은데 손윗사람인지 아랫사람인지는 모르겠······.
아,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가자. 얼른 채비해.”
“어, 어딜 말입니까요?”
“어디긴. 학당리지.”
“소두창 돌아서 분위기도 흉흉할 텐데 거긴 어찌 가시게요?”
“말했지? 뱁새가 황새 뜻 알려고 하면 다친다구. 준비나 해, 인마.”
“···알겠습니다요.”
***
‘아··· 무덤이었어?’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지 두시진만에 덕산이가 말한 학당리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길게 뻗은 다리가 있었다면 북촌에서 강남까지 차가 막혀도 한두시간이면 도착했을 테지만, 이렇다 할 다리가 없다 보니 나룻배를 타고 와야 했다.
그러다 보니 꼬박 네시간이 걸렸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학당리.
도착하자마자 무안해졌다.
광평대군이 살아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묘역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지금도 서울의 명물중 하나로 손꼽히는 광평대군의 묘역 말이다.
‘근데 광평대군 묘는 수서에 있지 않았나?’
이건 역알못인 나도 확신 할 수 있다.
전 여친 지우가 수서에 살았거든.
근데 말했다시피 수서라기엔 거리가 애매하다.
뚝섬을 지나서 나룻배를 탔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마자 한 일식경, 그러니까 30분쯤 걸어서 도착을 했으니까.
수서라면 전혀 도착 할 수 없는 거리다.
근데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두창 걸린 소는 어디 있어?”
“저 마을입니다요.”
덕산이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고개 너머에 마을 하나가 보인다.
마을은 제법 큰 편이었다.
기와집이 2~3채 정도 있었고 그 곁으로 허름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가자.”
장시간 이동을 했더니 몸이 고단했지만 나는 빨리 발을 놀렸다.
한시라도 빨리 두창 걸린 소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광주군 서촌 학당리에 적을 둔 억돌은 부농은 아니지만 어디가서 아쉬운 소리는 안 하고 사는 자작농이었다.
조부님께서 장사로 밑천을 모으셨고, 그 돈을 허투루 안 쓰신 결과물이었다.
그런 억돌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이번에 광주군 서촌에는 우두라는 몹쓸 병이 돌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발생한 건진 몰라도 이웃한 자실동(梓實洞)에선 소 댓 마리가 그 병이 걸렸고 아랫마을 청죽리(靑竹里)에서도 벌써 소 세 마리가 그 몹쓸 병에 걸려 앓고 있었다.
사정은 만돌이 있는 학당리도 다르지 않았다.
황 씨가 선대부터 내려온 땅과 맞바꾼 누렁이 두 마리가 그 우두라는 몹쓸 병에 걸려, 한참 농번기때인데도 움직이지 못 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두가 물러갔다면 불행중 다행인 일이련만, 빌어먹게도 억돌이 임 진사에게 빌려온 소도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황 씨네처럼 한참 농번기에 소는 써보지도 못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안 되는 말이었다.
임 진사는 이 광주군 서촌 일대에서는 악명이 자자하다.
진휼청(賑恤廳)이 설치되면 노복들에게 주는 쌀 한 톨이 아까워서 강너머 마포까지 노복들을 보내서 구휼미를 받아 끼니를 때우게 하고, 일대 주민들에게는 보릿고개에 곡식을 빌려주고 고리로 받는 고리대까지 겸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라면 사실 악명이랄 것도 없다.
누구나 하는 일이니까.
임 진사가 악명을 떨친 건 축재 때문이었다.
그는 돈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그래서, 합법이든 불법이든 편법이든 가리지 않고 축재에 열을 올렸다.
임자 있는 땅을 강탈하는 건 예사였고, 일부러 돈을 꿔줬다가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 하면 자매(自賣, 스스로 몸을 팖)를 강요하는 일도 많았으며, 심지어는 함경도에 있는 노비 놈이 신공을 제때 바치지 않자 사람까지 보내서 신공을 세곱절로 받아 올 정도였다.
나열하자면 하루 밤낮을 새도 모자를 임 진사의 악명이지만, 그런 임 진사에게 소를 빌린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학당리에는 주민들이 십시일반해서 공동으로 구매한 소가 있었다.
그 소는 농번기마다 계원들의 경작을 담당했었는데, 고된 일이 화근이었던지 그만, 작년 겨울을 못 넘기고 죽어버리고 말았다.
임 진사가 악명이 자자하긴 했지만 내심은 그래도 같은 마을 사람인데··· 라는 합리화와, 내년에 있을 농사 걱정에 계원들과 함께 임 진사의 소를 빌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 소가 우두에 걸려버렸다.
우두에 걸렸다는 사실은 이틀 전에 알았지만 아직 임 진사에겐 알리지 못 했다.
도저히 용기가 안 났다.
‘임 진사가 알면 밭을 강탈하려 할 테지······.’
물론 임 진사에게 빌린 소는 계원 모두가 밭갈이에 사용했다.
계원들 전체가 십시일반해서 소를 빌렸고, 그 누렁이 놈으로 밭을 갈았으니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자면 계원 모두에게 있었다.
하지만 과연 임 진사가 계원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까?
억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억돌의 밭을 호시탐탐 노리던 임 진사였다.
아마, 억돌 자신을 콕 찝어서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소값으로 밭을 요구할 테지.
이런 상황에선 계원들도 괜한 불통이 튈까 몸을 사릴 터였다.
“후······.”
억돌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동구 밖에 과객이 보였다.
미간을 좁히고 살펴보니 복색이 영락없는 선비님 같았다.
작년에도 길 가는 선비님께 예를 안 갖췄다고, 그 선비님 노복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던 기억이 있다.
억돌은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갠 채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선비님이 해코지 하지 않도록, 트집 잡지 않도록 아주 공손히.
그런데.
‘왜 안 가?’
이쯤이면 지나가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인기척이 들려오지 않아 곁눈질을 했다.
예의 선비님이 멀뚱멀뚱 자리를 지키면서 누렁이를 빤히 바라보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