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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9화 (29/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9화>

    앉으나 서나 천연두 걱정

    ***

    “대사간은 정녕 내가 우스운가!”

    흠칫.

    “도대체 사간원의 소임은 직언인가, 트집인가?”

    “트, 트집이라니 당치도 않나이다. 신은 그저 백년 종사가 걱정되는 마음에······.”

    “종사가 걱정됐다? 그리 종사를 고민하시는 분이 어찌 두창에 관해선 입하나 뻥긋 없으시고, 진성만 물고 늘어지는가? 정말 살곶이벌에서 있었던 일로 진성에게 악감정이라도 품게 된 것인가? 경연관들은 말하길 군자를 나타내는 척도는 마음에 품은 그릇이라고 하였는데, 대사관은 그 마음이 종지 크기 밖에 안 되는 것인가?”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쾅! 쾅! 쾅!

    “모두 물러가라!”

    “···”

    “모두 물러가라지 않느냐!”

    털썩.

    민휘가 털썩 부복하자, 대신들이 앞다투어 부복하기 시작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전하.”

    대신들의 모습에 융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이것들은 자신이 괜한 신경질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대사간의 직언은 때에 맞지 않은 감이 있었사오나 틀리진 않았사옵니다. 신들도 그 말을 듣고 아득한 마음이 있었사온데, 옛 일을 상고해본다면······.”

    우참찬 정미수(鄭眉壽)

    “우참찬이 아뢴대로 대사간의 직언은 적절하지 못 한 때가 있었사오나 사리를 구분함에 있어서는 어찌 한치 틀림이 있다 할 수 있겠사옵니까? 옥체를 보중함은 그것 또한 임금의 도리이기도 하옵니다. 진성은 비록 종친이긴 하나 공적으로 본다면 신하의 입장인데, 신하가 어찌······.”

    호조판서 이집(李諿).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무릇 원망이란 큰 곳에 있지 않고, 또한 작은 데 있지도 않다. 은혜로울 때 은혜롭지 않고, 힘 쓸 때 힘 쓰지 않는 데에 있다.’ 하였으니 이는 곧 이치에 합당한 말을 좇으라는 뜻이었사옵니다. 다른 대신들이 말한 바와 같이, 적절하지 못 한 감은 있었사오나 어찌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었겠사옵니까? 전하께서 큰 상심에 노여움과 심병을 크게 앓게 되신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나, 직언을 물리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부디 통촉하여주시옵소서!”

    마지막으로 형조판서 송질(宋軼)의 말과 함께 중신들이 이구동성으로 통촉하여주시옵소서를 외쳐댔다.

    융은 말없이 그들을 눈에 담았다.

    지금껏 인생을 살면서 후회가 되는 일이 둘 있었다.

    진성 아우와 거리를 둔 일.

    마지막으로······.

    ‘지난 무오년에 너희를 잘근잘근 밞아놨어야 하거늘, 내 너무 물렀구나.’

    바드득.

    무오년에 싹을 뿌리 뽑지 못 한 일이었다.

    융은 무릎은 꿇고있되, 고개는 빳빳이 쳐들고 있는 민휘를 직시했다.

    ‘네놈부터 쳐죽여주마.’

    ***

    “심사가 복잡하신 모양입니다.”

    사랑방.

    연신 땅이 꺼져라 한숨만 푹푹 내쉬는 내 모습에 장곤 선생님이 글을 강론하다가 말했다.

    “네.”

    “연기가 제법 많이 나는군요.”

    열린 문 사이로 시선을 던진 장곤 선생님은 나와 시선을 나란히 하다가, 저 멀리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에 탄식을 내뱉었다.

    저 연기가 모두 창녕대군이 거처하고 있는 김감의 집에서 나오는 연기란다.

    지금은 창녕대군 한 사람만 두창 증세를 보였지만, 또 다른 환자가 발생할지 모르니 그 집안 사람들의 옷가지를 태우면서 생기는 연기 말이다.

    “아, 선생님도 두창 앓으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요. 저는 아직······.”

    이번에 천연두에 대한 별칭을 알 수 있었다.

    소위 백세창(百世瘡)이라고도 부른단다.

    설령 100살 가깝게 산 노인이라도 한 번 쯤은 꼭 걸리는 병이라고 해서 백세창이란다.

    또 다른 별칭은 마마다.

    마마는 모두 알다시피 왕실에 속한 구성원들에게 붙는 경어였다.

    그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왕실 구성원이란 타이틀은 경외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데, 그 천연두를 마마라고 부른다니 그만큼 무섭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선생님도 각별히 주의 하셔야겠네요.”

    “예. 두창이란 병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질병은 아니니까요. 대군마마께서도 조심하십시오.”

    “···”

    “대군마마. 마음이 떠있으면 그걸 다스릴 수 있는 것도 군자의 도리이옵니다. 창녕대군의 일로 심란하시겠지만 마음을 다잡으실 필요는 있사옵니다.

    “알겠습니다. 수업 계속하시죠.”

    “예. 공자가 말하기를······.”

    수업이 계속 진행됐지만, 수업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수업은 흐지부지 끝이 났다.

    장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사랑방에 홀로 남은 나는 사색에 잠겼다.

    새삼스럽지만 질병 하나로 조선에 온 게 실감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나도 언젠간 걸릴 수 있다는 소리일 텐데······.’

    무엇보다 더 큰 걱정이 이것이었다.

    원래 사람은 이타적이지 못 하다.

    뭐, 테레사 수녀라던지 이태석 신부님 같은 훌륭한 분들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내 생명이 위협 받을 땐 이타적일 수가 없다.

    문제는, 장곤 선생님이 조심하라 일렀듯 내 얼굴에 곰보 자국이 없다는 것이었다.

    천연두를 앓은 적이 없다는 소리다.

    혹시 몰라서 덕산이 한테도 물어보니 나는 천연두 따윈 앓은 적 없단다.

    그 말은 나도 언젠간 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나 진배 없었다.

    그러니 어찌 마음이 심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나 죽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간다는 말을 하는 전도자나 종교가들도 당장 천국행 열차를 타기 위해 죽고 싶어하진 않는다.

    천국행 티켓을 끊어 놓은 사람들도 이럴진대 하물며 두창에 걸려서 내 목숨을 믿지도 않는 신에게 맡긴 채 시름시름 앓다가 죽긴 더더욱 싫었다.

    ‘형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겠네.’

    두창에 관한 걱정을 하다 문득 사랑방 문 너머로 화악- 치솟는 연기가 또 보였다.

    의원들이 도승지 김감의 집으로 급파 됐다지만 의원들도 당장 창녕대군을 치료할 확실한 의학적 지식과 약물이 있는 건 아닐 터였다.

    덕산이 말로는 두창이란 게 그런 병이라고 했다.

    의원들도 손을 쓰긴 할 테지만 결국은 하늘에 맡기게 되는 병이 두창이라고.

    그래서 하늘이 어여삐 여기면 새생명을 주실 테지만, 그게 아니라면 금방 데려갈 거라고.

    때문에 두창 걸린 아이가 있는 여염집에는 선무당들이 진을 치는 거라고.

    그걸 연산군 형님도 모르진 않을 터.

    자식이 없었던 나는 그 아픔의 깊이가 얼만지 정확히 헤아릴 순 없겠지만 어제 보았던 모습으로 짐작이나마 할 수 있었다.

    어제 아이처럼 서럽게 목놓아 울던 연산군 형님의 모습은 내가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폭군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그냥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사경을 헤매는 한 아이의 아버지 말이다.

    그 모습은 현호로 살 적에 우연히 본 메디컬 다큐 – 응급실 편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아버지도 아들의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생명을 장담 할 순 없다는 의사의 말에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은 채 한참을 목놓아 울었었다.

    어제의 연산군 형님처럼.

    다른 게 있다면 메디컬 다큐에 실려온 환자의 아버지는 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쩌면 불행중 다행일지 모른다.

    어제 본 연산군 형님은 감정을 컨트롤 하고 계셨다.

    마침내 그걸 참지 못 하고 서럽게 울긴 했었지만 찰나에 불과했고, 금방 신색을 가다듬곤 편전으로 가셨다.

    그 뒷모습을 보고 느낀 게 왕의 자리라는 무거움이었다.

    아마 지금도 그럴 테지.

    그래서 언제 엉엉 목놓아 울었냐는 듯 정사를 돌보고 계시겠지.

    창녕이 걱정돼서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시겠지.

    “후······.”

    안 그래도 심란한 마음에 연산군 형님과 사경을 헤매고 있을 창녕대군을 생각하니 마음이 울적해진다.

    내가 여기와서 처음으로 기대게 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아픔을 겪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과 무력감도 울적함에 한몫을 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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