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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26화 (26/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6화>

    자칭 카사노바의 연애스킬

    ***

    아까 처음 본 밭이 있는 마을 이름은 옛날 고려시대에 쇠붙이를 만들던 장인들이 있어서 금장리란다.

    금장리 땅을 본 이후 몇 군데 더 둘러봤다.

    구관이 명관이다는 말처럼 뭐든 처음 게 낫다고, 금장리 밭 만한 곳은 없었다.

    뭐, 아주 없진 않았지만 굳이 거금을 들여 투자할 가치는 없었달까.

    금장리가 딱이었다.

    동대문에서도 지척이었고, 동대문에서 지척이면 우리 집에서도 지척이거든.

    “대감마님.”

    “응?”

    “정말로 저 땅들 살 의중이 있으십니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 멀리 보이는 금장리 땅에 덕산이 자못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그닥 다그닥.

    말 등에 기댄 나는 저 멀리 금장리 땅을 눈에 담았다.

    “나쁘지 않잖아. 땅주인이 판다면 사야지. 근데 그건 왜?”

    “아, 아뇨. 그냥 궁금해서······.”

    “돈은 돈으로 불리는 거야.”

    “돈 욕심 있으십니까요?”

    “식욕 없는 사람도 있냐?”

    “없죠.”

    “마찬가지로 물욕 없는 사람이 어딨냐?”

    “그래도 대군마마신데······.”

    “내가 지금이야 대군이지 언제 어떻게 될지 누가 아냐? 그럴 때 남는 건 돈 밖에 없다.”

    너무 지지리궁상 같지만 이현호로 살면서 가장 크게 와닿는 말이 있었다.

    결국 남는 건 돈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잔인한 말이지만 사람 관계도 결국 돈으로 하여금 시작된다. 돈으로 비극을 맞을 수도 있지만, 애당초 10대가 아닌 이상에야 돈 없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나?

    뭐, 부랄 친구들도 몇 년간은 네 사정이 어려우니 우리가 낸다, 하고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서로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럼 틀어지는 거고.

    내 친구들은 절대 안 그럴 거라는 믿음 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사람은 결국 다 거기서 거기거든.

    게다가 가장 모순적인 말이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라는 말이었다.

    돈이 왜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어?

    이건 극단적인 경우다.

    있다가 없어지는 경우는 사업체가 부도 날 경우.

    없다가 있게 되는 경우는 로또나 하던 일이 성공할 경우.

    근데 이 말을 모두에게 적용 시킬 순 없다.

    모든 사람이 부도가 나는 건 아니고, 모든 사람이 로또 맞고 하던 일이 잘 되진 않으니까.

    결국 돈은 있는 사람이 더 벌게 된다.

    사회 구조가 그렇다.

    “그 얘긴 이쯤하고. 덕산아.”

    “네?”

    “너 전금이랑 진도 어디까지 나갔냐?”

    “지, 진도요?”

    이 자식이 시치미 떼긴.

    “너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 내가 다 아는데 새삼스럽지도 않게 왜 시치미는 떼고 그래?”

    “그, 그렇고 그런 사이라뇨! 아, 아닙니다요.”

    “차라리 귀신을 속여라.”

    “아, 아니라니깝쇼······.”

    “너, 그럼 전금이 다른 놈한테 시집 보낸다?”

    “···”

    말을 잇지 못 하는 덕산이 반응에 킥킥 웃음이 나왔다.

    “너도 전금이랑 잘 되고 싶지?”

    “···”

    “솔직히 말 안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전금이 다른 놈한테 시집 보낸다?”

    “아, 안 됩니다요!”

    “자식. 잘 되고 싶지?”

    “자, 잘 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습죠. 근데 전금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아니, 그보다 저같은 곰보 놈을 우찌 전금이 같은 애가 마음에 들어하려구요.”

    덕산이 별명이 곰보다.

    질동 할아버지한테 듣기론 덕산이가 어렸을 적에 두창을 앓았던 적이 있는데 그 후유증이라고 했다.

    조선이나 한국이나 다 똑같다.

    어릴 땐 생김새가 좀만 달라도 놀림을 받기 일쑤다.

    덕산이도 그런 놀림을 제법 받았겠지.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을 테고.

    “아니, 임마. 자신감을 좀 가져. 사랑을 어? 얼굴 보고만 해?”

    덕산이 희망어린 얼굴로 고개를 든다.

    그러자 덕산의 오른뺨에 난 곰보 자국이 확대돼서 보이는 것 같다.

    “아 물론, 아주 조금은··· 아주 쬐끔은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예 없다고 할 순 없겠는데. 너 정도면 어디가서 꿀릴 정도는 아니야.”

    “그, 그런가요?”

    “그래, 임마. 근데 너 저번에 꽃반지 주고 그걸로 끝어있냐?”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긴 한 것 같다.

    “뭐가 말입니까요?”

    “꽃반지 주고 뭐, 둘이 사적으로 대화하거나 한 적 없었냐고.”

    “없습죠?”

    역시 괜한 걸 물었다.

    “자랑이다.”

    한숨이 푹푹 새어나왔다.

    담배라도 있으면 담배 한 까지 물고 남자대 남자로 얘기할 텐데.

    그런 면에선 좀 아쉽다.

    “덕산아.”

    “예, 대감마님.”

    “여자 마음 별 거 없어.”

    “그러는 대감마님은 왜 안방마······.”

    “응? 뭐라고 궁시렁 거렸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여자들 무심한 듯 챙겨주는 남자한테 뻑간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답답한 마음에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바닥에 쪼그려앉았다.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졸라맨 형식으로 사람 둘을 그렸다.

    “이게 너고, 이게 전금이야.”

    “네.”

    “자,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자. 전금이가 맨날 너 좋다고 쫓아다녀. 뭐, 시도때도 없이··· 그냥 막 겁나게 쫓아다녀. 그러면서 또 엄청 잘 해주네? 음식 남는 거 있으면 하나, 둘 갖다주고, 너 어디 상처나면 약 같은 거 발라주고, 그럼 어떻겠냐?”

    헤에-.

    “쓰릅. 좋겠는뎁쇼.”

    아, 이게 아닌데.

    “크흠. 아니, 상상만 하니까 좋은 거지. 너 막상 그 상황 닥치면 전금이 귀찮아질 걸? 원래 사람은 나 좋다고 따라 다니는 사람한테 매력 못 느끼거든. 그게 사람 본성이야. 남자도 그런데 여자는 더 해.”

    “그, 그럼······.”

    “너 만약에 여기서 전금이 좋다고 헬렐레 거리면서 전금이한테 뭐 갖다 바쳐, 상처나면 걱정해줘, 고민상담 해줘, 비녀 선물해줘, 막 이런 식으로 착하게 굴면 호구 밖에 안 돼.”

    “보, 보통은 선물 같은 거 해주면 좋아하지 않을깝쇼?”

    “에휴. 너, 어떤 기지배가 너 좋다고 쫓아다녀. 선물도 바리바리 싸다가 갖다 바쳐. 어떻겠냐?”

    “좋겠죠.”

    “처음은 좋지. 고맙고. 근데 나중엔?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니까?”

    “음.”

    “전금이도 같애. 너 전금이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면 오빠, 동생 이상은 못 된다.”

    “그,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 어떻게 해야할깝쇼?”

    사실 오지랖도 사람 본성이다.

    오지랖 중에 제일은 남 연애사에 참견하는 일이다.

    남 연애사에 참견하는 것 만큼 재미진 일이 없다.

    이땐 당사자가 아닌데도 덩달아 설레거든.

    일종의 대리만족이랄까?

    내가 썸타는 건 아니지만 타인으로 하여금 썸타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뭐, 그런 거 있잖나.

    “걱정 마라. 이 형이 다 알아서 도와주잖아. 일단 컨셉부터 잡··· 아, 컨셉이 뭐냐면······.”

    연애고자 덕산이에게 자칭 카사노바의 연애 스킬을 전수해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덕산이는 때론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고 때론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스킬을 전수(?) 받았다.

    그렇게 동대문에 다다랐을 즈음.

    “빨리, 빨리 움직여라!”

    어째 동대문이 아까 전과는 다르게 시끌벅쩍하다.

    늘어지게 하품을 해대며 지나가는 사람 구경이나 하던 수문군들은, 헐레벌떡 뛰어다니고 있었고 수문장으로 보이는 지휘관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면서 수문군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설마 전쟁?’

    수문군들이 이리 바삐 움직이는 건 전쟁 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이게 또, 확실한 건 아니었다.

    전쟁이 난 거라면 성문부터 걸어잠글 텐데, 성문은 고대로였다.

    “이보시오.”

    호기심을 참지 못 한 나는 마침 내 앞을 지나가는 수문군 하나를 붙잡았다.

    “···?”

    “무슨 일이라도 난 겁니까?”

    “과객(過客, 나그네) 같진 않고 도성 사람 같은데 소식 못 들으셨소?”

    “못 들었소만.”

    “대군께서 두창에 걸리셨다지 뭐요.”

    “내가 말이오?”

    “엥? 내가?”

    의뭉쩍게 쳐다보는 수문군을 보니 말실수를 한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하긴 대군이 나만 있는 건 아니지.

    “어느 대군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있겠소?”

    “어느 대군이긴, 창녕대군(昌寧大君)을 말함이지.”

    창녕대군?

    나한텐 조카되는 아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저번에 궐에 찾아갔다가 난데없이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그 어머니가 말한 기억이 난다.

    창녕대군이 날 적 부터 몸이 유약한데 궐 밖 사가(私家, 여염집)에서 지내는 게 안쓰럽다고, 그래서 창녕대군을 보면 내 생각이 난다나 뭐라나.

    “지금 막 성문을 폐해서 잡인들의 통행은 금하라는 명이 떨어진 참이었소.”

    “그렇소?”

    “지금이야 창녕대군 한 분이지만, 두창이 어디 한 두 사람만 걸리는 병이오? 선비님도 두창 앓은 적 없으면 집에 콕 박혀 있는 게 좋을 거요. 괜히 두창 옲을지 모르니까. 그럼 난 바빠서 이만.”

    제 할 일을 하러 가는 수문군을 뒤로하고 터덜터덜 걸었다.

    ‘이거 참 큰일이네.’

    듣기로는 이제 4살이라고 들었다.

    4살이면 아직 한참 부모 사랑 받으며 자랄 나이고, 부모에게 어리광 부릴 나이다.

    연산군 형님도 틈틈이 창녕대군을 언급하고, 또 그에 관한 시를 지을 만큼 자식 사랑이 남다른 것 같았는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 병에 걸렸으니, 참.

    괜히 그걸로 스트레스 받으시면 안 되는데······.

    “안 되겠다.”

    “네, 뭐가요?”

    “덕산아, 궐로 가자.”

    “가, 갑자기요?”

    “갑자기는 무슨, 창녕대군이 두창 걸렸다잖아. 병문안 가진 못 해도 위로는 해드리러 가야지.”

    “아, 알겠습니다요.”

    방향을 틀어 경복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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