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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6화 (16/365)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6화>

누구도 편 들어주지 않는 연산군

***

“엥?”

연산군 형님?

내가 당황한 만큼 숭재 씨와 장곤 선생님도 당황한 것 같았다.

심지어 장곤 선생님은 넙쭉 부복부터 하셨다.

“저, 전하······.”

황망한 표정의 숭재 씨를 뒤로한 연산군 형님이 내관인지 군사인지 모를 사람의 등을 밞고 말에서 내렸다.

“오늘 사냥을 나간다 들었다.”

“그렇사옵니다.”

“한데 어찌 날 빼고 가려는가?”

“화, 황송하옵니다, 전하.”

“하하하. 농이다, 농. 한데 이자는······.”

연산군 형님이 뒤늦게 장곤 선생님을 바라봤다.

장곤 선생님이 황망한 듯 더 깊숙이 고개를 조아린다.

“형님 전하께서 붙여주신 제 사부님이예요.”

“사부님?”

고개를 갸웃거리는 연산군 형님에 형님을 따라온 상선이 귀엣말을 건넨다.

설명을 들었는지 연산군 형님이 씨익- 하고 웃는다.

“아아··· 이장곤 말이로군. 함께 가려는 것이냐?”

“네. 선생님이 지금 보니까 서생이신 것 같아서 풍원위 한테 사냥도 좀 배우려구요.”

“뭐라, 서생? 하하하! 네가 네 선생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

“그건 그렇고, 사냥은 어디로 갈 참이었더냐?”

연산군 형님의 물음에 숭재 씨가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양주로 갈 생각이었사옵니다.”

“그리 멀리 말이냐?”

“금표를 넘을 순 없는지라······.”

“진성아우가 함께 하는데 금표가 무에 대수랴. 다음부턴 혹 사냥 갈 일이 있거든 금표는 신경 쓰지 말라. 내 따로 명을 내려놓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럼 가지. 오늘은 살곶이벌이 어떠하냐?”

“살곶이벌이요?”

거기가 어딘가 싶었지만 뭐, 어디든 상관없겠지.

“저야 어디든 좋습니다.”

***

지명에서 대충 짐작은 했지만 살곶이벌은 지금의 중랑구 일대였다.

게다가 우리가 사냥을 하러 간 곳은 뚝섬이었다.

뚝섬이라니··· 뭔가 반가운 지명이었다.

다만 기존에 알고 있는 뚝섬과는 다소 달랐다.

일종의 관광지화 된 기존의 뚝섬과 다르게 지금의 뚝섬은 목초지 같은 느낌을 줬다.

사냥은 2:2팀전으로 진행됐다.

나는 연산군 형님이랑 팀을 먹고, 숭재 씨와 장곤 선생님이 팀을 먹었다.

난 장곤 선생님이 서생인 줄 알았는데 웬 걸.

활을 겁나 잘 쐈다.

숭재 씨도 내 눈에는 활을 겁나 잘 쏘는데 장곤 선생님은 그보다 배는 더 잘 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신분이 깡패인 사회에서 연산군 형님보다 더 많이 잡을 순 없었는지, 숭재 씨와 장곤 선생님은 사냥감을 적절히 조절했다.

연산군 형님이 사슴을 잡으면 둘은 토끼를 잡았고, 연산군 형님이 토끼를 잡으면 둘은 다람쥐를 잡았다.

나?

나는 당연히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솔직히 말타고 연산군 형님 쫓아가는 것도 버거웠다. 한 번은 무리해서 쫓아가려다가 말에서 떨어질 뻔도 했다.

다행히 오지는 순발력으로 낙마는 면했다.

사냥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임금과 사냥을 한다는게 영 회의적이었는지, 뚝섬으로 가는 내내 “사냥은 아니 되옵니다.” 연산군 형님께 외치던 장곤 선생님도 금방 분위기에 적응됐는지 사냥을 즐겼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숭재 씨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즐거워보이는 건 단연 연산군 형님이었다.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그에게 있어 사냥이 얼마나 큰 낙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약 다섯 시간에 걸친 사냥이 끝이 났다.

나랑 연산군 형님은 토탈 사슴 네 마리와 토끼 두 마리를 잡았고 숭재 씨와 장곤 선생님은 사슴 두 마리와 토끼 한 마리, 다람쥐 한 마리를 잡는 걸로 끝이 났다.

사냥은 끝났지만 자고로 낚시꾼들도 낚시가 끝나면 매운탕을 해먹기 마련이고, 캠핑족들도 밥 때가 되면 바비큐 파티를 하기 마련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연산군 형님이 이대로 파할 순 없겠다며 고기파티를 제안한 것이었다.

그것도 소고기로!

나야 땡큐였다.

곧이어 연산군 형님이 아랫 사람들을 시켜 소고기를 가져오라 일렀고, 근방 백정들이 소고기를 갖고 왔다.

부위는 잘 모르겠는데 빛깔은 좋아보였다.

넷이서 두런두런 둘러 앉아 화로에 소고기를 올렸다.

‘맛있겠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고기에 저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가는 그때였다.

“전하!”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관복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몇 명인지 세어보진 않았지만 꽤 많다.

어림잡아 마흔명?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될 것 같기도 하다.

“젠장.”

순간 들려온 욕설에 깜짝 놀랐다.

연산군 형님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욕을 하시나 몰랐는데 곧이어 도착한 관복 입은 아저씨들 덕에 알 수 있었다.

“전하!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계시옵니까?”

이름 모를 아저씨의 말에도 연산군 형님은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귀찮다는 표정과 함께 손수 고기를 굽기만 하셨다.

‘방해꾼인가 보구만.’

연산군 형님의 태도.

그리고 관복 입은 아저씨들의 태도에서 유추 할 수 있었다.

저들이 훼방꾼이라는 것을.

“전하! 어찌 말씀이 없으시옵니까?”

연이은 채근에 연산군 형님이 젓가락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잠시 미행(微行, 미복잠행)을 나온 것 뿐인데 왜 이리 소란이오?”

“가타부타 말씀도 없이 미행을 나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이것이 어찌 미행이옵니까?”

역시나 이름 모를 아저씨가 화로 위에 올라간 소고기를 가리키며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연산군 형님이 기가 좀 꺾이는지 목소리도 자연스레 작아지신다.

“···그러니 내 최소한의 군사만 대동하고 나온 거 아니요.”

“사냥에는 절제가 필요한 법이라 누차 말씀 아뢰지 않았사옵니까? 심지어 오늘 아침에도 전하께서 사냥을 자중하시겠다 약조하셨사옵니다. 한데 어찌 몇 날 며칠이 지나서도 아니고, 바로 그 약조를 저버리시옵니까?”

“내 경연에 참가하겠다고 했지, 사냥을 아니 하겠다고는 말하지 않았소. 게다가 말하지 않았소. 내 수천 군사를 불러 진형을 갖추고, 몰이꾼으로 삼아 시끌벅쩍 사냥을 한 것도 아니고, 간소하게 나와서 여염집 도령처럼 잠시 살(화살)을 쏜 것 뿐인데, 어찌 그리 빡빡하게 구시오?”

“차라리 수천 군사를 불러 진형을 갖춰 사냥하는 것은 훈련의 일환이니 이해라도 할 수 있사옵니다만, 이건 도무지······.”

관복 아저씨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이 화로는 무엇이옵니까?”

“본론만 말하시오.”

“백성들은 보릿고개에 한 줌 곡식이 없어 초근으로 연명하고, 그 초근도 없는 사람들은 목피라도 갉아먹고 있는데 어찌 전하께선 이리 한가히 종친과 함께 소를 잡으셨단 말이옵니까!”

어째 분위기가 점점 살벌해진다.

괜히 나한테도 불통이 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내려놨다.

“한가히? 사관은 들어라!”

아까 전부터 우릴 따라다녔던 사관 한 명이 고개를 조아렸다.

“하문하소서.”

“지금 대사간이 과인을 겁박한 것도 기술하였느냐?”

“···”

“하였느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사초의 일은 말씀 드릴 수 없사옵니다.”

연산군 편은 아무도 없구나.

이러면 나라도······.

“저기······.”

조심스럽게 운을 떼자 수십쌍의 눈이 일제히 나한테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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