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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14화 (14/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14화>

    나 지금까지 바보인 척 한 거임

    ***

    다음 날.

    “이건 뭐라고 읽는 거예요?”

    장곤은 본인의 판단이 오판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군의 학구열은 대단했다.

    낙마한 뒤로 모든 걸 잊어버렸다는 대군의 말이 아직 긴가민가한 건 사실이지만, 최소한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확실해보였다.

    대군에게서 껄렁껄렁한 인상을 받아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던 장곤으로선 의외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학생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도 보람찬 법이니까.

    “그건 이 시(是)라 읽습니다.”

    “이 시. 이건요?”

    “경계 잠(箴)이라 읽습니다.”

    “경계 잠이요. 그럼 이건요?”

    “편안 강(康)이라 읽습니다.”

    “편안 강.”

    슥삭슥삭.

    “한데 거기에 뭐라고 적는 것입니까?”

    한참 따분한 수업을 이어나가던 장곤.

    궁금증을 참지 못 한 그는 대군이 종이에 적는 걸 가리키며 물었다.

    첫 수업 때부터 열의가 대단했던 대군은 의외의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 예컨대 자신이 편안 강(康)을 독음으로 들려주면 대군은 康자를 씀과 동시에 그 밑에 뭐라고 글을 더 써내려갔다.

    언뜻 보기엔 언문 같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언문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였다.

    “아, 이거요? 언문이요.”

    “언문? 제가 알고 있는 언문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만. 혹 언문을 잘못 배우신 게 아니옵니까?”

    지학의 나이에 거칠 황(荒)도 모르던 대군이다. 언문을 잘못 배웠다는 추측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아, 이건 편의상 제가 개조 한 거예요.”

    “개조요?”

    “네.”

    개조라니······.

    “하면 한자 아래에는 그 뜻을 언문으로 쓰신다는 것입니까?”

    “네. 선생님 돌아가시면 외우려구요.”

    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장곤은 굳이 더 묻지는 않았다.

    ‘일단 대군께서 학문에 나름의 뜻을 두신 것 같으니 해가 될 건 없겠지.’

    너무 특출나도 사부인 자신이 곤란하겠지만, 너무 모자르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일단 열의는 보이니 너무 모잘라서 자신이 곤욕을 당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계속 읽어주세요. 받아 적게.”

    “아, 예. 다음은······.”

    ***

    어쩌면 세계 10대 불가사의처럼, 불가사의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공부는 곧잘하는 타입이었다.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는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1등을 한 번도 못 해 본 건 아닐 만큼 어디가서 공부 못 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았었다.

    못 믿겠다고?

    뭐, 정 못 믿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팩트인 걸 어쩌겠나.

    내가 천재라는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난 범재다. 다만 확실한 목표 의식과 노력이 결합돼서 시너지 효과로 작용했을 따름이다.

    무슨 확실한 목표 의식?

    성공하겠다는 목표 의식 말이다.

    난 아무것도 없는 천애고아였다.

    그런 내가 성공 할 수 있는 수단은 공부 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선 대학 간판이 중요하니까.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고등학교를 1학기만 다니고 자퇴했다.

    새벽에는 택배 상하차를 나갔고, 돌아오면 죽은 듯 교재만 보다가 슬슬 저녁 때 쯤 치킨 배달 알바를 뛰었다.

    그러다 보면 희한하게 더 간절해진다.

    상하차와 치킨 배달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난 정말 이 일은 하기 싫다. 평생을 하라면 못 할 것 같다. 죽을 듯 공부하자. 그래서 꼭 성공하자.

    뭐, 그런?

    공부한 보람이 있었는지 내가 지원한 Y대에는 떨어졌지만 서울에 있는 모 대학에는 학과 수석으로 입학 할 수 있었다.

    서울권 대학을 학과 수석으로 들어간 놈이 왜 역사에는 젬병인지 모르겠다고?

    사탐과목에서 법과 정치, 경제.

    이 2개 과목으로 수능을 봤거든.

    사탐과목에서 헬난이도를 자랑하는 이 두 개 과목을 선택한 건 배수진을 치기 위해서였다.

    이 악물고 공부하겠다는, 꼭 성공하겠다는.

    나한텐 그런 절실함이 필요했었거든.

    뭐, 결과적으로 그 배수진이 Y대 정문에서 U턴하게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어쨌건 거기서 하는 공부나 여기서 하는 공부나 별반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암기는 내 주특기인데, 여기 공부는 순 암기 위주였다.

    게다가 내 착각인진 모르겠지만 머리가 더 맑아진 것 같고 집중력도 훨씬 좋아진 기분이다.

    이현호의 삶일 때는 세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오래 앉아 있는 거였는데, 여긴 여섯 시간을 앉아 있어도 좀이 쑤시질 않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천자문을 외우다가 덕산이가 소반 들고 오면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였다.

    암기 능력도 마찬가지였다.

    난 한참 각잡고 공부할 적에 영어단어를 하루에 300개씩 외웠다. 그런데 지금 한자는 200개씩 외웠다.

    영어단어보단 한자가 외우기 더 힘들다는 걸 감안한다면, 암기 능력이 이전보다 훨씬, 아니 상상도 못 할 만큼 좋아진 것이다.

    원래 이 몸뚱아리의 주인이 머리가 좋았던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어드밴티지 같은 게 주어진 것일 수도 있었다.

    뭐가 됐든 나한텐 개꿀인 일이지만.

    그렇게 5일 후.

    “다, 다 외우셨단 말씀이십니까?”

    하루게 다르게 천자문을 외우는 날 보고 기함을 토해내던 선생님은, 마침내 천자문을 다 외웠다는 내 소리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확실히 내가 봐도 당혹스러울만 하다.

    한 일(一)자나 하늘 천(天) 같은 기본적인 한자만 알았던 내가 닷새 만에 천자문을 다 외워버렸으니까.

    “네. 다 외웠는데요.”

    “그럼, 헐 훼(毁)와 낮을 비(卑), 그리고······.”

    “그렇게 하면 비효율적이잖아요. 독음으로 불러주시면 받아 쓸게요.”

    “아, 하오면··· 누관비경(樓觀飛驚)을 써주시겠습니까?”

    붓을 든 나는 누관비경 네 자를 써내려갔다.

    막힘없이 쓰는 날 보고 두 눈만 끔뻑거리던 선생님.

    “노, 노협괴경.”

    路俠槐卿.

    “화, 환공광합”

    桓公匡合.

    “영음찰리 감모변색.”

    聆音察理, 鑑貌辨色

    “태욕근치 임고행즉.”

    殆辱近恥, 林皐幸卽

    “지신수우 영수길소.”

    指薪修祐, 永綏吉劭

    “···”

    “어때요?”

    선생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 암기력은 할 말을 잃게 만들 수준인 것 같긴 하다.

    “···천자문은 다 떼신 듯 하니 소학으로 넘어가시지요.”

    “에이, 사람이 공부만 하면 인생 노잼이죠.”

    “노, 노··· 어인 말씀이신지······.”

    “아, 재미 없다는 표현이예요.”

    “노잼··· 이 말입니까? 어찌요?”

    “네. No랑 재미를 줄인 잼이랑 합친 합성어예요”

    “노가 무엇입니까? 노자의 그 노 자입니까?”

    “아뇨. 아니 불(不)이랑 비슷한 표현이에요.”

    “노잼··· 노잼··· 확실히 마마께오서는 희한한 말들을 많이 쓰시옵니다.”

    되도록 절제하려고 했던 나였지만 입에 벤 말들이 절제한다고 절제 되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직 5일 밖에 안 봤지만 내가 본 선생님은 10선비 기질이 하나도 없으셨다.

    아직 젊으셔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조선시대 선비라면 꽉 막힌 꼴통(?)을 생각하고 21세기 말을 절제하려고 했던 나는 어느 순간 선생님이 편해지기 시작했고, 절제가 무너지고 말았다.

    간간이 현대말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은 해괴한 말이라고 하면서도 지금처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곤 했다.

    게다가,

    “확실히 공부만 하면 노잼이긴 하온데··· 그래도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됩니다.”

    지금처럼 때때로 현대말을 응용(?)하는 선생님의 반응이 재밌어서 상황에 맞게끔 21세기 은어들을 사용하곤 했다.

    “5일 동안 공부만 했잖아요. 가끔 머리도 식혀줘야죠. 게다가 약속도 했단 말이예요.”

    “약속이요?”

    “네. 풍원이랑 오늘 사냥가자고 어제 약속 했거든요.”

    “아······.”

    “선생님도 같이 가서 하실래요?”

    선생님이 경기를 일으키신다.

    “아, 아닙니다. 소인은 일전에 전하께 사냥을 자제하라 상소를 올린 적이 있는 위인인데, 어찌 한가로이 사냥을 하며 위군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라곤 하지만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지신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사람이 일관성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원래 사람은 모순의 동물입니다.”

    “쓰읍. 그,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가요, 가.”

    “아, 아닙니다. 저는 역시 귀가해서 독서나 해야겠사옵니다.”

    “사냥내기 해서 저 이기시면 제가 책 선물해드릴게요.”

    벌떡.

    “마마께오서 하신 말씀이 참으로 가슴에 와닿사옵니다. 공부만 하면 인생이 노잼이다··· 사람은 모순의 동물이다.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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