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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으로 살어리랏다-3화 (3/365)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 3화>

    패초 뭔지 아는 사람?

    ***

    "신공?"

    "예."

    "그게 뭔데?"

    내 말에 덕산이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신색을 가다듬었다.

    하긴 녀석도 이젠 적응이 됐을 거다.

    제 주인이 어느 시점부터, 이 시대 기준으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증세를 많이 보였었으니까.

    일례로 처음에 딱 이 몸뚱아리에 들어오고 나서 소반을 받은 적이 있었다.

    소반이 뭔지도 최근에 알았지만 어쨌든··· 밥상 위에 희멀건 죽이 있는 게 아닌가?

    근데 또 냄새는 야리꾸리했다.

    그게 뭐냐고 물었는데 알고보니 국사책에서 보던 타락죽이란다.

    그것도 왕이 하사하신!

    암만 타락죽이 귀한 음식이라지만 왕실 종친인 내가 타락죽도 못 알아본 적이 있었으니, 신공이 뭐냐고 묻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거겠지.

    “대감께 바치는 공물 같은 겁니다요.”

    “그래? 고마운 사람이네.”

    “아, 예······.”

    덕산이가 막 몸을 돌리려던 때.

    마침 ‘소금 칠 거리’가 떠올랐다.

    “덕산아.”

    “시키실 거라도 있으십니까요?”

    “신공 바치러 온 사람은 어딨냐?”

    “곳간채에 있을 겁니다요.”

    신을 신고 부랴부랴 곳간채로 갔다.

    이 곳간 안에 잠든 게 모두 쌀이다. 쌀이 곧 돈인 시대라니 한마디로 내 금고랄까?

    “네가 개금이냐?”

    “아이쿠!”

    막 곳간채에 쌀인지 잡곡인지 가마니를 옮기던 사람을 불렀다. 그러자 개금이 화들짝 놀라 부복을 한다.

    “이건 뭐냐?”

    “시, 시, 신공입니다요.”

    대충 가마니를 훑어봤다.

    보리가 들었다.

    “농부?”

    “에?”

    “농삿일 하냐고.”

    “대, 대감마님의 덕택으로 작은 밭뙤기나마 경작하고 있습지요.”

    개금의 말에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다.

    “지금은 어떤 농사를 짓는데?”

    “기, 김을 매고 있습죠.”

    “김?”

    “잡초 같은 것들 말입니다요.”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이거다!

    소금 칠 거리!

    “오늘도 하나?”

    은근하게 묻자 개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 그렇습죠.”

    “나도 좀 해도 되지?”

    “예?”

    개금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진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나도 김 매는 거 좀 같이 해도 되냐고. 일종의 상부상조?”

    털썩!

    “사, 살려주십쇼, 대감마님!”

    “엥? 내가 너 죽인다고 안 했는데? 상부상조 하자니까?”

    “쇠, 쇤네가 원체 일자무식이라 무슨 무례를 범했는지 모르겠습니다요. 하, 하오나 어찌 귀한 몸으로 천한 일을 하신다고··· 부, 부디······.”

    이젠 벌벌 떨기 까지 한다.

    이쯤되자 내가 더 당황스러워졌다.

    나는 손사래까지 치면서 내 뜻을 곡해했음을 알렸다.

    “아냐, 아냐. 죽인다는 게 아니라 나도 그 일 좀 하고 싶어서, 시간 때우기··· 라고 하면 좀 없어보이니까, 일종의 교육용이랄까?”

    “교, 교육용이라시면······.”

    “뭐라고 설명을 해야될까? 아! 나 평생 농사 지어 본 적이 없거든? 근데 밥은 또 맨날 먹는 거잖아?”

    “그, 그렇습죠.”

    “밥은 맨날 먹는 위인이 평생 농사도 지어 본 적이 없다니까 모순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밥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구경도 할 겸, 교육도 할 겸이랄까?”

    “하, 하오나 암만 그래도 귀인께서 그런 천한 일을······.”

    “에이, 사람 하는 일에 귀천이 어딨어. 아무튼 좀 해도 되지?”

    연신 눈치를 살피던 개금은 덕산이 살짝 고개를 끄덕거리자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긍정을 표했다.

    “아, 알겠습니다요.”

    “좋아! 그럼 가보자! 시간 때우러!”

    오랜만에 할 거리를 찾아선지 텐션이 업 되는 기분이다.

    ***

    “헉! 헉! 아, 쓰바 힘들어! 안 해!”

    소금 칠 거리로 육체노동을 떠올렸다.

    원래 일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가기도 하고, 또 궁금하기도 했다.

    이 시대에는 어떻게 농사를 짓나.

    근데··· 이런 씨부레! 괜한 호기심이었다.

    SNS에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빨리 죽는 이유’로 위험한 장난과 호기심을 꼽던데, 호기심이 사람 잡는다.

    안 할 거다. 겁나 힘들다.

    “아이구, 화, 황송하구만요!”

    혼자 악에 받쳐 버럭 소리친 게 화근이었을까.

    부탁을 받고 김매기에 동참 시켜준 개금이 바짝 부복한다.

    “자네 보고 한 건 아니니까 걱정말고. 아니, 근데 이 일을 맨날 한다고?”

    “예? 다, 당연히 매일······.”

    “이야! 일 하는 거에 비해서 시급은 엄청 짜네. 일은 상하차만큼 힘든데 시급으로 치면 이게 얼마야··· 아무튼 짜네, 짜. 개금이라고?”

    털썩!

    바닥에 꾸정물이 있건 진흙이 있건 개의치 않고 무릎을 꿇는다. 저라다 무릎 연골 바스라지겠는데?

    “아니, 왜 또 무릎을 꿇어?”

    “쇠, 쇤네가 무식해서 어떤 무례를 범했는지 모, 모르겠습니다요. 부디 용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무슨 말만 했다하면 무례 운운인지······.

    “무례 범한 거 없다니까? 그냥 혼잣말 한 거 가지고 왜 오바야. 아무튼, 개금씨.”

    “···”

    말이 없다.

    덜덜 떨고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 무서운 모양이다.

    왕자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인가?

    그럼 백마탄 왕자님이란 소린 왜 나왔지?

    “오늘 바친 신공 가져 가.”

    “에? 그, 그게 무슨······.”

    “시급이 너무 짜잖아. 이렇게 백날 일해서 나한테 갖다 바치면 자넨 뭐가 남아? 그거 보리··· 야, 덕산아.”

    “예, 대감마님.”

    “개금씨가 보리 몇 가마니 갖고 왔냐?”

    “저번에 밀린 거 까지 석 섬이었습니다요.”

    “석 섬? 세 가마니? 근데 밀린 건 또 뭐야. 밀린 거 가져 온 거야?”

    “예.”

    흠, 그랬구만.

    고개를 끄덕거리고 개금을 응시했다.

    “아무튼 가져가. 근데 너 나한테 신공은 왜 바치는 거냐?”

    “그, 그야······.”

    내가 너무 당연한 소릴 물었던 걸까?

    개금이 얼이 나간 표정을 짓는다.

    괜히 밑천 드러날까 싶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니, 됐고. 가져가서 오늘 저녁 배터지게 먹도록. 이것이 내 명이다!”

    한 번 쯤 해보고 싶었던 유치뽕짝한 대사를 치자 개금이 넙죽 부복한다.

    “가, 감사합니다요.”

    “그럼 난 이만 가보도록 하지. 다음에 보자고.”

    “사, 살펴가십시오, 대감마님!”

    손을 대충 흔들어 화답해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덕산이 말로는 집까진 6~7리 쯤 된다는데 리가 거리 단위인 건 알겠어도 1리에 몇m인질 모르니 그런가보다 싶을 뿐이다.

    그래도 체감상 20분 정도 걸린다.

    아, 걸어서 말고 내 차 타고.

    무슨 차?

    히히힝!

    이 녀석이 내 차다.

    이현호 일 땐 차는 고사하고 버스비에도 벌벌 떨었는데, 참.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자 집 앞에 누군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설마 강도인가 싶었는데, 그럴 리가 있나.

    백주대낮에 강도가 담장을 넘을 리도 없지만, 명색이 대군마마 저택을 털 간 큰 놈이 어딨어?

    근데, 칼 찬 모습이 존나 카리스마 있··· 는게 아니라 무섭다.

    유일하게 칼 안 찬 아저씨가 있긴 한데, 그 아저씨 빼곤 전부 근육질에 칼까지 차고 있다.

    저런 걸 두고 서슬 퍼렇다라고 하는 건가?

    마굿간은 집 뒤편에 있었다. 말고삐를 내가 쥐고서 마굿간까지 내 애마를 집어넣을 순 없으니 덕산이에게 말고삐를 쥐여주고 집으로 올라가는 층계를 밞았다.

    그리고, 그 서슬 퍼런 아저씨들과 마주친 나는······.

    “누, 누구시냐!”

    괜히 간이 콩알만해져서 빙신 같은 멘트를 치고 말았다.

    누구시냐가 뭐야, 누구시냐가.

    어유 쪽팔려.

    “대감, 소인 좌부승지 안윤덕(安潤德) 인사 올리옵니다.”

    좌부승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아까 본 개금이랑 달리 멀쩡한 성도 있고, 또 근육질 아저씨들까지 달고 다니는 걸 보면 끗발좀 있는 사람 같다.

    이럴 땐 존댓말이지.

    “네. 근데 저 화장실이 급해서 이만.”

    “화, 화장실이요?”

    “아, 측간이요.”

    “하오나 패초이옵니다.”

    “패, 패초요?”

    아, 시부레.

    이건 또 뭐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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