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으로 살어리랏다 2화>
대군으로 살아보세!
***
“확실히 그래.”
툇마루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시간의 간극이 500년 이상 차이가 나지만 아쉬울 건 전혀 없었다.
열 다섯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하고 의지할 데 하나 없는 천애고아로 자라왔다.
돌아간다 한들 기다리는 이 하나 없었고 반기는 이 하나 없는 세상.
철은 또 오지게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향후 미래를 생각한다면 취직깡패라 불리는 기공이나 전기 계열 학과로 진학하겠다는 게 좋겠다는 거, 내 꼴리는 대로 산답시고 문창과에 진학을 했었다.
소위 말하는 문돌이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진학할 땐 좋았다.
좋아하는 소설.
좋아하는 시.
문학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떴었지.
근데 그것도 잠깐이다.
나이가 차면서 점점 불안해졌다.
막말로 졸업하고 나면 할 게 없다는 걸 현실로 깨닫게 되거든.
학점은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지만 어떤 중견 기업이 문돌이를 뽑을까.
스펙이 아주 미쳐 날뛰면 모르겠지만 먹고 산답시고 24살 내내 쌓은 스펙도 토익 700점대가 전부였다. 그 외 자격증은 전무하다.
뭐, 굳이 꼽자면 Y대에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최한 백일장에서 입상한 정도와 뭣도 모르고 상금이 100만원이라는 소리에 혹해 지역 웅변대회에 나갔다가 트로피 받은 거 정도?
이런 건 사실 스펙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기껏 취업에 성공했다고 자랑스럽게 플랜카드가 걸리는 선배들 직업을 보면 9급 공무원 합격이라거나 간간이 7급 공무원 합격, 그리고 경찰 시험 합격··· 아! 최근에는 08학번 화석 선배가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플랜카드가 걸린 적도 있었다.
취직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남들은 부모가 집 마련에 최소 전세 자금이라도 마련해준다는데 부모님이 없는 난 맨 땅에 헤딩하는 격이다.
아마 평생이 걸려도 집 마련을 못 할지도 몰랐다.
아닌 게 아니라 요새는 지방의 집값도 오를대로 올라서 기본이 2억이다. 프리미엄이 좀 붙는다 싶으면 3억을 훌쩍 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 언제 취직하고 언제 돈 벌어서 집을 살까?
결혼?
동화속 산타가 없다는 건 7살 때 알았다.
동화나 다름 없는 결혼이 없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에 반해 여기는 어떤가?
비록 문명 사회의 그것들은 없지만 최소한 취직 걱정과 집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진성대군(晉城大君).
내 군호였다.
현대에서는 어떻게든 취직하기 위해 이 악 물고 취업전선에 뛰어 들어야겠지만, 여기서는 그냥 왕자가 직업이란 소리다.
이 얼마나 꿀 빠는 직업인가?
집?
으리으리하다 못 해, 저 푸른 언덕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라는 남진 씨의 님과 함께 가사에 딱 들어맞는 집이다.
부모님을 여의고 늘 원룸 생활만 전전했다.
그마저도 대학에 들어간 뒤로는 한 방에 3~4명이 복닥거리는 기숙사에서 살았었다.
방귀도 내 마음대로 못 뀌고, 게임도 내 마음대로 못 하며 심지어는 오줌 싸러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불편한 기숙사.
여기?
누구 눈치 볼 거 하나 없었다.
밥 많이 먹는다고 눈칫밥 주는 사람은 당연히 없고, 지금처럼 툇마루에 앉아서 하루 종일 멍 때리고 있어도 뭐라 하는 사람 없다.
왕잔데, 누가 뭐라 하겠나?
게다가 방만 수십개가 넘는다. 심지어 기와집이다.
기와집 비싼 건 중학교 정규교육과정만 밞은 사람도 다 안다.
현대에서도 어지간한 재력가도 살기 힘든 곳이 바로 기와집이니까.
그리고.
우스개소리로 샐러리맨을 현대판 노비라고 하잖는가?
이현호의 삶으로는 잘 해야 현대판 노비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뭐, 그것도 말이 ‘잘 해야’ 가능한 일이지, 사실상 로또 맞을 확률로 가능한 삶이다.
대기업은 고사하고 중견기업 들어가는 일이 여간 쉽나?
그런데 여기서는 시중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다.
시중이라니··· 살다, 살다 시중이란 단어는 사극 《태조 왕건》에 나오는 문하시중(門下侍中) 밖에 접한 적이 없던 나로서는 센세이션한 일이었다.
물이 마시고 싶으면 입만 뻥긋하면 된다.
“덕산아 시원한 냉수 한 그릇만 떠오거라.”
근엄하게 말하면 되고 배가 고프면,
“끝순아 찬모들한테 일러서 요깃거리나 내어오라 일러라.”
이렇게 입만 뻥긋하면 된다.
말 하면 입이 아프다는 속담이 있는데 입이 왜 아파?
전혀 안 아프다.
21세기를 흔히 터치 하나면 다 되는 세상이라고들 말한다.
배달도 스마트폰 터치 한 번에, 택시도 터치 한 번에, 결제도 터치 한 번에, 심지어 대리기사도 터치 한 번에··· 근데 여긴 말했다시피 굳이 손을 놀릴 필요가 없다.
지니의 램프처럼 말 한 마디면 다 이루어지니까.
아무리 그래도 16세기 보다는 21세기가 낫지 않겠냐고?
풍족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현대가 더 나을 거다.
근데 21세기에서도 기껏 편의점 폐기 음식이나, 마트에서 떨이로 파는 싸구려 라면으로만 삶을 연명했던 나로선 최소한 식도락 부분에선 여기가 훨씬 낫다고 장담 할 수 있었다.
물론 가끔 화장실 갈 때나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난 뒤에는 현대의 물질들이 그립기도 하다.
화장지라거나, 목구멍에 짜르르 전율을 일으키는 콜라라거나.
근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3개월쯤 지나자 화장지도 별 생각 안 난다.
왕자의 삶을 살게 돼서 지불한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도 않다. 측간··· 아니, 화장실이야 하루에 한 번 가는 게 전부고.
게다가 21세기에선 시간이 남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등록금은 장학금을 타서 다닌다지만 생활비는 어쩌지 못 하니 편의점 알바를 병행했어야 했다.
하루 3~4시간이나 잤을까?
그건 아마 운 좋게 취직을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른 아침 회사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서야 파김치가 돼서 돌아오는 삶.
아마 그런 삶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반면 여긴 달랐다.
남는 게 시간이었다.
시간이 너무 남아 돌아서 골치 아팠던 적은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그만큼 여가 시간이 많았다.
뭐, 질병이라던지 전염병이라던지, 역모라든지 하는 21세기와는 달리 무서운 문제들이 산재해 있긴 하지만 자고로 사람은 자신이 암에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는다지 않은가.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30%에 육박하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낙천적으로 보면 단점 보단 장점이 훨씬 많은 세상이었다.
아쉬울 게 없었다.
“쓰읍. 근데 진성대군이 뭐하는 사람이었지.”
막 불가항력한 현실을 수용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내군호만 알고 있었지, 정작 누군지는 몰랐다.
진성대군이 뭐하던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문창과가 아니라 사학과에 진학할 걸 하는 후회가 쬐끔 든다.
***
이 세상은 다 좋은데 심심한 게 문제였다.
즐길거리가 많은 현대에 살다와서 그런지 더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음식이라면 소금이라도 왕창 뿌릴 텐데, 이건 뭐 소금을 칠 수도 없으니 별 수 있나.
소금 칠 거리를 만들던가, 기다리던가 할 수 밖에.
“하늘에서 재밌는 거 뚝 안 떨어지나?”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내쉬던 그때였다.
“대감마님.”
“어! 덕산아!”
벌떡 일어나 덕산이를 반겼다.
알다시피 이 녀석이 내 수발드는 전용(?) 노비였다.
문명 사회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사람이 사람 수발 든다는 게 영 적응이 안 됐는데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지금와서는 불편한 마음도 별로 없다.
오히려 내가 불편해하면 덕산이가 불편해한다.
자신이 뭐 잘 못한 줄 알고.
내 눈치 살살 살피는 거 보면, 원래 이 몸뚱아리의 주인이 학대좀 했나 싶기도 하고······.
“저기··· 말치 마을에 개금이가 신공 바치러 왔습니다요.”
“신공?”
“예.”
“그게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