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202화 (202/204)

202회

“….”

나는 한동안 멍하게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지팡이> 원고가… 비로소 끝났다.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처음으로 <지팡이>를 쓰기로 한 순간.

대하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보이던 우려들.

1부에서 하융의 매국 행위에 화를 내던 독자들.

그 독자들과 소통하는 마음으로 그렸던 하융의 초상화.

<지팡이>를 통해 금홍에게 마음을 전했던 순간들.

<지팡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일본인들과의 토론.

프랑스 리브레 출판사의 낭독회.

그리고… 하융을 영원히 살게 하겠다는 계획까지.

모두 하나의 소설에 담겼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했구나.

기분이야… 당연히 후련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쾌감도 분명히 있고.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지팡이>는 내게 특별한 작품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내 삶을 담은 만큼… 마치 나의 한 시절이 지나간 것처럼, 서운했다.

나는 손끝으로 모니터를 한번 쓸어 보았다.

매끈한 감각 저 너머에서 내 소설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잘 버텼다.”

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하융에게, 그리고 나에게.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릴 사람은… 역시 ‘팀 이상’이었다.

나는 ‘팀 이상’ 단톡방에 이렇게 적었다.

― 회의합시다.

그러자 바로 지훈에게서 답장이 왔다.

― 형… 설마 완결?

― 방금.

― …정말 고생했어요.

금홍도 답장을 했다.

― 편한 시간에 회의 하죠. <지팡이> 마지막 회의.

그리고 나는 원고를 톡방에 바로 올려 버렸다.

그러자 지훈이 별안간 오열을 했다.

― ㅜㅜㅜㅜㅜㅡㅠㅠㅠㅠㅠㅠ 아 왜 눈물이 나지

― 저도요. 뭔가 자식 떠나보내는 느낌 ㅠㅠㅠㅠ

자식을 떠나 보낸다라….

지금 우리에게 딱 맞는 표현이었다.

우리는 <지팡이>를 함께 만들어 갔다.

지훈은 평론가의 입장에서 가치를 매겨 줬고, 금홍은 번역자의 입자에서 확실한 표현들을 찾아줬지.

몇 번이나 말하는 것이지만… 그들이 없었더라면 <지팡이>를 이렇게 무사히 끝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할 말은 한 가지뿐이었다.

― 고마워요. 모두.

* * *

마지막 ‘팀 이상’ 회의는 좀 허무했다.

두 사람 모두 원고에 이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라는 감상에 젖어서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정말 진지하게 고칠 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워낙 까다로운 눈을 가진 사람들이라,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잘 없었기에… 나는 몇 번이나 되물었다.

정말 이대로도 괜찮은 것 같냐고.

나 역시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지팡이>를 더 고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냥… ‘팀 이상’과의 협업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 완벽해요. 형.

― 맞아요. 그 말밖에 드릴 게 없어요.

그렇게 생각보다 빨리 회의가 끝난 후.

뒤풀이 겸 식사를 하고 지훈과 나는 집에 왔다.

오늘 우리는 집 정리를 좀 하기로 했다.

특히 작업실이 엉망진창이었다.

20세기 초반의 조선과 만주의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준비한 자료들,

하융의 작품을 묘사하기 위해 참고했던 내 전생의 작품에 대한 해설서들,

기타 <지팡이>에 필요했던 문서들… 그것들이 모두 산처럼 쌓여 있었다.

“어휴, 이걸 언제 다 치우죠….”

지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조인창 교수님의 방에서 가져온 건 다시 돌려드리고, 나머지 자료는… 잘 정리해서 창고에 갖다 놔야지. 필요한 게 있으면 네가 쓰고. 아, 그리고….”

“…그리고?”

“이 방 배치도 바꿔야겠다. 이제는 너 혼자 쓸 거 아냐.”

내 말에 지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작업실을 이리저리 살펴볼 뿐이었다.

“일단 내 컴퓨터는 구석으로 옮기고, 네 방으로 가지고 갔던 컴퓨터 다시 가져와야겠다. 칠판도 너 쓰고 싶으면 쓰고, 아니면 창고에 두든가 하자. 어때?”

“….”

이 녀석이 사람이 말을 하는데 듣질 않는다.

그저 넋 나간 얼굴로 서 있을 뿐이다.

“왜 그래?”

“…제가 혼자 잘 할 수 있을까요?”

엥?

“뭔 소리야, 갑자기.”

“저 등단하기 전에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 놈이었는데… 등단하고 형이랑 같이 살면서 이런저런 일도 하고, 평론도 계속 썼잖아요. 형이 지치지 않고 글 쓰니까…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지훈이 진지한 얼굴로, 하지만 왠지 눈은 마주치지 못한 채로 중얼거렸다.

“정말 형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

“형 없어도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금홍샘도 없는데.”

그러니까 이 녀석은… 불안한 거다.

학생이란 지위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심지어 박사 논문이라는 과업을 앞둔 지금… 금홍과 내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하니까.

나는 지훈에게 말했다.

“난 특별하게 널 도와준 적 없어.”

“….”

“네가 날 도와줬지.”

“….”

“걱정을 할 거면 네가 아니라 내가 해야지. 넌 알아서 잘 할거잖아.”

지훈이 어쩐지 감동받은 얼굴로 날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씩 웃었다.

“맞아요. 내가 문젠가, 형이 문제지.”

…또 이렇게 나오니 얄밉기도 하고.

“얼른 컴퓨터 가져와. 이왕 시작한 김에 오늘 다 해 버리자. 아, 그리고 나 여행 가서 쓸 논문 자료도 스캔해야 하니까 시간 되면 좀 도와줄래?”

“네, 그럴게요. 일단 여기 정리부터 좀 하죠.”

지훈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나는 가만히 작업실에 서서 생각했다.

지훈에게 한 말들이, 그냥 한 이야기는 아니다.

환생을 하고 난 정말 정신없이 살았다.

그 과정에서 지훈과 금홍의 도움이 있었고.

그리고… 어느새 내 새로운 삶의 첫 챕터가 끝난 느낌이 들었다.

지훈은 불안하고 무서워하지만, 정작 나야말로 내 미래를 알 수가 없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또 어떤 삶을 살지.

그리고… 이런 불안감도 든다.

내가 과연 <지팡이>를 넘어설 작품을 또 쓸 수 있을까,

하는.

“형, 좀 비켜 볼래요?”

“어? 어어… 미안.”

얼마나 생각에 잠겼던 건지, 그새 지훈이 컴퓨터를 들고 온 줄도 몰랐다.

나는 지훈과 함께 작업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인생의 한 챕터를 덮고, 새로운 챕터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 * *

내가 조용히 한국을 떠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지팡이> 연재가 끝나기 전에 가 버리는 것.

완결편이 올라오면, 과장 좀 보태서 세상의 관심이 내게 쏠릴 게 뻔하기에.

끼익― 하고 지훈의 차가 인천국제공항 앞에 멈췄다.

“기자들, 보여요?”

지훈이 물었다.

나와 금홍은 선글라스를 낀 채 창밖을 살폈다.

“…없는 것 같은데.”

“이쪽도요.”

“일단 빨리 내려서 발권하고 출국장으로 달려 나가는 게 어때요?”

“달려 나가면 더 튀지 않을까요, 지훈 샘?”

“어버버거리다가 사람들 눈에 띄는 것보단 낫죠. 운 나쁘면 기자들 잠복해 있을 수도 있고요.”

“와… 전 우리가 이렇게 무드 없는 이별을 하게 될 줄 몰랐어요.”

“언제는 우리 사이에 무드가 있었나요, 금홍 샘?”

지훈과 금홍은 끝도 없이 티격태격했다.

당분간은 이런 농담 따먹기도 못할 테니, 실컷 즐겨 놓으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바로 오늘이 금홍과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다.

금홍은 대학원 면접을 보러,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여행을 시작하러.

절친한 지인들 외에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강인춘 PD는.

― 젊네, 이 작가~ 기념품 사와.

라며 아저씨 같은 소리만 늘어놓았고.

조인후 감독은.

― 더 큰 세상으로 떠나시는군요. 해외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으면 보죠.

라고 미래를 기약했다.

김미소 작가는.

― 부럽습니다. 글값으로 세계여행이라니.

라며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예전에 내 시에 대한 비평을 써 줬던 오진우 평론가.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여간 없는 게 아닌지라… 고민 끝에 전화로 여행 사실을 알렸다.

‘아, 그렇습니까’라고 대답이 끝날 줄 알았는데, 그는 생각보다 퍽 서운해했다.

― …시를 쓰시면, 꼭 보내 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는 예전 날 내게 언급한 적이 있던, 한 시집 전문 출판사 이야기를 했다.

등단을 하지 않은 시인의 시집을 중심으로 출판한다던 출판사 말이다.

만약 여행 중에 시가 모인다면… 그곳에서 시집을 냈으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 아무것도 장담 드릴 순 없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죠.

내 여행의 목적처럼 말이다.

“이제 진짜 가야 할 것 같은데요.”

금홍이 내게 말했다.

나는 밖을 한번 둘러보았다.

해외로 출국한다는 정보가 새진 않았겠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얘기가 기자들에게 들어가면, 그들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가죠.”

나는 비장하게 말했다.

차에서 내린 후 트렁크에서 캐리어 두 개를 꺼냈다.

금홍의 짐은 많지 않았다.

미국에서 면접을 봐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여러 가지 수속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지금 나가면 당분간은 정말 안녕이고.

우리는 조심스레 공항으로 들어왔다.

재빨리 발권을 하고, 출국장으로 가기 전 잠깐 지훈과 이야기를 했다.

“잘 다녀와요, 두 사람 다.”

“그래. 박사 논문 끝나면 너도 여행 겸 와라. 내가 어딨을진 모르지만.”

“박사 논문 끝날 때까지 안 온다 생각하니 더 아득한데요.”

“그럼… 여행 다니면서 논문 써야 하는 날 보고 위안을 얻어.”

위로 겸 농담 겸.

그리고 어느 정도는 자조적인 진심이었다.

하지만 별수 없다.

지도 교수의 ‘숙제’는 해 가야지.

내 말에 지훈일 낄낄대며 웃었다.

“형 말 들으니 힘이 나네요.”

“기념품 사 올게요. 지훈 샘. 저는 삼 주 뒤에 돌아올 거예요.”

“그래요. 아… 그래도 너무 아쉽다.”

지훈이 좀처럼 우리를 놔주질 못했다.

차에 있을 때만 해도 그렇게 쿨한 척을 하더니… 지금은 우리 캐리어를 꽉 붙잡고 있다.

아쉬운 건 피차 마찬가지인지라, 우리는 그 자리에서 수다를 좀 떨었다.

앞으로의 일정이라든가, 쓸 글이라든가.

“형은 미국 가자마자 뭘 할 거예요?”

“나?”

“네. 은근 할 거 많잖아요. 형 지도 교수님이 논문 써 오라고 하셨다면서요. 조나단 감독이랑 다큐멘터리도 찍어야 하고.”

“시 쓰려고.”

“엥? 갑자기?”

“어. 산문을 너무 오랫동안 써서 그런가… 새로운 환경에서 시를 써 보고 싶어졌어. 어떨 것 같아?”

“형 시야….”

시야?

“짱이죠.”

지훈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우리는 잠시 낄낄대며 웃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도 잠시.

“저… 이상 작가님이시죠?”

불길한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딱 봐도 기자로 보이는 군단들이 서 있었다.

얼마나 스멀스멀 왔는지, 기척도 못 느꼈다.

역시. 정보가 샜구나.

나는 말없이 금홍의 손을 잡았다.

금홍이 자기는 준비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도 어서 가라는 듯 한 발 물러섰다.

지훈과 나는 마지막으로 눈인사를 했다.

녀석은 입 모양으로 말했다.

‘잘 가요.’

나는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곤, 금홍에게 말했다.

“…뛰죠.”

우리는 동시에 출국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자들이 따라붙었다.

정신없이 출국장으로 나오며 생각했다.

이놈의 공항은 한 번도 날 얌전히 보내 주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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