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201화 (201/204)

201회

“저는… 하융을 영원히 살게 하고 싶어요.”

내 말에 두 사람은 말을 잃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이 바로 <지팡이>를 관통하는 마지막 주제가 될 것임을.

“영원히 살다니?”

박조운 편집장이 물었다.

“하융은 죽게 되지 않나요?”

이준환 편집위원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아직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지팡이> 3부의 진짜 작의를.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잖아요.”

“그렇지.”

박조운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에게는 말할 수 없지만, 난 죽음을 넘어선 두 번째 삶을 얻었다.

물론 이 일은 기적일 것이다.

신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조화겠지.

하융도 언젠간 죽는다.

하지만 그가 나의 그림자 같은 존재라면… 상징적으로나마 영원히 살게 하고 싶었다.

“어떤 죽음은, 분명 죽음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죽음이 두 번째 삶을 가능하게 한 것처럼.

그리고 그 삶 속에서 내가 성장한 것처럼.

“흠… 하기야 틀린 말은 아니죠. ‘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분명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으니까요. 상징적으로 영원히 산다는 건, 그런 의미일지도요.”

이준환 편집위원이 중얼거렸다.

“네. 저의 의도와도 비슷해요. 저는 영원히 사는 사람들은 두 부류라고 생각해요. 첫째는 세상을 구한 위인, 둘째는… 영원히 잊힐 수 없는 작품을 남긴 예술가.”

“멋지군.”

박조운 편집장이 무릎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모차르트나 하이든 같은 위대한 음악가나, 도스토예프스키, 생텍쥐페리 같은 위대한 작가는… 그래, 그들의 작품인 남아 있는 한 완전히 죽었다곤 볼 수 없을 거요.”

“맞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

“그럼 하융은 만주에서 위대한 작품을 남기나요?”

이준환 편집위원이 물었다.

나는 살짝 멈칫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도 합니다만…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위대한 작품이자, 가장 작가다운 삶을 남길 거거든요.”

“가장 작가다운 삶이라.”

“조금 그럴듯하게 표현하자면, ‘작가의 이데아’를 표현하고 싶은 거죠.”

작가의 이데아.

‘이데아’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제시한 개념이다.

어떤 존재의 궁극적인 완전한 형상(形相).

마치 ‘신’처럼 개념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데아를 불완전하게 닮았다는 논리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가령 인간의 이데아가 신이라 해 보자.

인간은 신을 닮았으나 신만큼 완전하지 못하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완전한 작가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 그 완전한 작가가 되기 위해 애를 쓸 뿐이지.

“물론 제가 그린 하융이 모두가 동의하는 완전성을 지니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작가의 이데아를 담아 보고 싶어서요.”

“그럼 그게 독자들에게 통한다면….”

박조운 편집장이 홀린 듯 중얼거렸다.

“네. 적어도 <지팡이>를 보는 독자들이 남아 있는 한, 하융은 ‘작가의 이데아’로서 영원히 살게 되는 거죠.”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나도 그들이 말을 잃은 이유를 알고 있다.

너무 무모하다.

‘소설’이란 본래 ‘작은 글’이다.

사람의 인생사 순간순간을 담은 글.

그런 개념 속에서 ‘이데아’를 표현하는 것은… 그래, 과욕일지도 모르지.

철학의 영역을 주제넘게 건드리는 것일지도.

한국 문학에 평생을 바쳐 온 이들이라면… 이 점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른 작가가 그런 말을 했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할 것입니다.”

이준환 편집위원이 말했다.

박조운 편집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구현해 내기 어려운 일이니까. 나로선 감도 잡히지 않는군.”

“하지만 이 작가에겐 그런 말을 할 순 없군요.”

“….”

“사실 편집자로선 작가의 기획에 가장 냉철하게 딴지를 걸어야 맞지만….”

“딴지를 걸기 어렵지.”

박조운 편집장이 끼어들었다.

“이렇게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걸.”

그 말은, 더없는 칭찬이었다.

무모해 보이는 기획을 냈음에도, 이 두 원로 편집자에게 기대를 받다니.

난 독자와 나 외에 그 누구의 만족을 위해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스승도, 편집자도, 평론가들도.

그들은 나와 독자를 잇는 다리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마음 놓으세요. 실망을 드리진 않을게요.”

* * *

달칵.

작업실의 문을 잠갔다.

내가 나가기 전까진 웬만하면 노크도 하지 말라고 지훈에게 말을 해 두긴 했지만, 마음을 좀 더 확실하게 다잡고 싶었으므로.

갓 내린 커피를 책상에 내려놓고, 칠판 앞에 섰다.

칠판에 적힌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

더는 한 글자도 넣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 차 있다.

지난 수개월의 여정.

그 앞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오늘로써 이것도 끝이었다.

나는 오늘, <지팡이>의 완결을 지을 작정이었다.

지우개를 들었다.

거의 쓰지 않아 깨끗한 칠판지우개.

나는 그것으로.

스윽― 스윽―

칠판의 글씨를 힘차게 지우기 시작했다.

오래되어 잘 지워지지 않는 글자들을, 온 힘을 다해 지웠다.

오랫동안 지고 있던 마음의 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이 조금씩 덜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칠판에 단 한 글자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지우개를 내려놓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큰 글씨로 이렇게 썼다.

‘작가’

라고.

더 고민할 것 없었다.

망설이지 않고 책상에 앉았다.

워드 프로그램을 켜고 소설을 이어 썼다.

하융은 만주에서 글을 쓰고 있다.

며칠 전 독립군이 다녀갔을 때, 그들은 하융을 ‘매국노’ 취급을 했다.

조선어가 아닌 일본어로 글을 쓰고, 일본에서도 적잖은 인기를 끌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이 하융에게 해명을 원하자, 하융은 이렇게 말했다.

―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소설에 다 썼소.

그 뒤로, 독립군들은 하융을 찾지 않았다.

아니, 찾을 수가 없었다.

일본군이 마을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언제부터 이 작은 마을을 지켜보고 있었을까.

아마 독립군의 본거지라는 충분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이곳은 조선이 아니었다.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니만큼, 심증만으로는 조선인들을 죽일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군이 ‘사상범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마을을 점령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이미 충분한 증거를 갖췄다는 뜻이기에.

마을에 총성이 멎을 날이 없었다.

어딘가 땅굴을 파고 숨었다던 독립군들과,

그를 뒤쫓는 일본군의 총격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하융은… 글을 썼다.

하융의 글에는 그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물론 그만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하융은 생각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기에, 만주에 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전쟁터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도 작가의 행운이라고.

몇몇 조선인이 하융을 몰래 찾아왔다.

하융의 도움으로 끼니를 겨우 때우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몰래 마을을 빠져나가자고 제안했다.

일본군이 마을 입구를 막고는 있다지만… 지금 나가지 않으면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독립군이 소탕되면, 그다음은 조선 민간인 차례였기에.

하지만 하융은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 쓰고 있는 글이 있어서요. 여기에서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황당한 대답에 조선인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그날 밤, 몰래 마을에서 도망쳤다.

이제 마을에 남은 조선인은 하융과 몇몇 사람들뿐이었다.

며칠 후.

독립군이 모두 소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융은 그때도 글을 쓰고 있었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하융의 숙소에 일본인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처음엔 우호적이었다.

하융이 일어를 굉장히 잘했고, 일본에서 인기 있는 작가라는 걸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군이 말했다.

― 우린 선생을 죽이러 온 게 아니오. 확인을 하러 온 거지.

확인이라.

하융이 잉크 범벅이 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일제가 ‘굴종’ 말고 확인하려는 게 있을까.

― 선생이 제국의 언어로 글을 쓰고 또, 우리 일본인들이 그 글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들었소. 아주 칭찬할 일이지. 참된 식민지인이 아닌가.

하융은 대답하지 않았다.

독립군은 묘한 얼굴로 하융을 바라보았다.

― 그래서 난 당신을 그냥 살려 두고 싶은데….

하융은 이런 말을 예상했다.

당신이 조선군에게 군사자금을 대지 않았느냐고.

독립군들이 죽기 전에 그 사실을 발설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 이런 소문이 있더군. 당신이 일본군에 합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이건 무슨 소리일까.

하융은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아니, 기억해 냈다.

어렸을 적, 하융이 한참 혼란한 시기를 견뎠을 때.

‘조선인’이란 굴레에 대한 반항심으로,

마을의 세력가인 친일인사의 아들과 벗으로 지냈었다.

한때 벗이었던 그는 하융에게 일본군에 입대하자 제안했다.

그때, 하융은 깨달았다.

자신은 조선인이란 굴레가 싫은 거지, 일본인이란 굴레에 들어가고 싶은 게 아님을.

하융은 그 제안을 거절했고 벗과의 인연은 끝났다.

그제서야 아귀가 맞춰졌다.

그 오랜 벗이 하융을 고발한 것이다.

그리고….

하융은 그 위기일발의 상황 속에서, 웃었다.

― 내 오래된 친구를 만난 모양이군요.

하융의 천진한 말투에 일본군이 눈을 매섭게 빛냈다.

그들은 이 조선인이 두려움에 떨지 않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 나는 살면서 이런 아이러니에 굴러떨어질 때마다 생각해요.

하융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 인생이란 건 참 미워할 수 없이 재미나다고요.

일본군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요는 이거였다.

‘너의 사상을 밝혀라’.

조선의 편인지, 일본의 편인지.

선택을 하게 해 준다는 건, 살려 줄 마음이 있단 뜻이었다.

아마도 이 일본군의 윗선에서 내린 지령이겠지.

하융의 몸이 떨려 왔다.

그것은 죽음을 앞둔 생물이 가진, 당연한 두려움이었다.

몸은 살려 달라 외치고 있었지만… 어쩐지 하융의 머릿속은 점점 차분해졌다.

세상 모든 일은 유동적이었고 영원하지도 않았다.

조선의 편이니 일본의 편이니 하는 게 가장 그랬다.

한때 그렇게 사랑을 원했으나 ‘희’도 ‘심’도 곁에 없었다.

스승도 친구도 동료도 있었다가 사라졌다.

허전함을 견디는 건 남겨진 하융의 몫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그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가치가 있다면, 그건 ‘작가’라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일본군에게 할 답은 간단했다.

―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소설에 다 썼소.

잠시 후, 일본군들이 하융의 숙소를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숙소의 주인이 하융의 시신을 처리했다.

또 하루 지난 다음 날.

주인은 하융의 원고를 불태워 버릴까 하다가, 죽은 이의 물건을 건드리는 건 재수가 없단 생각에, 아무렇게나 한 곳에 치웠다.

일본군이 마을을 떠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한 조선인 무리가 마을을 찾아왔다.

그들이 하융의 죽음을 안 경위는 이랬다.

멀지 않은 마을의 극단에 있던 하융의 전 동료이자 배우.

그는 하융의 소식을 듣고 한동안 침통해 했다.

하지만 그 죽음이 하융답다고 생각했다.

배우는 그간의 일을 담은 편지를 썼다.

그 편지가 어렵게 어렵게 조선 땅에 닿자마자, 몇몇 문학가들이 부랴부랴 만주로 온 것이었다.

하융은 유족이 없었으므로, 유해는 만주에 두는 것으로 결정됐다.

다만 그들은 하융이 쓰고 있던 모든 원고를 소중하게 지니고, 조선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지팡이>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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