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회
나는 식사를 하던 것도 잊고, 영화 <그 집>에 관한 평론들을 읽었다.
미국의 영화평론은 그렇게 길지 않다.
아마 웹 형식에 맞춰서 짧고 간결하게 정리했으리라.
가장 기억에 남는 평론은 이것이었다.
― 조나단 란스마이어 감독의 새로운 작품이 개봉됐다. 한국의 작가 이상이 시나리오를 집필했으므로, 조나단 감독만의 작품이라곤 보기 어렵다. 게다가 작가인 이상이 영화의 주축이 되는 스토리보드를 ‘직접’ 그렸다는 걸 감안하면, 영화 <그 집>은 조나단 감독이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 이상의 영화 입봉작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 <그 집>을 보고 난 후, 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흔한 수사가 아니라 정말로 다리에 힘이 풀렸기 때문이다. 사실 소름 끼칠 만큼 멋지거나 섬뜩한 장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입양 가족의 어긋남. 사이코패스 킬러를 잡는 경찰. 모두 흔한 소재인데, 어째서 나는 설명 못 할 충격에 빠져 버렸을까.
이윽고 나는 답을 찾았다. 그건 바로 ‘신’의 존재였다. <그 집>은 가족 비극사와 범죄물의 탈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원작 <그 집>에서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는 미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차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로 옮겨지면서 배경화되고, ‘신’이라는 새로운 이미지가 탄생하여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했다. 만약 당신이 책 <그 집>을 읽고 영화를 예상한다면 그러지 않기를 충고한다. 책 <그 집>과 영화 <그 집>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니.
입양된 소녀 수지의 불안한 삶의 기반에 스며든 양오빠는, 그 집안에 군림하는 신과 같다. 수지는 영화의 초반부터 이 집안의 규율을 파악하고자 전력을 다한다. 그리고 그 끝에 그녀가 무엇을 보는가. 바로 천사 같은 얼굴로 부모의 머리 위에 앉은 양오빠다. 그는 수지에게(…)
평론은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 집>에서 ‘신’이 가진 의미와 그것이 현대 사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이미지가 어떻게 컬트적으로 잘 드러났는지.
예리하면서도 감각적인 평론이었다.
조나단 감독과 내 의도를 잘 파악해 줘서 고맙기까지 했다.
“영화, 잘 뽑힌 모양이네. 이거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좀 올려 줄래?”
“네. 그렇게 할게요.”
나는 보고 있던 휴대폰을 지훈에게 넘겼다.
“한국 개봉은 언제야?”
지훈이 손가락으로 날짜를 셌다.
미국과의 시차를 계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 그러니까… 사흘 후네요.”
사흘.
“곧이네.”
“네. 지금 인터넷에서 이 평론 많이 돌아다녀요. 내일이면 미국 관객 반응도 바로바로 전해지겠죠.”
사실 흥행에 더 중요한 건 관객 반응이었다.
관객은 평론처럼 ‘돌려 말하기’를 모른다.
재밌다, 재미없다, 지루하다, 무섭다, 모르겠다… 이런 식의 직관적인 평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훨씬 확실하고 강력하다.
즉, 이 평론보다 관객 반응이 더 중요하다는 것.
“긴장돼요?”
“조금. 영화는 처음이니까.”
“잘 될 거예요. 그리고 잘 되면….”
잘 되면?
“각오 좀 하셔야 할걸요?”
지훈이 놀리듯 말했다.
각오라고? 무슨?
이라고 물으려다가 난 그의 말을 이해했다.
안 그래도 언론의 관심이 밀려들어 오고 있다.
그저, 소설을 썼을 뿐인데.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영화까지 흥행하면, 언론의 관심을 완전히 피하기란 불가능할 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좀 더 냉정하게 말해 볼까.
소설의 사회적 영향력은 영화에 댈 바가 아니다.
영화의 흥행은 한국 사회에서 아주 큰 이슈다.
어느 예술에도 뒤지지 않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각오 좀 해야겠네.”
어디까지나 영화가 ‘잘 됐을 때’의 얘기지만.
* * *
그리고 그 ‘각오’는 현실이 되었다.
다음 날.
짹짹이에 엄청난 양의 피드가 쏟아졌다.
모두 나와 조나단 감독을 태그한 거로 보아,
<그 집>을 본 관객들의 감상평인 것 같았다.
정신없는 하트와 이모티콘 사이로 보이는 느낌표들.
나는 그것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그 집>이 상당히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는 걸.
우리 ‘팀 이상’은 또 어찌나 작업이 빠른지, 내가 말하기도 전에 피드를 실시간으로 번역해 줬다.
― …세상에. 내가 지금 뭘 보고 온 거지?
― 섬뜩하고, 끔찍하고, 아름답다. 영화의 신개념이다.
― 이걸 동양인 작가가 썼다고? 누가 봐도 ‘미국적인’ 감성인데?
― 이 작품이 누들 공모전 5위? 난 1위가 누군지도 몰라.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게 틀림없어.
― 조나단 감독이야 이미 ‘전설’이지만. 이상이라고 했나? 쩔어주는 예술가를 발견했어!
― 와, 이건… 와! 와!!
― 스릴러, 컬트, 범죄영화, 가족영화, 공포영화 덕후라면 <그 집>을 봐라. 안 보면 분명 후회한다.
.
.
.
엄청난 양의 글들을 나는 빠짐없이 다 읽었다.
소설 감상을 볼 때와는 기분이 또 달랐다.
소설로서는 어느 정도 자부심이 있는 반면, 영화는 말 그대로 ‘초보’기 때문이었다.
이 한마디 한마디들이, 내게 적잖은 감동이었다.
그리고 그 반응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미국인들의 리뷰는 한국의 넷상에 계속 번역되었다.
한국인 작가가 쓴 작품이 해외에서 인정을 받았으니, 한국의 영화 팬들도 <그 집>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다.
이제 한국 개봉이 하루 남았다.
즉, 내일 시사회에 나도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훈은 벌써부터 요란을 떨었다.
미국의 반응을 보니 무조건 한국에서도 잘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뭐,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형, 양복 예쁜 거 하나 합시다. 시사회 사진 두고두고 남을 건데.”
“뭐? 그렇게까지? 아, 바빠. 안 해.”
나는 작업실 컴퓨터에서 떨어지기 싫었다.
하융의 만주 여행기가 막 펼쳐지고 있었을뿐더러,
…귀찮았기 때문이다.
“금홍 샘도 오신다는데요? 형 양복 골라 주신대요. 우리 안목 못 믿는다고.”
…금홍이가?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
나는 일부러 인상을 팍 구겼다.
그리고 지훈을 더 강하게 타박했다.
“아, 송지훈. 진짜 귀찮은 일 만드는 데는 재주 있어. 왜 말도 안 하고 사람을 막 불러.”
“‘팀 이상’이니 같이 움직여야죠. 그리고 금홍 샘 말이 맞아요. 우리가 고르면 똥 같은 거 고를 게 뻔해요. 빨리 준비하고 나오세요. 알았죠?”
내 타박에도 지훈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도 그럴 줄 알고서 쏘아붙인 거기도 하지만.
이쯤 되자 나도 못 이긴 척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금홍이 도착했다.
뭘 또 그렇게 예쁘게 하고 왔는지, 입꼬리 내리고 귀찮은 척하느라 얼굴 근육이 당길 정도였다.
시간이 많은 게 아니라서, 맞춤 양복은 무리였다.
대신 백화점에 가서 기성품을 샀다.
내 체형이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금홍을 데려오길 잘 했다.
금홍은 지훈과 내가 고른 옷을 단번에 파악했다.
“음… 은색이요? 은갈치 같은데요.”
“검은색은 잘 어울리는데, 너무 가라앉아 보여요.”
“파란색 예쁘긴 해요. 그런데 한 번 입고 안 입게 되실 텐데….”
“너무 밝은 회색이에요. 좀 더 어두운 걸 찾아볼게요.”
금홍은 결국 제가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고른 날렵한 핏의 먹색 수트.
상의만 걸쳐도 알 수 있었다.
“…오.”
지훈이 한마디 했다.
“…괜찮은데요? 지금까지 고른 것 중에 제일 나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거울에 비친 금홍이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금홍이 있어 다행인 건 둘째 치더라도, 지훈과 나의 안목은 말 그대로 ‘똥’이었던 것인가.
괜한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게 옷을 산 후,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어쨌건 날 위해서 두 사람도 시간을 써 준 거니, 괜찮은 일식집으로 가기로 했다.
이 두 사람에게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다.
물론 새 옷을 사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초밥이며 회며 하는 것들이 상 위에 올라왔다.
우리는 허기가 졌던 터라, 서둘러 음식을 먹었다.
한참 회를 집어먹던 지훈이 물었다.
“차 가져와서 술은 좀 그렇고, 사이다라도 드실래요?”
“좋죠.”
“그래.”
지훈은 바로 사이다 큰 병을 시켰다.
유리잔에 나눠 담으니 그럴싸해서,
얼떨결에 건배까지 하게 됐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며 잔을 들었다.
그런데 그때, 금홍이 움찔했다.
“왜 그래요?”
“아, 다른 게 아니라… 옛날 생각 나서요.”
“옛날 생각이요?”
지훈이 되물었다.
“네. 예전에 우리 가끔 인수대 앞에서 교학팀 일 끝나고 술 한 잔씩 하곤 했잖아요.”
아… 맞다, 그랬지.
그때 장난처럼 만든 ‘팀 이상’
이 ‘팀 이상’이 내 창작 활동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줄이야.
허름한 대학교 앞 술집에서, 이렇게 번듯한 일식집으로 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 건 아니지만… 온갖 일들이 다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좀 잘해 온 것 같지 않아요?”
금홍이 수줍게 말했다.
동감, 당연히 동감이었다.
“앞으로 잘할 날이 더 많은데요.”
내 말에 지훈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간단하게 건배를 한 후, 우리는 바로 수다를 늘어놓았다.
“형, 우리 다음 ‘팀 이상’ 회의는 언제예요?”
“시사회 끝나고. 한 이틀만 기다려 줘.”
“3부 기대되지 않아요, 지훈 샘?”
“훔쳐보고 싶은 거 참는 중이에요.”
지훈의 말에 금홍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아, 진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금홍에게 물었다.
그녀는 뭘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웃었다.
“그럼요. 완벽하잖아요. 안 그래요?”
완벽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팡이>는 순탄하게 3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미 무수한 응원을 받은지라… ‘성공’과 ‘실패’만을 따진다면, <지팡이>는 이미 ‘성공작’이었다.
그것도 전에 없는 세계적인 성공작.
그리고 영화 <그 집>.
아직 한국에서 개봉은 안 했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로 보아 실패는 아니었다.
아니, 이미 영화를 본 입장에선… 적어도 작가인 나에게만큼은 더 바랄 것 없이 완벽한 작품이었다.
또, 인간관계.
금홍은 물론이고 ‘팀 이상’.
나를 지지해 주는 수많은 각계각층의 사람들.
이런 인간관계 역시 한 마디로 ‘완벽했다’.
그럼 이다음은?
나는 이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걸까?
난 과연 이 상태에 만족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이 마음, ‘하융’과 닮지 않았나?
그제야 난 깨달았다.
나는 <지팡이>의 3부가, 내 미래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미 <지팡이> 3부는 내 안에 있었다.
떠나고자 하는 하융의 욕망까지도.
생각해보면 미련하게도 눈치채지 못했지.
날 본뜬 하융의 욕망은… 결국 내 욕망이라는 걸.
다만 금홍의 ‘완벽하다’는 말이 있기 전까지는, 내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뿐.
그제야 내 마음 한구석의 욕망을 발견했다.
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내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주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