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회
“진짜 그 시절에 살았던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입니다.”
스즈키 평론가가 말했다.
나는 내심 놀랐지만, 그냥 웃어넘기기로 했다.
“소설가에게 그만한 칭찬이 없죠. 감사합니다.”
“현실을 잘 그려 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도저히 써낼 수 없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죠. 그런 문장들은 특유의 아우라가 있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지?
<지팡이>가 내 전생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걸… 이 사람이 눈치챈 건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설사 내 글을 보고 ‘그런 기분’이 든다 해도, 그런 ‘판타지적인 일’을 믿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저는 이제 서른인걸요. 그런 말씀을 들으니… 자료 조사를 열심히 한 보람이 있네요.”
그가 날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 나이쯤 먹으면… 세상을 살며 봐 온 것보다 본 적 없는 것을 믿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죽음이나 신이나… 그런 것들을요.”
“….”
그의 입가에 아주 미약한 미소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에게서 처음 본 웃음이었다.
“그냥… 믿고 싶은 겁니다. 이 세상에 그런 기적이 일어났던 게 아닐까, 하는. 작가님 자신은 인식하지 못해도, 사실은 작가님이 그 시절 어떤 이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등줄기에서 뭔가 찌릿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삶 전체를 관통당하는 느낌.
평론가들은 대체로 ‘이성’이 발달되어 있다.
예술을 이성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며 그 가치를 밝히는 직업이니까.
그러나 스즈키 평론가는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었다.
아니, 직관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특정한 순간에 섬광같이 느끼는 것.
예컨대, <지팡이>를 보고 작가의 실체를 느끼는 일 말이다.
나는 커피잔을 손끝으로 훑었다.
그리고 그에게 대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솔직한 말로.
“평론가님 말씀대로 그럴지도 모르죠. 제가 그 시절 누군가의 환생일 수도 있겠죠.”
그는 내 대답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저도 그런 기적을 믿는 편이거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별안간 내게 손을 뻗었다.
…?
뭔가를 달라는 듯한 자세.
내게 뭘 원하는 걸까.
나는 잠시 멀뚱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내 손에 가 있는 걸 눈치챘다.
…손?
악수를 하자는 건가?
그의 주름진 손에 내 손을 올렸다.
그러자 그가 내 손을 그대로 쥐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내 손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놀란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그가 속삭이듯, 그리고 참회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하게 싸웠습니다. 어머니는 마치 조선인이라도 된 것마냥 일본의 잘못에 대해 피를 토하듯 성토했죠. 아버지는 받아 주지 않았고요. 그리고 저는 말했습니다. 적어도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일본이 잘못한 건 없다고요. 어린 나이였고, 잘못한 나라의 국민이 되기 싫었고, 그게 얼마나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는 건지도 몰랐습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조선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죠.”
나는 그가 아까 토론 때 보였던 태도를 기억했다.
또박또박하게,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던 모습.
그 바닥에는… 스즈키 자신의 죄책감이 있었구나.
“20세기를 그린 소설들에 대해 객관적인 눈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 시절의 작품을 연구했던 건. 내 나름의 속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정말 미안했습니다.”
저 사과, 누구에게 하는 것일까.
어머니? 눈앞의 ‘김혜경’?
아니다.
그가 가진 죄책감은… ‘그 시대’의 조선인을 향해 있었다.
그가 정말 기적을 믿는다면.
내가 누군가의 환생이란 ‘감각’을 믿고 있는 거라면.
그가 잡은 건 20세기 조선인 ‘이상’의 손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물론 그가 모든 일본인을 대표하진 않는다.
내가 살아있었을 땐,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고.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사과조차도 그의 개인적인 참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또한, 내가 그 시절 조선인을 대표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이 사과를 받는 마음도 민족의 한과는 전혀 무관하다.
다만 나는, 아니, 나야말로….
오직 인간 대 인간으로 그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 * *
스즈키 평론가와 헤어진 후.
나는 호텔의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빵!
하는 경적 소리를 따라가니, 내 차가 보였다.
지훈이 운전석에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오래 기다렸냐? 미안.”
“아니에요. 쉬고 있었어요. 무슨 얘기 했어요?”
…사과받았다.
라고는 할 수 없으니.
“그냥. 소설 얘기.”
지훈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뭔가 안달이 나서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형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왜?”
나는 얼떨결에 휴대폰을 잡았다.
“형이 오늘 있었던 토론, 일본 반응 보라고 했잖아요.”
“오, 맞아. 그랬지. 반응이 어때?”
“직접 보시죠. 저는 번역기 돌려서 훑어봤어요.”
자신만만하게 보여 주는 걸 보니,
상황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지?
나는 지훈이 열어 놓은 SNS 페이지를 살폈다.
― 일본 패널들 왜 이렇게 쪽팔리냐! 부끄러워.
― 저 소설가는 일본에서 인기도 없으면서 왜 한국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 역공이 들어오니까 제대로 대답도 못 하잖아. 쪽팔린다구!
― 결국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건가? 이상 작가야 한국인이니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내가 존경하는 스즈키 선생이 그렇게 말하니… 생각 좀 해봐야겠어.
― 결국 그 얘기 아냐? 하융의 창작 기원은 내밀한 허무라는 거. 그걸 가지고 일본이니 조선이니 하고 싸우는 게 웃긴 것 같은데?
― 사상 최고로 바보같은 싸움이었다. 일본 패널들, 당신들말야, 당신들.
― 다음부턴 이상 작가를 상대하려면 좀 강한 사람들을 데려가도록 해. 어중이떠중이를 데려가니 이런 꼴이 생기잖아. 저 논리에 넘어가면 일본인은 강제 죄책감만 얻게 된다고!
가지각색의 의견들이었다.
이성적인 판단과 죄의식이 느껴지는 말들 가운데서, ‘일본이 졌다’라는 것에 화를 내는 사람들까지.
즉, 한 마디로….
“나, 이겼나 보네. 어쨌건.”
“이기셨죠. 말이라고 하십니까.”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시동을 걸었다.
“저녁 뭐 먹을까요?”
“대충. 아무거나.”
“오늘 고생하셨으니 제가 살게요.”
“그럼 비싼 거 먹어야지.”
“너무 하시네요.”
그러면서도 지훈은 군말 없이 차를 몰았다.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한정식집에 간다고 했다.
오늘 같은 날은 한식을 먹어 주고 싶다며.
“끝나고 바로 집에 가서 쉬시죠?”
“가야지. 가서 쉬는 건 아니고.”
“아니고?”
“소설 써야지.”
지훈이 날 지독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원래는 오늘 밤은 푹 쉴 생각이었다.
스즈키 평론가와 대면을 하기 전까지.
그와 대화를 나눈 후, 마음속에 아주 오랫동안 박혀 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후련함을… 하융에게도 어서 선물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 * *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작업실로 들어왔다.
어서 소설을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던 것이다.
가끔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지금 당장 글을 쓰지 않으면, 좋은 글을 놓칠 거라는 위기감.
그래서인지 더 조급해지는 마음.
아마도 이런 기분은 작가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겠지.
나는 경찰청 구치소에 갇힌 하융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융에게는 많은 일이 벌어진다.
특히 그 지난한 취조의 과정들.
가끔은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못 버틸 것도 아니었다.
전생의 내가 딱 그랬다.
지식인들을 사상범이랍시고 잡아넣는 건, 조선인들을 겁주기 위한 본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적당한 폭력과 적당한 회유.
그 과정 속에서 지식인들은 생각한다.
‘다음에는’ 절대로 적당히 끝나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경찰청을 나올 때는, 일본의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뇌리에 박히게 된다.
재밌게도 난 그 두려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들이 내 정신을 개조하기도 전에, 내 나약한 육체가 먼저 죽어 가고 있었으니.
하지만 하융은 다르다.
그는 신체 건강한 청년이기에, 그들의 취조를 거뜬하게 견뎌 낸다.
또한 그에게는 신념이 있다.
자신의 글이 사상의 결과가 아닌, 예술적 실험의 결과라는 신념.
때문에 경찰의 ‘정신 개조’ 시도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지.
하융은 애초에 개조당할 사상이 없으니.
나는 그 취조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 냈다.
하융의 청산유수와 같은 언변, 일본 경찰이 그의 말에 휘말리는 과정.
조선인에게 너무나 불리한 경찰 행정.
그에 굴하지 않는 하융의 담대함까지.
2장의 내용은 하염없이 늘어졌다.
아마도 내 기억이 직접적으로 들어가 있기에, 쓸 말이 한도 끝도 없이 많아지는 거겠지.
전생에 그 비좁고 어두운 감옥에서 했던 수많은 생각.
나는 그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길어 올렸다.
그리고 하융의 것으로 변화시켜 소설에 넣었다.
몇 달 후 하융은, 훈방조치 된다.
그 결정을 내린 건 총독부의 경감이었다.
하융을 경찰서에 잡아넣은 장본인이, 결과적으로 그를 풀어 주는 아이러니.
하융은 마지막으로 그와 마주한다.
그새 꾀죄죄해진 꼴을 보며 경감이 담배를 피운다.
그는 하융을 빤히 보더니 담배를 내어 준다.
하융은 겁도 없이 그 담배를 입에 문다.
― 당신의 소설을 모조리 다 봤소.
경감은 하융에게 말했다.
그러자 하융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다만 간만에 들이마시는 담배 연기가 달콤할 뿐이다.
― 그리고 결론을 내렸지. 당신은 일본 제국에 대들 위인은 못 돼.
평론가 납셨군.
하융은 속으로 비웃었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 …당신 소설에 감사하도록 하시오. 이제 가시오.
그게 다였다.
경감은 그렇게 싱겁게 그를 보내 주었다.
하융은 끝까지 담배를 다 피웠다.
그리고 경감의 재떨이에 담배를 꾹 눌러 끄고 일어났다.
경찰청을 나가려면 입구에서 사인을 해야 했다.
하융이 대충 명부에 사인을 할 때, 순사들이 뒤에서 뭐라고 지껄여 댔다.
― 저놈이야? 경감님이 살려 내보내야 한다는 놈이?
― 그렇다나 봐. 며칠 내내 저놈 소설만 읽으셨어. 세상에 둘도 없는 인재라고 하시던데.
― ‘그’ 나무토막 같은 양반이? 별일이네.
하융은 뒤를 돌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하융에게 침을 뱉으며 말했다.
운 좋은 줄 알라고.
그렇게 경찰서를 나온 하융은 종로 거리를 걸었다.
종로 거리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기생들은 그를 알아보며 호객을 했고, 낮부터 술에 취한 작가들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하융은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그리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 내 소설에 감사하라고….
아마도 그 경감은 하융의 소설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그가 가진 예술관과 실험 정신을.
문학에 관심이 없던 경감이기에, 오히려 그런 그의 작품이 충격으로 다가왔을지도.
하융이 별안간 씨익 웃었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그의 반골 기질이 눈을 뜬 것이다.
지금 조선과 일본에서 그의 작품은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총독부조차 그를 잡아들이지 않을 만큼.
하융에겐 차고 넘치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하융은.
갑자기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싶어졌다.’
<지팡이> 2부는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