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85화 (185/204)
  • 185회

    모 호텔의 연회장.

    토론 장소치고는 지나치게 화려한 게 아닌가 싶지만, 도마크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지훈과 나는 일찍이 연회장에 가 있었다.

    물론 일본 쪽 패널들도.

    그런데 생각보다 카메라가 적지 않았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고.

    사실 토론에 참여하기 전에, 미리 합의를 한 사항이긴 했다.

    필요한 경우 언론과 방송에 토론 내용을 내보이겠다고.

    “그래도 이건 너무 많지 않아?”

    나는 줄 서 있는 카메라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게요. 거의 방송국 수준 아니에요?”

    “그런 것 같아. 게다가 생방송.”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환생을 하고 나서도, 내 삶은 결국 버라이어티하게 흘러간다고.

    조용히 글만 쓰고 살고 싶었는데, 카메라 앞에 설 일이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

    마침 미쯔하루 편집장이 곁으로 다가왔다.

    “곧 토론을 시작할 텐데요.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아, 네, 뭐… 저야 언제든지요. 그런데 카메라가 정말 많네요?”

    “하하… 네. 일본의 케이블 방송사에서 취재 요청이 있어 받아들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방송사니까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좋습니다.”

    “역시.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방송국 카메라였군요.”

    아무리 유튜브를 부르짖는 세대라지만, ‘진짜’ 방송국 카메라의 아우라는 다르지.

    “자, 그럼 슬슬 자리에 앉으시죠.”

    미쯔하루 편집장이 나를 테이블로 안내했다.

    “형, 파이팅이에요.”

    지훈이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말했다.

    나는 지훈에게 한번 웃어 주곤 미쯔하루 편집장을 따라갔다.

    거대한 원형 테이블에 패널들이 앉았다.

    한국까지 온 김에 변별력을 주고 싶었는지, 미쯔하루 편집장이 사회자로 참석했다.

    나는 그의 왼편에, 스즈키 평론가는 오른편에 앉았다.

    나머지 패널들은 편한 곳에 자리했다.

    유튜브 라이브와 방송 녹화가 동시에 시작됐다.

    미쯔하루 편집장은 활기찬 목소리로 사회를 봤다.

    워낙 말을 잘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잡혔다.

    “자, 그럼 이번 독서 토론은 특별히 원작자이신 이상 작가님을 모셨으니 그 말씀을 한번 들어 봐야겠죠? 이상 작가님. 토론에 참여하시게 된 소감을 여쭤봐도 될까요?”

    그가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나는 내 앞의 마이크에 몸을 기울였다.

    “이 자리를 위해 일본에서 한국까지 오신 도마크 측과 패널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진행됐던 토론을 하나도 빠짐없이 봤는데요, 흥미롭더군요.”

    “무엇이 흥미롭던가요?”

    “<지팡이>라는 예술작품이 일본의 정치적 요소들과 결합되어 가는 과정이 재밌었습니다. 소설이란 현실의 거울이기도 하니, 일본만이 할 수 있는 해석이기도 하겠죠. 존중합니다.”

    말은 존중한다고 했지만, 적어도 이 패널들은 알았을 것이다.

    ‘일본만이 할 수 있는 해석’이라는 말 안에는, 나는 그 토론의 방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미쯔하루 편집장은 패널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 좋습니다. 이제 토론을 시작해볼 텐데요. 오늘은 총 두 개의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첫 번째는 현재 <지팡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용이죠, ‘일본의 언어를 빼앗는 일’을 하기 위해 하융이 반일 소설을 씁니다. 즉, 일본을 희화화하는 거죠.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상당히 의미심장하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역시나 정치학자였다.

    “눈에 훤히 보이는 상징이 아닙니까. 일본어를 써서 일본을 비판하는 일. 그건 결국 일본인들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죠. 당시 일본 제국과 조선의 관계를 두고 생각해 보면… 저는 하융이 이 일로 시련을 겪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도 동의합니다.”

    이번에는 기자였다.

    “확실히, 일본에 대한 공격이죠. 감히 우리 스승을 죽여? 내가 복수해 주마! 이런 확실한 논리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랄까요?”

    “하지만….”

    사회운동가가 끼어들었다.

    “그런 단순한 논리 같진 않습니다. 책을 읽어 보면 하융이 처음부터 그 일에 집중하진 않아요. 먼저 조선 문단의 스타가 되지만 알 수 없는 허전함 때문에 스승이 남긴 말을 고민해 봅니다. 좀 더 인간적이고 내밀한 동기가 있었다는 거죠.”

    소설가가 비꼬듯 말했다.

    “인간적이고 내밀한 동기요? 그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생님께서는 인간 내면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순간 난 어떤 역겨움을 느꼈다.

    정치학자와 기자가 일차원적인 말을 했지만, 별로 감정이 동요하진 않았다.

    직업에 있어 심리적 거리감이 있으니까.

    하지만 소설가는 아니었다.

    예전부터 그가 저런 무례하고 공격적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가 거슬렸다.

    아마도 같은 소설가이기 때문이겠지.

    사회운동가가 당황했는지 조금 버벅거렸다.

    난 그 소설가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인간 내면을 잘 알고 계신 선생님께서 보시기엔, 하융의 동기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하하… 원작가님 앞에서 제가 어떻게 그런 걸 말하겠습니까?”

    그는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려 했다.

    물론 나는 그를 물어 잡을 생각이었다.

    “여기 계신 그 누구보다도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어째서죠?”

    “작가니까요. 작가란 인간의 내밀한 부분을 들추는 일을 하죠.”

    “….”

    “그러니까, 같은 작가로서 묻고 싶어지는 겁니다. 하융의 내밀한 심연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답을 맞추라는 겁니까? 이상하군요. 작가님께서 만드신 인물에 왜 제가 토를 달아야 합니까?”

    “토를 다는 게 아니죠. 저는 ‘동업자’로서 의견을 묻는 겁니다. 이 토론의 주제와 관통하는 의견을요. 토론을 위해 한국까지 오신 작가님이, 작가다운 의견을 내지 않는다면 괜한 고생을 하게 되는 셈이지 않습니까.”

    “…큼.”

    그제야 그는 준비한 원고를 들춰 봤다.

    뻔했다.

    <지팡이>나 하융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도 없겠지.

    그저 이 토론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싶었을 거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테지.

    ‘작가다운 의견’을 내 달라는 질문이 온 이상,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걸.

    “하융은… 복수심이죠. 스승의 죽음에 대한. 그리고 그 죽음의 등 뒤엔 일본 제국주의의 힘이 있었고요.”

    “복수가 하융의 내밀한 동기다, 이거죠?”

    “…그런 셈이죠.”

    그가 애써 씩씩하게 말했다.

    ‘내밀함’이라는 고차원적 단어와, ‘복수’라는 간단한 단어.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걸 그도 알고 있겠지.

    “안타깝군요.”

    나는 말했다.

    “하융은 그 작품을 쓰기 전에 묘한 경험을 합니다. 성공을 하고 또 해도 채워질 수 없는 허무함이었죠. 패널 분께서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난 사회운동가를 가리켰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점은 허무입니다. 그런 감정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에 생기죠. 즉, 하융에게 있어서 해야 할 일이란 스승의 말의 답을 찾는 거였죠.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라. 그게 제가 생각했던 내밀한 동기입니다만.”

    내 작품에 대해 내 입으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내 의도와 다르게 독자들이 독해를 한다면… 그것은 내가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이지, 말로써 해명을 하는 건 작가답지 못하다.

    하지만 이 소설가는 아니다.

    여기는 ‘토론’의 자리다.

    게다가 그는 ‘소설가’랍시고 앉아 있고.

    내가 말한 부분은, 평론가까지 갈 것도 없다.

    수많은 독자들이 이미 댓글로 분석을 마친 부분이었다.

    이런 기본적인 인물 읽기도 하지 않은 채, 여기에 앉아 있다고?

    나로선 절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소설가님께서는… 하융의 허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더는 기다려 줄 것 없었다.

    나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저는 그 허무야말로 예술의 기원이라 생각합니다.”

    * * *

    같은 시각, 일본 도쿄.

    무라카미 히루키의 저택.

    히루키는 작업실에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보는 영상은 당연히 <지팡이>의 토론.

    이상과 함께하기 위해 주최진과 패널 모두 한국으로 간단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그는 이 토론을 라이브로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정말로 잘한 것이었다.

    지금, 화면 속에서 입을 삐쭉거리고 있는 소설가.

    웬만한 일본 작품은 다 보려고 노력하는 히루키는 알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작품을 쓰는 사람인지.

    다만 ‘금수저’ 태생인 걸 이용해서 출판계에서 ‘갑질’을 하는 걸로 유명했다.

    그런 그의 콧대를 한방에 꺾는 말.

    ― 저는 그 허무야말로 예술의 기원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의 말은 저 소설가의 천박한 말과 차원이 달랐다.

    복수니 뭐니 하는 겉핥기식 논의를, 바로 ‘예술의 기원’으로 끌어 올리다니.

    히루키가 피식 웃었다.

    “이상 작가가 토론이 여간 마음에 안 들었나 보군.”

    그러니까 이런 거다.

    정치적 해석은 지겹다.

    이제는 예술에 대해 말해 보자, 하는.

    물론 저 중에 몇 명이나 그 뜻을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였다.

    ― 예술의 기원이죠.

    내내 침묵을 지키던 스즈키 평론가가 입을 열었다.

    히루키는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스즈키 선생님….”

    히루키가 젊었을 때.

    대학에서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대학 강사이자 평론가였던 그는, 이미 상당히 뛰어난 문학가이자 학자였다.

    다만 조금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부모인가 조부모인가가 조선인이란 소문도 있고.

    그래서 그 누구도 쉽게 다가서지 못했는데….

    ‘스즈키 선생님을 한국까지 가게 하다니. <지팡이>, 정말 대단한걸….’

    스즈키 평론가가 말을 이었다.

    ― <지팡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창작이 어디서 추동되었는지를 알아야 할 겁니다. 복수심으로 창작을 한다는 건… 사실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진정으로 복수만을 원했다면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이 자연스럽죠. 다시 말해….

    화면 속에서 이상이 스즈키 평론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토론에서는 마치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 복수는 이 창작의 핑계죠. 하융은 자신의 내면을 채워 줄 글을 찾은 것뿐입니다. 그게 어떻게 정치적으로 해석되건, 결과적으로 일본에 복수를 하게 됐건… 그건 그 이후의 일이죠. 우리는 하융을 어디까지나 예술가로 봐야 합니다.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은 그 말에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특히 소설가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예술의 기원이라….”

    히루키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 지루한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문학 토론‘다워졌을까’.

    토론이 점점 흥미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미쯔하루 편집장이 정리를 했다.

    ― 예술이란 인간의 외부적 사건이 아니라 내부에서 솟아난다, 이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맞나요?

    ― …이상 선생께서 정리하시죠.

    스즈키 평론가가 이상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가 직접 누군가를 지칭한 건 처음이었다.

    발언권을 얻은 이상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이렇게 말했다.

    ― 그렇게 확실하게 나눠질 문제는 아니긴 합니다. 다만 이런 건 있습니다. 창작의 동기는 복수나 사랑과 같은 명제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마치 액체처럼, 작가의 무의식과 경험, 그리고 정체 모를 충동이 뒤섞여 있죠. 이 모든 덩어리들을… 저는 예술의 기원이라 부르고 싶군요.

    히루키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건 그 어떤 작가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첫 번째 토론 주제는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그리고 토론은 바로 후반부,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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