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회
일본 토론팀의 구성은 이랬다.
미쯔하루 편집장 같은 기획자들을 제외하면.
스즈키 평론가.
재일교포 3세인 사회운동가.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모 소설가.
우익적 성향을 띠는 신문사의 기자.
그리고 모 정치학자가 있었다.
분위기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소설가와 기자, 정치학자가 하나의 패거리였고, 사회운동가와 스즈키 평론가는 외따로 다녔다.
사회운동가는 스즈키 평론가를 존경하는 듯했지만, 평론가 쪽에서 약간의 선을 긋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그들에게 뭘 대접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결정한 건… 고급 일식 요릿집이었다.
강남의 모 가게에 도착했을 때, 정치학자가 살짝 농담을 던졌다.
“모처럼 한국에 왔는데 일식을 먹게 되는 건가요?”
“그러게요. 재료들이랄까. 그런 것들이 일본의 풍토와 같을지 다를지 기대가 됩니다.”
소설가가 말을 받았다.
편견 섞인 표현을 하자면, 대단히 ‘일본인스러운’ 화법이었다.
이 메뉴 선정이 기대 이하라는 점과 한국의 일식을 믿을 수 없다는 표현.
난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께선 여행을 오신 게 아니니까요. 익숙한 음식을 드셔야 편안하게 토론을 하실 수 있으실 것 같아 일부러 이곳으로 잡았습니다.”
당신들은 놀러 온 사람이 아니고.
나 역시 당신들의 여행 가이드가 아니다.
그저, 토론에 앞서 밥 한 끼를 같이할 뿐.
두 사람은 내 말에 큼큼, 하고 헛기침만 했다.
난 그들에게 웃으며 덧붙였다.
“한국의 맛집은 토론이 끝나고 편하게 드시죠. 원하신다면 좋은 곳은 선별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에, 뭐… 그러죠.”
소설가가 구시렁거렸다.
우리는 예약해 놓은 룸에 들어갔다.
정갈한 음식들이 차례로 나오고, 따뜻한 술도 나눠 마셨다.
그들은 군말 없이 잘 먹었다.
소설가가 한국인이 만들어 맛이 특별하다는 둥 쓸데없는 소리를 했지만, 주방장이 일본인임을 말해 주자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주로 미쯔하루 편집장과 담소를 나눴다.
“일본에서 이 토론이 점점 유명세를 얻고 있습니다. 문학 독자들 사이에서 회자도 많이 되고 있고요.”
미쯔하루 편집장이 말했다.
나는 패널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한가락씩 하는 사람들이었다.
단, 소설가만 빼고.
나는 아주 조용히 물었다.
“저 소설가분은… 어떻게 섭외가 된 건가요?”
“아… 그게….”
그는 난감하다는 듯, 들릴 듯 말 듯 대답했다.
“도마크 경영팀 제1 투자자의 사촌이랍니다.”
그렇게 말하는 미쯔하루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도 그의 천박함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리고 편집장으로서 그의 참여를 막지 못한 게 적잖이 부끄럽다는 듯.
뭐… 이해는 됐다.
도마크는 어쨌건 기업이고, 제1 투자자면 왕이나 마찬가지다.
패널 하나 정도로 비위를 맞출 수 있으면 싸게 먹힌 거지.
그다지 상대하기 어려운 타입도 아닌 것 같고.
아무리 비즈니스맨이라지만, 미쯔하루 편집장은 필요 이상으로 공손하게 굴었다.
아직도 내 에세이를 거절했던 일을 마음에 담아 둔 모양이다.
나는 그의 빈 잔을 술로 채웠다.
“얼굴을 다시 뵐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물론입니다. 저는… 조금 염치가 없지만요.”
염치가 없을 것까지야.
그도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었을 텐데.
“일이라는 게 다 그렇죠. 특히 조직의 일은.”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나도 전생에 총독부에서 사회생활을 해 봤다.
일본식의 사회생활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미쯔하루 편집장은 그제야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내 잔에 술을 채워 주며 물었다.
“이상 작가님. <지팡이>의 집필은 얼마나 남으셨나요?”
“그래도 반은 훌쩍 넘게 쓴 것 같습니다.”
“호오. 그럼 언제쯤 일본에서 책으로 <지팡이>를 만나 볼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언제쯤 계약이 가능한지 묻는 것이었다.
“넷상에서 완결이 되면 바로 진행할 생각이에요.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주셨으니.”
“…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리는 짠, 하고 잔을 부딪쳤다.
그 소리가 생각보다 컸는지, 패널들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두 분은 오랫동안 알던 사이지요?”
정치학자가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쯔하루 편집장이 얼른 대답했다.
“그렇지요. 한국에서 등단을 하신 직후부터 저희 출판사에서 책을 내셨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참 독특하신 분입니다. 이상 작가님은.”
정치학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주위가 단번에 조용해졌다.
사람을 집중시키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어떤 점이 말입니까?”
“<지팡이>를 보면 한국의 근현대사에 정말 통달하신 게 눈에 보이는데요, 어떤 신념도 느껴지고요. 그런 분이 일본에서 책을 내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 아닙니까.”
말인즉슨, 이런 거였다.
일본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일본에서 책을 냈냐고.
저런 1차원적인 질문을 저렇게나 고급스럽게 하다니.
역시 정치는 아무나 공부하는 게 아니다.
밥 먹자고 모인 자리에서 쓸데없이 기싸움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사실 이 자리를 만든 건, 미쯔하루 편집장과 스즈키 평론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날카로워지는 분위기에 미쯔하루 편집장이 난감해했다.
그에 비해 스즈키 평론가는… 평온하게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문득, 며칠 전 지훈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싸울 필요까진 없죠. 그냥 우아하게 눌러 주고 오세요.
뭐가 우아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할 말이야 있었다.
“인정을 바라고 한 일이었으면 아마 못했을 겁니다.”
그러자 그가 물었다.
“그럼 작가님께서 일본에게 바라는 건 뭡니까?”
“특정한 나라에 특별한 바람을 갖고 글을 쓰는 작가는 없습니다. 그래도 굳이 답을 알고 싶으시다면….”
“….”
“일본에 제 소설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쓰건 말이죠.”
하물며 일제강점기에 대한 이야기를 써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선, 일본의 독자들이 제 소원을 들어주신 것 같군요.”
나는 패널들을 공손히 가리켰다.
당신들이 내 ‘인기’의 증거가 아니겠냐는 뜻으로.
일본 독자들의 반응이 아니었다면, 이들이 한국까지 올 일도 없었을 테니.
정치학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당연히 원하던 반응이 아니었으리라.
그가 뭐라고 입을 열려던 때였다.
탁!
하고 평론가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기세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마저 느껴지는 행동에 사람들이 멈칫했다.
그는 작은 눈으로 정치학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뿐이었다.
그저 그뿐이었는데… 정치학자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몇몇은 담배를 피우러 나갔고, 또 몇몇은 화장실에 갔다.
물론 그런 목적들은 핑계일 테고,
사실은 뒷얘기를 하러 패를 지어 나간 거겠지.
이제 남은 사람은… 나와 미쯔하루 편집장, 스즈키 평론가뿐이었다.
그런데.
우웅― 우웅―
“이크.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미쯔하루 편집장마저 휴대폰을 들고 나가 버렸다.
나는 그렇게 스즈키 평론가와 단둘이 남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술잔을 앞에 두고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먼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비행이 힘들진 않으셨습니까.”
“비행이 아니라 저치들이 떠드는 소리가 곤욕이었습니다.”
‘저치’들이란, 아마도 정치학자, 기자, 소설가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난 그 말에 낮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농담 같은 건 할 줄 모른다는 듯 웃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얘길 꺼냈다.
“내 외할머니가 조선인이었습니다.”
…아, 그랬구나.
지금이야 한인 혼혈이 많지만, 그 시절에 혼혈이라….
집안 사정이 상당히 복잡했겠군.
“그러셨군요. 몰랐습니다.”
“그래서인지 내 어머니는 항상 조선… 그러니까 한국의 편을 들어 왔고, 아버지는 항상 일본의 편만을 들었습니다.”
그는 독백을 하듯 말을 이어갔다.
대체 내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걸까.
궁금한 마음에 난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 영향으로… 나는 20세기를 그린 한국의 문학이 모두 정치적으로만 보였습니다. 부모님의 싸움이 너무 싫었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뇌리에 남은 겁니다.”
그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검지로 톡톡 가리켰다.
나는 잘 듣고 있단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이 한국까지 온 겁니다.”
“…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러나.
드르륵―
하고 여닫이문이 열렸다.
“아휴, 한국은 꽤 춥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들이 담배 냄새를 풍기며 돌아왔다.
스즈키 평론가는 다시 인형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들과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그날 밤.
그들을 모두 호텔로 보낸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스즈키 평론가의 말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몇 번을 되뇌다 보니…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20세기 초반을 다룬 한국 문학은, 그에겐 모두 정치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가 원해서가 아니라, 집안의 독특한 분위기가 뇌리에 남아 있었을 테니.
그런데… <지팡이>를 만났다는 거겠지.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 소설을.
생각에 막 빠져 있을 무렵,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집으로 들어가니 기다렸다는 듯 지훈이 반겼다.
“형, 어땠어요?”
“뭐, 나쁘지 않았어.”
“괜히 시비 거는 사람도 없었고요?”
“시비는. 그런 거 없었어.”
정치학자나 소설가의 무례는 잊은 지 오래였다.
내겐 스즈키 평론가와의 대화만이 여운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평론가가 있지?
나는 외투를 벗고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야, 지훈아.”
“네?”
방으로 돌아가려던 지훈이 뒤를 돌았다.
“혹시 네가… 모든 소설이 정치적으로만 해석되면 어떨 것 같아?”
“엥? 갑자기 뭘 소리예요.”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뭘 봐도 정치적으로만 보인다고요? 사회가 어떻고, 윤리가 어떻고, 나라가 어떻고?”
“응.”
“…세상에 그런 저주가 어딨어요.”
지훈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말이다.
“저주…? 그 정도야?”
“당연하죠. 평론가는 작품의 가치를 증명하는 사람인데… 작품의 미학과 예술은 눈에 안 들어오고 정치적인 메시지만 눈에 들어오면… 얼마나 자괴감이 느껴지겠어요.”
지훈은 자괴감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문학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면… 그 평론은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물론 스즈키 평론가가 모든 소설을 정치적으로 보진 않았을 거다.
그랬다면 지금의 위치까지도 올라가지 못했을 테고.
하지만 20세기 초반 조선을 그린 소설에 한정된다 해도… 평론가로서의 자신을 납득할 수 없었겠지.
난 지훈에게 물었다.
“그런데 만약 그 틀을 깨 주는 작품을 만났다면? 정치가 아니라 미학의 관점에서 해석되는 작품 말야.”
“그러면….”
지훈이 가만히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지막하게 말했다.
“…숨통이 트인 거죠. 말 그대로.”
숨통이 트였다라….
난 그제야 스즈키 평론가가 연로한 나이에도 직접 한국까지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정치적 말들이 난무할 게 뻔한 이번 토론의 방향을, 어떻게든 ‘문학 토론’으로 바꿔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