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회
하융과 경감의 대화는 그런 식으로 이어졌다.
경감이 하융에게 그의 작품의 반일성을 지적하면, 하융은 그것을 경감의 문학적 해석으로 몰아갔다.
경감은 미칠 노릇이었다.
차라리 아니라 한다면 더 압박을 가했을 텐데, 하융이 족족 수긍을 하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정말 ‘문학적 해석’을 근거로 잡아넣기엔?
어쩐지 경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하융의 작품에는 일본의 ‘일’ 자도 나오지 않았으니, 이렇다 할 증거도 없었다.
하융의 화술이 상당히 교묘하기도 했고.
하융은 그렇게 미꾸라지처럼 취조를 마쳤다.
그러나 경감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직 확인할 게 남았다는 억지를 부려, 결국 하융을 총독부 옆 경찰서 구치소에 가뒀다.
하융을 가둔 후, 경감은 굉장히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마치 도깨비를 만난 것 같은 기분.
모두가 퇴근한 저녁.
경감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꺼냈다.
조사를 위해 구했던 하융의 작품들이었다.
그는 그것을 하나하나 들춰 보기 시작했다.
* * *
오늘은 ‘팀 이상’ 회의가 있는 날이다.
금홍도 회의를 위해 일찍이 우리 집으로 왔다.
준비한 원고가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라, 회의도 금방 끝날 예정이었다.
두 사람은 언제나처럼 진지하게 회의에 임했다.
특히 금홍은, 초반에 비해 점점 적극적으로 변하는 게 느껴진다.
“저는 이번 원고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애매한 표현도 없어서 번역하기에 용이하고요. 번역 쪽은 제가 커버해서 피터 한 교수님께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해요. 지훈이 너는 어떻게 읽었어?”
“저는… 이번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건 하융이 가진 담대한 마음이잖아요.”
“그렇지. 총독부에 하루아침에 끌려가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게… 뭐랄까, 이렇게 표현해도 되나 싶긴 한데… 애국지사 같지 않아서 좋았어요.”
지훈은 굉장히 중요한 얘길 했다.
애국지사 같지 않다는 건, 하융의 태도가 조선을 위한 게 아닌 것 같단 말이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의도했던 바이긴 해. 오늘 두 사람에게 묻고 싶었던 내용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은 정말 수도 없이 많잖아?”
“그렇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만 해도….”
“그런 소설들 속에서 이렇게 총독부나 경찰서에 끌려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일제에 저항하는 애국지사들이거든. 하지만 하융은 아니야. 이해가 돼?”
“애매하게 알 것 같은데…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어요?”
“하융이 한 행위는 ‘언어를 빼앗는다’라는 일종의 예술적 실험이거든. 물론 스승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행한 일이니 복수심이 없다곤 볼 수 없어. 하지만 난 하융의 행동이 복수나 애국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하는 거지.”
“음… 그렇군요.”
지훈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론가인 녀석은 알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예술가의 삶에 대한 소설에서, 복수나 애국의 감정을 배제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그래서 하융은 당당한 거야.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하융 입장에선 정말로 하나의 예술을 했을 뿐이니. 그가 해낸 게 예술이기에, 경감이 그걸 반일로 해석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하고 있지. 해석이야말로 개인의 자유니까.”
“아, 그러면.”
지훈이 입을 열었다.
“여기 총독부 취조실에서의 하융의 마음을 좀 더 드러나게 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애국자로서 당당한 것과 예술가로서 당당한 건 좀 다르니까.”
“전 하융이 예술가로서 당당해 하고 있다는 걸 알 것 같은데요. 꼭 더 드러날 필요가 있을까요?”
금홍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훈의 말도 금홍의 말도 맞았다.
우리는 하융에 대해 깊은 논의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러니 하융의 진심을 쉽게 알 수 있지.
하지만 독자들은 다르다.
특히 실시간으로 따라오는 독자들은, 적어도 하루씩 텀을 둬 가면서 <지팡이>를 본다.
그럼… 좀 더 친절하게 쓸 필요가 있겠지.
독자들이 이전 정보를 놓칠 수 있으니.
“조금 수정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내가 그렇게 말하자 금홍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한쪽의 의견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분 상해할 우리가 아니었다.
그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얘기가 나왔다.
특히 경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두 사람은 꽤 궁금해했다.
“이 경감, 은근히 매력 있는 캐릭터 같아요.”
지훈이 말했다.
그러자 금홍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맞아요. 하융에게 막무가내로 죄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는데 안 그러잖아요. 죄가 확증될 때까지 수사를 더 하는 게, 원칙주의자 느낌이 나요.”
“그런 원칙주의자면서도 하융의 책을 처음부터 살펴본다… 앞으로의 전개를 궁금하게 만드는데요, 형?”
“혹시 이런 인물을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금홍이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겪어 온 일본인은 대단히 다양하다.
전생에 날 구치소에 가뒀던 경찰부터, 미쯔하루 편집장과 무라카미 히루키까지.
결국 ‘일본인’이란 인종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가둘 순 없는 것이었다.
한국인 역시 그럴 수 없는 것처럼.
“변화하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변화하는 인물이요?”
“네. 하융으로 인해서 가치관이나 신념이 변하는 인물이요. 그런 인물이 일본인이면 그 파장이 더 클 테고요. 물론… 이 부분은 앞으로의 전개에서 나올 부분이지만요.”
요샛말로 ‘스포일러’라고 하지.
난 그런 것을 은근슬쩍 그들에게 흘렸다.
그들은 벌써부터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아, 저 그리고 그 부분도 인상 깊었어요.”
금홍이 또 입을 열었다.
“실감이 너무 나서 소름이 끼친다고 해야 하나.”
“어느 부분이요?”
지훈도 궁금한지 원고를 뒤적거렸다.
“그 부분 있잖아요. 하융이 구치소에 들어간 부분. 그 차가운 돌바닥과 사람들의 냄새, 공기… 진짜 그 시절의 구치소 같았어요. 지금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오~ 맞아요! 금홍 샘. 저도 보고 놀랐어요. 형, 이런 건 어떻게 쓴 거예요?”
어떻게 쓰긴.
내가 다녀와 봤으니 알지.
“…자료 조사, 인마.”
“….”
“그거 말고 또 있겠니.”
“가끔 보면 대체 어떤 자료를 찾아내는 건지 신기하다니까요, 형.”
“자, 그 얘긴 그만하고. 또 얘기 나눌 부분 있어요?”
“아뇨. 그 취조 부분 수정 마무리하시면 저한테 바로 보내 주세요.”
금홍이 원고에서 취조 부분을 크게 동그라미 치며 말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난 후, 우리는 수다를 좀 떨었다.
주제는 역시 며칠 후에 있을 토론이었다.
“토론을 위해 그 패널들이 한국까지 오다니… 놀라워요. 몇 명이나 오는 거예요?”
금홍이 물었다.
“정확히는 몰라요. 하지만 적어도 패널과 도마크 사람들만 해도… 열 명은 될 것 같아요.”
“어휴, 보통 일이 아니군요.”
“형, 그럼 그 사람들이랑 독서토론 한 번 하고… 끝?”
“음… 그러기엔 좀 허전해서,”
사실 지훈 몰래 추진한 일이 있긴 했다.
“내가 식사 한 끼 대접하려고 했지.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데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저도 같이 갈까요? 왠지 밥 먹을 때도 기싸움 할 것 같은데.”
“아서라. 일본어 모르면 재미없을걸?”
“그런데 혜경 샘.”
“네?”
“좀 신기한 것 같아요.”
“뭐가요?”
“지금 쓰시는 소설의 내용이랑… 곧 있을 토론이랑, 묘하게 이미지가 연결되는 것 같아서요.”
…그런가?
그럴듯한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신기하게도, <지팡이>와 내 현재 삶은 묘하게 겹치고 있었다.
내 유년을 담은 1장은 전생 이야기라 쳐도, 2장의 ‘희’와 ‘심’의 이야기를 쓰며 금홍과의 관계를 발전시켰고, 미국에서의 감정을 토대로 문단의 스타가 된 하융의 내적 허무함을 발견했으며, 또 일본에 대한 묘한 감정을 경감과의 이야기로 풀고 있으니.
‘문학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명제가 <지팡이>를 통해 실현되는 것 같았다.
“형, 그리고 이것도 좀 봐요.”
지훈이 어느새 태블릿 피시를 내밀었다.
화면에 띄워진 건 SNS 피드.
지훈이 ‘이상’ ‘도마크’ ‘토론’이라 검색을 하자, 수많은 피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 소설에서도 슬슬 일본이랑 싸우는 내용이 나오던데 실제로도 싸우려는 모양이다. 이상은 신기하게도 자기 삶과 소설을 연결시킨다.
― 하융이 이제 막 ‘언어를 빼앗는 일’의 참의미를 깨달았는데… 그건 일본의 언어로 일본을 비판한다는 거고… 그에 대해서 일본 패널들이랑 토론을 한다고…? 어우, 복잡하긴 한데 기대된다. 이 토론 자체로 벌써 사이다 먹은 기분.
― 아, 역시ㅜㅜㅜ 하융이 매국노 글 썼다고 이상도 매국노라고 한 놈들 다 어디 갔냐. 이럴 땐 싹 사라져 있지?
― 도마크 유튜브 주소 남깁니다. 한국인이라면 봐야쥬.
― 한일 배틀 가즈아아아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하고 있네?”
난 진심으로 의외였다.
아무리 사람들이 <지팡이>를 좋게 봤다고 해도, 결국에는 문학 ‘토론’이었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이들은 마치… 한일전 스포츠 경기를 기다리는 군중들 같았다.
지훈이 약간은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잘 보셨죠? 다들 기대하고 있다고요.”
“부담되는데? 난 싸울 마음까지는 없다고.”
“싸울 필요까진 없죠. 그냥 우아하게 눌러 주고 오시죠.”
우아하게 눌러준다?
그 말은 좀… 마음에 들었다.
* * *
토론을 위한 패널들과 도마크 측 사람들이 오기로 한 날.
나는 직접 인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젊은 사람 몇 명이라면 그럴 필요까진 없었으나, 그중에는 원로 문학가와 미쯔하루 편집장도 있었다.
그러니 이 정도는 예의를 차려 줘야지.
“이상 작가님!”
역시 제일 먼저 날 반기는 건 미쯔하루 편집장이었다.
나는 그와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그와 항상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피차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도마크 직원 몇 명과 토론의 패널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다른 패널들에겐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건 말이다.
하지만 원로 평론가는 달랐다.
작은 키에 아담한 체구.
작은 눈이지만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
그는 <지팡이>가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들쭉날쭉했던 일본의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터뷰를 했다.
‘하융은 국민이 아닌 개인을 선택했을 뿐이다.’
‘하융의 매국 행위는 예술 행위다.’
모두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나는 그의 주름진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공손하게 말했다.
“이상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그러자 그가 손을 한번 꽉 잡았다.
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강하게.
“…스즈키라고 합니다.”
그의 인사는 그게 다였다.
되려 인상적일 만큼 담백한 태도.
나는 그게 싫지 않아서 짧은 미소를 건넸다.
그러자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노인이었다.
“자, 그럼 모든 분들.”
나는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저를 따라서 서울로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