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80화 (180/204)
  • 180회

    독일, 베를린.

    틸 버켈은 D―TV 방송국 녹화장을 걷고 있었다.

    그가 오늘 패널로 참여하게 된 ‘철학 스터디’.

    그 라이브 방송을 위해 제작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사회자가 틸 버켈을 알아보고 달려왔다.

    “오셨군요. 틸 씨.”

    “오랜만입니다.”

    틸 버켈이 건조하게 인사했다.

    사회자는 그런 틸 버켈의 태도에 익숙하단 듯, 그가 들고 있는 파일을 보곤 말을 걸었다.

    “토론 자료를 들고 오신 건가요?”

    “네. 오늘 꼭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흠… 어떤 건지 알려 주시면 제가 좀 더 자연스럽게 얘길 이끌어 드리죠.”

    틸 버켈은 방송국에서도 괴팍하기로 유명했다.

    다들 살 떨려 하는 라이브 방송임에도, 그는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파격적인 논리로 방송을 압도했다.

    그러나 제작진들은 그를 덮어 놓고 미워할 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틸 버켈만 나오면 시청률이 두 배는 뛰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의 논리와 화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회자는 틸 버켈이 자료의 정체를 순순히 말해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합의된 토론은 토론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양반이니.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이상 작가가 쓴 <지팡이> 최근 화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 놓은 것뿐입니다.”

    “이상이요? 한국의 이상이요?”

    틸 버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또 어떤 이상이 있냐는 듯.

    사회자는 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갑자기 웬 소설?

    오늘 토론의 주제와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저… 오늘의 토론 주제는 들으셨죠?”

    사회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틸 버켈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주제를 읊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과와 그 윤리> 아닙니까? 독일인 개인이 지금도 죄책감을 가져야 하느냐는 문제 말입니다.”

    “…아, 예. 맞습니다.”

    그때였다.

    조연출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방송 시간 다 됐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죠. 상대 패널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PD의 말처럼, 라이브 시간이 임박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무대로 올라갔다.

    사회자가 중앙에 있고, 양옆으로 토론자가 있는 모양새였다.

    다른 토론자는 모 정치학자였다.

    그는 상당히 인기 있는 사람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젊은 세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젊은 세대들이 불편해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선조 독일인들이 행한 잘못’에 대해, 그는 ‘젊은 세대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철학자와 실용적인 논리를 내세우는 정치학자.

    사람들의 기대가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방송이 시작되고, 사회자의 유려한 진행과 패널 소개가 이어졌다.

    그리고 바로 시작한 토론.

    “자, 그럼 이제 두 패널분들과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볼 계획인데요, 바로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사과와 그 윤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윤리적으로 독일인 개인이 그 사건에 대해 죄책감을 가져야 하느냐는 거죠. 먼저 말씀을 좀 들어 볼까요?”

    사회자가 정치학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는 상당히 좋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먼저, 그 시절 독일의 잘못에 대해 첨언하고 싶진 않습니다. 명백하게, 잘못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죠. 또한 우리는 끊임없이 사과하고 있고요. 저는 정치학자로서, 그 사과의 행위 역시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일이라는 나라를 대표해서요.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다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나치 행위에 관여하지 않은 국민들은… 그냥 자기 삶을 살았을 뿐이죠. 하물며 지금은 더합니다. 모든 나치를 잡아들였고, 또 잡아들이려 노력하는 지금, 독일 사회에 남은 건 나치들과 상관없는 선량한 시민들이라는 거죠. 그들이 독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적인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나치에 대해 독일이라는 나라와 독일 국민이라는 개인을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는 거군요? 나라는 죄책감을 가져 마땅하지만, 개인은, 말 그대로 개인의 선택이란 내용 같습니다만.”

    “맞습니다. 나라의 스탠스가 모든 국민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도 폭력적인 생각이니까요.”

    과연 교묘한 화술이었다.

    독일의 잘못을 인정하는 윤리성을 챙기는 동시에, 그로 인한 국민들의 불편함은 덜어 주는.

    “자, 그럼 틸 버켈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회자가 틸 버켈에게로 발언권을 돌렸다.

    내내 침착하게 상대의 이야기를 듣던 틸 버켈.

    가만히 마이크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것참, 편리한 생각이군요. 그런 세계가 있다면 거기야말로 유토피아겠습니다.”

    유머와 빈정거림이 뒤섞인 적나라한 비판.

    정치학자는 애써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틸 버켈이 날카로운 눈빛을 띠며 말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죠. 우리는 전범국입니다. 그렇죠?”

    “네. 그렇죠.”

    정치학자가 당연한 소릴 한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우리에겐 선택지란 없어요. 우리의 선조들이 예전에 피해 국가 국민들의 모든 선택지를 빼앗아 갔잖아요.”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단 몇 마디 문장으로, 정치학자의 의견을 완벽하게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학자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이론적으로야 그렇겠죠. 철학이라는 이론 안에서는요. 하지만 여긴 현실이에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지금 우리 국민들은 나치가 아니죠. 독일 국민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을 가지냐 마느냐 하는 선택지를 뺏어야 한다고요?”

    틸 버켈이 바로 말을 받았다.

    “애초에 선택지를 준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맞아요. 현재 독일의 상태는 그래요. 어떤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갖고 있지 않죠. 하지만 이게 선택의 문제 같습니까? 아! 난 죄책감을 가져야 해. 라고 생각하면 자동으로 죄책감이 생기나요? 그런 바보 같은 죄책감이 어딨어요?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윤리의식의 유무 문제죠.”

    말이 더 거칠어지기 전에, 사회자가 얼른 멘트를 정리했다.

    “그럼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만이 죄책감을 느낀다, 이 말이군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네. 반대로 그것이 결여된 끔찍한 사람들이야말로 역사와 자신 자신에 선을 그어 버립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하거든요. 다른 말로 하면 죄책감을 가질 만한 용기조차 없는 겁니다.”

    그때, 정치학자가 말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틸 씨, 사람들은 점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겁니다. 통계가 말해 주고 있죠.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바로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 지점이 제가 꼭 말하고 싶던 바거든요.”

    틸 버켈이 가지고 왔던 파일을 열었다.

    사회자가 얼른 설명을 시작했다.

    “틸 버켈 씨가 뭔갈 준비해 오셨군요.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신 한국의 이상 작가의 <지팡이>라는 작품에 대한 내용이라는데요… 과연 어떤 주장이 뒤따를지 궁금해지는군요.”

    틸 버켈이 말했다.

    “한국의 이상 작가가 제2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전범국 일본과의 관계를 다루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는 건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정치학자의 얼굴에 혼란이 스쳤다.

    갑자기 무슨 소설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틸 버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조선인입니다. 그는 역사의식이 투철한 인물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사연으로 이런 소설을 쓰게 되죠. 일본 제국을 한 가족에 빗대어, 아주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소설을요. 그리고 그 작품은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게 돼요.”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정치학자가 도저히 모르겠단 얼굴로 물었다.

    “우리가 우월감에 빠져 죄책감을 선택할지 말지 고민하는 동안, 피해국들은 나름의 피해 사실을 끊임없이 밝힌다는 겁니다. 그것도 예술을 통해서요. 예술이라는 문화는 인간에게 아주 강렬하게 다가갑니다. 게다가 웃음과 유머를 담은 작품이라니… 이만큼 절묘한 비판술이 없죠. 이런 예술을 그들이 쓰는 한, 우리는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혹은 비겁하게 외면할 뿐이죠. 즉,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선택권은 피해국에 있죠.”

    “저도 <지팡이>를 읽었습니다. 게다가 굉장한 애독자라고요. 하지만 그 소설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야기 아닙니까.”

    “이해를 못 하시는군요.”

    “네…?”

    “저는 지금 작품 속 작품이 아니라 <지팡이> 자체를 가지고 드리는 말입니다.”

    촬영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사람들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판세는 이미 틸 버켈 쪽으로 기운 상황.

    남은 건 ‘한 방’ 뿐이라는 걸.

    “이 <지팡이>와 같은 작품이 존재하는 한, 우리 전범국은, 독일은 물론 일본을 비롯해서 죄책감이란 감정을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 * *

    우웅― 우웅― 우웅― 우웅―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요동친다.

    끄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거절하면 바로 걸려오고, 또 걸려 오고.

    무슨 맛집 예약전화도 아니고….

    상황은 지훈도 마찬가지다.

    지훈은 계속 울리는 휴대폰을 들고 와서 말했다.

    “형, 어쩌죠? 기자고 잡지사고 무슨 역사 단체고… 난리가 났어요.”

    “네 예상이 딱 맞아 떨어졌네.”

    일주일 전에 송지훈이 말했다.

    이번 에피소드가 공개되면, 외국에서도 반응이 올 거라고.

    저 창백한 얼굴로 보아… 이 정도로 열렬한 반응까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지만.

    “…좀 무서울 정돈데요? 전 그냥 비평 쪽에서 언급이 많이 된단 소리였죠. 틸 버켈이 토론에서 형 소설을 핵미사일로 쏠 줄 알았나요.”

    지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어제, 틸 버켈이 ‘철학 스터디’에서 내 작품을 언급했다.

    심지어 아주 ‘크리티컬’한 방식으로.

    한국 언론은 ‘철학 스터디’는 몰라도 <지팡이>는 알기에.

    또 그들은 <지팡이>에 대해 관심이 많기에.

    틸 버켈의 발언은 한국에서 일파만파 퍼졌다.

    바로.

    ‘일본에게 죄책감을 주는 소설’이라고.

    뭐… 틀린 말도 아니긴 하지만, 참 기가 막히게 한국식으로 변주가 됐달까.

    “형, 알아보니까 틸 버켈의 저 토론, 일본에서도 엄청 화제가 됐나 봐요.”

    “일본에서도?”

    “네. 음… 워낙 서양인들 시선에 예민하잖아요, 일본이. 그래서 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양이던데요? 아, 그리고… 이런 메일도 왔어요. 이건 형한테 보여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지훈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태블릿 피시를 내밀었다.

    그건 바로… 도마크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심상치 않은 내용일 것 같아서 바로 들고 왔어요. 무슨 내용이에요?”

    나는 메일을 한번 주욱 읽었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도마크 다음 토론에 날 초대하고 싶단 것 같은데.”

    “…에, 지금 이런 상황에서요?”

    지훈이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진동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지금 가면 다들 형을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데요?’

    라는 뜻.

    “좀 나중에 간다고 해요. 미국 갔다 온 지도 얼마 안 됐잖아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다시 집필에 집중해야 하는 이때에, 일본에 가서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도 분명 칼을 갈고 있을 텐데.

    “네 말이 맞아. 일단은 거절해야겠다.”

    난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의 메일을 썼다.

    어떤 이유건 탐탁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아무래도 집필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를 갖다 붙였다.

    그렇게 한소끔 마무리된 듯했다.

    ‘그’ 메일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그 메일을 발견한 건, 집필을 마무리하고 컴퓨터를 끄려던 때였다.

    습관적으로 메일함을 확인했더니, 도마크 출판사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거절에 대한 형식적 인사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깜짝 놀랐다.

    바로 이 구절 때문이었다.

    ― …해서, 한국에서 토론을 열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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