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73화 (173/204)
  • 173회

    “어쨌든 들어오시죠. 제 성에.”

    조나단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저택의 현관문을 열었다.

    당연한 일일 테지만, 그의 집은 굉장히 좋았다.

    단순히 재력이 좋다기보단… 집안 여기저기에 그의 취향이 한껏 반영되어 있었다.

    거실은 영화 관련 전시품들과 기념품들이 잔뜩이었고, 그의 영화 포스터가 화려한 액자에 끼워져 있었다.

    또한, 금인지 은인지 아니면 다이아몬드인지.

    거실 한편엔 온갖 장신구가 진열되어 있었다.

    마치 힙합으로 성공한 흑인 래퍼처럼 말이다.

    조나단 감독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다.

    둠둠, 하는 비트와 함께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거지.”

    지훈이 비트를 듣고 좋아라했다.

    하긴 저번 ‘팀 이상’ 파티를 할 때, 녀석은 음악 결정권을 피터 한에게 빼앗겼다.

    애써 준비한 힙합 대신 클래식을 들어야 했지.

    “맥주 마실래요? 아니면 커피?”

    조나단이 소파를 가리키며 물었다.

    “커피로 할게요.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요. 내가 내려 줄게요.”

    그는 직접 주방으로 갔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서 집을 둘러보았다.

    …정말이지 좋은 집이었다.

    한 번쯤은 살아 보고 싶은.

    집이란 등 누일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견물생심일까.

    언젠간 이런 곳에서 살아 보고 싶었다.

    잠시 후, 조나단 감독이 커피를 내려 왔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상 편집은 전혀 하지 않은 상태인가요?”

    내 질문에 조나단 감독이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최소한의 것은 해 놨죠. 다만….”

    다만?

    “상의하고 싶은 점이 있어서 몇 군데 남겨 두긴 했어요. 물론 감독으로서 저 나름의 답을 내긴 했지만, 그래도 작가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요.”

    말인 즉슨.

    상의하고 싶은 ‘특정한’ 부분이 있다는 거군.

    “그럼 회의 시간은 얼마나 예상하시나요?”

    “음… 아마 넉넉잡아도 내일 안으로는 끝날 것 같군요. 우리 둘이 싸우지만 않는다면 말이에요.”

    조나단 감독이 양 주먹을 쥐고 권투 흉내를 냈다.

    편집에 들어가기 전, 우리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듯.

    나는 그의 애교 아닌 애교에 웃음이 나왔다.

    “즐겁게 하자구요, 긴장할 필요 전혀 없으니까.”

    그리고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좋아요. 하이파이브.”

    나는 그의 커다란 손에 내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사실 사흘 뒤에 개인적인 일정이 잡혀 걱정을 좀 했거든요.”

    “개인적인 일정?”

    “네. 누들 출판사에서 북콘서트를 열어 준다고 해서요. 갑작스럽지만, 하기로 했죠.”

    “와우. 멋진데요. 일정이 가능했으면 저도 가는 건데.”

    그는 아쉽다는 얼굴로 말했다.

    마치 소풍을 못 가게 된 어린아이처럼.

    일정 얘길 하는 걸 보니, 그도 <그 집> 회의에 낼 수 있는 시간은 애초에 이틀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슬슬 작업실로 내려가 볼까요?”

    “가죠.”

    “프라이빗하게 상의를 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매니저분께 간식과 놀거리를 좀 대접해도 될까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잘 생각해 보니… 단둘이 작업을 하고 싶단 뜻 같았다.

    금홍은 통역이니 어쩔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지훈을 혼자 두게 되니, 간식을 비롯해 시간을 보낼 뭔가를 대접하겠다는 것.

    “전 그럼 놀고 있을게요. 다녀오세요.”

    지훈은 선선히 물러났다.

    별달리 서운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 집에서 뭔가를 더 즐기는 걸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우리 세 사람은 그렇게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라고 해도 굉장히 밝았는데, 그 안엔 몇 개의 작업실과 영화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조용하네요.”

    “이 집, 방음이 잘 되어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비밀스럽게 지내시는군요.”

    조나단 감독이 뒤를 돌았다.

    그리고 날 보더니 씩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네?”

    “작가님 현관 앞에서 못해도 사진 수십 장은 찍혔을걸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파파라치요.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어떤 여배우를 만나는지 궁금해서 붙어 있는 인간들이지만요.”

    파파라치라니.

    내가 무슨 할리우드 배우도 아니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 나를 보고 조나단 감독이 낄낄 웃었다.

    “언론에 사진이 뿌려지면… 아마 내일부터는 좀 귀찮아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미국에 왔으니 나름대로 그런 것도 즐겨 보시라고요. ”

    “정말… 생각만 해도 싫네요. 저도 기자들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웰컴 투 아메리카죠. 자, 이 방이에요.”

    그와 나는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작업실은 대단히 심플했다.

    커다란 화면과 복잡해 보이는 기계.

    그 기계로 조나단 감독이 직접 편집점을 잡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화면 앞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금홍이 우리의 뒤 정중앙에 앉았다.

    “먼저, 영화를 쭉 보죠. 아마….”

    조나단 감독은 황금빛 손목시계를 봤다.

    “세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은데요. 시간 괜찮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얼마든지요.”

    우리는 그렇게 <그 집>을 보기 시작했다.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심지어 편집도 채 끝나지도 않은 영화.

    그 영화를 이렇게 최초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화면이 어두워지고, 흑백 화면에 집 한 채가 등장했다.

    까마귀가 가득 앉은 집.

    그리고 부웅― 하는 엔진 소리가 들리자, 까마귀들이 일제히 날아간다.

    뒤에서 금홍이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영화 <그 집>의 첫 분위기는… 그래, 흡사 공포와 비슷했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감정은 놀라움.

    영화는 흑백이 아니었다.

    유난히 어두운 하늘과 회색빛 집, 까마귀, 그리고 은색 차량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뿐.

    차에서 내린 소녀, 수지는 붉은 원피스를 입고 있다.

    “이질적이네요.”

    내 말에 조나단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수지는 저 세계의 이방인이죠.”

    그렇게 놀라움과 공포가 뒤섞인 장면들이 지나갔다.

    수지는 집 안으로 들어가 제 양오빠를 만났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자, 수지의 양쪽에 서 있던 양부모가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양부모들이 수지와 자신을 분리하는 장면이다.

    그들이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과 앞으로 외롭게 살아갈 수지의 미래를 암시해 준다.

    그리고 문지방을 넘어 걸어 나오는 한 소년.

    “…아름다운 이미지.”

    나는 중얼거렸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대단한 미소년.

    흰 이불보를 마치 그리스 신처럼 두르고 있다.

    수지뿐만 아니라, 부모까지도 깔보는 시선.

    소년에겐 희미한 후광이 비친다.

    수지는 그에 눈살을 찌푸린다.

    한편, 소년의 방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다.

    “바로 이 부분인가요? 컬트적 요소를 살린 부분. ‘방’으로 표현되는 양오빠의 내면.”

    “네. 힘을 좀 줬어요. 첫 장면은 하이라이트보다 더 중요한 법이니까요.”

    “후광이 추가됐네요?”

    “네. 원래 취조실에서만 등장하는 후광인데… 여기에도 넣어 봤어요. 두 장면 간의 연결점을 더 강렬하게 해 주고 싶어서요.”

    그 이후로도 멋진 장면들이 지나갔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내가 스토리보드를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수지가 집안에서 하는 일련의 실험들은 나를 점점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감정이 점층적으로 표현되고 있군요. 정말 좋아요, 이 흐름.”

    “감사합니다.”

    조나단은 습관처럼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바닥을 가볍게 쳤다.

    두 시간 정도는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이제 이야기는 어른이 된 수지가 연쇄살인마가 된 양오빠를 검거한 후로 이어졌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취조실 장면.

    ― 제노프 강둑 살인 사건. 혐의 인정합니까?

    ― 모두 인정해.

    ― 한인 마트 주인 부부 살인 사건. 혐의 인정합니까?

    ― 모두 인정해.

    ― 코놀프 산장 일가족 살인 사건. 혐의 인정합니까?

    ― 귀찮게 좀 굴지 마. 난 모두 인정한다고 말했어. 네가 사건 파일로 가지고 온 사건 모두 말이야.

    ― 폴 빌라드… 살인 사건. 혐의 인정합니까?

    ― ….

    ― 인정합니까?

    ― 중요한 말을 빼먹은 것 같은데? 내게 이렇게 말해야지. 고마워, 오빠.

    배우들의 연기력은 대단했다.

    ‘폴 빌라드’는 수지의 친부모를 죽인 사람이었다.

    이 순간 수지가 느낀 복합적인 감정.

    그 감정이 배우의 얼굴에 여실히 드러났다.

    “이 장면, 잘 기억해 주세요.”

    조나단 감독이 말했다.

    왜냐고 굳이 묻진 않았다.

    아마 바로 이 장면이… 그가 날 미국으로 초대한 이유일 테니까.

    수지는 끝내 양오빠에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러자 양오빠는, 수지에게 모든 잘못을 쏟아 내듯 시인한다.

    마치 모든 게 끝났다는 뜻.

    양오빠는 결국 사형 판결을 받은 후, 법정을 떠나는 길에 수지를 스쳐 간다.

    수지를 보는 그 푸른 눈에 클로즈업.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양오빠를 처음 봤을 때, 수지가 집중할 수밖에 없던 그 아름다운 눈.

    그 눈동자에 수지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영화는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소름 끼치지만, 어딘가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고.

    세 시간이,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때요?”

    조나단 감독이 여유롭게 물었다.

    나는 천천히 박수를 쳤다.

    “완벽해요. 대체 뭘 상의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는데요.”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겸손은 떨고 싶지 않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바로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성공적이에요.”

    내 칭찬에 신이 났는지, 그가 리듬감 있게 몸을 흔들었다.

    영화 작업을 하는 건지, 음악 작업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난 이 영화가 잘 되리란 확신이 있어요. 다만, 작가님에게 한 가지 응원을 받고 싶어서요.”

    “응원이요?”

    “네. 아까 이 부분.”

    그는 영상을 앞으로 돌렸다.

    바로 취조실에서 수지가 보여 주는 복잡다단한 표정.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좋냐 나쁘냐를 따지자면 당연히 좋았다.

    하지만 ‘가장 좋냐’를 따져 보자면… 시간이 걸렸다.

    나는 배우의 그 표정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연기는 손색이 없었다.

    그렇다면 욕심을 내어 더 따져 볼 건….

    “…영화의 톤 얘기를 하고 싶은 거군요.”

    내 말에 조나단 감독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바로 그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컬트적인 요소가 줄어들다가, 클라이맥스에서는 스릴러적 요소만이 두드러진다.

    “저, 여기서 좀 더 오버하고 싶거든요. 그럼 스토리보드와 다르게 가기 때문에, 작가님의 동의를 얻고 싶어요.”

    그가 솔직하게 말했다.

    한 마디로, 이 장면에도 컬트적 요소를 넣고 싶다는 뜻.

    “흐음….”

    고민스러웠다.

    사실 이대로도 굉장히 좋은 감정선을 가지고 있는데….

    과유불급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어떻게요?”

    “씬을 하나 더 가는 거죠. 양오빠가 정면으로 보이는 씬이요. 그 얼굴은… 다름 아닌 어렸을 적 처음 만난 양오빠의 얼굴로 변해요.”

    “수지가 그를 ‘신’이라고 느꼈던 그 장면.”

    “네. 제 부모의 원수를 죽였으니… 결과적으로 신이 된 거죠. 천사 같은 얼굴을 한 악신이지만. 저는 그 이미지를 더 확실하게 하고 싶어요.”

    “멋진 미장센이네요. 하지만….”

    “….”

    “그렇게 되면 수지의 내면보다 양오빠의 이미지가 더 살아나게 되잖아요.”

    “그래서, 선택의 문제예요. 전 양쪽 다 괜찮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론… 전 인간의 내면보다는 인간의 이미지를 더 사랑해서요. 그게 천사건 악마건.”

    내면과 이미지.

    무엇이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조나단 감독은 확고한 취향이 있는 듯하지만… 사실 그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멈춰진 화면을 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전 반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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