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69화 (169/204)

169회

내가 <그 집> 편집 건으로 미국에 간다는 소식.

대체 어디서 어떻게 퍼진 건지 모르겠다.

<지팡이>를 시작할 무렵.

나는 수많은 기자와 언론사들에게 내 뜻을 밝혔다.

완결을 하기 전까지는 인터뷰를 안 하겠다고.

그렇게 한동안 평안히 살았건만… 지금 내 집 앞엔 기자들이 또 가득 몰려 있다.

지훈은 극구 자기가 퍼트린 게 아니라고 했다.

녀석은 미국행 티켓이 걸려 있기에, 더더욱 억울한 표정으로 제 무죄를 주장했다.

그렇다면… 금홍?

그건 더 무리지.

평소 금홍의 신중한 성격도 그렇거니와 딱히 아는 기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얘기가 샌 건데?

라고 궁금할 무렵, 나는 서인희 기자에게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앞다퉈 전화를 해대는 기자들 중, 나는 서인희 기자의 전화만을 받았다.

― 작가님? 작가님 맞으세요?

“네. 기자님.”

― 어휴, 이제야 연결이 되네요.

“그러셨을 거예요. 지금 전화가 쉴 틈 없이 울리거든요. 번호 또 바꿔야 할까 봐요.”

― 저런…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고생이 많으세요.

나는 서 기자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얼른 물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 간다는 정보는 대체 어디서 얻으신 거예요?”

― 저희끼리 다 정보 유통망이 있죠. 말씀은 드릴 순 없지만요.

“아니, 그래도 소문의 최초 발원지가 있을 거잖아요.”

― 아… 그런 의미라면… 미국 쪽에서 흘러들어 왔다던데요?

“미국이요?”

― 네. 거기 영화계 관계자가 한국계 기자한테 이상 작가님이 조나단 감독님 만나러 미국에 갈 거라고 말을 했고, 그때부터 소문이 퍼진 거죠.

…이제 알겠다.

조나단 감독 쪽이었구나.

소문의 진원지는, 바다 건너에 있었다.

“하아… 그렇군요.”

이건 뭐 조나단 감독한테 따질 수도 없고.

나는 창문 커튼 틈 사이로 아래를 봤다.

골목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서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서 기자가 소문의 진원지를 알려 줬으니, 전화 인터뷰로 몇 마디 나눠 보려 했는데… 서 기자는 좀 다른 얘길 했다.

― 작가님. 기자들이 바라는 특종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작가님 행보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독자분들이 정말 많으세요.

그건 일종의 회유였다.

게다가 꽤나 그럴듯한.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작가는 글로 보여 주는 사람이니까요. 사생활적인 부분도 좀 지키고 싶고요.”

― 물론 이해하죠. 하지만 워낙에 유명해지셔서, 음… 그러니까, ‘유명세’라는 게 있잖아요. 유명인이 내는 세금이요. 그런 개념으로 이번 일을 생각해 보신다면, 조나단 감독과 함께 일하게 된 소감 정도는 말씀해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나오면 또 할 말이 없다.

유명인은 때때로 이득을 본다.

나만 해도 많은 기업이 무상으로 물건을 보내 주니까.

책과 문구류 등은 물론이고, 대표가 나의 팬이라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것들이 온다.

그런 소소한 이득에 대한 세금이라면… 또, 내게 일어난 ‘좋은 일’에 대한 소감이라면….

“하아… 한마디 하긴 해야겠네요.”

― 어머, 정말요?!

서 기자는 깜짝 놀랐다.

막상 내가 받아들일 줄 몰랐나 보다.

사실 서 기자의 말이 마음을 움직인 것도 있지만, 인터뷰를 하기로 한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지팡이> 1권을 내기 전, 그때의 한국 독자들과의 갈등 아닌 갈등.

그 일을 생각하면… 한 번쯤은 언론에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럼 기자분들 공식적으로 모셔 놓고 가벼운 인터뷰만 짧게 하죠.”

― 아. 아예 기자회견처럼요?

“제가 뭘 했다고 기자회견까지 하겠어요. 인터뷰하는 김에 한꺼번에 하는 거죠.”

― 그렇군요. 음… 제게 또 따로 하실 말씀은 없을까요?

서 기자가 왜 이러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왠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이내 나는 서 기자의 반응을 이해했다.

일이 이렇게 되면, 통화까지 해서 날 설득한 그녀에겐 별 메리트가 없지.

이럴 때 보면 서 기자도 천생 기자다.

“서 기자님은 제가 기자분들을 모을 거라고 먼저 기사를 내 주세요. 일시랑 장소는 기자님한테만 알려 드릴 테니까. 이런 독점 기사 정도면 괜찮겠죠?”

― …정말요?

“그럼요.”

서 기자는 항상 내게 우호적인 기사를 써 준 기자다.

심지어 <지팡이>의 초반 때에도, 수많은 언론사가 날 비판해도 서 기자만은 중립을 지켰다.

이 정도 기삿거리는 줄 만하다.

― 제가 항상 감사드리는 거 알죠?

“제가 더 감사드리죠. 아무튼 잘 부탁할게요.”

난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서 기자와의 통화야 기분 좋게 마무리됐지만….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인터뷰라니.

기자 인터뷰에서 골치가 안 아픈 적이 없었는데.

* * *

인터뷰를 요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아직 내가 영화로 뭔갈 이룬 것도 아니고, 편집에 참여하는 단계에 불과하니까.

내가 잡은 인터뷰 장소는 신라문학 프레스센터.

신라문학 측은 내게 기꺼이 공간을 대여해 줬다.

출판사의 프레스센터는 그리 크지 않다.

출판사에 기자들이 몰려올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니 그냥저냥 구색을 갖춘 정도랄까.

엊그제, 나름대로 선별한 기자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원색적인 기사를 쓰는 치들은 제외하고, 언론의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신라문학 프레스센터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적당히 옷매무새를 체크하고 있는데, 현장을 살짝 보겠다며 나갔던 지훈이 돌아왔다.

“형, 기자들 되게 많아요.”

“왜? 올 때 초대장 체크 했잖아.”

“체크 다 하고 문 잠갔죠. 그런데 관계자인 척 스멀스멀 몇 사람 더 들어온 것 같아요.”

하여간 기자들이란.

“어쩌죠? 한 번 더 확인할까요?”

“됐어. 더는 요란 떨지 말자. 다 모였으면, 이제 가도 되지?”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이정도 단장이면 충분하다.

“네, 가시죠.”

나는 그렇게 지훈과 함께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 프레스센터의 문을 여는 순간.

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

셔터음 무서울 정도로 가득 들려왔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마이크에 대고 목을 가다듬자,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기자들은 모두 키보드 자판에 손을 올린 채였다.

“네, 반갑습니다. 이상입니다. 이렇게 언론인분들을 한 자리에 모신 걸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가벼운 인사치레를 한 후.

먼저 그들이 바라는 정보를 주기로 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저는 조나단 란스마이어 감독과 함께 누들 공모전에서 입선한 저의 스릴러 소설 <그 집>의 영화 편집 작업을 위해 며칠 후 미국 시애틀로 떠날 예정입니다. 물론 편집권은 감독 고유의 권한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저는… 시나리오를 쓴 작가의 입장에서 자문 역할로 가는 것이니만큼 조나단 감독과 제작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 정도면 됐지 싶었다.

사실 나도 영화 <그 집>을 위해 뭘 해야 할지 아직은 알지 못하니까.

예상했던 질문이 쏟아졌다.

조나단 감독과 협업을 한 소감.

조나단 감독의 영화 중 인상 깊게 본 것.

한국에서의 영화 <그 집> 홍보는 어떻게 할 건지.

성심성의껏 대답을 이어 갔다.

나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라도, 기자들… 아니, 독자들에겐 신선한 정보일 테니까.

필요한 정보는 다 전달한 것 같았다.

<그 집>에 꼬투리가 잡힐 만한 것도 없고.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기자들의 질문은 슬슬 <지팡이>로도 번졌다.

“<지팡이> 2권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소감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독자분들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분들의 힘이 없었더라면 이루기 힘든 일이었죠.”

“얼마 전에 있었던 친일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 기자가 큰 소리로 물었다.

기자들의 눈빛이 빛났다.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

“저의 친일이 아니라, 하융의 친일을 말씀하시는 거죠?”

뭐… 그래, 이 정도 질문도 예상했다.

아마 독자들도 이에 대한 답을 기다렸을 테니.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으로 나는 입을 열었다.

“인간의 성장 과정은 그리 깨끗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사실 깨끗하고 윤리적인 성장 과정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도 않죠. 성장이란 우리 인간이 부족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시작하니까요. 그리고 하융이 살았던 20세기 초반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성장에 일본과의 관계라는 것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간접적, 심리적으로라도요. 작가인 저의 기준으로는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 같네요. 나머지 답은 작품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를 적어 내려갔다.

하융의 친일 논란도 한소끔 정리된 이슈라, 기자들도 끈질기게 굴진 않았다.

뭐, 기자를 가려 받은 것도 있고.

“<지팡이> 최신화에 하융이 기행을 할 거란 암시가 있던데요. 그 기행이 뭔가요?”

나는 하하, 하고 웃었다.

이건 대놓고 소설 줄거리를 말해 달라는 게 아닌가.

그건 말해드릴 수 없다고 말을 하려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기자들의 관심을 다시 <그 집>으로 돌릴 방법.

나는 아직 웃음이 다 가시지 않은 채로 말했다.

“기행이란… 다른 이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게 어떤 겁니까?”

“이를테면, <그 집> 같은 거죠.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작가가 굳이 미국에서 스릴러 소설을 내는 것. 조나단 란스마이어 감독이라는 걸출한 감독과 연이 닿기 전에…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컬트 시나리오를 써 두고 영화화를 기다리는 것, 뭐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한 일도 기행은 기행이다.

하융이 자신만의 길을 저벅저벅 걷는 것처럼, 나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계속 걸었으니.

남들의 상상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기자들이 손가락이 무서울 정도로 빨라졌다.

온갖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영화를 염두에 두시고 소설을 쓰신 겁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작품을 다 쓰고 난 후, 영상화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집>은 영상에 어울리는 작품이니까요.”

“컬트적 요소를 선택하신 이유는요?!”

“그 역시 <그 집>과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조나단 감독 역시 컬트를 훌륭하게 소화하는 분이시고요.”

“그럼 애초에 <그 집>의 영화화를 시도한 쪽은….”

기자가 놀라서 말끝을 흐렸다.

이들은 모두 이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조나단 감독이 <그 집>을 읽고 영화화를 제안했다고.

그 말도 틀리진 않았지만, 그 시점엔 이미 내게 <그 집>의 시놉시스가 있었다.

“‘동시에’라고 말씀드리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기자들은 나와 조나단 감독의 일화를 상당히 재밌어했다.

조나단 감독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꽤 좋으니까.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되다가… 기자회견을 마무리할 시간이 됐다.

질문은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지만, 사회를 맡은 지훈이 적당히 정리를 했다.

질의응답을 수십 개는 했으니 저들도 아쉽진 않겠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평화롭게 마무리되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그때였다.

기자들 사이에서 새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작가가 무슨 연예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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