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회
오늘, <지팡이> 2권이 출간됐다.
1권이 나온 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한 작가가 소설책을 한 권 내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약 일 년이 걸린다.
하지만 연재소설은 다르다.
‘매일매일’ 연재를 한다고 했을 때, 원고가 쌓이는 속도는 말도 못 하게 빠르니까.
게다가 <지팡이>는 이미 독자들에게 ‘발표’된 글.
책을 내겠단 이유로 내용을 수정할 수도 없는 일.
사소한 오탈자 정도 손보는 게 전부다.
결론적으로… 원고도 표지도 이미 준비된 상태이기에, 자동화된 공장처럼 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지팡이> 2권이 나온 기념으로, 신라문학 이준환 편집위원의 초대가 있었다.
별다를 건 없고 밥이나 한 끼 먹자는 의미인지라,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식당으로 갔다.
신라문학 근처 고급 중식당.
이준환 편집위원은 인사를 하자마자 뭔갈 내밀었다.
뭔가 하고 봤더니….
“<지팡이> 2권이네요.”
1권과 똑같은 표지.
오른편 아래에 ‘1’ 대신 ‘2’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같은 표지를 단 책을 두 권이나 맞이하니 실감이 난다.
내가 정말 ‘대하소설’을 쓰고 있다고.
“인쇄공장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책입니다. 1권 1쇄를 못 드렸던 게 생각이 나서요.”
“아… 하하하… 그랬었죠.”
<지팡이> 1권은 사전예약만으로 품절이었다.
서점에 깔 물량도 없는데 내게 책이 올 리가.
나도 2쇄가 나온 후에 겨우 받았지.
나야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1쇄, 즉 ‘초판본’에 의미를 두는 작가들도 많다.
중고시장에서도 ‘초판본’이 가치는 남다르고.
“이번에는 비매품으로 좀 더 뽑았습니다. 곧 댁에 보내 드릴 테니 지인분들께 나눠 주시면 될 것 같군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지팡이> 2권을 소중하게 가방에 넣었다.
우리는 룸으로 들어오는 중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이 찾는 집이라 그런지, 요리들이 깔끔했다.
“요즘 보니 독자들의 원성이 좀 잠잠해진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이준환 편집위원이 말했다.
<지팡이> 1권을 내기 전, 나는 하융의 친일행동을 묘사했단 이유로 적잖은 비난을 받았다.
책이 나오기 직전의 일이라, 이준환 편집위원도 많은 걱정을 했지.
“박조운 편집장님이 좋은 아이디어를 주셔서 겨우 무마했죠.”
그가 빙그레 웃었다.
“표지 말이죠?”
“네.”
“그러고 보니, 이 작가님이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시는지 몰랐습니다. 아주 깜짝 놀랐어요.”
“취미로 좀 그리는 수준인데요, 뭐.”
나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하여간, 재주가 많습니다. 작가만 하기엔 아까울지도요.”
“음… 아닌 것 같아요. 작가인 것만으로도 과분합니다. 하하….”
“아, 그나저나, 요즘 <지팡이>의 전개가 재밌던데요. 두 여자와의 에피소드가 끝난 후, 하융의 스승의 집에 순사들이 들이닥치잖아요.”
딱 오늘까지의 연재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는 좀 고민스러웠다.
사실 앞으로의 전개에 대해 상의하고 싶은데, 아무리 그래도 독자에게 ‘스포’를 할 수가 있나.
하지만 의외로 이준환 편집위원은 ‘스포’를 원했다.
“앞으로의 전개는 어떻게 되나요?”
“음… 그걸 말씀드리면 나중에 재미가 없으실 텐데요.”
“저는 이야기를 알아도 소설을 재밌게 볼 수가 있답니다. 편집자들의 재능이기도 하죠.”
“그런가요?”
“오히려 기대가 되죠. 그 이야기를 어떻게 구현하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역시 편집자의 시선은 또 다른 건가.
나는 그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어쨌건, 나보다 연륜이 있는 이의 도움이 필요했으므로.
“예상하셨겠지만, 하융의 스승은 경찰청에서 죽고 말아요.”
“음. 역시.”
“그리고 하융은 기행을 하기 시작하죠. 봉두산발을 하고, 작가들과 싸우기도 하면서요.”
“자연스러운 흐름이네요.”
“그리고… 아직은 집필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 기행과 천재적인 글로 문단에서 일약 스타가 됩니다.”
“스타요?”
“네. 원래 인기란 건 그런 거잖아요. 글만 잘 쓴다고 되는 게 아니고… 남들과 다른 스타성이 필요해요. 그리고 운 때가 들어맞으면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되는 거죠.”
“이상 작가님처럼 말이군요.”
“아… 네, 뭐. 하하….”
아니라곤 하지 않았다.
이준환 편집위원은… 이미 알고 있을 거다.
하융이 곧 내 내면의 자화상임을.
“제가 궁금한 건 그런 하융을 보는 문단 사람들의 시선입니다. 편집위원님 같은… 원로들의 시선이요.”
난 한 번도 ‘원로’가 되어 본 적이 없다.
서른이 되기도 전에 죽었으니, 그럴 시간이 있었을 리가.
물론 내가 다시 태어나 등단을 했을 때.
그때 문단의 원로들은 날 참 미워했다.
‘신인답지 않고’.
‘무례하고’.
‘청탁을 받지 않겠다는’ 신인 작가.
그것이 날 수식하는 말들이었다.
이준환 편집위원이 손을 내밀기 전까지는,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난 문단에 고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원로들의 마음을 무조건 ‘미움’으로 싸잡고 싶지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었을 테니.
그리고 그 마음은… 원로가 되어보지 않았던 나로선 알기 힘든 것이지.
그들의 미움의 기저에 뭐가 있었는지.
이준환 편집위원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 작가가 처음 등단했을 때를 생각해 보죠. 청탁을 거절한 게 일종의 기행이라면 말입니다….”
그렇지.
작가의 목숨줄인 청탁을 거절한 것도, 기행이라면 기행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다들 무시했습니다. 발칙한 신인이란 가끔씩 등장하는 법이니까요.”
발칙한 신인.
그것참 귀여운 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얘긴 달라졌습니다. 이 작가님이 문단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으니까요. 많은 젊은 작가가 이 작가님에게 동조하고, 문단을 비판했죠. 저희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뭐, 시대가 변한다는 게 다 그런 거죠.”
확실히 이준환 편집위원은 생각이 유연했다.
젊은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 줄 줄 아는, ‘원로’에 걸맞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달까.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어요. 아니, 대부분 이 작가님을 대단히 미워했, 아니… 그걸 미워한다고 할 수 있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흠….”
그가 팔짱을 끼고 천정을 봤다.
그의 안경알이 전등에 반짝, 하고 빛났다.
적절한 말을 한참 고르던 그가 이렇게 말했다.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 같군요. 이 작가님을.”
“…두려워했다고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인. 생각을 알 수 없는 신인. 하지만 천재라고 불리는 신인.”
“….”
“두려울 수밖에요. 그 무엇으로도 매수할 수 없잖아요. 돈을 줘서 될 일도 아니고, 대학 교수 자리를 줘서 될 일도 아니고. 그런 신인이 점점 영향력을 키워 가며 문단을 놀라게 하는데요.”
…그렇구나.
문단 원로들이 내게 쏟아 냈던 그 무수한 비난.
물론 그들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원인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새로운 타입’의 작가라고 생각한 거다.
그들이 쌓아 온 것들을 정면으로 부숴 버릴.
그러니까… 결코 손 아래 ‘후배’가 될 수 없는 작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할만했네요.”
“문단에 꼭 필요한 변화이기도 했어요. 뭐,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뭐가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이준환 편집위원은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제까지고 날 지지해 주는 ‘어른’의 미소.
“참 잘하셨습니다.”
…칭찬 들었다.
난 그렇게 칭찬에 고픈 사람은 아니다.
작품이야 칭찬을 받길 바라지만, 내 태도랄까, 그런 것들에 인정을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이준환 편집위원의 그 말은, 미소가 절로 나올 정도로 듣기 좋았다.
환생 후 지금까지 선택해 걸어온 길들이, 적어도 틀리진 않았단 뜻이니까.
* * *
이준환 편집위원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웬일로 지훈이 현관에서 날 맞이했다.
“형, 형.”
“왜?”
“형, 저 쓸모 있죠?”
갑자기 왜 이래.
나는 뭔 소린가 싶어 녀석을 빤히 봤다.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게 분명한데….
일하다가 큰 실수라도 했나?
아니면 월급이 적나?
그게 아니면 내가 요즘 칭찬을 덜 해 줬던가?
“아, 빨리 대답 좀 해 줘요.”
“…원하는 게 뭐야?”
난 경계를 풀지 않고 말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무슨 덤터기를 쓸지 몰라.
“아, 증말 안 넘어가네.”
이럴 줄 알았어.
분명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거다.
나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제대로 브리핑을 해 봐. 뭘 원하는데?”
“앗, 그럼 잘 들어 보세요. 형님.”
하고 내 옆에 착 앉더니, 요즘 아주 모시고 사는 태블릿 피시를 꺼내 든다.
“오늘 이런 메일이 왔습니다요.”
녀석은 메일창을 열었다.
메일은 죄다 영어였고… 일단 조나단 감독이 보낸 것만 확인.
“그리고 금홍 샘이 이렇게 번역을 해 주셨습죠.”
하고 워드 창을 여니, 번역본이 나왔다.
나는 메일 내용을 읽어 봤다.
예상했던 것처럼, 영화 제작 관련 내용이었다.
<그 집>의 촬영을 무사히 모두 마쳤고.
크랭크인 날짜와 영화관과도 계약을 했으며.
그 전에 당연히 감독인 조나단이 편집을 할 텐데….
“…어!?”
나는 깜짝 놀랐다.
“최종 편집본에 대해 나와 함께 상의하고 싶다고?”
그리고 그런 이유로….
“…미국에 와 달라고?”
“형!”
지훈이 내 팔을 잡는다.
놔, 징그러워.
“…저 데려가 주실 거죠?”
“아잇, 잠깐 놔 봐. 아직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데….”
나는 팔을 붕붕 돌려 지훈을 떼어 냈다.
그리고 메일을 죽 읽어 보는데, 지훈이 왜 이러는지 비로소 알아냈다.
조나단 감독은 기꺼이 비행기 표를 제공한다고 했다.
단, ‘두 장’을.
통상적인 숫자였다.
한 장은 당연히 내 것, 하나는 통역사인 금홍의 것.
일단, 가는 게 맞긴 했다.
시나리오를 쓴 이상, 최종 작업에 참여하고 싶었다.
문제는 이 녀석인데….
“…너도 가게?”
“와, 서운해.”
지훈이 싹 뒤로 빠지며 허탈하게 말했다.
어떻게 자기에게 그럴 수 있냐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니, 너 나 일본 갈 때도 잘 안 따라가잖아. 바쁘다고.”
“그, 그건 그렇지만!”
“그렇지만?”
“미국은… 가 본 적 없단 말입니다.”
…그래?
그건 또 의외다.
워낙 잘 사는 집 도련님이라, 가 봤을 줄 알았는데.
아무튼 눈빛을 보니 무지하게 가고 싶긴 한 모양이다.
뭐, 비행기 표쯤이야 경비 처리하면 문제없지만….
…금홍이랑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기회인데!
“…너 청탁 밀렸잖아.”
“지금부터 밤새도록 하면 되죠.”
하고 또 내 옆에 착 붙는다.
내 눈치를 보니 데려가 줄 거라는 걸 눈치챈 거다.
“심심할 텐데? 가서 매니저 일도 없을 테고.”
하고 또 한 번 방어를 해 보지만….
“저 혼자 잘 놉니다. 가 있는 내내 눈에 안 띌 자신 있는데요.”
아… 차마 더 안 된다고는 못 하겠다.
더 방어해 봤자, 금홍과 나 사이를 눈치챌 수도 있으니.
“그래… 가자, 가.”
“와우! 워후! 예헤! 좋아! 캐리어 사야지!”
지훈은 천장 뚫을 듯 방방 뛴다.
그래… 좋겠구나….
나중에 금홍이랑 내 관계를 알게 되면, 그때 저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할 지경이다.
“아, 송지훈.”
“네?”
덩실덩실거리던 지훈이 날 돌아봤다.
“우리 미국 다녀오는 거 언론에 완전 비밀이야. 알지? 까딱하면 귀찮아져.”
안 그래도 <지팡이> 이후 인터뷰 한 번 하지 않아서,
다들 어떻게든 인터뷰를 따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집>의 영화화’는 좋은 건덕지지.
“당연하죠. 완전히 비밀.”
지훈은 눈까지 찡긋대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그렇게도 조용히 다녀오고 싶었건만… 며칠 후 인터넷 뉴스엔 이런 기사가 떠 있었다.
― 천재 작가 이상, 조나단 란스마이어 감독과의 영화 협업을 위해 미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