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56화 (156/204)

156회

신라문학의 홍보는 영리했다.

신문과 문학잡지, 그리고 신―문학까지.

모든 메인에 <지팡이> 홍보를 걸어 놓되, 책 발간 날짜와 표지 사진만 노출했다.

홍보란에 여러 댓글들이 달렸다.

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그 댓글들을 살폈다.

지금은 많이 누그러지긴 했지만, 아직 나를 비난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으니까.

그런데… 결과는 예상외로 괜찮았다.

― 하융의 자화상인가? 겁나 불쌍하게 생김;

― 하융 욕했던 놈들 다 나와라. 고작 10대, 그리고 갓 20대가 된 애한테 별별 쌍욕들을 다 하더라. 사람은 원래 혼란스러워하면서 자라는 거 아니냐? 저 그림처럼. 딱 저런 표정으로 하융이 자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ㅜ 예약하러 간다….

― 흠… 솔찌 이상이 왜 그런 매국노같은 글을 썼는지 하나도 이해 안 됐는데 하융 얼굴 보니 좀 마음이 동함. 마음 동하라고 그린 그림인 듯.

― 이 그림 이상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인가?

― 헐? 작가가 그렸다니 ㅜㅜㅜ 그럼 저 그림 빼박 하융 그 자체 아닌가? 이상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잖아.

― 그래도 전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글이지 그림이 아니잖아요.

등등, 댓글들은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아직은 좀 냉담한 반응도 있지만, 대체로 표지 그림을 좋게 봐 준 것 같았다.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독자 반응.

사실 순문학에서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순문학에서 중요한 건 자신의 미학을 드러내는 거다.

평론가란 전문적 독자층이 따로 있기에, 직접적인 독자 반응은 아무래도 뒷전일 수밖에.

이런 시스템은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작가가 대중의 자극적 기호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단점은 그만큼 대중에게서 소외되기 쉽다는 것.

사실 <지팡이>는 평론가들에게 이미 인정받은 글이다.

하융의 ‘매국’에 대해서도 이성적 통찰이 끝난 상태고.

독자 반응이야 무시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명작’으로 남은 세계의 많은 문학.

그 문학 중 독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

난 여기서 문학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명작’을 만드는 건 ‘인정’과 ‘사랑’이다.

‘인정’은 평론가들이 만들어 줄 수 있지만, ‘사랑’은 대중과 독자만이 만들 수 있다.

우웅―

신라문학 이준환 편집위원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 <지팡이> 예약률이 정말 좋아요.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문자의 내용을 살폈다.

엑셀로 정리되어 있는 예약 현황.

1쇄로 뽑기로 한 3,000부를 훌쩍 넘었다.

“후우….”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금까지의 논란에 비하면, 이 정도의 판매 수는 기대 이상이었다.

우웅―

문자가 하나 더 날아왔다.

역시 이준환 편집위원이었다.

― 이제 슬슬 ‘작가의 말’을 주셔야죠?^^ 오늘 안으로 주셔야 인쇄가 늦지 않습니다.

윽.

베테랑 편집자의 은근한 압박이었다.

나는 얼른 답장을 보냈다.

― 오늘 안으로 꼭 보내 드리겠습니다.

“후… 그래, 써야지.”

나는 허리를 펴고 고쳐 앉았다.

그리고 워드 프로그램을 켰다.

흰 백지에 커서가 깜빡깜빡거린다.

<지팡이> 발간을 위한 마지막 단계.

바로 책머리에 들어갈 ‘작가의 말’ 쓰기였다.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은 말은 없으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있었다.

<지팡이>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독자’는, ‘특별한’ 독자층이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인지했다.

물론 그것을 일찍이 인지했더라도, 소설 전개는 바뀌지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독자들을 덜 놀라게 할 수 있진 않았을까.

내가 한국 독자들에게 가지는 애정, 그리고 미안함.

나는 그런 것들을 ‘작가의 말’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약간은… 부담이 된다.

많은 말들을 썼다 지웠다.

어떨 때는 한 장이 넘는 긴 편지를 썼다가 다 지웠다.

문제라면 문제였다.

무슨 말을 해도 이 마음을 다 담을 수 없다니.

전생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고민인지라, 나는 오랫동안 끙끙거린 후에야 글을 완성했다.

고작 두 문장이지만, 이 이상 좋은 글은 떠오르지 않았다.

― 언어와 역사를 공유한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우리들 만의 특별한 감정으로 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

나는 그 두 문장을 신라문학 쪽으로 보냈다.

이것으로, <지팡이> 1권을 만들기 위한 내 일은 모두 끝난 셈이었다.

* * *

신라문학은 모든 준비를 끝내 놓은 상태로,

정말로 내 ‘작가의 말’만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지팡이> 1권은 민망할 정도로 빨리 발간이 됐다.

하지만 서점 매대에 책이 깔리진 못했다.

사전 예약이 1쇄를 넘어서는 바람에, 개인 발송이 끝나자 서점으로 갈 물량이 남질 않았다.

뭐, 신라문학이 빠르게 2쇄를 뽑아내고 있긴 하지만.

“형, 신라문학 홈페이지에 형 책 독자 반응 올라왔는데 보실래요?”

같이 저녁을 먹던 중, 지훈이 말했다.

내가 집필을 하는 시기에 지훈은 독자 반응을 바로 전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녀석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 같다.

“특별한 얘기라도 있어?”

“형 보여 주고 싶어서요. 제 새 태블릿 피시도 좀 자랑할 겸.”

지훈이 방으로 들어가 태블릿 피시를 가져왔다.

녀석은 기계를 엄청나게 좋아해서, 몇 달에 한 번씩 휴대폰과 태블릿 피시를 갈아치운다.

“보세요.”

지훈이 커다란 화면을 내밀었다.

화면에 떠 있는 건 신라문학의 <지팡이> 주문란.

물론 지금은 예약만 가능한 상태지만….

나는 화면을 내려 댓글을 살펴봤다.

― 연재분을 볼 땐 작가가 조금 미웠습니다. 하융이 일본을 찬양하는 시를 쓰거나 할 때,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괜히 볼멘소리로 댓글을 달곤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하융이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책으로 한꺼번에 읽어보니 알 것 같아요. 한 인간의 성장에는 반드시 굴곡이 필요하고, 하융은 그저 그 굴곡을 지나왔을 뿐이라는 걸요. 2권 기다리겠습니다. 이상 작가님.

― 으으… 작가의 말 읽고 왠지 마음이 두근두근! 작가님과 저희는 모두 한국인들이잖아요. 우리들만의 특별함이라니 ㅠㅠㅠㅠ 이런 선물이 세상에 어딨나요 ㅜㅜ 원래부터도 좋아했지만 앞으로도 더 좋아합니다!

― 이상은 확실히 다른 작가와 다르다. 다른 작가들이 평론가의 눈치만 볼 때, 이상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독자를 설득시킨다. 표지는 정말… 웹에서 <지팡이>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저 그림이 그냥 자화상으론 절대 안 보일걸? 솔직히 이상 미워했던 사람 진짜 많은데 다 돌아왔다고 봐도 무방함. 일단은 나부터.

― 아… 욕해서 죄송합니다. 친구한테 이 책 빌려보고 저도 사러 왔어요; 감상은 자유라지만 끝나지도 않은 작품에 악플을 남겼던 건 두고두고 후회가 되네요. 반성하겠습니다.

“어때요?”

지훈이 넌지시 물었다.

나는 댓글을 계속 읽으며 대답했다.

“다행이야.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라고 해야 하나.”

“….”

“그런 게 먹힌 거잖아. 소설 몇천 자 쓰는 것보다 그런 게 더 어렵거든.”

물론 이 역시 혼자 해낸 일은 아니다.

애초에 표지 이야기를 꺼낸 건 박조운 편집장이고, 조인후 감독과 디자이너가 시안 만드는 걸 도왔고, 지훈도 고생스럽게 화실을 만들지 않았는가.

그 모두가 애를 썼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거겠지.

“파티를 하긴 해야겠네.”

나는 웃으며 태블릿 피시를 건넸다.

지훈이 신줏단지 모시듯 그것을 받았다.

“아직 비축분은 많으니까 이번 주 주말에 해요.”

“그래 봤자 오늘이 금요일이니, 내일 아냐?”

“내일 빡! 놀면 일요일엔 글 못 쓰실걸요?”

“대체 얼마나 놀려고 그러냐.”

“아, 맞다. 형, 해외 출판사 쪽에서 계속 연락들이 오는데요.”

“<지팡이> 책 내자고?”

“네. 한국에서도 냈으니 자기네 나라에서도 내자 이건 것 같은데… 진짜 안 내실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에 책을 낸 건 한국 독자들만을 위한 특전 같은 거고. 물론 일이 이렇게 됐으니 한국에서는 계속 단행본을 내야겠지만… 다른 나라는 아니야. 완결이 낼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 그전까지는 미리 계약도 하지 않겠다고 전해주고.”

“음… 뭐, 그래요. 형.”

지훈은 알았다는 듯 물러났다.

그리고 밥을 떠먹다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그, 형.”

“어?”

“책을 내고 싶다는 출판사들 중에서….”

“중에서?”

“…도마크도 있었는데요.”

일본의 도마크 출판사가 연락을 해 왔다고?

사실 그건 생각지도 못했다.

도마크는 <갈림길> 발간을 거절했었다.

불편한 역사를 꺼냈다간 우익들이나 일본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으니.

하지만 <지팡이>는 <갈림길>보다 더 강렬한 글이다.

한일관계를 더욱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글.

<지팡이> 속 하융의 태도는 한 마디로 ‘불편하다’.

한국인들의 입장에는 매국노처럼 보여 불편하고.

일본인들의 입장에는 하융의 성장에 일본을 이용한 것 같아 불편할 것이다.

비교적 관대한 한국인들조차 이에 불만을 터트렸는데, 일본에서 <지팡이>를 내겠다고?

도마크는 작은 출판사가 아니다.

<지팡이>가 가져올 여파를 모르지 않을 텐데.

이건… 미쯔하루 편집장과 얘길 해 봐야겠다.

그날 밤.

나는 미쯔하루 편집장에게 SNS로 연락을 했다.

― 밤늦게 연락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이 시간이라면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실례지만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이 불편하시다면 가능한 시간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약 십 분 후.

우웅―

하고 답장이 왔다.

― 이상 작가님. 샤워를 하느라 이제 봤군요. 물론 통화 가능합니다. 저도 작가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요.

― 그럼 제가 걸지요.

나는 바로 미쯔하루 편집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다이얼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로 전화를 받았다.

― 미쯔하루입니다.

“이상입니다. 격조했습니다, 편집장님.”

― 아아, 이상 작가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우린 잠시 침묵했다.

우리의 마지막 통화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갈림길> 발간을 끝내 거절했다.

그 거절을 받고 무슨 생각을 했더라.

맞다,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세계는 물론이고 일본 출판사마저 ‘낼 수밖에 없는’ 글을 쓰겠다고.

따지고 보면… 그때의 다짐이 이루어진 셈인가.

“매니저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지팡이>를 발간하고 싶으시다고요.”

― 음… 맞습니다. 염치없지만,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결연하게 말했다.

사실 일본에서 도마크 외에 <지팡이>를 내겠다 한 출판사도 없긴 했다.

그만큼 일본의 독서 시장이 독자 눈치를 본단 뜻이겠지.

“먼저 확실하게 말씀드려야겠네요. 저는 한국을 제외하고 어떤 나라와도 완결 전에 단행본을 낼 계획이 없습니다.”

― 아… 그러십니까.

“발간 계약을 미리 해 둘 마음도 없습니다. 완결이 된 후에야 일을 진행할 생각이죠.”

― 아… 그러시군요. 존중하겠습니다, 작가님.

시종 저자세인 미쯔하루 편집장의 태도.

그래도 오랫동안 합을 맞춰 온 출판사라 그런지, 그들의 얘길 들어 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궁금하긴 하군요.”

― 예?

“당연히 아시겠지만, <지팡이>는 꽤나 불편한 책입니다. 지금 나와 있는 1권은 그나마 하융이라는 인물이 친일적인 태도를 취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연재되고 있는 다음 내용 전개를 보시면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아실 텐데요.”

친일이란 하융에게 ‘성장기’ 사건에 불과하다.

그렇게 1차 성장이 끝났으니, 앞으로 하융의 친일은 등장하지 않을 확률이 큰데.

“그런데 어째서 <지팡이>를 일본에서 내려 하시는지요.”

미쯔하루 편집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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