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회
네오Neo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Neo는 ‘새롭다’라는 의미의 접두사이며, Orientalism은 서양이 가진 동양에 대한 환상을 의미한다.
뿌리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말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행했던, 이탈리아의 새로운 영화 기법 ‘네오리얼리즘’.
아마 그 말에서 착안해 만든 단어겠지.
단, 오리엔탈리즘 자체는 좋은 말이 아니다.
서양이 가진 동양에 대한 환상.
즉, 여성적이며, 나약하고, 신비롭고, 정신적이라는 편견을 뜻하는 말이니까.
나는 조나단 감독에게 물었다.
“어떤 의미로 <지팡이>를 네오―오리엔탈리즘이란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물론 부정적인 의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 두는 게 중요하지.
― 뭐, 기본적인 뜻은 알고 계시다는 전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래 미국 문화계가 동양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상 작가님께서 알고 계신 ‘오리엔탈리즘’의 범주였다면… 작가님이 그려낸 한국의 개화기 풍경은 미국 문화계에 새로운 미학적 자극을 준 것 같습니다.
새로운 미학적 자극이라.
그래서 ‘네오’라는 말이 붙은 거군.
― <지팡이>의 배경이 대단히 감각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까. 사라져 가는 조선 왕조의 흔적과 새로이 들어오는 서구권의 문화. 그 두 가지가 혼재되어 보여 주는… 기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안 맞는 옷을 입었는데, 그 옷을 입은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기묘한 거죠.
“좋은 표현이네요. 안 맞는 옷을 입었지만 아름다운 모습이라.”
사실 그건 내가 전생에 곧잘 느낀 감정이긴 했다.
난 내가, 내 문학이 언제나 현대적이길 원했다.
새롭고 앞서 나가는 문화와 문학을 바랐다.
하지만 내 현실은 식민지의 작가.
‘조선인’이라는 몸과 내 이상은 맞지 않았고, 내 마음 어딘가에는 항상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니 항상 우울과 권태에 시달렸겠지.
그리고 그 불편한 마음으로 쓴 글들.
후손들은 그 글들을 ‘아름답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이 역시 기묘한 일이지.
조나단 감독은 손바닥으로 날 가리키며 말했다.
― 맞아요. 미국인들에게 동양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신 거죠. 그 세계는 아름답고 기묘해서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기존 오리엔탈리즘처럼 나약한 세계는 아니죠. 그 안에 첨예한 갈등들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음… 좀 서운하게 들리실지도 모르겠지만, 우린 한일관계나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겠죠. 저도 그럴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 한국이나 일본, 또… 그래요. 독일 정도는 동아시아 역사를 염두에 두고 <지팡이>를 읽고, 메시지를 찾아내려 할 거예요. 하지만 미국의 경우 소설의 메시지보단 이야기의 힘과 묘사의 미학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어요. 문화적 거리가 먼 동양 문학에 대해서는 더 그렇겠죠.
“그게 미국 문학의 장점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가 미국 시장을 겨냥해서 <그 집>을 쓰기도 한 거고요.”
― 아주 훌륭하고 탁월한 선택이었죠. 아무튼 미국의 반응은 그래요. 물론 서구권 작가들의 소설보다는 언급이 훨씬 덜 되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마니아층이 생기고 있어요. 이 힘을 잘 유지하고, <그 집>을 성공시키면…!
“더할 나위 없겠군요.”
조나단 감독이 손가락을 탁 하고 튕겼다.
― 바로 그거죠.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이 좀 걸리긴 하지만, 요는 어쨌건 <지팡이>가 미국에서도 자리를 잡았단 뜻일 거다.
조나단과 나는 인사를 나누고 회의를 마쳤다.
집필에만 매달려 있던 내 일상.
조금이나마 환기가 된 것 같았다.
줌을 끄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튼부터 치우자.”
“왜요, 보기 좋은데.”
지훈이 지겹지도 않은지 날 계속 놀려 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커튼을 걷었고, 그걸 지훈과 함께 창에 달았다.
금홍은 커튼이 걷힌 칠판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직도 쓸 게 많은 것 같네요.”
“본격적인 얘기는 시작도 안 했으니까요. 하융이 이제 겨우 성장기를 벗어났고요.”
물론, 정신적인 성장은 계속 하고 있지만 말이다.
금홍은 칠판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가 지금 쓰고 계신 부분이죠?”
“아, 네. 맞아요. 26화부터… 아마 30화 넘어서까지 쓸 부분이에요.”
“하융이 일본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요?”
금홍이 칠판의 키워드를 보고 말했다.
나는 고리에 커튼을 걸며 대답했다.
“네. 그 시절에는 그랬거든요. 많은 곳에 작품을 발표하고 싶으면 일본어로 글을 썼어야 했어요. 그렇지 않은 작가들도 있었지만….”
“….”
“하융이라면 그랬을 것 같아서요.”
내가 전생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금홍은 좀 놀란 것 같았다.
“저는 몰랐어요. 당시에 일본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많았다니… 좀, 충격적인데요?”
“교육 과정에선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요.”
좀 더 확실히 말하자면, 숨기는 거겠지.
내 작품을 실은 그 어떤 교과서에서도… 내가 일본어로 글을 발표했단 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교과서는 국민들의 민족성을 길러주는 가장 효과적인 책이다.
그러니 작가의 그런 비화를 밝힐 수 없겠지.
교과서는 학생이 문학을 즐기기보단, 작품과 작가의 윤리성을 본받길 바라니까.
물론 알고는 있다.
교과서의 목적은 훈육이고 교육이라는 걸.
하지만 작가 개인으로선, 그런 훈육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
“하융이 거기서 어떤 글을 쓸지 생각해 봤어요?”
반대쪽에서 커튼 고리를 걸던 지훈이 물었다.
“응. 내면의 불안에 대한 소설이지. 혹은 권태로움. 하융은 솔직한 사람이니까, 자신의 불안과 불만을 어떻게든 표출하려고 할 거야.”
“그럼 그 작품은….”
“조선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킬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하융이 그렇게도 원하지 않던 ‘조선 문학의 희망’이 되어 버리는 거고.”
“일본어로 쓴 소설인데도요?”
금홍이 물었다.
“네. 참 아이러니한 일이죠? 아 그리고… 하융의 인간관계도 넓어질 거예요.”
“헐? 누굴 만나는데요?”
지훈이 물었다.
“그건 원고에서 확인하도록.”
“에이, 치사해.”
그렇게 수다인지 회의인지 모를 이야기 속에서, 커튼은 다시 제자리를 찾을 때였다.
우웅― 우웅―
내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집필에 들어가고 나서는 전화도 잘 받지 않지만, 그 전화는 바로 받았다.
전화를 건 이는.
신라문학의 이준환 편집위원이었다.
* * *
이준환 편집위원은 점심이나 한 끼 먹자고 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나는 그가 예약한 중식당으로 향했다.
신라문학 사람들과 몇 번 와 본 기억이 있는, 그들의 단골 회식 장소.
안내된 룸으로 들어가니,
웬일로 박조운 편집장도 함께였다.
“편집장님, 오랜만입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그가 껄껄 웃었다.
“어서 와요. 요즘 이 작가, 고생이 많다던데?”
<지팡이>에 대한 독자 반응을 말하는 것 같았다.
걱정보다는, 이 사태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반응.
산전수전 다 겪어 본 원로의 여유가 느껴졌다.
나는 장난스레 말했다.
“죽을 맛입니다.”
“뭐, 별수 있나요. 작가 일이 그렇죠.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가는 수밖에요.”
이준환 편집위원이 내게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
난 문득 편안함을 느꼈다.
요즘에는 주위 사람들을 적잖이 걱정시켰다.
그게 내심 미안하고 불편했는데… 내 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그들의 태도가, 은근한 안정감을 준달까.
마음이나 상황이 힘들 때, 믿을 만한 어른을 찾는 것도 이런 이유겠지.
주문한 메뉴는 오래 지나지 않아 나왔다.
“많이 먹어요. 우리가 사는 거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식사가 거의 마무리 될 무렵.
이준환 편집위원이 슬슬 본론을 꺼냈다.
“<지팡이>가 25화 정도 됐죠?”
“네. 그렇습니다.”
“한 화에 원고지 몇 매 정도가 나오던가요?”
“오십 매 정도 됩니다.”
“어이쿠. 꽤 많군요. 연재하기가 쉽지 않겠어요.”
“아직은 비축분이 적지 않아서요.”
“원고지로 따지면 지금쯤 한… 천 매 나왔겠네요.”
“세 보진 않았지만, 그럴 것 같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꺼내는지 모를 만큼 순진하진 않다.
매수가 다 찼으니, 종이책을 생각해 보라는 거겠지.
물론 난 일찍이 결심했다.
<지팡이>가 완결될 때까지 종이책을 내지 않겠다고.
인터넷 연재 지표와 반응도 이리 신경이 쓰이는데, 오프라인까지 더해지면 집중을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슬슬 종이책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이럴 줄 알았다.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내 대답에 두 사람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답답한 걸 못 참는 박조운 편집장이 말했다.
“대체 뭘 모르겠다는 거요?”
“사실 제 집중이 흐트러지는 게 싫어서 완결까지는 종이책을 내지 않으려 했거든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도 이런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강요는 못 하지만….”
이준환 편집위원이 당황한 듯 말끝을 흐렸다.
내줬으면, 하는 게 그의 본심일 것이다.
하지만 내 의견과 의지도 존중하고 싶겠지.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좀 흔들리고 있어서요.”
“음? 그건 또 무슨 소리?”
박조운 편집장이 흥미를 보였다.
“며칠 전 제 지도 교수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한국의 독자들은 작가가 어떤 윤리적 모델이 되어 줄 거라 기대를 한다고요. 제 소설이 그 기대를 배반한 게 잘못한 건 아니지만….”
“….”
“이젠 독자들의 마음도 이해가 돼서요.”
“흠… 그렇군요.”
이준환 편집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종이책을 내면서 독자들의 마음에 위로 아닌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체적인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 게 문제지만요.”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마치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으라고 조르는 것 같아서.
“그럼 이상 작가는….”
이준환 편집위원이 물었다.
“독자들을 위해 아까 말했던 집중이 흐트러질 수 있는 피해를 감수해 보겠다는 건가요?”
…말이 그렇게 되나.
“네. 그렇게 해서 그들의 마음을 좀 달래 줄 수 있다면요. 얼마든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고민이 될 거였다.
<지팡이>를 둘러싼 비판들을 모르지 않으니.
종이책으로 이 여론을 조금이나마 잠재운다는 것.
지금 보기엔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하지만 현재로선 종이책이 최선이다.
‘한국 독자에게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 될 수 있을 테니.
“종이책에 소설 외의 ‘무엇을’ 담느냐가 관건이군.”
박조운 편집장이 중얼거렸다.
“네. 하지만 소설책에 소설 외의 것을 넣는 것도 이상하니까요. 아직 완결되지 않은 글에 평론을 함께 싣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이건 우리 쪽에서도 생각을 좀 해 보지. 조금 기다려 줄 수 있나요?”
박조운 편집장이 말했다.
그 역시 방법을 찾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는 기꺼이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박조운 편집장에게서 직접 전화가 왔다.
― 이상 작가. 내가 방금 일어났는데 말이오, 그럴듯한 생각이 나서!
반쯤 잠긴 목소리.
그러나 아이처럼 흥분한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이미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까지 마친 나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그게 뭐냐고 물었다.
― 표지! 표지로 뭔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