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50화 (150/204)
  • 150회

    “난 한국 독자들이 유난히 더 화를 내는 이유를 알 것 같은데요.”

    심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 때문인가요?”

    “비슷한 답이긴 하지만… 관점이 좀 달라요.”

    나는 가만히 그의 말에 집중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는 완벽한 ‘지도 교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독자들은 작가에게 세계의 다른 독자들이 바라지 않는 걸 바랍니다.”

    “….”

    “윤리의식이라고 하죠.”

    심 교수가 조곤조곤 말했다.

    윤리의식.

    윤리는 도덕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도덕은 행동적 규범에 가깝다면, 윤리는 행동을 이끌어 내는 정신적 영역이다.

    가령.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는 도덕에 가깝지만.

    ‘환경은 후손의 것’이라는 마음은 윤리에 가깝다.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작가가 윤리적이길 바랍니다. 이상하죠? 음악가나 미술가들은 특별히 윤리적이지 않아도 그 작품을 누리면서… 작가들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작품마저 꺼려 해요.”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내가 친일행위를 하는 주인공을 그린 것은, 독자의 윤리 기준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그 안의 미학이 어떻든, 메시지가 어떻든.

    ‘친일’이라는 요소 그 자체를 작품에서 완전히 들어내지 않고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들.

    <지팡이>의 댓글란에서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맞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유독 한국 독자들의 성격이 고약해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그건….”

    “….”

    “선배 작가들의 영향이겠죠.”

    ‘문학은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다. 삶의 바른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한국의 작가들은 이런 정신으로 오랫동안 글을 써 왔다.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술가’라기보단, 독자들을 이끄는 ‘지식인’의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굴곡이 잦은 근현대 한국의 상황에선 더더욱 저런 정신이 빛났겠지.

    이제 알 것 같았다.

    그들이 내게 어떤 기대를 했던 것인지.

    “제가 윤리적인 모델이 되어주길 바란 거군요. 작품을 통해서.”

    심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에 대한 로망이죠. 독자는 작가의 길을 뒤쫓고 싶어 해요. 작가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싶어 하고, 느끼는 대로 느끼고 싶어 하죠.”

    “….”

    “작가가 독자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것참,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물론 글재주야 작가가 독자보다 낫겠지만… 더 나은 사람이라니.

    정작 나만 해도,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이 무심하고, 가끔은 독단적인 기질을 보라.

    나보다 훌륭한 사람은 세상에 차고 많다.

    “…놀랍군요.”

    “그러니 로망이란 겁니다. 허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독자들의 로망까지도 작가가 메고 갈 숙명이라는 겁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작가라면, 한국의 독자를 이해해야 했다.

    그들은 세계 그 어떤 민족보다도 예민한 독자다.

    그러니 이 ‘비윤리적인 인물’에 대한 반발이 심하겠지.

    “그렇다 해서 소설의 내용을 바꾸라 하진 않겠어요. 나도 하융의 선택이 정말 좋았거든.”

    그는 후후 하고 웃었다.

    어딘지 장난기 어린 웃음이었다.

    “하지만 독자의 마음을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건 천지 차이니까. 가능하면 약간의 방어를 해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봐요.”

    나는 비로소 심 교수가 날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독자들의 마음을 알게 하는 건… 앞으로의 전개를 더 유려하게 하는 방안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도 교수’가 ‘지도 학생’을 지키는 방법일 테고.

    “저는….”

    나는 입을 열었다.

    “예술은… 윤리와 그리 가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예술은 미학을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설은 여러 가지 삶의 모습과 인간성에서 미학을 찾는 예술이고요. 물론 그 인간성 안에 윤리의식이 포함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인간성의 수많은 면 중 단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게 소설의 전부가 될 순 없어요.”

    심 교수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계속 말했다.

    “윤리적인 인간을 소설에 그려 낼 수는 있겠죠.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인간의 삶입니다.”

    “….”

    “저는 제가 이해한 인간의 삶을 그려 내고 싶어요.”

    반골과 외로움.

    윤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개념들.

    이런 것들을 가지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런 분란은 예견된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을 듣길 잘한 것 같습니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독자의 마음을 알고 쓴다면… 그들에게 조금 덜 상처를 주는 방향으로 소설을 쓸 순 있겠죠.”

    “조금 덜 상처를 준다고요?”

    “네. 제 눈에 저를 비판하는 독자들은… 조금은 상처를 받은 것 같았거든요.”

    내게 기대를 걸었던 이들은, 아마 내 작품을 사랑해 왔을 것이다.

    나아가 ‘이상’이라는 작가를.

    작가는 줏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독자를 무시하는 독선을 부려선 안 된다.

    적어도 그들이 상처를 받진 않도록, 할 수 있는 한의 마음을 써야겠지.

    심 교수가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윤리란… 그 어떤 경우에도 계속 글을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윤리 하나만 잘 지켜 줘요.”

    * * *

    심 교수의 연구실에 다녀 온 후.

    나는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단순히 내가 ‘과하다’고 느꼈던 독자 반응.

    그 반응의 속마음을 안 것 같달까.

    작가는 독자의 로망을 견뎌야 한다는 그의 말.

    <지팡이>의 남은 긴 여정에 적잖은 힘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심기일전을 하고 집필을 하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똑똑.

    노크를 하고 방으로 들어온 지훈이 말했다.

    “형, 조나단 감독이 줌으로 회의할 수 있냐고 하는데요?”

    “어? 조나단 감독이?”

    “네. 내일이요. <그 집> 영화 캐스팅이 다 끝났으니, 보고를 해 주고 싶다나요.”

    제작사를 구했다는 소식은 꽤 오래전에 들었는데.

    벌써 일이 그렇게까지 진행됐구나.

    “그래, 하자. 금홍 샘한테 와 주실 수 있느냐고 물어보고.”

    “네.”

    그리고 다음 날 정오.

    금홍은 기꺼이 우리 집을 찾아 줬다.

    “벌써 캐스팅이 다 끝났대요?”

    금홍도 왠지 설레하는 듯했다.

    하긴, 영화나 드라마를 몇 번 참여해 본 나도,

    이렇게 제작사를 찾고 스태프가 모이고 캐스팅이 되는 걸 볼 때마다 신기하니까.

    지훈은 날 위해 줌 프로그램과 배경을 설정해 줬다.

    칠판을 달기 위해서 작업실 구조를 좀 바꿨는데, 컴퓨터 위치상 카메라가 칠판을 비추는 구조였다.

    <지팡이> 기획을 그대로 노출할 순 없는 노릇.

    급한 대로 커튼을 떼서 칠판에 걸었다.

    그렇게 해 놓으니….

    “으하하하… 형, 되게 고상한 곳에 있는 것 같은데요?”

    화면 속 나는 예쁜 커튼 앞에 앉은 모습이 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칠판을 떼버릴걸….”

    내 구시렁거림에 금홍이 킥킥 웃었다.

    “왜요? 예쁘고 좋은데요.”

    그런 난리통 속에서 시작한 줌 회의.

    화면에는 조나단 감독이 나타나 손을 흔들었다.

    ― 작가님! 오랜만입니다! 금홍 씨도요!

    언제나 흥이 넘치는 조나단 감독이었다.

    금홍과 나도 손을 흔들었다.

    “잘 지내셨어요, 감독님? 캐스팅이 다 끝났단 소식을 들었어요.”

    ― 원하는 배우를 꼬드기느라 시간이 좀 걸렸죠. 그 배우, 다른 스케줄과 겹치는 바람에 시간을 조정하느라 애를 좀 먹었습니다. 다행히 그 배우도 <그 집>을 재밌게 읽어서 꼭 하고 싶다고 했죠.

    “궁금하네요.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 화면을 보시죠.

    어떻게 한 건지 모르지만,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이 열리고 사진들이 지나갔다.

    사실 외국 배우 쪽은 문외한이었다.

    아주 유명하지 않은 이상 내 눈엔 다 비슷비슷하다.

    그래도 난 집중해서 사진들을 봤다.

    조나단 감독이 설명해주는 배우의 필모를 들으며.

    ― 앰버 로그. 우리의 여주인공이에요. 스릴러 영화에 다수 출연했고… 예민하고 예리한 연기에 잘 맞는 얼굴을 가졌어요. 연기력은 걱정을 안 해도 돼요. 문제는 작품과의 조화인데… 보다시피 흑발인데 괜찮겠어요?

    “가족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머리 색은요?”

    ― 역시 똑똑해요, 이상 작가님. 가족 역할을 맡은 배우는 모두 금발입니다.

    그가 사진을 차례로 띄웠다.

    양아버지, 양어머니, 양오빠 역을 맡은 배우들.

    그의 말처럼 모두 금발에 벽안이었다.

    그들의 사진을 모두 모으니… 놀랍게도 완벽한 ‘중산층 가정’의 분위기가 났다.

    이래서 캐스팅 매니저를 두는구나 싶을 정도로.

    요새 말로 정말 ‘찰떡’이었다.

    “좋아요. 이 금발 가정 안에 입양된 흑발 소녀. 시각적인 대비감이 기대돼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런 설정은 서양에서만 가능하겠네요.”

    조나단 감독이 어깨를 으쓱했다.

    ― 그거야 기본이죠.

    조나단 감독은 계속 배우들의 필모를 말해 줬다.

    여주인공만큼 신경을 쓴 캐릭터, 양오빠.

    그의 캐스팅 비화는 또 다른 재미였다.

    ― 양오빠 역을 맡은 조쉬 배틀러 배우는 사실 영국계예요. 하지만 미국식 발음을 완벽하게 익혀서… 위화감은 없어요. 다만 생김새랄까… 그런 것들이 묘하게 달라서 이 집안에서의 양오빠의 이질감도 드러낼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이 배우가… 푸하하…!

    조나단 감독이 난데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 웨일즈 태생의 순박한 시골 청년이라는 거예요. 극 중 캐릭터와 전혀 맞지 않죠, 이 샤프한 얼굴 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인데, 시골 출신이라니.

    ― 처음에는 양오빠 역을 좀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미국 중산층 화이트칼라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놀라운 재능이죠. 미국에서 팬층도 두꺼워요.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배우죠.

    “좋은 선택이네요. 마니아야말로 우리가 잡아야 할 관객이니까요.”

    ― 당연하죠. 우리의 컬트 취향, 충분히 살릴 생각이에요.

    우리는 작품에서 살려야 할 부분에 대해, 배우들의 연기 성향과 소소한 수정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가끔은 의견이 충돌했지만, 대부분 합의가 됐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회의가 마무리될 즈음이었다.

    ― 그런데 오늘 유난히 예쁜 곳에 계시네요?

    “아, 뒤의 커튼 말인가요?”

    ― 네. 뜨개질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의 말에 금홍과 나는 킥킥 웃었다.

    “커튼은 맞지만 창문을 가린 건 아니에요.”

    ― 오, 그럼 뭘 가린 거죠?

    “음… 새로 연재하는 소설의 플롯이죠.”

    ― <지팡이>! <지팡이>를 말하는 거죠?!

    “오, 읽어 보셨나요?”

    ― 매일이요. 아주, 아주 멋진 작품이에요. 우리 팀원들에게도 읽으라고 강요하고 있죠.

    “하하… 강요는 안 하셔도 되는데요.”

    ― 진지하게 말해서, 서구권은 동양의 글을 읽을 필요가 있거든요. 서구 중심적인 문화관만을 고집하면, 미국 영화계도 절대 발전 못 해요. 백인이 흑인을 이해하고, 흑인이 아랍인을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서구권도 동양의 문화를 이해해야죠.

    그는 어울리지 않게 꽤 교과서적인 말을 했다.

    하지만 일리 있는 말이었다.

    문화적 다양성을 갖추지 못하면, 예술은 도태되고 마니까.

    ― 요즘 미국의 문화예술학자들이 당신 작품에 대해 뭐라고 떠드는지 알아요?

    “그래요? 뭐라던가요?”

    ― 네오Neo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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